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28)

 군대를 만들다.

"꽝~ 꽈과꽝~."

임꺽정이 대도로 땅을 치자 갑자기 땅이 직선으로 수십미터나 폭발하였다. 이제는 관군 병사들 대부분이 무기를 떨구고 일부는 오줌을 지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산 적들도 놀라서 '와~'소리가 입에서 흘러 나올 만큼 임꺽정이 휘두른 대도가 일으킨 폭발과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있는 모습은 영웅의 모습이었다.

"무기를 버려라!"

임꺽정의 외침에 무기를 들고 있던 얼마 안 되던 병사들도 즉시 무기를 버렸다. 오 백여 토벌대중 무기를 안 버린 사람은 단 한 명 선전관 정수익이였다. 그는 당혹감 에 쌓여 임꺽정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건 화약이 아닌가? 과연 반란군이라더니 화약까지 손에 넣었구나. 많은 양은 없 을 터이나 우리의 사기를 꺾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대체 저놈들은 얼마나 준비를 했 다는 말인가?'

바로 이것이 균이 방을 핑계로 나와서 설치해둔 화약의 위력이다. 한마디로 영화처 럼 특수효과를 낸 것이다. 비록 정수익에게는 속일 수 없었지만 일반 병사들에게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조선군의 화약부족에 기인했다.

조선은 고려조의 최무선이래 독자적인 화약무기체계를 계승했다. 화약은 염초 1근과 버드나무재 3량, 고운 황가루 3돈중을 섞어서 만들였다. 염초와 재와 황의 조성비 를 78:15:7로 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염초가 오래된 먼지에서 약간 얻어지는 터라 화 약의 생산량이 적었다. 이 때문에 조선군은 화약무기를 사용한 자가 열에 하나가 되 지 못했다.

특히 지상군은 아직 총도 없는 시기라 중앙군인 오위의 정예 병사들도 화약과 거리 가 있었다. 다만 여진족을 상대로 한 북방군과 왜구를 상대로 한 수군에서나 사용되 고 있었고 지방군이 가진 화약은 대부분 오래되어 사용하기 힘들거나 습기에 노출되 어 버려할 정도다. 정수익 자신도 겨우 서너 차례 사용되는 것을 구경해서 냄새만 간신히 기억할 뿐인데 일반 지방군이나 고을 수령들이 이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했 다.

정수익은 대세가 완전히 기울어진 것을 느꼈다. 이미 오르막을 오르는데 지친 병사 들은 자신들을 포위한 병력과 임꺽정의 위세에 도저히 싸울 수 있지도 않고 싸우더 라도 전멸은 피할 수 없었다. 거기에 토벌군 수뇌부도 이미 무너져 평산부사 장효 범 ,금교찰방 강려는 머리를 땅에 박고 떨고 있고 봉산군수 이흠례는 믿기지 않는 사태에 정신이 나간 듯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무기를 버리면 우리를 어떻게 할 것이오?"

정수익은 하나뿐인 장수로써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처리를 물었다. 죽더라도 싸우다 죽는 것이 옮지만 지금 죽는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고 개죽음이다. 특히 농사짓는 농 부들을 며칠 훈련시켜 급조한 병사들을 다 죽게 만드는 것도 옮은 것이 아니다. 하 지만 항복하면 자신의 벼슬길은 막힌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수익의 목소리는 힘이 없고 떨렸다.

"우리는 주상전하께 반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 단지 나라를 좀 먹는 윤원형의 졸개 들만 넘기면 되는 거네. 그리고 그대와 모든 병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거지."

토벌군 병사들은 반색을 했다. 다 죽일 줄 알았는데 임꺽정이 살려준다고 한 것이다 . 하지만 탐관오리라도 일개 도적들이 관리를 처형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다. 그러나 이미 토벌군내의 분위기가 다르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의 빛을 본 사 람에게 감언이설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병사들은 세 명의 탐관오리를 바라보고 있 다. 저 놈들만 넘기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만이 병사들의 머리에 있었다.

이미 토벌군은 군대로써의 기능이 무너졌다. 경상자만 다수 존재하고 단 한 명의 사 상자도 없는 상황이지만 이미 지휘계통은 무너지고 정수익 혼자서 통제 할 수없다.

여기서 탐관오리들의 편을 들다가는 그들과 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정수익은 그때까지 들고 있던 칼을 힘없이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로써 토벌군은 모두 무기를 버렸다.

