군대를 만들다.
며칠 후 잠깐 내렸던 눈이 그치고 나자 관군의 토벌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찬가 지로 임꺽정의 부대도 작전에 따라 이동을 시작해서 먼저 포진을 완료하고 관군을 기다렸다.
관군의 토벌대는 선전관 정수익, 봉산군수 이흠례, 금교찰방 강려, 평산부사 장효범 이 이끄는 혼성병력 500여명의 큰 부대였다. 이중에서 제대로 된 무관은 선전관 정 수익이나 그 품계가 낮았다. 평산부사 장효범은 가장 높은 지위였지만 잠시 무관직 을 겸임한 반쪽짜리 무장이였고 봉산군수 이흠례는 경찰서장형이지 군인이 아니었다 . 금교찰방 강려는 약간의 군사와 말을 지원해서 공을 나누어 먹기 위해 온 자일 뿐 이다.
따라서 관군 토벌대의 지휘부는 뚜렷한 총사령관이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조정에서 급파됐다는 부장 연천령이 온다면 모르지만 그와 그의 군사는 보일 기미도 없고 또 사람이 많으면 공은 줄어드는 법이라 네 명의 지휘관들은 군사를 움직이기로 했다.
눈 덮인 산이 위험한 편이라 미끄러지는 군사들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적을 발견하 기가 쉬워 임꺽정부대의 장기인 기습공격를 피할 수 있었기에 토벌군은 상당히 여유 있게 진격해갔다. 그리고 한 동안은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진격할 수 있었다. 어떠 한 징후도 없자 점차 토벌군은 잡담을 하는 병사가 생기는 등 군기가 점차 풀려갔다 . 그들이 발견된 것은 그 때였다.
토벌대의 진격예정로에서 세 명의 사람이 산으로 이동중인 것이 발견된 것이다. 척 보기에도 유민이 된 가족처럼 보였다. 그들은 토벌군을 보았는지 가지고 있던 보자 기를 버리고 빠르게 산위로 도망쳤다. 곧 어린 아이로 보이는 이가 뒤쳐지더니 비탈 길에 미끄러져 뒹굴거렸다.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두 명은 다시 내려와 아이를 잡고 끌어서 산을 오르다가 자신 도 지쳤는지 아이를 놓고 쉬다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한 번 더 미끄러 지더니 이젠 아예 기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 미끄러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병사들 대부분이 웃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가 미끄러질 때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대체 토벌을 나온 것인지 놀러 나온 것인지 구별 이 안 가는 상황이다. 이를 보던 봉산군수 이흠례가 추격을 요구했다.
"평산부사 어른, 즉시 저자들을 추격해야겠습니다."
"아니, 봉산군수. 저들을 왜 잡으려는 것이오?"
"아무래도 임꺽정의 산채로 도주중인 유민 같습니다. 잡아서 길을 안내받는다면 토 벌이 한결 수월해질 겁니다. 거기다 아이가 있어서 잡기도 쉬울 겁니다. "
"하지만 길이 험한 듯한데……. 병사들이 추격하고 힘들지 않겠소?"
"길이 험하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 군이 오늘 갈 길입니다. 산적들은 없겠지만 지금 있는 지형에서 임꺽정의 기습이 많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불리하니 자리도 옮겨야 합 니다. 빠르게 올라간 후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는 게 더 나을 겁니다. "
봉산군수 이흠례는 신계현감으로 있다가 임꺽정의 무리 수십 명을 잡아서 봉산군수 가 된 자다. 그 때문에 임꺽정이 그를 제거하려 했고 여기 있는 지휘관중 가장 임꺽 정을 잘 알고 싫어하는 지휘관이다. 거기에 토벌대의 대부분은 봉산군의 병력이다.
그래서 그의 발언력은 상당히 컸다.
"음~ 알겠소. 빨리 전군에 명해서 저 자들을 추적해서 생포하도록 하라!"
"부사어른, 전군을 다 보내면 병사들의 피로가 클 것입니다. 혹여나 적의 매복이라 도 있으면 어떻합니까? 본대는 여기 있고 소수의 병사만 보내서 잡는 것이 좋겠습니 다. "
평산부사의 말에 선전관 박수익은 크게 놀라서 말했다. 너무 군을 움직이는데 가벼 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흠례는 다시 한번 자신의 경험을 믿고는 박수익의 소심함을 탓했다.
"이보게 선전관. 자네는 한성부에 있어서 잘 모르지만 반란군은 오직 돌격밖에 모르 네. 특히 기습한 후 돌격하는 것이 장기이지. 이미 겨울이라 숲에 숨을 수도 없고 눈에는 발자국도 없네. 지금이라면 반란군이 보여도 방어할 시간은 충분하네. 오히 려 이런 지형이 위험해서 당한 이가 많았네. "
"하지만 군수어른.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저기 저 꼬마를 보게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반란군이 저런 꼬마를 데리고 다니겠나? 또 미끄러졌군. 오호~ 이젠 제 부모들이 팔을 잡고 끌고가네? 저게 함정 같은가? 반란군이 무슨 사당패인 줄 아나?
