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을 기르다.
균이 비금도에 정착해서 염전을 만든지도 벌써 2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인구만 거의 5배로 불어났고 염전수만 연말에는 700개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비금도와 나주간의 교역량도 크게 늘어났다. 비금도에서 나주로 향하는 소금만 해도 현 시세 로 37만 5천냥, 나주에서 비금도로 향하는 생필품들은 최소 3만냥에서 6만냥정도로 총 40만냥이 넘었다.
균이 정인기를 통하여 소금과 식량을 처분하지 않았다면 벌써 소문날 정도로 엄청난 돈이였다. 이에 따라 균은 경재명상단에 대한 교역밎 감시, 그리고 정보수집과 원할 한 생필품 보급을 위하여 작년에 정인기가 만든 나주거점에 상인과 정보원을 증파해 서 이를 관장하게 했다.
그래서 나주거점의 책임자로 선정된 이가 김형중이라는 상인이다. 원래 인사관리부 장인 김호진의 먼 친척뻘이고 같은 상단에서 일한 적도 있어서 인사관리부에서 같이 일했는데 이번에 적극적인 추천을 받은 것이다. 균은 이미 박수익을 통해서 김형중 에 대한 모든 분야를 꼬박 하룻동안 검증해야 했다.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균의 비금도 상회를 말아먹는 것은 일도 아니였다.
다행히도 균의 심사결과는 쓸만하다고 나왔다. 김호진의 친척뻘이지만 제법 능력도 있고 무엇보다도 입이 무거운 편이라는 점이 좋은 평가를 내리게 했다. 혹시라도 술먹고 비금도가 잘 사니하고 나불거리다가는 다 죽는다. 그래서 평소에는 물론이고 술자리후에도 업무에 관련된 말을 절대하지 않는다는 김형중이 선택된 것이다.
일을 잘 처리하면 새로운 상단을 만들어 주겠다는 균의 약조와 잘못하면 자신과 자 신의 가족들까지 역적으로 몰려 죽는다는 박수익의 엄포, 그리고 친척형님인 김호진 이 자신을 믿고 맞긴다는 격려가 곂쳐서 김형중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균과 김호진 그리고 박수익까지 세명의 상관에게 하루씩 특수교육을 받고 또 뱃길로 하루가 걸려서 나주에 도착한 김형중은 정신이 없을 지경이였다. 쓸만한 사람을 많 이 붙여주기는 했지만 연간 40만냥의 돈이 그것도 내년에는 더 늘어나는 거금이 자 신의 손을 거친다고 생각하니 기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나주거점부장이라는 거창한 직책을 받고 부임한 다음날 바로 경재명의 초대가 있었 다. 경재명은 자신의 거대한 상단을 이끌고 있는데 정확히는 다 자신의 재산은 아니 였다. 작은 중소상인들의 연합체가 경재명상단인 것이다. 이는 다른 상인들도 비슷 하였고 김호진과 김형중이 있던 작은 상단도 원래는 지안소 상단의 일부였다가 아예 본단에 흡수되어서 사라진 바가 있었다.
따라서 다른 상인들이 보았을 때는 균의 비금도상회도 경재명상단의 부속 상단정도 에 불과했다. 단지 지분이 큰 정도의 경재명상단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단주인 경재명의 생각은 달랐다. 상단의 일부가 아니라 동업자였다. 그래서 그 날 경재명의 대접도 남달랐다.
"어서오시구려. 먼길에 고생이 많았소."
"별 말씀을... 소인은 김형중이라 하옵니다. 나주상계의 거상이신 경재명어르신을 뵙게 되서 무척이나 기쁩니다. "
"하하하, 내가 거상이라면 하성군영감께서는 뭐라고 불리셔야겠소? 자자, 어서 앉아 서 술이나 한 잔 받구려. 아참, 하성군영감께서는 평안하시오?"
"예, 하성군께서는 평안하십니다. 저보고 어르신의 안부를 물어달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종친이신 하성군영감께서 미천한 중인의 안부를 챙기시다니 영광이외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주안상을 드리거라."
