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을 기르다.
명종 17년 서기 1562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회의부터 김호진은 군사들에게 나누 어 주는 포상문제로 균을 들볶고 있었다.
하긴 병사들에게 쌀 5섬씩 장수들에게 쌀 10섬씩 나누어주고 회식비까지 내려준다면 최소한 쌀 3천섬은 들어간다. 돈으로 치면 거의 1만 5천냥 이상의 거금이다. 물론 작년에 남은 자금만 최소 10만냥에 달하기는 하지만 균은 너무 돈을 많이 써대고 있 었다.
"마마, 무려 3천석의 쌀입니다. 조금 줄여서 주어도 병사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런 김호진을 유심히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균과 서유생이였다. 서유생은 자기 부하들의 포상금을 줄이자는 소리에 내심은 불쾌하지만 솔직히 너무 과한 돈이 라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균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김호진을 바라보다가 잠시 회의 장안의 부장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부장들이 다 나가자 조용히 말했다.
"김부장."
"예, 마마."
"내가 이번에 이렇게 한 이유는 다 김부장덕분이오."
"네?"
균의 말에 김호진은 놀라고 당황했다. 난데없이 자신에게 책임을 떠 넘기니 김호진 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균의 속뜻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역시나 균은 김호진이 제 표정을 되찾자 입을 열었다.
"물론 김부장뿐아니라, 다른 부장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우리의 재정을 담당하는 분이 김부장이오? 그렇지 않소? "
"예, 그렇습니다만?"
"현재 우리의 경비대에는 사실상 두 명의 주인이 존재하고 있소. 하나는 나고 또 하 나는 임꺽정영장이오. 이렇게 두명이지만 병사들에게는 가끔 시찰이나 하는 나보다 매일 같이 생활하고 훈련하며 경비대의 근간인 의군의 대장이였던 임영장의 영향력 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소.
당장 나는 전체의 지휘와 통제를 맡고 있는지라 경비대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소. 이러한 상태에서 내가 이 군대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것 은 바로 돈이오. 즉 내가 병사들를 먹이고 입히며 봉록을 내리는 존재라는 것을 병 사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오. 포상금을 내리는 이유를 알겠소?"
"하지만 너무 과하심이..."
"그런 때에 김부장을 위시해서 다른 부장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오. 그 훈련때 부 장들이 적은 양의 포상금을 내게 제안해야 했소. 거기서 내가 조금만 더 높게 불러 도 병사들은 지금의 포상금을 받는 것만큼 기뻐했을 것이오. 하지만 그대들의 제안 이 없기에 부득히 많이 불러야 했소."
균의 말에 김호진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사람이란 영리하면서도 어리석은 존재라 서 여러가지 착각을 한다. 조삼모사라는 말처럼 별 차이가 없는데도 좋아하기도 하 고 싫어하기도 하는 것이다. 병사들에게는 균이 그냥 쌀을 주라고 하는 것보다 부장 들의 의견에 균이 조금 더 주라고 하는 것이 더 기쁘게 느껴진다.
"사람을 다룰 때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것이오. 옛 말에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사내는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했소.
이는 우리 병사들도 마찬가지요.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받는 힘들고 고된 훈련을 받 은 것을 자신들의 주군인 내가 알아주고 챙겨준다면 그보다 더 좋아할 일은 없을 것 이오. 거기에 각부장들이 나의 비교상대가 되어준다면 병사들의 기쁨은 더욱 커지는 것이오. 이는 옛날부터 많은 자들이 사용한 방법인데 아직 우리부장들은 모르는 듯 하구려.
"..."
김호진은 균의 말에 도저히 답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다. 자신이 균에게 충성을 하는 이유도 많은 봉록을 주는 것과 함께 망해버 린 상단출신이라고 다른 상인들은 꺼리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만 믿고 엄청난 돈을 다루는 자리를 선뜻 맞긴 것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병사들도 자신들의 주인인 균이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들을 높게 평가한 다면 또한 고된 훈련의 결과를 알아주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준다면 충성심이 깊 어질 것이다. 그정도는 상인인 그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섬의 최고결정권자인 나의 명령이 내려진 이상 조금 과하다고는 하나 그대로 시 행하시오. 지금 내 말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열 배의 돈이 들어가야 하오.
김부장이 힘들겠지만 이번에는 꼭 내 명을 따르시오. "
"예, 마마."
이제 균의 나이도 만으로 10살이다. 하지만 아무도 균을 10살 꼬마로 보지 않는다.
