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을 기르다.
신임 지도군수 정인기는 전임군수의 임기가 끝나는 올해 4월부터 지도군수직 정확히 는 현령으로써 부임하기 위해서 육방이 될 사람들을 구하느라 바빴다. 대체로 수령은 부임시 그곳에 있는 육방을 그대로 임명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적임자를 선발해서 같이 부임하기도 했다.
특히 지도군은 그 관할구역이 넓고 최근에 이르러 전라우수영의 해상장악력이 무력화 되어 행정망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조카인 균의 염전경영으로 부족한 세수야 넉넉히 충당되겠지만 행정망의 재구축이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 때문에 더 빨리내 려가야 되지만 많은 시일을 낭비한 실정이였다.
그래서 균이 한성부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도성을 떠나서 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중이 였다. 이에 균도 아예 말을 타고 달려서 남하했다. 아직은 숙부에게 들켜서 좋을 것 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우 전라감영에서 숙부 정인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균아 오랫만이구나. 그런데 왜 내려오는 길에 만나지 못했느냐? 혹여 다른 길이라도 갔던 게냐?"
정인기는 아직 균이 황해도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 아직 토벌 군이 장계를 올리지도 않아 반란군의 증발을 알지 못하는 데다가 설마 이제 만 9살 고작 10살짜리인 꼬마가 반란을 배후조정할 지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균의 능력을 과 소평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라갈 때는 뱃길로 왔는데 잠시 지체하여 숙부님과 같이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거 기에 며칠은 주상전하의 명으로 세자저하와 함께 보냈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세자저하와 함께 있었다고?"
"예. 숙부님."
"하하하. 이렇게 좋은 일이 있나? 영광이로구나."
"그래도 며칠 못 있다가 대비마마의 명으로 쫒겨났지요."
균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인기는 그런 균을 보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대 비 윤씨가 살아있는 이상 균이 권력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숙질은 그 정도 는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였다.
"숙부님, 제가 일이 급하여 먼저 비금도로 가 있겠습니다. 숙부님은 어차피 지도본섬 의 관아로 부임하셔야 하니 나중에 제가 비금도의 세금과 함께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 다. "
"그래 하긴 나도 지금 관내가 어지러워 너밖에 믿을 것이 없구나. 나중에 세금 좀 많 이 준비해다오. "
"걱정마십시오. 숙부께서 결코 세금문제로 관찰사에게 질책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 니다. "
"고맙구나. 균아. 내 너만 믿으마. "
정인기는 균을 보면서 웃었다. 언제나 활기차고 부지런해서 보면 웃음이 생기게 하는 조카였다. 물론 갓 태어난 첫 딸보다는 안 귀엽지만 나중에 태어날 자기아들도 균같 은 성격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균처럼 어릴때부터 똑똑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제 비금도의 인구는 약 1만5천이다. 이에 따라서 많은 양의 식량과 물자를 공급해 야 하기에 균은 아예 배 네척을 나주와 비금도 원평를 왕복하게 하도록 지시해두었다 . 그래서 나주에 도착한 균은 바로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비금도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은도를 크게 돌아서 비금도 북단의 원평으로 들어 갔다.
그래서 나주군의 목포일대에서 최단거리로 50킬로미터면 족한 거리가 두배가 걸렸다.
무려 100킬로에 준하는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에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먼 길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전라우수영의 초계망에 걸리는 것보다는 안전했다.
원평에 균이 내려서자 세명의 책임자 황재훈, 나원호, 김호진이 잽싸게 나타났다. 아 무래도 나주에서 작은 배로 연락을 한듯 했다. 황재훈과 나원호의 표정은 좋았지만 김호진은 입이 석자나 나와 있었다. 네명은 본단인 성치산성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 를 나누었다. 주민들이 오랫만에 나타난 균을 보고 접근했지만 약간의 일꾼들이 마을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래, 반년만이오. 새로 온 사람들은 잘 적응하고 있소?"
"예, 마마. 인구가 1만이나 늘어나는 바람에 섬 전체가 복잡하지만 저의 소금생산부 는 일꾼이 크게 늘어서 염전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제는 남아돌 지경입니다. 하지만 염전이 더 많이 건설될 예정이라서 나 중에는 남지 않을 겁니다. "
"지금까지 염전은 몇개나 추가됬소? 그리고 현재 생산량은? "
"조만간에 500개을 넘길 정도입니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소금생산이 미미하여 고작 1만섬정도만 생산됬습니다."
