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228)

 군대를 만들다.

"서유생, 하성군께서 포로들을 잘 먹인후 여비와 식량, 의복을 나누어주고 돌려 보내라고 하셨다고?"

"예, 임두령. 하성군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있어야 식량만 축난다고 빨리 돌려보 내고 경비인원을 복귀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로들이 갈 때는 우리는 주상 전하에게 반하는 것이 아니라 윤원형에게 반한다는 점을 한 번 더 강조해서 소문 이 퍼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

"그렇듯하군. 하성군께서 하시는 일이니 어련하려고. 그대로 실행하게."

"저기 그런데, 하성군께서는 집으로 안 돌아가는 병사들과 지원자까지 모아 산채 의 병력을 최대한 증강시키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이동인원이 많아서 다음 토 벌대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면서 최대한 전력을 늘려달라고 부탁해오더군 요."

"그래봐도 오백은 넘지 못할 텐데. 하성군이 다 생각이 있겠지. 일단 피난민들과 포로 중에서 지원자를 뽑아보지."

일단 균은 포로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오백 명의 입이 무서운데다가 철수할 때 까지 신경쓰기도 어려웠다. 또한 거기에는 임꺽정은 국왕에게 반하는 것이 아니라 윤원형에게 반대한다는 소문을 퍼트려 기대는 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토벌대의 침공을 막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포로의 대부분은 가족이 있고 농토가 있는 한 집안의 가장들이라 서둘러 자신들 의 고향으로 향했지만 소수의 인원은 임꺽정군에 합류를 청했다. 그 중 하나가 선 전관 박수익인데 한성부로 돌아가도 패전의 책임을 물어 참수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박수익이 사실상 임꺽정군의 군사노릇을 하게 된 하성군 이 균을 만난 것은 막 명 종15년이 끝나는 때였다. 균은 군사 분야는 임꺽정에게 전담하고 재물은 서유생에 게 정리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은율군 일대에서 이주할 주민들을 관리하는 중 이였다. 균은 먼저 아예 은율관아를 점거하고 거짓장계를 올려서 황해도 감영을 속였다. 어설픈 조처들이기는 해도 몇 달 정도는 소식을 차단하기에는 충분했다.

박수익이 균이 있던 방을 들어서 처음 본 것은 주판을 들고 배의 설계도를 보고 있던 열 살이 조금 넘은 듯한 아이였다. 마침 균은 배의 설계도를 보고 자신의 배 들이 입항시 최대탑승인원과 개조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박주익은 서유생으로부터 이 곳에 임꺽정도 두려워하는 대군사가 있다는 말을 들 었기에 긴장했었는데 왠 아이하나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는 긴장이 다 풀 렸다. 하지만 곧 날카로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전 선전관 박수익이오?"

어느새 아이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박수익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는 어린 아이였는데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박수익은 놀라서 떨어지지 않을 려는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혹시 이 방의 주인이십니까?"

"그렇소. 이 방의 주인이자 이 일대의 주민들을 관리하고 이송하는 임무를 맏고 있는 이 균이라 하오. "

"이 균이요? 그럼 종친인 덕흥군의 삼남 하성군이란 말입니까?"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수익은 아이의 정체를 듣고 놀랐다. 종친이 반란군 의 군사로 있고 거기에다 저렇게 어린 자였다. 믿기지는 않지만 평산전투의 계획 도 저 아이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들자 박수익은 오한이 들었다. 하지만 그 오한은 점차 분노로 바뀌었다. 종친이 감히 반란군에 가담하다니 있어서는 안 되 는 일이다.

"그대는 나에게 불만이 많겠군.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반역이 아니니 그렇게 주 먹을 말아 쥘 필요는 없소."

"임꺽정군은 반란군이 아니오. 거기에서 일하면 반란군이지. 어찌 반역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도 이제 반란군이 아닌가? 안 그런가. 박두목?"

박수익은 그래도 그 지휘력을 인정받아서 바로 두목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 실 병력은 주어지지 않았고 은율에 있는 대군사의 지휘를 받으라는 말만 들었다.

