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228)

 세력을 기르다.

"그래서 예상하던것보다도 조정내의 권력다툼이 심할 것 같소. 그러니 이번 일로대 대적인 수색은 없을 것 같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요."

얼마전 지도관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균의 말에 각부장들 역시 다행이라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걱정했던 전라우수영 지원책따위는 거론되지도 않았고 순변사의 임 명등을 두고 다투고 있다니 상당히 좋은 소식이였다.

"다행이옵니다.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별 걱정이야 안했지만 그래도 일이 쉽게 풀려서 다행입니다."

"이제는 한숨 돌려도 되겠지요."

하지만 너무 긴장이 풀리는 듯한 분위기에 균은 제동을 걸었다. 또 혹시 모르는 일 이다. 아무리 조정이 부패하고 무능해도 뒷걸음에 쥐를 잡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 히나 아직은 방심할 때가 아니였다.

"분명 한숨은 돌려도 되겠지만 아직 끝난 일은 아니오. 박부장은 계속 정보를 수집 하시오. 그리고 지금의 전라우수사인 곽흘이란 자의 평판이 좋았소. 나주목은 원래 부유한 고을이라 부자가 많아서 그중에 소수라도 헌납금을 낸다면 예상보다 더 빨리 우리의 위치가 발견될 수 있으니 특히 주시하시오."

"예, 마마."

"그리고 이번에 환곡을 구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식량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 오. 다른 안전한 입수방법을 조사해볼 필요가 있소. 비금도는 큰 섬이지만 인구가 많고 여러시설이 있으며 염전의 확장으로 농경지의 확보가 불가능하오. 각 부장들은 돌아가서 환곡을 제외한 다른 방법을 찾아주시오."

"예, 마마."

이미 균은 백과사전을 통해서 어느 정도 식량문제의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하 지만 몇일마다 한번씩 열리는 회의에서 꼭 하나의 과제는 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부 장들이 돌아가서 각 부서에서 의논하게 해서 좋은 해답을 얻는 자들을 찾게 하는 것 이다. 인재를 양성할 시간도, 인재를 끌어드릴 지위도 안되는 균으로써는 하나의 방 안이였다.

균이 없는 동안 밀렸던 일을 처리하느라 회의가 길어졌다. 잠시 쉬는 시간에 균은 문득 어제 본 일이 생각났다. 두 패의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데 서로 어울지 않는 것 이였다. 들어보니 한 쪽은 전라도사투리로 또 다른 한 쪽은 황해도사투리로 말하면 서 따로 놀고 있었다. 놀 때는 서로 친해진다는 아이들이 그정도라면 성인들은 어 떠할지 균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큰 일도 끝났는데 한 번 섬 전체에 잔치를 여는 것은 어떻겠소? 김부장."

"마마. 하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아직 빚도 못 갚는 상태이니 조금 미루 심이 좋을 듯 합니다. "

뜬금없이 잔치를 치루자는 이야기에 김호진은 즉시 반대했다. 그 규모에 따라서 다 르겠지만 못해도 수 천냥은 들어가는 거대한 행사다. 하지만 임꺽정대신 회의에 참 가한 서유생은 균이 하는 말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도 건의하고 싶은 데 자금문제로 참았던 의견이였다.

현재 비금도는 인구 1만5천의 큰 고을이다. 하지만 본토박이가 3천, 유민이 2천, 이 주민이 1만등으로 작은 섬에 많은 인구가 몰리고 크게 세 무리로 갈라져 있기에 문 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따로따로 논다고 생각하면 됬다. 비록 시간이 해 결해 줄 문제이지만 그 시간를 앞당겨줄 수 있는 정책도 필요했다.

"조금 돈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섬 주민들의 일치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사려됩니다. 다만 김부장의 말대로 자금이 부족하니 너무 크게만 아니하시면 될듯 합니다."

"소인의 생각도 마찬가지 이옵니다. 저의 염전에서 일하는 일꾼들도 세 무리로 나뉘 어 사이가 좋지 못합니다. 이렇때 작으나마 잔치를 열어서 서로 친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작업의 속도도 높히고 마마의 기반을 단단히 할 수있다고 생각되옵니다."

이는 다른 부장들도 내심 느끼던지라 대부분 찬성을 표했다. 특히 염전이나 산성보 수공사등 일선에서 느끼는 각 무리의 감정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 됬다. 이렇때는 잔치를 열고 정책적으로 융화책을 펴서 주민들을 뭉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 서 균은 김호진의 반대에도 최대한 빨리 잔치를 준비하라고 명했다.