겨울철에는 아무래도 소금의 생산이 줄어들어서 균이 경재명을 통해서 쓰지 않는 소 금배들을 빌려오기 쉬웠지만 반대로 자금원인 소금의 생산이 적어 갑자기 예상보다 두세배로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는데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황재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미 본단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기 때문 이다. 거기에는 균이 명종에게 준 5만냥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균도 임꺽정의 주민 수가 많아야 5천이하로 예상했기 때문에 뇌물을 준 것이지 아니면 올해 주었을 것이 다. 그러나 후회할 일도 아니고 후회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1만섬이 고작이라니 그정도면 2만냥이나 되지 않소? 김부장은 이걸 팔아서 새로온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주게 하시오."
"하지만, 마마. 1만명이나 몰려들어서 고작 2만냥으로는 제대로 물자를 공급하기 부 족합니다. "
본단의 회계를 담당하는 김호진은 울상이다. 먼훗날의 대한민국군대도 아니고 그 정 도의 돈으로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할 수도 있다. 집도 지어주고 밥주고 옷주고 교육도 시켜야하고 거기에 비금도 사람들도 덤으로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균의 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섬의 비밀이 최대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경재명에게 내 이름걸고 빌리면 되오. 소금만 다 생산되도 갚는 것을 일도 아니지 않소?"
"하지만 이자가 비싸면 큰 손해입니다."
"이자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직접간다고 전하면 될 것이오. 그정도 소금상인하나 못 다룰 이 하성군이 아니오. 나부장, 그쪽은 어떠하오?"
황해도에서 사람들을 많이 다루고 특히 박수익을 부하로 삼은후 균은 어느 정도 한 세력의 수장으로써 위엄을 갖추어갔다. 작년과 달리 하대를 하는데 세 사람에게는 오 히려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만큼 여러모로 성장한 것이다.
"저희 무기생산부는 56식소총의 문제점을 많이 개선했습니다만 장인들은 대다수 쓸모 없는 퇴물이고 도제들은 너무 경험이 없습니다. 조금더 시간이 지나야 소총의 생산이 가능할겁니다."
"하긴 무기생산부야 인재가 없으니 문제군. 김부장은 우선적으로 무기생산부로 자금 을 보내도록 하시오. 사람이 없으니 돈이라도 써야 될 것이오. "
김호진의 얼굴은 거의 찌그러지기 직전이다. 가뜩이나 자금이 부족한데 자기주인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균은 그런 걱정따위는 하지 않는다. 가을이면 어림 잡아서 700개의 염전이 완성된다. 거기서 생산 기간이나 기타 감소요인을 빼고 평균 200섬씩 생산된다면 15만섬의 소금이 생긴다. 돈으로 따지면 30만냥이다.
정인기에게 세금으로 2만냥이면 족하고 5만냥이면 섬내의 지출은 감당할 수 있다. 아 니 풍족하게 쓰고도 남는다. 거기에 경재명에게 성의표시를 한다고 해도 잘하면 25만 냥, 못해도 20만냥의 수입이 생긴다. 그래서 경재명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간단하다.
균은 그에게 올해에만 최소 7만5천냥의 이득을 안겨주게 된다. 이정도면 경재명의 자 체수입마저 능가한다.
거기에 종친인 균과 지도현령 정인기는 현재 경재명보다 확고한 지위와 세력을 가지 고 있다. 그래서 덤비는 것은 자폭이나 다름 없다. 손 꼽히는 거상인 경재명이 그런 머리가 안 돌아갈 리가 없다. 설사 그런다고 해도 균은 이미 경재명의 주변을 감시중 이다. 자신과 자신의 세력을 위해서는 가차없이 처리해 버릴 수도 있었다.
"김부장, 울상 짓기는... 설마 나 하성군을 못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 아니옵니다. 마마."