이제 그는 정부군의 장수가 아니라 반란군 군사의 수하에 불과하다. 박수익이 말 없이 서있자 균은 다시 입을 열어서 말했다.

"박두목. 서있지 말고 일단 자리에 앉으시오. 어서요. "

박수익이 균이 권한 자리에 앉자 균은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 면서 한껏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 무척이나 오만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자연스 럽게 보였다.

"그대도 알지만 지금 이 나라의 대권을 주상전하가 아니라 윤원형이 쥐고 있소.

그 정도는 그대도 잘 알 것이요. 하지만 임꺽정군의 봉기이후에는 조금 사정이 틀 리오. 일단 윤원형에게 벼슬을 산 자들의 부패와 무능함이 들어나 임꺽정두령에 의해서나 주상전하의 명으로 죽거나 쫓겨나서 조정의 세는 점차 주상전하와 중전 마마의 외숙인 이량등에게로 옮겨지는 추세요.

즉 이번 봉기로 인해 주상전하의 세력이 강대해지고 있다는 말이외다. 주상전하께 서는 입으로는 임두령을 잡으라고 하지만 내심은 반기고 계시오. 거기에 나는 종 친이지만 윤원형의 행패로 빈곤하게 살다가 가신 아버님을 잊지 못하오. 그래서 나의 뜻과 주상전하의 어의는 같다는 말이오. 무슨 소린지는 알겠소? "

"그럼 지금하고 계신 행동이 주상전하를 돕는 길이라는 것입니까? 하성군께서 하 시는 일에 주상전하의 밀명이 있는 것입니까?"

박수익의 얼굴은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반란군이 됐는데 반란군이 주상전하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반란군이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무 반가문의 자손인 그에게 그보다 기쁜 일을 없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걸렸던 일이 해결되자 박수익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균은 그런 꼴을 못 보는 착한 심성을 가진 아이다.

"주상전하의 명은 당연히 없었소. "

"네에.. 그...그럼...."

다시 박수익의 얼굴이 시무룩해지자 균은 다시 당근을 주었다. 원래 사람은 당근 과 채찍으로 다루어야 하는 법이다. 유능한 군주일수록 당근과 채찍을 주는 때를 잘 맞추었다. 당근이 많으면 신하는 교만해지고 채찍이 많으면 반감을 가진다. 이 를 적절히 적용해야 된다.

"이제 우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소. 윤원형의 세력을 약화되고 주상전하의 어 명에 힘이 실리고 있서요. 거기에 봄에는 대규모 토벌이 있어서 우리가 더 이상 활약하기는 어렵소. 곧 우리를 따르는 이들과 이곳을 떠날 것이오. 그리고 그곳에 서 주상전하의 근왕병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오."

"이곳을 떠나서 근왕병이 된다고요?"

근왕병은 원래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병사라는 뜻이다. 균이 말한 의미는 현 재 군사적인 지지세력이 없는 명종의 비밀군대가 되어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이다.

지금 임꺽정이 보유하는 군사력은 약 오백명정도이며 조선의 지방군인 잡색군보다 는 정예한 군대다. 이 정도면 보통의 병마절도사가 지휘하는 지방군들과 싸워볼 수도 있고 수도인 한성부에 잡입한다면 굉장히 위력적인 세력이 된다.

국왕을 따르겠다는 균의 말에 박수익은 다시 화색이 돌았다. 원래라면 조선시대에 는 연좌제가 있어서 죄인의 가족들까지 처벌대상이다. 하지만 박수익은 어려서 전 염병으로 가족들을 잃은 지라 홀홀단신이였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기 편했다. 반 란군이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면 넘어올 공산이 컸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유능한 박 수익을 균이 서유생에게 달라고 한 것이다.

"이미 그대는 우리에게 저항하다가 부상을 입은 후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소. 그 대의 지인들에게 피해는 없을 것이오. 이젠 그대의 선택만 남았군. 나를 따를 것 이요? "

난데없이 자신을 따르라는 말에 박수익은 균을 바라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임꺽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군사인 자신을 따르라니 임꺽정군의 내부에서 알력 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됐다. 박수익이 질문을 하려는 찰라 먼저 균이 입을 열 었다.