"이겼다. 와아~"

멀리서 활을 거눈채 이를 바라보던 산적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절반의 군세로 적을 모두 사로잡는 승리였다. 임꺽정의 뒤에서 화약심지에 불을 붙이고 멋지게 말 하도록 뒤에서 대사를 불러준 균과 서유생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임꺽정이 딱딱 끊 어서 외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평산전투는 역사와는 다른 무혈전투로 기록될 것이다. 어이없이 하지만 간단히 토벌 군을 전원 사로잡아 임꺽정의 산적군대는 당당히 구월산 본채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피해라고는 경상자 수십 명인데 그렇게 대비를 했는데도 매복시 생긴 동상환자들과 전투 끝나고 철수하다 빙판에 미끄러진 자. 그리고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세 미끼 들이였다.

숨어있다가 웃기만 한 것밖에 안하고 이겨버린 임꺽정의 부대는 먼저 세 탐관오리의 목을 베어 소금에 절였다. 그들의 목은 임꺽정의 힘이 미치는 곳을 돌면서 다른 탐 관오리들의 행동을 경계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동시에 포로들은 마산산채등에 임 시로 분산수용했다.

임꺽정과 서유생은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 한명의 사망자도 없이 전투가 끝난 것은 그간 치루었던 수십 차례의 전투를 보아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는 균도 마찬가지 다. 포위되자마자 최소한의 저항도 없이 항복하는 조선군을 보고 앞으로의 일이 걱 정되었다. 언제 얼치기 농부들을 훈련시켜 동북아 최강의 정예병으로 기를지 암담했 다.

어이가 없는 전투지만 조선군의 실상이 그러했다. 조선의 지방군인 잡색군은 평민들 로 구성된 예비군으로 겨울철 농한기에만 훈련을 받는 군대다. 세종과 세조때는 그 법도가 잘 지켜졌지만 점차 중앙의 권력쟁탈전이 진행되면서 세도가들의 대농장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서 점차 잡색군의 대상자라고 할 수 있는 자영농의 축소를 불러 왔다.

문제는 조선정부가 이에 따른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임시 대책을 처방했다는 점이다 . 그에 따라서 남아있던 평민자영농의 부담이 커지고 몰락하는 자가 늘어나는 폐단 을 불러온다.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평화기가 계속되자 잡색군은 눈에 띄게 감소 하여 도저히 한 군현의 군사로는 전투를 치룰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조선은 진관 체계가 무너지고 한 도의 군사를 모아서 싸우는 제승방략체계를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양적인 감소와 더불어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군사의 질도 떨어진다. 임진왜란 전의 상황은 서류상의 병력 1만이라면 실병력은 수천이였다. 오천은 있지도 않는 병 사들로 예산을 타서 횡령하는 데 쓰였고 나머지 오천중에서 대부분이 노인과 어린아 이였다. 적어도 수만은 넘어야 하는 중앙군인 오위도총부의 병력이 고작 8천에 불과 했다는 사실은 지방군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실전에서는 다음과 같았다. 임진왜란때 선조는 신립에게 군대를 주어 왜군의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막게한다. 이때 고니시의 군대가 약 1만 8천명. 신립의 조선군은 고작 8천명이였다.이에도 신립은 험준한 조령에서 방어전을 포기하는데 이는 워낙 도망병이 많아서라고 한다. 결국 탄금대에서 약 3천명의 병사가 몰살하고 조선의 중앙군은 무너져 버린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 용인전투에서 전라도 관찰사 이광이 이끄는 경 상, 전라, 충청연합군 5만은 용인에서 약 600명의 왜군을 포위했다. 이 때 조선군의 진영을 약 1천명의 왜군이 공격했는데 병사들은 장수들의 명도 없이 뒤로 돌격했다.

5만명이 도망가는 소리가 우뢰와 같았다고 하며 이 전투로 선조는 평양성에서 의주 로 몽진해야 했다.

용인전투의 왜장도 하도 어이가 없어서'조선의 장수는 어리석고 무능하다'라고 하 고는 조선군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지원군도 기다리지 않은 채 조선군보다 우세한 전력이라고 단독으로 조선군을 공격했다. 그 결과 그의 함대는 괴멸당한다.

바로 이 왜장이 한산대첩의 패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다.

솔직히 균은 눈이 내려 굳은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산적들이 좌우측 숲에 숨을 구덩이를 판다고 눈을 밟고다녀 다져진 후 기온이 내려가 얼어붙어 빙판을 만들었다 . 그것도 모르고 올라오다가 짧은 다리 덕분에 신나게 넘어졌고 그것을 본 토벌군 은 방심해버렸다. 즉 고의로 굴러서 적을 유인한 것도 아니었다.

실상 균이 한 일이라고는 임꺽정군의 유일한 꼬마라서 미끼가 되고 적당한 곳에 화 약을 매설하고 그에 맞추어 멋지게 임꺽정에게 대본 써주고 전장을 옮겨 다른 토벌 군을 방지한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의외로 잘 들어맞아 깔끔한 승리를 거둔 것이 다. 그러자 갑자기 균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하성군마마, 기침하셨습니까?"