"내 생각도 그러하오. 본래 처음 들어온 이에게 있어서 텃세를 부리는 것만큼 어렵 고 힘든 일이 없다고 들었소. 특히나 우리는 여러모로 일치단결해야 할 필요성이 높 은데 주민들이 서로 시기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오. 그러니 조금 무리해서라도 그 들을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여러가지 조치들을 해야하오. 김부장도 그렇게 알 고 적절한 조치들과 잔치준비를 해주시오. "

"예, 마마."

김호진은 균의 말에 도저히 반대할 수 없었다. 자기도 상단에 처음 들어갔을때 얼마 나 텃세를 많이 당했는지 모른다. 일단은 자금이 부족할까봐서 반대했지만 균과 부 장들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바뀌었다. 차라리 지금 조금 쓰는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 했다. 김호진의 찬성을 받아낸 균은 계속 말을 이었다.

"곧 이주민들의 집이 다 완성된다고 하니 그 때쯤 잔치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리고 김부장뿐만 아니라 다른 부장들도 각 무리가 다투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 주시오. "

"예, 마마."

"아! 그리고 내가 지도관아에서 경재명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 보았소. 당장 변심할 자도 아니고 또한 제거하면 우리가 손해라는 결론만 나왔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소금값이 떨어져서 경재명상단도 알아서 무너질테니 그때까지는 최대한 이용하다가 흡수합병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오.

그러니 작년에 내 숙부님이 만든 나주의 거점에 믿을 만한 사람들을 파견해서 경재 명상단과의 세부적인 거래와 정보수집들을 담당해서 조금 더 능동적으로 대처를 할 수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에 대한 특별한 이견은 없소? "

"마마, 좋은 생각이지만 그때까지 지출되는 돈이 너무 많습니다. 최대한 빨리 흡수 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유통비로 한 섬당 반냥씩 먹어대는 경재명상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역시나 김호진 이 이견을 제시했다. 이는 박수익을 제외한 다른 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흡수 해 버리면 그 이익이 몇 만냥인데 하는 글이 얼굴에 써 있어 균은 살짝 웃었다.

"우리의 소금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조선 전체의 소금값이 떨어지지 않소? 아마도 십 년내로 기존의 소금상들은 다 도산할 것이오. 앞으로 경재명 상단은 소금값 하락으 로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에게 재협상을 요청하게 되고 이를 이용해서 조금씩 잠식해 나가면 되는 일이오. 지금 경재명을 먹으면 우리의 존재가 탄로날 것이오.

우리는 정인기숙부님과 경재명이라는 두 개의 방패를 가지고 있소. 경재명이라는 방 패는 유지비는 많이들지만 버리거나 바꾸다가는 당장 윤원형이라는 화살이 가슴에 꽂힐 것이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윤원형이란 화살은 곧 녹슬고 무디어질 것이오.

그 때에는 내가 앞장서서 바꿀 것이니 그대들은 걱정말고 나만 믿구려. "

역시나 앞으로의 역사를 아는 균이기에 앞으로 5년 후면 윤원형이 실각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때 쯤이면 균은 왕위계승서열 1위에 오른다. 그리고 2년 후면 이 곳 비금도가 들어나도 아예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 균은 실권이 없는 종친중 하나였다. 조금 무거운 느낌은 들지만 두터운 방패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소한 균의 생각은 그랬다.

"밤이 늦어가니 회의는 그만하고 이만 퇴근합시다. 김부장은 며칠내로 나주거점에 책임자가 될만한 사람을 추천해보시오."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마마."

밤이 늦자 균은 일단 부장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넒은 회의장에 홀로 앉아서 곰곰 히 지금까지의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지금까지야 자신이 생각한 바를 벗어나지 못하 거나오히려 운 좋게 일들이 진행됬다. 기습적인 태풍이나 정인기의 승진, 조정의 분 란등균은 자신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운이 좋으라 는 법은 없었다.

그 날 밤도 균은 자신의 비밀서재로 갔다. 비밀서재라고 해야 몇가지 안전장치를 해 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균이 생각하는 한은 안전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균이 보물 1호인 백과사전이 위치했다.

균은 천천히 백과사전을 넘기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특히나 자기가 생각하던 것 보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왕인이 있지만 너무 어려서 카리스마가 한껏 뿜어 나오지도 않았고 아직 왕이 아니라서 제한적인 인재들만 등용할 수 있어서 다 른 일도 많은데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이제 세자인 부가 죽으려면 약 2년여가 남았다. 세자가 죽는다면 균은 비금도에 남 아있지 못한다. 당장 왕세자교육에 들어 갈지도 모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하성 군은 세자가 죽자 자기형제들과 함께 특수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병든 국왕의 병수 발을 들어야하고 일부 정무까지 다루는 연습도 했다고 한다.