"잘 알지만 임두령은 소규모 군사조직체의 수장이 적당한 인물이요. 우리가 이동 하는 곳에 도착하면 그곳의 세력과 합치고 내가 근왕군의 임시 수장이 될꺼요. 그 러니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라는 말이오. 그대에겐 조정에서 받던 봉록이 그대로 지급될 것이고 또한 10년 이내에 다시 벼슬길에 출사하게 해주겠소. 그것은 내 이 름으로 약조하리다. "

이제야 박수익은 임꺽정군의 2년간의 활동이 저 앞에 있는 소년의 계획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기껏해야 임꺽정은 소년의 휘하무장에 불과하지 않는 것이다.

다 박수익 자신의 착각이지만 크게 놀라서 해서 균에게 물었다.

"그럼 임두령이 하성군마마의 수하라는 말씀이십니까? "

"아니오. 앞으로 그렇게 된다는 거지. 지금이야 임두령이 수장인 것이 낮지만 이 동해서는 산적질하다가는 다 굶어 죽을 것이요. 거기에 모든 것을 나에게 의존해 야 하는데다가 임두령이 나에게 여러모로 갚을 것도 많소. 아마도 스스로 나의 휘 하에 들기를 청할 것이오."

균은 오만한 듯한 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박수익을 바라보았다.

박수익은 아까 전부터 느껴지던 균의 기운이 더욱 강해짐에 몸이 떨려왔다. 자신 의 반도 안 되는 꼬마가 무관인 자신의 기를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렵기도 하 고 반갑기도 했다. 최소한 자신을 실망시키는 주군은 아닐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하성군마마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박수익은 잠시 후 대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어느 것보다는 나은 듯했다.

명종은 이미 그 밑에 사람도 많고 또한 지금은 모실 수도 없다. 임꺽정은 사람을 끄는 매력은 있지만 거칠고 단순한 자였고 조만간에 하성군의 휘하가 된다. 하지 만 하성군은 상당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부하는 없어 보였다. 거기다 쓸만한 인재이므로 그를 따르는 것이 유리했다.

박수익의 충성을 받아낸 균은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제대로 된 신하가 하나 생겼다. 비금도에도 사람은 많지만 그들은 자신의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고 대 부분 평민이라서 집권초기에는 제대로 된 지위를 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을 따라서 한양으로 올라갈 이는 고작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고작해야 각 부서의 장들과 일부 간부들이 전부이다.

비금도에 비밀엄수를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 한 일년만 더 붙어 있어도 걱정 할 것은 없지만 자주 상경해서 알 현을 해야 하는데다가 균이 아직 어려서 영향력은 크지 못했다. 지금이야 규모가 작아서 안전하지만 나중에는 확실히 장악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었다.

아직 비금도 일원의 자신의 세력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균에게 양반인 박수익의 충성을 받는 의미가 컸다 . 아직은 그 충성도를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그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균은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따른다고 하니 고맙구려. 그대의 선택은 충분한 보답을 받을 게 될 것이오. 일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먼저 옆방으로 가서 거기있는 서류 좀 처리하시오. "

" 예. 하성군마마. 말씀 낮추십시오. 이제는 제 주군이 아니십니까? "

"내가 주군이라고는 하나 그대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소. 무릇 우두머리이라면 아랫사람을 내 가족처럼 다루는 법이오. 그러니 이정도의 말은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오. 그럼 나도 일을 할 터이니 힘들겠지만 수고해주시오. "

"알겠습니다. 하성군 마마. "

균이 더욱 마음에 들던 박수익이 옆방에 들어서자 그를 반긴 것은 책상 가득히 쌓 인 문서 들이였다. 박수익은 너무 많아서 놀랐지만 마음을 다잡고 일경(두 시간)

동안 서류를 처리했다. 두 시간이나 일을 처리해도 문서는 약간 줄어들었다. 문 관도 아닌데 문서일을 처리해야 하자 박수익은 불만이 생겼다.

'혹시 나만 일하고 마마는 노는 것이 아닐까?'