"경재명에게 올해 10만섬정도 생산된다고 슬쩍 말해주면 될 것이오. 아마도 까무러칠 지도 모르겠군. 그리고는 돈 있는 대로 다 끌어모아서 주려고 하겠지. 그러면 이자이 야기는 꺼내지도 않을 것이니 걱정말도록 하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바로 위임장을 줄 것이니 최대한 빨리 다녀오도록 준비하세요. "
"예, 마마."
균은 자신의 아버지뻘이지만 울상을 짓는 김호진의 통통한 얼굴이 귀여웠다. 참 특이 한 취향이다. 균은 원래있던 조직들의 보고를 다 받았으므로 올해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놀랍게도 3차선단이 빨리 도착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온 인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소?"
"먼저 병사들은 외곽주둔지에서 주둔한채 훈련중입니다. 자세한 것은 거기있는 사람 들이 무서워 접근도 못해는 데다가 막 도착해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시하신데로 식량과 물자를 차질없이 공급하고 있습니다.
염전에 투입되지 않은 자들은 자신들이 살 마을을 섬 곳곳에 분산해서 짓고 있습니다 . 기존 마을들도 인구가 크게 불어나고 아까 보신 원평이 가장 큰 마을로 성장중입니 다. 그리고 일부 인원으로는 성치산성을 보수중입니만 진척은 늦습니다.
그런데 1만 5천의 인구가 살기에는 비금도도 한계입니다. 당장 도초도에서 공급되는 식량으로는 한계입니다. 거기에 비밀엄수를 위해서 출어마저 최소화 시키는 터라 섬 내의 식량 공급이 무척 힘듭니다. 그점에는 대비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하군. 3차 선단이 예상보다 빨리 왔구만... 나중에 식량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 으니 모래쯤 자료를 준비해서 회의를 열도록 합시다. 그리고 김부장은 당장 떠나고 최대한 빨리 돌아오시오. "
"예, 마마."
약식보고를 받은 균은 잠시 생각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로 보고받으면 되고 간단 한 정황은 들었다. 곧 임꺽정과 만나면 되는데 뭔가 하나 허전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했다. 결국에는 본단 근처에 와서야 생각났다. 바로 박수익이 생각난 것이다.
"그리고 참 박부장을 본 사람 있소?"
"마마. 박부장이 누구이옵니까?"
"아차... 그건 내 일을 도와줄 집사 비슷한 사람인데... 일단은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시오. 내 곧 정식으로 소개하겠소. "
균은 대충 둘러대고 본단으로 들어섰다. 임꺽정의 본채와는 달리 균의 성치산성 본단 은 제법 큰 건물이였다. 단층구조에 약 20여칸으로 되어있지만 하나하나가 구월산채 의 회의장보다도 크다. 기둥이 곳곳에 서있어서 그다지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대궐이나 관청의 회의실을 제외하고는 민간에서 이만큼 큰 방은 없다고 자신할정도라 서 균의 마음이 뿌듯했다.
아직은 제대로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본단에서 쓰는 방도 적었고 썰렁한 느낌이 들지 만 나중에는 균의 근거지인 비금도와 주요사업의 사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로 가득할 터였다. 균은 뿌듯한 마음으로 잠시 본단을 둘러보다가 산성외곽의 주둔병영로 향했 다.
외곽주둔병영는 막사와 연병장등 부대시설을 다 갖춘 비금도 유일의 군주둔지다. 아 직 성치산성의 확장보수 공사가 안 끝난데다가 끝나더라도 들어갈 시설이 많아서 군 주둔지는 아예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만들었다. 약 1천명의 병력을 기준으로 설 계했기에 멀리서 보이는 주둔지는 널널해 보였다.
외곽주둔병영에 들어서자 보인것은 집단으로 훈련을 받는 산적들이였다. 아니 군사들 이라 해야했다. 최소한 오와 열은 맞추고 있으니까. 그리고 앞에서 훈련을 시키는 이 가 박수익이였다. 균은 안 시켜도 알아서 훈련을 시키는 임꺽정등과 박수익을 보고는 살짝 미소를 띄웠다.
균이 연병장에 나타나자 산적군사들은 모두들 '와~! 똥개군사님이다!'라고 외쳤다.
아직도 자신이 하성군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랬다면 일부군사들은 하성군마 마님라고 부를 꺼지만 사백여군사가 모두 외치는 소리에 균의 별명이 비금도까지 퍼 질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