특히나 곁에서 2년 반이나 일한 김호진같은 이들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균이 정 색을 하고 말하자 두말없이 김호진은 포기했다. 어차피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말 이다. 다시 회의장안에 각 부장들이 들어오고 제 자리에 앉자 균은 부장들에게 단호 하게 말했다.
"이번의 경비대에 대한 포상건은 나의 직권으로 그대로 시행할 것이오. 그러니 각 부장들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마시오."
"예, 마마."
"그리고 새로운 해도 밝았으니 우리 비금도주민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 있소.
밖에 삼식이 있느냐? 어서 가지고 오너라."
"예, 도련님."
삼식이가 들고온 것은 거무퇴퇴하게 생긴 이상한 물건이였다. 전혀 용도를 알 수 없 게 생긴 그것이 삼식이에 의해서 각 부장들 앞에 두 개씩 놓여졌다. 두 물건다 비슷 하게 생겼는데 석감(재로 만든 전통비누)과 비슷했다.
"마마, 이것이 무엇이온지...?"
"비누라고 하고 몸을 깨끗히 하는데 사용되는 물건이오. 기존의 잿물이나 조두, 쌀 겨, 오줌, 창포물 등보다 훨씬 더 잘 씻어지는 물건이니 먼저 부장들에서 사용해보 고 그 다음에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까 하오."
"마마. 비싼 물품은 아니겠지요?"
균의 큰 손에 질겁한 김호진이 지레 겁먹고 가격부터 물어보았다. 균은 살며시 웃으 면서 말했다.
"일단 동물기름이던 식물기름이던 기름이 들어가오. 그리고 다른 재료값도 비싼 편 이오."
"안됩니다!"
"그 재료가 소금인데...."
"네?"
역시나 균은 김호진을 놀려먹는 재미로 사는 사람 같았다. 조선에서 소금은 비싸지 만 비금도에서는 무척 싸다. 조선에서는 물이 흔하고 소금이 귀한 반면 비금도에서 는 소금이 흔하고 물이 귀하다.
비누는 크게 주성분인 지방이나 식물기름에 수산화나트륨과 소금이 첨가되어서 만들 어진다. 그리고 거기에 색상과 향기를 배합하면 완성이다. 그나마 수산화나트륨도 소금을 전기분해하거나 소금에다가 암모니아와 석회유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다. 그 래서 기름과 소금만 있다면 비누가 된다.
단점이 있다면 현재의 재료들이 그 순도도 낮고 화학실험실이 없었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대량생산까지는 힘들고 위험하기도 해서 균은 일반 비누가 아닌 잿물을 굳인 것을 비누대용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두 가지의 비누중 하나는 진짜비누고 또 하나 는 석감이였다.
"그대들의 앞에 있는 두 가지중 하나는 석감이고 그대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나 조 금 개량한 것이오. 또 하나는 아까 말한 비누인데 석감보다 좋지만 조금 문제가 있 소. 일단 각 부장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석감과 내가 준 두 종류를 사용하고 비교 해서 보고하시오. "
"예. 마마."
부장들은 신기한 듯이 새로운 석감들을 만져보았다. 특히 비누라고 불리는 것에 호 감이 갔다. 제법 괜찮은 냄새가 풍기는 것이다. 하지만 균은 내심 끙끙거리며 냄새 를 맞아보는 부장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가장 손쉽게 암모니아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오줌을 오래 놔두어 암모니 아를 만들었는데 냄새가 날까봐 향기나는 것을 조금 더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번 태우는 과정이 있어서 불순물은 날아가지만 주요재료중 하나가 오래된 오 줌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었다.
균은 일단 석감의 보급만 시작했다. 부장들이 사용한 결과 발전기가 없어서 전기분 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상보다 비누의 질이 떨어졌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석 감의 주성분인 재도 비누보다 좋은 점이 있었으니 환경오염이 적다는 점이였다. 균 은 그것을 위안삼았다.
"도련님. 바닷바람이 차갑습니다. 그만 들어가시요?"
균의 뒤를 따르던 삼식이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제 주인인 균을 보고 집으로 돌아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균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원한 것이 좋지 않느냐?"
"도련님 정월입니다. 한겨울인데 너무 춥게 계시면..."
"여기가 무슨 황해도냐? 조선 최남단인데 뭐가 추워."
"그래도..."