박수익은 아주 조심스럽게 균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방문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고 방안을 드려다 보았다.

"헉~!"

박수익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균의 방은 아예 방 한 쪽이 문서로 이루어진 벽이 었다. 문서의 벽이 무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서를 꺼내던 균은 밖의 소리를 듣 고 나왔다. 그리고는 아직도 얼굴에 놀라움을 가지고 있던 박수익에게 문서를 안 기면서 말했다.

"오~ 벌써 문서들을 다 처리하다니 문관이라고 해도 믿겠구려. 원래는 내일 주려 고 했는데 내일 자네가 할 몫이니... 자 여기 있소. 그런데 얼굴빛이 안 좋것 같 은데 쉬엄쉬엄 일하시오. 여기있는 수천여명중에 글 아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 으니 탈이라도 나면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오. "

박수익의 가슴에 안긴 서류가 묵직하다. 차리리 화포가 가벼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박수익은 힘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그 한 쪽 벽의 종이는 다 처리 해야할 문서들이 아니다. 단지 균이 필요할 같아서 가져다둔 백지와 약간의 관아 서류들이였다.

"삼식아 이제 저거 치워도 된다. 조용히 치우도록."

곧 균의 방에서 종이라고는 책상위의 몇 장만 남았다. 그 옆 방에서는 박수익이 안 돌아가는 머리로 문서를 검토하고 수치를 계산하느라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박수익에게 이주민 1만 명에 대한 보급계획을 떠맡긴 균은 본격적으로 세부적인 이동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먼저 배가 들어오면 바로 임시 개조할 수 있도록 만 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항해 간에 필요한 물품을 산출하고 우선적으로 확 보했다. 그리고 곧 1차로 선단이 도착했다.

"노약자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만 빼고는 모든 짐은 폐기시켜. 그리고 짐 창 고도 있는데로 개조해. 어차피 겨울이라서 태풍은 안 오니까 갑판에 나무지붕을 세워. 식량도 예정치보다 조금만 더 실고 당장 움직여.

그리고 나중에 경재명에게 말해서 다른 소금상인들 배 큰 것은 다 빌려와 비금도 에서 사공은 뽑구. 도사공은 비금도 정착할 사람만 골라서 모아봐. 이건 당장 비 금도에 알려서 다음선단에 합세시켜. "

균은 첫 선단을 이끌고 온 김호진을 보자마자 급했는지 반말로 명령했다. 비금도 본단을 관리하다가 휴가차 따라왔던 김호진은 난데없이 배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이미 주민중 일부가 동원되어 중형 선박들을 건조중이였지만 기술력과 시간의 부 족으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원래는 이십 척에 2천명의 인원을 이동시키는 것 이지만 최대한 공간을 확보하자 총 22척에 3천명의인원이 탑승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명종 16년 서기 1561년 1월 상순에야 첫 선단이 비금도를 향해 출발했다.

선단은 북서풍과 해류의 도움을 받아서 남하하지만 황해수영과 충청수영의 초계망 을 피해서 우회하여 남하해야 했으므로 한 달의 시간은 빠듯한 것이었다. 거기다 다른 어선들의 눈에 최대한 보이지 않아야 했고 혹시나 몰라서 서쪽으로 직진한 후 남하를 시켰다.

동시에 경재명의 이름으로 비금도에서 다음선단이 준비되었으며 이들은 자체 개조 한 후 1차선단과 합세해서 1월말 황해도를 항해서 출항했다. 다행히도 사람들이 서둘러 여러가지 준비를 해서 예상보다는 적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토벌군의 출동일 전에 철수완료는 불가능했다.

"하성군마마. 한성부에서 남치근의 토벌군 3천명이 출발했습니다."

균에게 보고하는 박수익의 표정에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이미 두 차례의 이동이 끝나고 약 천여 명의 주민들과 임꺽정의 군대 5백 명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천여 명은 대부분 젊은 남자들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구월 산과 은율일대에 전투배치를 해둔 것이다.

"준비는 다 되었소?"