이젠 모사 서림이도 옆에 없는 무식한 백정 임꺽정이 지휘하네. 그럴 머리도 없고 또 우리가 온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을 것이 뻔하네. 그리고 어차피 우리 군이 가야 할 길이고 이백도 안 되는 무리로 이 많은 군대에 감히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가?
"
이흠례의 말은 제법 일리가 있었다. 박수익은 자세한 사정을 잘 몰라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금교찰방 강려도 이흠례를 거들었다. 참고로 금교찰방은 역, 원 같은 교통 통신 시설을관리하는 종 6품 무관으로 오늘날의 군 수송사령부와 같은 조직의 장이다. 실제 병력을 동원하거나 지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무관이였다.
"봉산군수 말씀이 지당하오. 고작해야 이백 명도 되지 않는 도적 떼를 오백 명의 정 병이 겁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소. 거기다 봉산군수는 임꺽정에 관해서는 황해도에 서도 알아주는 분이오. 선전관은 아직 경험이 없으니 조금 더 보고 배워야 할 것이 오. "
"내 생각도 같네. 빨리 군사들 움직여 저들을 잡아라! 어서~!"
아무래도 편하게 임꺽정의 산채를 발견해 공을 세우겠다는 생각과 현재의 상황이 유 리하다는 생각이 겹쳐서 자그마한 위험성은 무시해버린 장수들이였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겨울날씨는 강한 공격력을 가진 소수의 임꺽정군에게 불리하다. 기습 과 매복을 하기에는 숲의 위장효과가 떨어진다. 실제로 임꺽정이 사로잡히는 계절도 겨울이다.
"전군 출진!"
"와아아~!"
오백 여에 달하는 병력이 단 세 명을 잡기 위해 일제히 달려 나갔다. 미끄러운 곳이 많고 그 위에 눈이 쌓인지라 미끄러지거나 눈에 빠지는 자가 속출했다. 어떤 이들은 미끄러지면서 옆의 동료들까지 같이 넘어드려 단체로 눈 위를 구르기도 하고 창이나 칼을 지팡이 삼아 가다가 손실을 안 해서 썩은 창이 부러지거나 칼이 빠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거기에 조선군의 복장은 사극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여름에는 좋은 반면 겨울에는 춥고 활동에 제약이 많은 편이다. 조금 멀리서 보면 흰색 하의에 검은 색 상의을 입 은 조선군들이 눈 위에서 버둥거리며 미끄러지는 모습은 남극 펭귄들이 빙산에서 놀 고 있는 모습과 흡사했다.
펭귄들(?)이 그런 대로 열심히 쫒아오는 가운데 한참위의 산 중턱에서는 이런 대화 가 오가고 있었다.
"서유생, 호패확인이랑 인상착의 다 확인 한 거야? 정말 저거 종친 맞아? "
"....분명히 확인을 했는데..."
"저게 남사당이지 종친이냐? 가증스럽게 좀 거리가 벌어지면 떼구루루 구르는 거.
곽오주하고 박유복이하고 웃겨서 올라오지도 못하고 땅에서 같이 구루고 있잖아."
"...혹시 그게 하성군이 시킨 일 아닐까요?"
"저 표정 좀 봐. 얼마나 웃기는지 배가 댕겨서 비상 먹은 듯 바둥거리잖아. "
"그래도 효과는 좋은데..."
"효과는 무슨? 좌우에 눈밭이 흔들리는 것 안 보여? 웃다가 매복한거 들통 나겠다.
"
눈 덮인 산등성이에서 청남색 옷을 두껍게 입은 세 사람이 앞장서고 뒤에 검은 상의 와 하얀 하의를 입은 오백 명이 거의 구르다 싶이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은 적당한 거리에서 매복한 임꺽정부대을 웃겨서 전투불능으로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는 척후병을 제거하기 위한 저격조중 하나가 웃다가 활을 떨어드렸지만 구른다고 정 신없는 관군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야 균과 두 두목은 간신히 임꺽정이 기다리고 있던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 다. 하성군과 두 사람 모두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많이 굴러서 임꺽정 주위의 산적 들을 한 번 더 웃겼다. 특히 박유복은 여장을 한터라 더욱 많은 눈길을 받았다. 하 지만 임꺽정은 매복이 들통날가봐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하~하~하~, 이제 곧 관군이 헤~헤~헤~. 오니까 하~하~하~. 준비를 흘~흘~흘~ 하세 요. 호~호~호~ ."
숨이 찼지만 하성군 균은 진지하게 말했다. 아까 전에는 10살 난 어린아이의 모습니 더니 지금은 진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른인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균의 계획대 로 토벌군은 지친 채 계속 미끄러지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토벌군이 가까이 다가오 고 있는지라 임꺽정은 사전에 약조한데로 산적들의 몸을 준비해둔 곳에 숨기도록 하 고 때를 기다렸다.