원래부터 부유한 나주라서 그런지 아니면 경재명이 맘을 먹어서 그런지 상에는 음식 들이 넘쳐났다.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표현은 못하지만 상에 자리가 없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푸짐한 주안상이였다. 경재명은 주안상이 들어오자 술병을 들어서 자랑스 럽게 말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주 이강주요. 내가 피로을 푸는데 좋다고 해서 특별히 몇병 구 했다오. 어서 한잔 받아보시오. "
"이 귀한 술을 이 것은 임금님 진상품으로 쓰이는 고급술이 아닙니까? "
"하하하, 내가 하성군영감 덕분에 얼마나 덕을 보는데 이정도야 기본이 아니오. 하 성군께서 아직 어리신지라 술대접도 제대로 못하였으니 그간 안타까웠소. 자! 어서 하성군 영감을 대신해서 받아보시오."
원래 이강주는 국왕이나 양반들이 먹는 고급술인지라 김형중은 처음 마셔보는 술이 였다. 그러다보니 김형중은 많이 마셨고 경재명은 그다지 마시지 않았다. 한참후 김 형중은 제법 많이 취한듯이 여러가지 말을 늘어 놓았다. 물론 경재명도 말을 했지만 김형중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밤에 제법 깊어서야 김형중은 취한 몸을 이끌고 경재명의 배웅을 받으며 비틀비틀거 리며 거점으로 향했다. 무척 가까운 거리인데도 취해서인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거점으로 쓰이는 기와집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흐릿하던 눈빛이 맑아졌다. 그리고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어르신, 비싼 술만 날린 것이요. 나도 어르신처럼 해주분(술깨는 가루.)을 뿌린 안 주만 골라 먹었다오. 그리고 이 정도는 나뿐만 아니라 윗분들은 다 예상하시어 3일 동안 죽도록 교육받았소. 더 독한 지초주(진도 홍주)를 물대신 마신 놈이 어찌 이강 주에 취하겠소? 하하하."
그랬다. 특수교육은 정신교육이외에 술교육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잔치에서 쓴 맛을 본 균이 무척이나 신경써서 진도에서 지초주를 입수하여 물처럼 먹여댄 것이다 . 그래서 김형중이 취중에 한 소리는 전혀 쓸모없는 소리거나 경재명이 아는 사실을 다시 말한 수준이였다. 김형중은 지금쯤 경재명이 술값이 아까워 할 것을 생각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에 멀쩡히 일어난 김형중은 감시조로부터 어젯 밤 경재명이 왠일인지 화가 나 서 비싼 그릇을 깼다가 벌레 씹은 표정이 됬다는 보고를 받았다. 문득 경재명과 손 잡은 이유가 손쉬운 상대라서 라는 균의 말이 생각났다.
'역시 하성군영감 말씀대로 경재명을 데리고 노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이해하겠군. 저렇게 앝은 수만 쓰다가는 하성군영감께서 별 힘도 안 들이고 흡수하 시겠는 걸. 아니지 거상 지안소라도 당하지 못할 분인데... 조만간에 나주상계는 하 성군영감의 손에 들고 나는 그 분 밑에서 상단을 지휘하는 대방이 된다. 후후후. 그 날이 기대가 되는구나.'
김형중이 단꿈에 부풀어 있을 무렵 비금도에서는 성치산성의 보수 공사가 한창이였 다. 아직 염전의 수도 적고 집들의 건축이 거의 종료된지라 균은 총력을 다해서 산 성공사의 마무리에 힘썼다. 성치산성은 평시에는 본단과 중요시설보호에 쓰이는 반 면 전시에는 비금도 주민의 대피처로 활용해야 했기에 거의 새로 만들었다고 할 정 도로 확장이 이루어졌다.
산성공사가 한창이였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자금과 인력덕분에 균은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었다. 그냥 석회석으로 콘크리트벽을 만들어 버리면은 좋겠지만 조선의 석회 석 산지는 평안도 남부 일대와 강원도 태백일대였다. 현 상황에서는 운송비도 더 들 고 너무 요란하다는 단점때문에 흙과 돌로 쌓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산성이라서 그다지 높게 쌓을 필요도 없고 또 화약무기가 도입되면서 성에 대한 방 어 의존도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큰 공사였고 부산물로 많은 부상자가 나와서 수뇌부를 긴장시켰다. 그래서 균은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해결책 으로 도르래를 생각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때부터 도르래가 사용됬다고 하지만 정약용의 거중기 때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고 하니 많이 사용된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고정도르 래나 움직도르래정도가 고작이고 나머지는 아직 개념이 없거나 개발 되었는데도 사 장된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균은 백과사전을 뒤져가며 도르래를 찾았다. 마침 자기가 도르래 그림을 그 려놓은 것도 있었지만 이해하기 쉽지는 않았다. 급하게 필사해둔 그림인지라 남사고 의 원본백과사전 못지 않은 추상화가 그려진 것이다. 당황한 균은 대강만 이해하고 는 그 그림을 조금 그렇듯하게 수정해서 자기의 주석을 달아서 무기공방에 넘겨서 만들게 했다.
