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을 기르다.
명종이 고민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 할때 역시나 고민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영부사 윤원형과 그의 첩인 정난정이었다. 오늘 아침 조회에서 명종과 이량의 매서운 공격 을 받아서 넘기기는 하였으나 윤원형의 충격도 큰 것이였다. 이미 반란군은 명종이 아니라 자기를 적으로 삼아서 일어난 의군이라는 헛소문이 한성부까지 번진 상태였 기 때문이다.
이미 황해도에서는 임꺽정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천군을 이끌고 윤원형 을 타도하러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니면 유구의 왕이 되어 백만대군을 준비중 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양반들은 믿지 않았지만 백성들에게는 소문이 갈수록 포장되어 임꺽정은 일대의 장군이며 충신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아무리 헛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윤원형이 그런 소문에 신경쓰는 사람도 아니 지만 15년간 이어온 그의 세도로 인한 불만과 명종의 견제가 곂치면서 점차 반대세 력인 이량일파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특히나 자신이 믿었던 남치근의 토벌실패로 윤원형은 정치적인 손실마져도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이거 큰일이 아니옵니까? 임꺽정이를 놓치다니요?"
"역시 무관놈들은 무식해서 맨날 그 꼴이 아니냐? 그러니 2년동안 토벌도 못하고 작 년에는 오백이나 되는 군사가 사로잡히더니 이번에는 1만이나 되는 놈들과 사라져버 리고. 아이구, 그 도적놈 하나 못 잡아서 쩔쩔매야 하다니... "
"하지만 토포사는 대감께서 추천한 뛰어난 장수라 들었사옵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합니다."
"낌새라니...?"
정난정의 뛰어난 감각은 여러가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우리는 주상전하의 충신. 타도하자. 역적 윤원형.'이라는 주장을 반란의 구호로 널리 알린 것도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 이상했고 평산전투에서 어떻게 토벌군의 존재를 알아내서 매복했는 지도 궁금했다.
특히나 토벌군의 출정전 봉화가 두 곳에서나 잘못 올라서 한 달의 시간을 허비하게 한 것이나 반란군이 동원한 대형선이 조선식의 배로 그 수가 수십척이라 점도 수상 했다. 이런 일들을 따로따로 두고 본다면 그냥 일어날 수도 있지만 연속적으로 일어 나기에는 단지 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정난정은 윤원형에게 이 것을 말해보았다.
"대감, 먼저 2년간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대감을 적으로 선포한 것이나 봉산군수 의 비밀토벌계획을 알고 있었던 점. 또 봉화대 오보사건이나 반군이 타고 갔다는 배 들를 생각해 보십시오. 각각의 일이라면 운 좋게 일어날 수도 있지만 연속적으로 발 생한 일이라면 도저히 산적나부랭이로는 불가능한 것들 입니다. 필시 배후세력이 있 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적들의 뒤에 누가 있었다는 것이냐?"
"외국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면 조선에서 상당한 세력을 지닌 자일 것입니다. 하나 명이나 왜가 개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필시 조선 내의 세력가 일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내에서 대감을 제외하고 그런 일을 지원할 만한 세도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상전하란 말이냐?"
"아마도, 그렇겠지요."
정난정의 답변에 윤원형은 이를 갈았다. 명종은 자신의 조카였다. 그런데 이제 나이 가 들었다고 인종을 제거하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공도 잊고는 노골적으로 자신 을 적대하고는 눈에 가시같은 이량을 싸고도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음... 하긴 만약에 그런 일들을 하려면 조선천지에 나 아니면 주상전하나 가능한 일. 정녕 전하가 이 숙부의 노고를 잊어버리신게야. 이런..."
윤원형은 무척이나 속이 상한지 계속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최고의 세도가인 윤 원형도 인종때 한 번 죽을 뻔했었다. 겨우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살아났지만 관직을 잃었고 산사에서 인종이 죽게 해달고 빌기도 했고 남산에서 신상에 명종이 왕이 되 게 해달라고 청원을 하거나 궁중에 나무인형을 묻는등 방술까지 써서 명종의 즉위를 기원했다.
문정왕후에게 인종을 독살할 독약을 공급한 것도 그였고 나중에는 인종의 외척인 윤 임일파등을 사사하여 명종에게 도전할 세력을 일소해 주었으며 여러 요직을 거쳐 어 린 명종을 대신해 나라에 큰 일을 맞아서 처리해 주었다. 그런 대공(?)을 왕이 몰라 주니 윤원형은 무척 섭섭했다.
거기에 명종을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이제 명종의 나이 28세로 정치를 잘 아는 나이였고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닮아서 인지 자기 형인 인종에 비해 서 정략에도 능했다. 동시에 이런 일에는 든든한 동지인 누이도 아들인 명종의 편을 들 가능성이 있었다.
물증도 없이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 그래도 국왕인 명종을 공격하기는 윤원형도 힘들 었다. 거기다 유일한 물증이라고 할 수있는 도적떼도 배를 타고 사라진 상황. 윤원형과 정난정은 자신들의 노고를 몰라준다고 애꿎은 명종만 원망할 뿐이였다.
