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228)

 세력을 기르다.

곧 임꺽정과 서유생, 박수익과 두목들이 병사들의 소리를 듣고는 달려나왔다. 모두들 균을 반기는 기색을 띈 얼굴로 맞았다.

"하성군마마. 오셨습니까?"

"예상보다 빨리 오셨군요. 나는 한참 뒤에나 올 줄 알았는데... 혹시나 부족한 것은 없습니까?"

"부족하긴요. 잘 따라서 나왔다는 생각만 듭니다. 여기는 모든 것이 풍족해서 부하들은 물론 가족들도 좋아합니다. 토벌군에게서 살아남게 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좋은 대우를 해주시다니... "

대다수의 간부들이 고마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였다. 거기 있었다면 지금쯤은 곳곳의 산채가 공격을 받아서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반란군과 내통했다고 죽었을 텐데 이 곳은 안전한데다가 훨씬 나은 생활을 영위했다.

당장 식사만 보아도 쌀과 보리등으로 만든 밥에 국 한 그릇, 반찬 세 가지가 제공되는데 그 양이 산채시절에 비할봐가 아니였다. 단지 육류보다는 어류가 많이 나온다는 것을 싫어하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조선내륙에서 어류는 무척이나 값이 비싼 음식이기에 대부분이 무척이나 만족했다. 이는 그들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쪽방이던 산채의 집대신 초가집들을 지어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염전일을 중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보수도 꼬박꼬박 지급되었고 아이들은 모아서 언문과 여러가지를 배우도록 했다. 이미 옷감들을 제공해서 아녀자들은 새옷 짓기에 바빴고 아직은 집단배식제이지만 나중에는 쌀을 몇섬씩 정착자금이라고 해서 나누어 준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거기에 세금도 없어서 품삯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생활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고 특산품을 방납해서 이득을 챙기던 관리들도 없고 자기마음대로 사람들을 끌어다가 무보수로 일을 시키던 궁방(여기서는 세도가들이 가진 농토나 염전.)도 없고 자기가 양반이라고 행패를 부리는 자들도 없었다. 한마디로 평민들만의 작은 세상이였다.

"마마. 그동안 몰라뵙고 머리 쓰다듬은 점. 부디 용서하십시오."

"예. 저도 다시는 똥개도령이라고 놀리지 않겠습니다."

"이젠 꼭 하성군마마라고 불러 드리겠습니다요."

예상보다 일이 더 잘 되자 두목들은 알아서 균에게 경대했다.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균은 잠시 병영을 둘러보고는 본부막사로 들어갔다. 곧이어 다른 간부들도 들어왔는데 임꺽정은 상석을 균에게 권했다. 그리고 균도 이에 아무런 거부없이 바로 상석에 앉아 입을 열었다.

"먼저 여러분과 병사들이 만족하는 것 같아서 기쁘군요. 이 곳은 지난 을묘년의 왜변과 태풍피해로 전라우수영의 해상력이 미치지 않는 곳입니다. 우리가 이 곳으로 이주할 때 고의로 명쪽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인데다가 조정내부의 사정등으로 조정은 쉽사리 우리를 찾지 못하는 장점은 있지만 왜구같은 해적들이 나타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방어력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이곳 군대를 섬의 수비대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충분한 물자와 장비를 구해드릴 터이니 병사중에서 제대하고 싶은 이는 돌려보내고 대신에 입영할 자들은 받아드려서 현재의 전투력을 능가하는 정예군을 만들어 임두령께서 지휘해 주십시오. "

균이 군대의 지휘권을 그대로 임꺽정에게 주겠다고 하자 모두들 놀랐다. 이제는 전적으로 군유지비를 균이 대고있는 이상은 그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이를 임꺽정이 그대로 맡는다는 것은 군대의 주인이 둘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기가 직접 안 맞더라도 박수익같은 자로 지휘관을 교체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그 근간은 임꺽정의 부대지만 앞으로 군대의 다수는 임꺽정의 산적출신이 아닌 모병된 병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임꺽정이 꼭 지휘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전투력면에서 정규훈련을 받은 박수익이 나은 편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면서 생각했었다. 당황한 사람들을 대신에 가장 차분한 문사인 서유생이 균의 의견을 반대했다.