균에게 비금도에서 남은 시간은 이제 2년. 그나마 할 일은 태산인데 인재는 부족하 고 자신의 실력도 부족했다. 자신이 소설 속에나 나오는 먼치킨 주인공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균은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느 덧 창 넘어로 보이는 달과 별 그리고 그 밑의 바다가 다가오는 듯 했다.

균이 지도관아에서 환곡과 정보를 받아오고 숨은 인재찾기와 각종 주민융합책등에 주력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하던 문제들이 해결된 비금도는 더욱 빠르게 균의 본거지 로 안정되고 발전되어갔다.

먼저 이주민의 집들이 거의 완성되어 임시거주시설들이 철거되거나 원래 용도로 돌 아갔다. 원래 최대 5천의 이주민을 감안해서 집과 거주시설을 건설했는데 그 두 배 의 이주민이 오는 바람에 빈 창고마저 일부 개조해서 사용했다. 그래서 불편함이 많 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창고들은 제 용도로 돌아갔고 사람들 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해서 비금도 전체에 잔치가 벌어졌다. 1만 5천의 주민중 1만이상 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잔치였다. 이를 위해 김호진이 큰 맘을 먹고 약 5천냥의 자금 을 풀어서 술과 고기를 나누어주고 모든 작업을 중단시켜 푹 쉬고 놀고 먹게 했다.

물론 그 때문에 김호진이 작업을 못해서 1만냥의 손실이 났다고 안타까워 했지만 균 의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김부장~, 입안에 든 고기랑 손에 든 술은 다 먹고 말해요.~ 꺽~. "

처음 먹는 막걸리에 균도 많이 취했다. 그래서 얼굴이 빨그란 것이 무척이나 귀엽게 보였다. 균은 오랫만에 먹는 술이 무척이나 좋았다. 환생해서는 어리다고 정월 대보 름때 귀밝이술을 얻어먹는 것을 빼고는 환생해서 처음 먹는 술이였다. 물론 전생에 서도 밥에 술 말아먹던 누나덕분에 질려서 많이 먹지 않았던지라 처음에는 잘 넘어 가는 막걸리에 균은 오판했다.

'나는 막걸리가 체질에 맞는 모양이다.~'

"한잔 받아요!~"

자신이 취하는지도 모른채 자신만만해진 균은 각 부락의 촌장들과 각 부장들을 돌며 막걸리를 마셔댔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필름 이 끊어졌다. 일어나보니 다음날 저녁이였다. 그리고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 이 울렁거렸다. 균이 막걸리의 숙취에서 깨어난 것은 다시 하루가 지난 후였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아...박부장. 아직 머리 아픈 것은 빼고는 괜찮은 것 같소."

"다행입니다. 막걸리을 막사발로 드시길래 사람들이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봐야 내가 얼마나 먹었다구...."

"한 동이 다 비우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동이을 거꾸로 들고 '완산' 인가 하는 말씀 을 하시고는 '하늘이 뱅뱅 돈다.' 하고 쓰러지셔서 의원들이 달려오고 난리였습니다 . 어린 나이에 그정도의 술이면 무척 위험하다고 의원들이 또 난리를 치더군요. "

"..."

균은 차마 할 말이 없었다. 완샷하고 동이를 들었다니.... 정말 대단한 추태였다.

전생때도 그런 적이 없는데 대형사고였다. 그만 정신이 놀러 가버린 균에게 박수익 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성군마마. "

"...."

"그래도 무척 귀여우셨습니다. 사람들이 그게 귀엽다고 하더군요. 그걸로 위안을 삼으 시죠."

몇 달을 같이 일하다보니 박수익도 능글능글해지는 것 같았다. 균은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피곤해서인지 어느새 다시 누워서 새근새근 잠을 잤다. 박수익은 귀여운 자 기 주군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도 균이 벌인 추태는 오히려 귀엽게 보여졌다. 특히 황해도출신들 거기서도 산적출신들은 매우 자랑스럽게 평산전투에서 굴러 다니던 균의 모습을 다시 회상하 며 저 것도 자신들을 즐겁게 하려는 연기라는 소문을 펴뜨리고 있었다.

각 부장들이 수습해 보았지만 무섭게 번지는 소문의 위력은 대단했고 오히려 자신들 을 위해서 잔치분위기를 띄워주고(?) 장렬히 전사한 균을 보고는 다른 양반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을 위해준다는 착각속에 잔치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균은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다니거나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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