"예, 마마. 명하신 데로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균은 박수익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익이라는 수하를 거두어서인지 균은 전보다는 훨씬 어른스러웠다. 박수익도 그간에 균의 처리능력과 뛰어난 연기로 충 섬심이 제법 깊어졌다. 균이 임꺽정군에 들어온 지도 벌써 네 달째. 균은 확실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서유생은 완전히 행정을 담당했고 균이 임꺽정군의 제반사 항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제3차 선단만을 기다리면 되겠구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지금 즉시 구월산 본채를 버리고 이곳으로 퇴각시키도록 하시오. 세작(정 보원)들은 계속 유지하여 토벌군의 이동상황을 최대한 빨리 보고 하도록 독촉하도 록 하시오."

"예! 마마."

이제는 균의 명령에 따라서 임꺽정의 군사력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반대 하지 않을 만큼 군내에서 균의 존재는 중요해졌다.

남치근은 당대 최고의 무관으로 명종 7년, 10년, 11년에 왜구와 싸워 크게 이겼으 며 명종15년 한성부판윤에 재직하다가 평산전투의 결과가 한성부에 보고되자 경기 , 황해, 평안 3도 토포사로 임명되어 오위도총부의 정예병 3천명을 이끌고 황해도 구월산을 향해 출정했다.

국왕 명종은 이례적으로 남치근의 출정식에 참가하여 강력한 토벌의지를 보였으나 실은 윤원형의 부탁을 받은 대비 윤씨가 명령한 것이다. 특별한 핑계가 없던 명종 은 울며 겨자 먹기로 출정식에 나왔다.

하지만 출정한지 5일째 되던 날 돌연히 회군명령이 떨어진다. 남치근은 '여진족 대거 침입. 즉시 회군할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받는다. 다시 한성부로 회군하고 나서야 사실무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다시 남치근이 출정했지만 이번에는 남쪽 에서 봉화가 올라와서 또 다시 회군하여 거의 보름을 경기도 일대만 행군한 셈이 었다. 그리하여 남치근의 토벌대가 구월산에 도달한 것은 5월 달이 되어서다.

조선은 먼저 봉화로 대강의 사정을 알리고 그다음에 장계가 올라와서 세세한 보고 를 받는 통신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함경도라면 조선의 수도 한성부에서 무려 2천리의 험한 산길을 달려야 하여 그 제반사정을 확인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허비 해야 했다.

특히 4월이면 북쪽에는 눈이 녹아 하천유량이 증가한다. 동시에 얼었던 땅이 녹으 면서 곳곳의 도로가 끊어지는 것이고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균은 이를 이용해서 몇 명의 특수조를 파견해서 토벌군을 한성부에 묶어둔 것이다.

즉 상도의 정치수처럼 국경근처의 봉화대 근처에서 불을 피워서 다음 봉화대를 착 각하게 한다. 봉화는 신속히 한성부 남산봉화대로 전달되는데 하루가 걸리지는 않 는다. 하지만 파발은 조선의 도로사정이 열악하여 제대로 된 장계가 도착하려면 족히 며칠은 소요된다. 조정은 대강의 사정은 알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

그렇게 제 3차 선단의 20척의 배들도 무사히 황해도 은율군을 떠났다. 이미 남은 인원이 1500명인지라 제 2차 선단의 반밖에 안되는 규모에도 자리는 넉넉했고 많 은 물자를 버리지 않고 챙겨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의 선단들이 밤에 조용히 떠났다면 이번 선단은 보라는 듯이 낮에 떠났 다. 그래서 멀리서 보는 이들에게는 명나라로 향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예 소문도 신천지로 갔다, 명으로 갔다, 유구로 갔다 등을 퍼트리고 이동했다. 그 렇게 이번에도 어이없이 조선의 군대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얼마후면 조선조정은 반란군과 1만의 주민이 사라진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정이 뒤집어 지겠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윤원형과 이량의 세력다툼 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균의 비금도가 알려지겠지만 그 때쯤이면 균도 결코 만만치 않는 존재일 것이다.

"이젠 좀 조용히 있어야겠군."

하성군 이균이 숭례문을 유유히 통과하면서 남긴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