"물론 하성군 마마의 말씀은 이해 하겠습니다만 이 섬의 주인은 마마시지 않습니까? 임두령이 군대를 지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하성군께서는 지략도 밝으시니 능히 군대를 지휘할 장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 나이 고작 10살입니다. 그리고 군사에 대해서는 알기는 알지만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임두령을 따라가려면 제가 장가를 들어서 아이를 얻더라도 불가능할 겁니다. 임두령이 아니시면 누가 이 오백명의 큰 병력을 지휘할 수 있겠습니까? "

"하지만 이렇게 많은 군대를 이놈에게 맞기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놈의 무식한 머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성군께서 맡아주시오. 아니면 저기 박두목도 이놈보다는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놈은 그냥 백정으로나 살아가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임꺽정 역시 반대를 표했다. 하지만 균이 저런 맹장을 놓친다면 평산에서 하염없이 구르면서 웃음거리가 되고 세력기반이 들어날 위험을 각오하고 이주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노력은 반이나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균은 더욱 정색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군대를 직접 지휘해본 적도 없고 이 섬의 최고책임자로써 다른 일에도 신경을 싸야 합니다. 그런 제가 군대를 지휘한다면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습니다. 박공은 나와 같이 할 일이 많고요. 그래서 임두령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도대체 마땅한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왜구나 토벌군의 침공에 이 곳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보시렵니까? 거기에 여기에 온 사람들은 나보다 임두령을 믿고 온 자들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배신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나의 꿈은 강력한 왕권 아래서 모든 이들이 잘먹고 잘 살 수있는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이나라 조선은 그렇지 않아요. 다 조정의 윤원형과 대비때문이지요. 임두령은 2년전부터 내가 꿈꾸는 세상을 노력하신 분입니다. 제가 그런 것을 알기에 믿고 맡기는 겁니다. 임두령. 부디 나를 도와서 군대를 맡아주세요. "

한동안 본부막사 안은 조용했다. 10살 꼬맹이가 천하장사인 임꺽정의 기세를 능가하고 있었다.

'정말 왕족의 피는 따로 있는 것인가?'

임꺽정을 비록해서 주변의 사람들은 균의 위엄에 놀랐다. 처음에 황해도 구월산에서는 귀여운 꼬마도령수준이더니 갑자기 놀라운 지략(?)으로 피해없이 많은 이들을 구했고 지금은 입에 초라도 바르고 온 듯 놀라운 말빨로 임꺽정을 밀어부쳤다. 역시나 사람들을 많이 다루어본 결과, 균의 카리스마는 많이 향상되었다.

임꺽정은 염왕인까지 합세해서 뿜어내는 균의 기운에 주춤거렸지만 역시나 일세의 맹장답게 곧 수습을 했다. 그리고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한참이나 돌려 다시 거절했다.

"하지만 제가 군대를 맡으면 여러모로 누가 됩니다. 옛말에... 아무튼 한 곳에 여러 우두머리가 있으면 안됩니다. "

"나는 임두령을 삼국지의 전위같은 기개있고 훌륭한 장수라고 생각합니다."

임꺽정은 전위가 누군지 몰라서 서유생을 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서유생은 임꺽정에게 귓속말로 전했다.

'좋은 놈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균이 흥분한 나머지 너무 유식하게 나갔다.

"임두령. 임두령의 말대로 이제 이 섬의 주민들과 군대는 내가 우두머리입니다. 하지만 임두령이 없다면 지켜나갈 수 없습니다. 내 밑에서 군대를 지휘하세요. 혼자서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나에게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임두령을 믿소. "

"..."

믿는다는 말과 함께 초롱초롱한 균의 눈빛. 임꺽정등은 무척이나 균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탐관오리들의 꼴도 보기 싫은 애원의 눈빛도 어린아이들의 치기에 찬 눈빛도 아닌 맑고 부드러운 눈빛이였다.

이 섬의 주인인 균은 이제 고작 10살의 어린 꼬마다. 하지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능력과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임꺽정 일행들이 처음 섬에 도착하자 섬의 아이들이 그들을 반기면서 말했다.

"산적 아저씨, 우리 하성군 나으리는 어디 계세요?"

이 한마디가 의미하는 바는 큰 것이다. 당장 주민들이 균을 신뢰한다는 뜻이고 균이 고귀한 종친임에도 천한 신분을 박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미 이주해온 가족들은 하성군 균의 이 섬에서의 영향력과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섬과의 교류를 차단하고 출어도 제한하고는 있지만 비금도는 조선에서는 찾기 힘들 정도로 풍요로웠다. 하성군은 주민들이 잡은 고기를 비싸게 쳐주고 대신 육지에서 들여오는 물건을 싸게 공급했다. 동시에 세금도 걷지 않았고 일자리가 없던 이들에게 많은 돈을 주고 고용했다. 그래서 전에는 섬에서 살기 힘들어 외지로 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지상낙원까지는 안 되어도 요순시대와 비긴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소문에는 하성군은 천민들이라도 무시하지 않으며 나이가 많은 자는 말조차 높힌다가 했다. 당연히 주민들은 하성군을 극찬했다. 특히 정착한 유민 출신들은 이보다 더해서 정안수를 떠놓고 하성군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이것은 균의 유언비어였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임꺽정은 이를 들었고 또한 하성군의 비범함을 보았기에 어린 꼬마임에도 믿고 자신의 부하들을 맡기려 한 것이다. 하시만 하성군은 그들의 은근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무력을 받지 않았다. 정말 저런 사심없는 왕족이 나라를 다스린다면 살기위해 고향을 떠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앞으로 이 임꺽정이가 마마의 명을 받들어 마마의 군대를 지휘하여 마마와 수많은 백성들을 지켜내는 자가 되겠습니다. 마마, 절 받으십시오."