가끔씩 시간이 나면 균은 이렇게 섬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특히나 호위 병력없이는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곤란했고 그러다보니 백과사전을 읽다가 이해가 안되거나 생각이 안나면 이렇게 인적이 드문 해변가를 찾았다. 그나마 군사구역으로 설정되어 민간인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다.
균이 현재 가장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화약의 황을 구하는 문제였다. 조선에서야 잘 해야 백두산에 있을 확률이 고작일뿐 황이 나지 않았다. 대신 주산지라고 할 수 있 는 일본이 바로 이웃나라이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왜구였다.
판옥선의 등장으로 조선남부의 왜구출몰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대신 왜구들은 중국의 명나라 동남부해안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이에 명은 3만의 대병력을 파견하여 왜 구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단 오백명의 왜구의 치고 빠지기 전법에 의해 해안지역을 거의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왜구의 문제는 균에게도 마찬가지로 일본과의 유황교역과 마카오의 포르투갈상인들 과의 교역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고 동시에 전라우수영의 세력이 없는 다도해를 위협 하는 강력한 적이였다. 또한 비금도가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많았고 그 경우에는 이 기더라도 노출될 확률이 높았다.
이에 대한 방책으로는 수군의 양성이 가장 유력하지만 배 만드는 기술은 고급기술이 라서 기술자를 구하기도 힘들고 또한 판옥선급의 강력한 전함을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동시에 전투원만 120명이 필요하고 각종 화포까지 갖추어야 하며 충분한 숫자까지 갖추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역관을 매수하여 올해 4월에 출발하는 성절사(중국황제의 생일 축하사절.)를 통해 마카오로 가서 아예 배와 선원을 사서 비금도로 돌아오는 방안이고 또 하나는 전라 우수영과의 밀착관계를 맺는 것이였다. 하지만 이역시 문제가 많았다.
마카오와의 바닷길이 왜구로 막혀있다면 명의 북경에서 마카오까지의 육로는 산적때 와 반란군으로 막혀있다. 명 12대황제 가정제는 이미 정사를 포기하여 40~60일이나 북경에 머무르는 조선사신들이 구경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였고 또한 조선에서 성절사 에 속하는 것도 문제였다. 전혀 끼어들 힘이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전라우수영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현 전라우수사 곽흘이 순순히 사실상의 반란군인 균을 용납할 가능성도 낮고 더욱이 수군절도사의 임기는 2년으로 1년후에는 다른 절 도사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러다보면 비밀은 새어나가고 뇌물만 많이 먹는 최악 의 선택이 된다.
그러다 보니 도저히 균에게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바닷가를 거닐던 균은 자신의 처소가 있는 성치산성내로 들어왔다. 성문을 지키던 창병들이 균을 보고 자세를 바로하며' 충'
을 외쳤다.
균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채 성내로 돌아왔다. 작년에 완성된 산성안 은 무척이나 비좁았다. 거대한 본단건물과 공방, 창고들로 인해서 전시에는 대피한 주민들이 토굴에서 잠을 자야 할 지경이였다. 그리고 그렇게 좁은 지라 많은 사람들 과 마주쳤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수십번이상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뒷골이 땡기는 데 균 은 자신의 이미지관리때문에 그 많은 인사를 다 받느라 어지로운 상태로 본단에 도 착했다. 또 본단을 지키는 초병과 내부에서 일하는 인사관리부 사람들의 인사를 받 으며 균은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나갔던 산책이 머리를 더 아 프게 했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는 제갈량, 조조는 곽가, 손권은 주유같은 군사들이 있던데 나 는 그런 인재가 없으니... '
균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대신 생각을 해줄 군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 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내가 아니면 백과사전을 보고 완전히 이해할 사람이 없는데 군사감이 있어도 무리다. 토정선생같은 분은 내가 왕이 되더라도 벼슬길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고 선 조때의 젊고 유능한 자들은 양반이고 지금은 나처럼 아이들이니 유괴해야 하나? 그 렇바에는 지금 비금도아이들을 계속 교육시키는 것이 더 낳지.'
현재도 균은 비금도의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문공부는 아닌 한글과 주판 기타 실무교육이 다였다. 그 이상을 가르치고 싶어도 그마저 가르칠 선생이 없 다. 이미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바쁘게 일했다. 가장 널 널하다면 바로 균 자신이지만 매일 결재서류 처리하고 가끔은 회의하고 자주 시찰도 돌아야하고 틈틈히 백과사전까지 읽고 자기의 지식으로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