"서유생, 저에게 아침인사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세숫물을 떠 오십니까?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자 그럼 세수부터... 첨벙~ 첨벙~ 흥 하십시오."

"흥~!"

"조반도 곧 챙겨올 것이니 잠시만 방에서 기다리십시오."

"임두령도 공터에서 밥을 먹는 데 저만 따로 상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아닙니다. 하성군께서 털끝하나라도 다치게 해선 안 된다고 임두령이 명을 내렸답 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니 뒤가 마려우시면 요강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 "

"..."

서유생의 그런 행동은 균이 삼식이를 되찾아 오면서 곧 끝났다. 대신 삼식이가 도련 님이 자신을 못 믿는다고 울적해해서 달래주느라 힘들었다. 입이 가볍기는 해도 가 장 오래 자신을 섬긴 하인인 것이다.

평산전투는 양군 모두 피해가 없던 전투였지만 그 뒤에는 무척 바빠졌다. 임꺽정은 500명의 포로를 작은 산채 세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주민들을 소개하여 은율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거기서 겨울을 틈 타 여유 있는 소금수송선들이 황해를 크게 돌아 비금도로 향할 예정이었다.

무척 큰 배들이지만 민간선박이라서 한 척당 탑승인원은 백여 명 수준이었다. 이런 배가 경재성에게 부탁해 임대한 것까지 약 20척 정도라서 2회에 거쳐 약 4천명의 주 민들을 이동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제법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철수해도 두 차례만 항해를 하면 되어 2월이면 철수가 완료된다. 이에 비해 토벌대는 대군이라 아무리 빨라도 3월에 움직일 예정이므로 실 제 토벌군의 구월산 도착은 4월경으로 예상했다.

남치근이 와서 텅 빈 구월산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면서 균은 구월산본 채에서도 가장 좋은 방을 독방으로 받아 놀면서 편히 지냈다. 물론 산채에서 좋아봐 야 작은 골방수준이다. 하지만 그나마 균이 편한 것을 하늘이 두고 보지 않았다.

"예? 한 번에 2천명이라서 두 번에 걸쳐서 4천 명 정도가 한계라고요? "

서유생은 이상하게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균을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찾아와 최대 수송인원을 묻더니 답해주자 한숨을 내쉬는 것이 영 이상했다.

"그 곳은 이 곳에서 명만큼 거리가 멀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또한 장기간의 항해에 많은 사람이 타게 되면 사망자가 나오고 말겁니다. 최소한 이동하는 사람들이 건강 하게 가려면 한 척당 100명이 평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동할 인원은 3천 명 정 도가 아닙니까?"

"그것이 예상보다...."

"산채인원 300에 주민이 수천 도합 3천명이면 충분할 텐데요?"

"....지금 조사된 인원만 5천명입니다."

"악~!"

정말 악소리가 날만했다. 소개할 주민들에게 의사를 타진한지 며칠이 안됐는데 벌써 5천이면 최대 1만의 이주민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의외로 평산전투에서 임꺽정군이 압승을 거두자 지원자가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5번에 걸쳐서 이동을 시켜야 한다 는 것인데 아무리 빨라야 왕복 두 달은 걸리는 뱃길이다.

경재성에게 부탁해서 지금 배를 더 끌어온다고 해도 모두 40척미만. 거기에 배를 조 정할 선원은 따로 비금도에서 구해야 하고 그나마 큰 바다에는 익숙치 않다. 봄이 되면 토포사 남치근의 수천대군이 출정한다. 동시에 신임 지도현령 정인기도 임지로 부임한다.

아무리 해도 3번의 기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정인기야 속인다고 해도 토벌군은 격 파해야하는데 남치근은 이흠례나 장효범같은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장수다. 고작 300명으로 3천의 적을 막는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의 전생이 군 제대하고 놀고

있는 백수일 뿐인데 10배의 적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비장의 무기인 화승총이나 화약도 없는 것이다. 균이 없는 동안 무기공방이란 이름 의 비금도 대장간은 기술의 현실화에만 온 힘을 다하고 있었고 그것이 한계였다. 56 식 소총의 초기형은 문제가 많아서 양산하는 데 부적합했다. 거기다 이기던 지던 다 조선의 피해다. 최대한 전투는 피해야했다.

균은 가뜩이나 백과사전으로 무거운 머리를 돌려 대비책마련에 고심했다. 이미 지난 번 전투의 운 좋은 승리와 예언의 주머니로 인해 가장 지성적인 서유생마저도 균을 제갈공명정도의 환생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지 만 나중에 쓸모가 있기 때문에 부인을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균의 편하던 생활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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