임꺽정은 균을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인물로 생각했다. 능력이나 신분도 높아서 자신보다 더 그런 세상을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결심이 서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균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균은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빛에는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는 신뢰가 느껴졌다.

"지금은 군신의 예를 치른 것이니 절을 받은 것이오. 하지만 앞으로는 군례면 충분하오. 그리고 며칠후에 새로운 군대조직을 편성할 것이니 임장군을 위시해서 모든 장수들은 병력의 재편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오."

"예, 마마."

막사안의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드디어 균의 나이 열 살때 제대로 된 군사력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뿐이다. 균의 군대가 오백이지만 조선군은 이십만이나 된다. 물론 그들과 싸울 것은 아니지만 비밀이 새어나가면 싸워야한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음!음! 박부장, 잘 지내셨소?"

박수익을 대면한 균이 무안해서인지 자꾸 헛기침을 했다. 알고보니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된 보직이 없어서 고생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먹고 잘 곳도 없어 막사에 끼어 잤단다. 그래서 보다못한 서유생이 교관으로 삼아 병사들의 제식훈련을 부탁해서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부장이라면 무슨 직책이라도 주어는 것입니까?"

역시나 박수익의 음성에는 서운함이 조금 섞여있었다. 미세하지만 박수익의 원망을 들은 균은 조금 더 미안해졌고 당근을 제시하기로 했다.

"이번에 기존의 3부(소금, 무기, 경비)외에 본단의 경리부를 인사관리부로 독립시키고 또한 내 직속의 정보감찰부를 만드려고 하오. 잘 알겠지만 우리의 일은 비밀엄수가 기본이오. 그래서 그것을 전담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전문부서로 따로 확장시키려는 것이오. 거기에는 아무래도 적임자가 박부장밖에는 없소.

그래서 기존의 인원 수십명에서 박부장 마음대로 보강해서 조직을 만들어 보시오. 예산은 충분히 지원되고 또한 한성부까지는 필요없소. 단지 이 섬과 이 일대, 그리고 나주, 지도정도만 감시하면 되오. 아... 그리고 박부장 봉록은 앞으로 매달 쌀 닷섬씩이오. 아무래도 조정의 봉록만큼은 너무 작은 것 같아서 조금 올렸으니 열심히 일해주시오. "

"넷! 마마. "

꼬마지만 상관인 균이 은근히 미안해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데다가 봉록도 2배나 인상해 준다고 하자 박수익은 기분이 많이 풀렸다. 원래 조선시대의 봉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종칠품의 선전관이라면 쌀19섬, 보리3섬, 콩4섬, 정포6필 저화2장이 연봉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월급으로 따지면 쌀 2섬이 좀 넘는 정도다.

대략 환산해보면 연봉으로 6백여만원정도인데 조선시대는 현재보다 물가가 싼 편이니까 당시로는 적은 편은 아니지만 부유층인 양반들에게는 작은 편이다. 그래서 양반들은 자기 땅을 소작을 주어 받는 쌀로 먹고 살고 봉록은 받아서 보관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단지 봉록을 받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양이 문제가 아니였다.

연봉으로 쌀 60섬이면 거의 삼품관들과 비슷하다. 대강은 당하관급에서 최상의 대우였다. 그리고 그정도는 되야지 현 조선국왕이 아니면 임관을 할 사람이 없는 줄 아는 양반들중 하나인 박수익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다고 균은 생각했다. 특히나 정보기관을 맡아야 할 심복이라면 더욱 그랬다.

"예, 마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야 균은 박수익의 얼굴에서 서운함이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황해도에서 4개월이나 같이 있어서인지 박수익의 감정변화가 잘 느껴졌다. 물론 삼식이보다는 못하지만 박수익과는 제법 상성이 잘 맞는 편이였다.

"곧 조정에 우리가 한 일이 알려질 것이오. 조선천하가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이 근처도 수색대상이 될 수 있소. 물론 나의 숙부이신 정현령께서 최대한 막아주고 나주의 거상 경재명이 있어 우리가 주목을 받지 않고는 있지만 언젠가 비밀은 탄로나는 법이요. 그대는 무관이라서 조정의 여러가지 방책을 잘 알터이니 그 시간을 최대로 늘려주시오.

"네, 마마."

균은 무리한 명령은 하지않았다. 그래봐야 부하에게 부담만 준다. 차라리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고 꼭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더 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명령했고 박수익의 부담은 조금이나마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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