그런데 맞긴지 하루만에 자신이 주문한 완벽한 차동도르래와 복합도르래가 만들어져 나오자 균은 놀랐다. 설마 조선시대에 그런 과학기술이 퍼져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도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빨리 만들어오다니.... 나부장 혹시 그대도 알고 있던 것이오?"
"아닙니다. 제 동생놈이 한번 보더니 바로 만들어 낸 것이지 저는 처음 보는 물건입 니다. "
"어떻게 그 그림과 설명만으로 알아냈단 말이오?"
균은 그 동안 조선시대 사람들을 조금 깔보고 있었는데 자기보다 더 빨리 도르래를 이해한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자신의 자만심을 잠시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나원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래뵈도 제 동생놈이 조선에서 제일로 가는 악필입니다. 그 놈이 언문을 쓴 것도 꼭 한자의 초서체같아서 거의 알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림을 알아보기 힘들어 보여 주었더니 아주 간단히 만들어 냈습니다. "
"악필은 악필만이 볼 수 있다라더니..."
어이가 없어진 균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무튼 균은 도르래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 한 장인인 나중현에게 산성공사를 맞겼다. 송충이눈썹이 인상적인 그는 자신이 만든 도르래와 그 도르래로 만든 원시적인 소형기중기로 빠른 속도로 1년반이나 끌어오던 산성공사를 거의 마무리지었다.
그래서 균은 나중현를 따로 토목건축부장으로 임명해서 기중기와 건축자재의 개량과 토목설계등의 연구를 전담하는 공방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글씨 잘 쓰는 사람도 특별히 하나 배정해 주어 보고서의 해독문제도 해결했다. 이로써 균의 예상과는 달 리 벌써 부서가 7개로 늘어나 버렸다.
균이 부장들에게 식량공급의 대책을 조사하라고 한지도 한 달도 더 지났다. 그 쯤 되자 이제는 됬다 싶은 균은 부장들에게 다음 회의때 의견을 낸 사람들을 꼭 데리고 오라고 저번 회의가 끝나고 말했다. 그래서 이 번의 회의에는 6명의 부장과 3명의 일꾼, 그리고 균까지 딱 10명이 참가했다.
"딱 세 개의 제안이 나왔단 말이오?... 음... 어디 그럼 차례대로 들어봅시다."
예상보다 제안이 적은 것에 균은 많이 실망했다.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지 않아서 그 렇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음에는 최소한 쌀을 몇섬씩 준다고 알리기로 속으로 결심 했다.
"예, 저는 염전부에서 제삼백사십일호 염전에서 일하는 김쇠똥이라고 합니다. 이렇 게 하성군마마님과 여러 부장님들을 뵙게 되서 무한한 영광이라고 생각하구요. 여기 계신 분들 덕택에 저희들은 잘 먹고 잘 살고.... "
"본론부터 이야기하도록!"
균은 예상보다 제안이 적은 데다가 제이의 삼식이를 보는 느낌이 곂쳐 짜증이 솟그 쳐서 오랫만에 염왕인의 기운을 뿜어냈다. 균의 기분이 안 좋은 것같자 부장들까지 도 한기를 느꼈다. 이미 무더운 여름철인데도 회의장 안은 썰렁했다. 김쇠똥을 대리 고 온 황재훈이 눈알을 굴려서 빨리 말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균의 기운에 놀란 가슴 을 간신히 진정시킨 김쇠똥이 간신히 이야기를 계속했다.
"예... 그러니까.... 이웃섬 도초도는 농업이 성한 편입니다. 그러니 도초도에도 사 람들을 파견해서 농사를 짓게 하고 ...."
"그게 끝인가?"