세 명의 지휘관은 뒤에서 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편하게 산을 오르는 반면 정수익 은 젊은 무장답게 환도로 땅을 찍으면서 산을 올라갔다. 비록 척후병을 보내지는 않 았지만 눈이 살짝 덮인 산에는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굴러서 균이 뒹굴던 자리에 도달한 정수익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눈 속 깊이 숨어있던 빙판이 보였던 것이다. 물론 자연상태라도 빙판이 생기기는 한다. 하 지만 이 빙판은 일부로 만들기라도 한 듯 그 넓이가 대단했다. 순간 선전관 정수익 에게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정지! 전군 정지! 빨리 주변을 경계하라."
정수익의 말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즉시 주변을 경계했지만 많은 병사들이 미끄러져 서 방어진을 구성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예 굴러서 몇 미터 내려간 병사들도 있을 정도이니 토벌군은 혼란하기만 했다. 그 때를 맞추어 불화살이 허공을 날았다. 불화 살은 단 한 발이였지만 토벌군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는 앞, 좌, 우의 눈밭에서 사람들이 활을 들고 일어섰다. 족히 수백은 넘어 보이는 대부대가 눈밭에서 나타난 것이다. 산적들은 활에 화살을 제고 제대로 서지 도 못하는 토벌군을 반포위했다. 토벌군도 궁수대는 있지만 자리를 잡기도 힘들고 올라오면서 화살을 많이 잃어버려 대응사격을 할 능력도 미약했다. 거기에 산적궁수 들은 자기가 나온 곳을 덮고 있던 나무덮개를 방패삼아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제기런 당했다. 어찌 산적패거리따위가 이런 전술을 쓴다는 말이냐? 그동안 당한 황해도의 장수들을 비웃었건만 이제는 내 신세가 비참하게 되었구나. '
정수익의 심정을 대변하듯 주변의 군사들은 갑작스러운 포위에 크게 혼란해졌다. 후 퇴를 할 수도 있지만 이미 산적들의 활 사정거리내인 데다가 길이 험해서 다칠 우려 도 컸다. 거기에 병사들은 정규군이 아닌 원래 농민들인 잡색군으로 구성된 데다가 제대로 된 무관이 없던 지휘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군사들을 수습하기는커 녕 보는 사람들이 민망할 정도로 추태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혼란과 추태도 곧 가라앉고 만다. 바로 앞쪽에서 한 사내가 나타난 것이다. 대도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은 허리에 올린 거구의 사내는 크고 우렁차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이 놈들아 ! 바로 내가 바로 임꺽정이다! "
오백 명이 넘는 장수와 군교(장교의 옛 이름)그리고 병졸들이 임꺽정의 웃음소리에 조용해고 허공에 휘두른 칼질 한 번에 얼굴색이 하얗게 변색되어갔다. 곳곳에서 무 기와 얼음이 만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교찰방 강려는 명색이 무장인데도 불구하고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산에서 임꺽정 의 주력부대에 포위됐다는 것은 죽었다는 말과 같다. 특히 윤원형 같은 이들에게 벼 슬을 산 양반이라면 하나같이 탐관오리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하하하하~! 네놈들이 알아서 묘자리를 찾는구나. 평산부사 장효범, 너는 우리를 핑계로 나라에 조세는 안내고 백성들에게 군량미를 강제로 걷었다지? 봉산군수 이흠 례, 네놈은 양민들을 우리 동지들이라 속여 참수하고 승진했고 금교찰방 강려, 네놈 은 언제부터 법이 바뀌었기에 관리가 탈 말을 유람 나온 양반 놈들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냐?"
신랄한 말에 세 장수는 입을 열지 못한 채 얼굴은 빨게 졌고 몸을 떨었다. 물론 그 것이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수치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임꺽정이 한 말과 연 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전관 정수익은 명종이 파견한 장수답게 세 탐관오리의 처사를 듣고는 기가 막혔다 . 하지만 자신은 관군의 대장중 하나이므로 군대를 통솔할 의무와 그 군대로 저 임 꺽정이란 간 큰 도적을 물리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정수익은 용기를 내서 크게 소리쳤다.
"구월산 산도적의 괴수 임꺽정은 들어라. 어찌하여 감히 주상전하의 하혜와 같은 성 은을 버리고 주상전하의 관리들과 병졸들을 함부로 살해하는가? 지금이라도 순순히 오라를 받는다면 주상전하께서 특별히 은총을 배푸실 것이나 만일 반한다면 삼족을 멸해 후세까지 ...."
"하하하하~ 이보게 선전관나으리. 우리는 조선의 주인이신 주상전하께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조선을 좀 먹는 윤원형이란 작자를 처단하기 위해서 일어선 것이다!
"
"그런 자가 어찌 주상전하의 관리들을 살해하고 나라의 재물을 취한단 말인가? "
"그들은 윤원형에게 돈을 주고 벼슬을 산 윤원형의 졸개들이지 주상전하의 신하가 아니다! 또한 나라에 바칠 조세를 빼돌리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네서 더 높은 벼슬을 사고자 모아둔 재산을 다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것인데 어찌하여 그 것이 죄인가?
자네 정도면 그 정도는 알고 있지 않는가? "
유난히 힘있게 끊어서 말하는 임꺽정의 말이 산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제 더 이상 응답을 하는 이도 없다. 정수익이 아니라 일개 병졸들도 임꺽정의 말이 사 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를 버리면 살려주마. 아니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