지도군은 나주목에 속하는 고을로 지금의 신안군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였다. 나주 목사의 지휘를 받는 작은 고을이지만 그 행정구역은 다도해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방 대한 것이라서 행정력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행정력이 약화된 지금은 지도현으로 격하된 상태였다.
현재도 신안군의 섬들에는 해군함정이 방문하여 무료치료, 가전제품수리, 예술공연 등을 하는데 이는 섬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인식시키고 소외감을 주지 않 기 위한 것이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지금도 본토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는데 훨씬 교통이 불편한 조선시대에는 아예 귀양지로 인식될만큼 외진 곳이였으며 전라우수영의 세력이 약화 된 시점에서는 거의 다른나라에 가까울정도로 교류하기 힘들었다.
관아가 위치한 지도는 그나마 육지에 가깝고 조운항로가 지나는 곳이라 전라우수영 의 영향력하에 있어서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었고 섬이 넒어서 농작물을 기르는 사 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섬 하나만으로는 현감이 다스리는 작은 현보다 못한 곳이 현재의 지도군이다.
(참고로 실제 지도군이 조선중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종때 설치된 기록은 있다. 그리고 당시 신안군일대는 나주목의 영향력하에 있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영광, 무안, 진도군의 일부였다. 명종 16년에 흑산도에 침입한 왜구를 진도군수가 잡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신안군의 대부분은 진도군의 일부로 추정된다. 여 기서는 소설전개상 필요해서 있었다고 가정한다.)
지도현령 정인기는 오랫만에 조카 균을 만날 수 있었다. 고을수령의 임기는 약 5년 이라서 부인 김씨가 같이 오려고 했지만 아기가 어려서 돌이 지난 후에 내려오기로 한 상태인지라 균은 부담없이 바로 정인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정인기는 무척이나 반갑게 균을 맞아주었다. 물론 균은 사촌동생을 못 보아서 아쉬웠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숙부님."
"그래. 하는 일은 잘 되는냐?"
"네. 올해에는 15만냥정도의 수입이 있을 듯합니다."
균은 일부러 수입을 줄여서 말했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균이 이끄는 일명 비 금도 상회의 총수입은 대략 20만냥에서 25만냥이다. 하지만 염전건설비, 이주민정착 자금, 연구 개발비, 인건비 ,군유지비등이 정인기가 알아서는 안되는 자금소요가 크 게 늘어 순수입은 15만냥전후로 예상되었다. 그러니 총이익과 순이익의 차이일뿐 거 짓말은 아니였다.
하지만 정인기는 균의 수입이 2배나 늘어난 것이 기쁜지 아니면 자기 세금 걱정을 덜해서 기쁜지 균의 대답에 활짝 웃었다. 물론 균이 보기에는 전자인듯 했다. 정인 기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도 아니고 균 앞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였다.
"그것 참 다행이구나. 작년보다 2배나 많은 돈이라니. 돈이라면 불을 키는 윤원형이 가 알면 기절하겠구나. 그런데 아직 가을도 아닌데 관아에는 왠일이냐? 너 같은 아 이가 그냥 안부인사나 하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네. 숙부님. 사실은 환곡을 얻을까 해서 이렇게 온 것입니다."
"환곡? 비금도라면 5천의 인구는 충분히 부양하지 않느냐?"
"최근에 유민이 많이 늘어난데다가 그전보다 어획고나 농산물생산이 크게 줄어서 식 량수급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숙부님께 환곡을 받아서 소금으로 갚고자 하는 것이지요. 거기다 숙부님도 공적이 쌓이니 나쁜 일은 아니실 겁니다."
사실 비금도는 노동인구의 확보로 식량생산량이 줄기는 커녕 늘어났다. 단지 통제가 불가능한 소규모 출어만 금지 되었을 뿐, 대규모 출어는 각 촌장들의 통제하에 이루 어졌다. 거기에 주변 섬에서 많은 식량을 입수하고 있어 정인기가 있었을 때보다 거 의 배는 되는 식량이 공급됬다.
하지만 인구가 세배로 불어나고 군대가 생긴 것이 식량수급에 문제를 이르킨 것이다 . 거기에는 작년에 식량비축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한 몫했다. 비축식량도 없는데 인구가 늘고 농경지도 줄어들었고 특히나 굶주리던 사람들이라서 밥도 많이 먹었다.
또한 인기정책중 하나로 식량공급을 많이 한 것도 문제였다.
"하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 환곡을 내주마. 그런데 얼마나 필요하느냐? "
"최소한의 분량만 남기고 있는데로 다 주십시오."
"뭐! 그러면 곡식이 수천섬이 넘는다. 단시일내에 인구가 그렇게 많이 불어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일단은 적당량만 받아가거라."
"숙부님의 임기가 앞으로 5년이 안됩니다. 하지만 인구는 조금씩이나마 늘어날 것이 고 비금도의 식량생산은 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숙부님이 계실때 많이 비축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숙부님도 이번 기회에 공적을 쌓아 숙모님과 동생이 있는 한성부 로 올라가셔야지요."