"네...."
누가 몰라서 도초도에 진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도초도는 비금도와 면적은 비슷하 지만 해안선은 절반에 불과하다. 그래서 비금도에 비해 농업이 성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도 식량중 상당부분을 도초도에서 수입하는데 진출한다고 해도 그 증가폭은 미 미했다. 따라서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는 힘들었다. 균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
"예, 저는 대장간에서 일하는 최말똥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저희 섬에도 다른 곳과 같이 모내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내기를 하다면 인력도 적게 들 고 겨울에는 보리도 기를 수 있어서 수확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
이앙법(모내기)은 이미 조선 전기부터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는 신농법이였다. 그냥 볍씨를 뿌리는 것보다 수확량도 좋고 일도 편했다. 거기에 보리의 경작기간도 확보 되어 이모작을 통해서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부장들 과 최말똥이는 슬쩍 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균은 얼굴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자네, 혹시 비금도출신이 아니라 육지출신인가? "
"예, 전라도 전주출신입니다. 유민으로 떠돌다가 올해 이 섬에 왔습니다."
"섬 생활중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 "
"그야 비오면 빗물 받아야 하는 것이 가장 불편합니다. 거기에 큰 시내도 없어서 헤 엄치려면 바다에 들어가야 하고... "
"모내기는 가뭄이 들면 끝장나는 농법이네. 거의 항시 가뭄이라고 할 수 있는 섬지 방에서 그것도 인구가 많아서 식수와 생활용수만 써도 물이 부족한 곳에서 물수요가 많은 모내기가 가능하겠나? "
"..."
비금도는 그래도 큰 섬이라서 물사정이 좋은 편이지만은 해안도서들의 가장 큰 문제 는 물이다. 비가 자주오면 상관없겠지만 가뭄이라도 들면 농업용수는 커녕 소금맛이 나는 지하수라도 식수로 마셔야 할 만큼 물 사정이 나쁘다. 그래서 섬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물 많이 쓰는 사람이라 한다.
균도 이에 물수급을 위해서 제법 많은 노력을 기울렸다. 저수지도 축조했고 지하수 도 파두고 빗물 받으라고 큰 항아리도 사다가 집집마다 나누어주고 심지어는 허락받 은 염좌 하나를 사용하여 자염(끓인 소금)과 물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균의 세수물 도 고작 반바가지의 물에 그나마 쓰고나서는 근처 밭에다 가져다 뿌렸다.
이쯤 되자 말뚝이와 자신만만하게 그를 추천했던 나원호는 기가 팍 죽었다. 균이 확 보한 물을 많지만 그것을 써야하는 사람은 더 많았다. 다행히 가뭄이 안들어서 괜찮 지만 가뭄이라도 들면 식수도 부족하다는 예상도 나온 상태다. 균은 답답한지 한숨 을 내쉬었다.
"하~. 그럼 마지막이군. 다음!"
"전 지금 경비대에 있는 이영식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땅을 파고 거기다 작물 을 심었으면 합니다. "
"땅을 판다고?"
"예. 그러니까 저도 바람이 많이부는 바닷가에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땅이 꺼진 부분 의 작물들이 잘 자랐다고 기억합니다. 그래서 땅을 파고 심어보니 확실히 잘 자라는 것 같아서.... "
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손은 팔짱을 끼고 다른 한손은 그 위에 얻지고 자기 턱을 만지작거렸다. 이는 균이 생각할때 주로 하는 버릇이였다. 이영식 이라는 자가 말한 방법이 앞으로 약 1세기 뒤에나 소개되는 견종법이다. 바로 밭이 랑과 고랑을 만들어서 고랑에다가 파종하는 방식이다.
이 농법은 가뭄에도 발아가 쉽고 뿌리가 낮은 곳에 있어서 바람과 추위의 피해가 적 으며 묘종에 통풍도 잘 되며 제초작업이 쉽다. 그래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농 종법에 비해서 약 5배의 수확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비금도에 잘 맞는 농법이였 다.
균이 생각하던 바도 역시 그러했다. 균은 손을 내리고 아주 살짝 이영식을 향해서 웃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렇게 농경수리부라는 부서가 또 생겨버렸다. 이로써 균의 비금도는 총 1개의 본단과 8개의 관련부서로 세분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