아무래도 세금도 잘 내고 환곡의 대여와 회수실적이 좋으면 인사고과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흉년으로 재정이 부족한 조선조정이라면 더욱 그랬다. 균이 세금 과 환곡으로 실적을 올려준다면 정인기는 임기내로 영전해 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인기의 생각은 달랐다.
"허허허. 듣기 좋은 소리이지만 내가 올라가면 너는 누가 지켜주냐? 또 올라가고 한 직에 머물 것인데 차리리 고을수령이나 하는 것이 낮지 않겠느냐? 일단은 내 말대로 모르는 일이니 환곡은 나주에서 사서라도 충분히 공급해주마. 그러니 걱정은 말거라 . 그리고 그 소식 들었느냐?"
"무슨 소식말입니까? "
"황해도의 산도적 1만이 배를 타고 떠나서 각 수영에 비상이 걸렸다는구나."
"네? 그럼 임꺽정이라는 괴수가 이끄는 도적떼가 달아났다는 말입니까?"
균은 눈을 동그랐게 뜨고 반문했다. 전후사정을 아는 자라면 균의 영악함과 연기력 에 감탄할 것이지만 정인기는 그간 어느정도 균과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눈 치를 채지 못했다. 정인기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채 계속 말했다.
"주상전하께서 서해바다에 접한 모든 수영과 고을에 명을 내리셨단다. 꼭 적도들을 찾아내서 토벌하라고 엄명을 내리셨지. 하지만 그래봐야 서해의 수영들은 조운항로 를 지키기도 벅차는데 주상전하께서 과중한 명을 내린듯 싶구나. "
"최근에 판옥선이라는 배로 수군전함이 바뀌어 기존의 맹선들이 남는다고 들었습니 다. 그들을 잠시나마 활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네가 애늙은이인줄 알았더니 아직은 어린아이로구나. 물론 경상도수군은 맹선이 남겠지만 예산이 항시 부족한 그들이 맨정신으로 전라우수영을 돕지는 않을 것이다. "
"판옥선 건조비로 쓰거나 아니면 수사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거나 한다는 말씀 아니옵 니까? "
"역시 잘 아는구나. 서해안의 5개 수영을 모두 합쳐도 경상도의 수영하나를 못 당하 고 그나마 조운선을 지켜야하니 적도들을 찾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렇 다고 조운선을 포기할 수도 아니면 경상도수군을 빼돌릴 수도 없으니 무슨 수로 찾 겠느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정인기의 생각도 균과 같았다. 균은 예상보다도 뛰어난 정인기의 안목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이대로만 나간다면 정인기는 예조판서 에 도승지를 겸하게 될 듯하다. 영광된 고생길을 열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정인기는 어린조카의 안목을 높인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정세를 말해주고 균에게 여러가지 이 야기를 해주었다.
"이번에 전라우수사가 된 곽흘이라는 무관이 제법 훌륭하다지만 겨우 포구하나를 가 지고 다도해의 많은 섬들을 어찌 관리할지 고민이라는구나. 그래서 이곳저곳의 유지 들을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쉽지는 않다는 구나."
'전라우수사가 유능하면 곤란한데...'
"평창군수 양사언이 상소를 올렸는데 '46호의 힘으로 옛날 오백호의 부역을 해야하 고 1백결의 전지로 8백결의 공물을 내야한다.'라고 하며 그림까지 그려서 올렸단다.
계속 흉년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유랑하고 있는데 조정대신들은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다니 같은 관헌으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양사언? 어디서 많이 듣던 사람인데... 그런데 군 하나에 호구가 46호라니 과장이 심하군. 그정도면 없어지거나 현으로 격하될 텐데...'
"이번에 황해도로 파견되는 순변사와 명으로 가는 동지사가 적도들의 행방을 알아보 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주상전하께서 친히 내탕금을 내리시어 충당했는데 족히 1만 냥은 넘을 듯해서 중신들이 놀랐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순변사의 임명을 두고 이견 이 많아서 아직 파견되지 않고 있단다."
'역시나 세력다툼한다고 정신없군. 국왕이 내린 돈이라면 내가 준 돈이겠지. 그럼 내가 병주고 약준 셈이 되나? '
그렇게 균은 며칠이나 관아에 묵으며 정인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균은 정인 기가 호의로 말해준 여러가지 정보를 취합하고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합해서 대강의 조선정세와 조정의 대처방안들을 거의 그대로 알아낼 수 있었다. 이로써 균은 자신 이 관아를 방문한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하지만 정인기는 고을 수령으로써 유능한 편인데다가 지도를 제외한 다른 섬들은 아 전이나 촌장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는 터라 시간이 많이 남아서 소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오랫만에 똘똘한 조카를 본 정인기가 좋은 이야기상대를 놓 아주지 않았고 균은 예상을 두배나 초과한 보름만에야 겨우 섬에 돌아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