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228)

 세력을 기르다.

"우왝~!"

"이런 또 토하는 거냐?"

균은 배를 처음 타는 곽재우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주에서 비금도까지의 꼬 박 하루가 걸리는 먼 뱃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에 타보는 어린 소년에게는 엄청 난 고통이였다.

물론 곽재우도 처음에 얼마정도는 괜찮았다. 아니 그동안 살던 고향일대에서는 볼 수 없던 색다른 바다풍경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점차 머리가 멍해지더니 머리가 아 프고 속이 미쓱거리게 된 것이다. 덕분에 균이 옆에서 열심히 등을 두들겨 주어야 했다.

벌써 3년전 균도 처음에 비금도에 올때 죽을 뻔했었다. 앉으면 넘실거리는 바다밖 에 안 보여 더욱 속이 울렁거리고 누으면 따가운 햇살이 눈을 괴롭혔다. 그렇게 고 통을 받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나서야 간신히 해방되었다. 그래서 비금도에 도착했 을 때에는 며칠 굶은 사람마냥 흐느적거려 정인기가 보살피느라 고생을 많이 했었 다.

곽재우역시 잊을 만하면 토하고 조금 나두면 어지러워서 바닥을 뒹구는 실정이니 몇 번 당해보아서 이제 적응된 균은 격세지감까지는 아니고 처음 비금도로 들어올 때를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등을 두들겨주었다.

배를 타고 오면서 한참을 토하느라 입을 벌리고 살았던 곽재우는 비금도에 도착한 뒤 이틀후에야 겨우 몸을 추스렸다. 균이 처음에 섬에 와서 3일간 꼼짝도 못했던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곽재우는 입을 벌리고 다녀야했다.

"이 곳이 비금도의 최대의 돈밭인 염전이다. 좀 많지?"

균이 자랑스럽게 소개해준 염전은 무려 8백개. 1개당 1정보정도의 크기였으니 거의 비금도 남부를 뒤덮고 있을 정도로 넒었다. 비금도 전체면적이 약 4400정보인데 그 중에 800정보이면 엄청난 비율이다. 특히나 섬에 비해서 넒게 보이는 염전은 장관 이였다.

"여기는 무기공방인데 사실은 대장간이다. 가끔식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빼고 는 일반 대장간보다 조금 큰 곳에 불과하다."

설명하는 균의 뒤로 계속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대장간 같은 건물이 십 여채가 같이 모여있으니 무척 대단하게 보였다. 특히나 겨울인데도 이 곳은 따뜻하 여 얼마나 많은 불을 피우는지 모를지경이다.

"여기는 본단이라고 하고 비금도의 모든 돈은 다 거쳐나간다."

역시 균의 뒤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주판과 종이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누군 가 계산이 틀렸다고 주판으로 맞는 광경도 보였고 그들중에서 가장 높아보이는 이 가 균을 보고 뛰어오자 균은 곽재우의 손을 잡고 잽싸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뛰어. 잡히면 너까지 밤 샌다."

곽재우는 영문도 모른채 밤을 새야한다는 소리에 열심히 달렸다. 쫓아오던 사람은 조금 뚱뚱했는지라 균과 곽재우의 날렵한 도망을 잡지 못했다. 한참을 달린후에야 균은 곽재우에게 사정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일 도와줄 사람을 구하러 간다고 했단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너와 네 스승님을 만나는 바람에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지. 그래서 너나 나나 잡히 면 그 대신 일해야 할꺼다. 특히나 매년 정초가 되면 일년 예산을 짜느라 저렇게들 난리지."

균과 곽재우는 토목건축부와 농경수리부는 간단히만 보고 정보부는 넘어간 후 경비 대병영으로 이동했다. 병영에는 경계병력을 제외한 병사들이 총검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약 4백명의 병력이 똑같이 총검술을 펼치는 장면에 곽재우는 눈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역시나 어릴때부터 무장으로써의 재질이 있는지 균이 귀를 잡고 겨우 끌고 올만큼 곽재우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도 보여줄테니 그만 좀 가자. 점심먹으러 가야지. 난 아까전에 도망친다고 배고파 죽겠는데 너는 배도 안 고프냐?"

균과 곽재우는 그 날 점심은 병영의 식당에서 해결했다. 식판같은 것을 찍어낼 처 지가 못 되어 밥그릇과 국그릇만 따로이고 반찬은 대(10명전후)별로 큰 그릇에 푸 짐하게 나누어주기에 균과 곽재우는 임꺽정등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 그래봐야 일 반 병사들의 식사랑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마마. 옆의 꼬마는 누구입니까? 혹시 동생분입니까?"

"아니오. 누구에게 맡은 아이인데 한 5년간은 여기서 살게 되오. 그러니 너무 겁주 지는 말고 잘 대해주시오. "

"저기 하성군영감."

왜 양반인 자기에게는 반말을 하고 평민들로 보이는 자들에게는 예사높임말을 하는 지 무려보려던 곽재우는 싸늘한 분위기를 느꼈다. 균 자신은 별 변화가 없는데 주 변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균은 종2품 군의 신분을 가진 종친이다.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을 지칭하는 말은 크 게 대감과 영감인데 대감은 정2품이상의 당상관, 영감은 종2품에서 정3품 당상관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균의 호칭이 영감이 된다.

하지만 균이 살던 전생에서 영감은 할아버지를 뜻하는 말이기에 균은 사석에서는 마마라는 말을 쓰도록 했다. 원래는 왕과 그 가족에게 쓰이는 말이지만 마마라는 뜻은 높은 사람에 대한 존칭의 의미가 강한데다가 제후국인 조선에서 함부로 '각하 '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였다.

참고로 국왕은 상감, 정3품이하의 당하관(정3품~ 종6품)과 참하관(정7품~종9품)은 모두 나으리이며 이는 명의 속국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호칭이고 일본과의 외교문서 상에는 국왕은 전하, 당상관은 각하, 중하위관리는 귀하를 사용했다.

"재우야."

"예. 하성군영감."

"앞으로는 마마라는 호칭을 쓰거나 아예 형님이라고 하거라. 나는 영감이란 호칭을 무척 싫어한단다. "

"예 영..아니 마마."

별 변화가 없던 균이지만 말이 무척이나 싸늘했다. 냉기가 풍겨나오는 말이였다.

그리고 균은 대충 곽재우가 물어볼 말을 예상하기에 그가 물어보기 전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이 섬에서는 양반이라고 다 대접하지 않는다. 다 자신이 가진 능력대로 대 접하고 있다. 그래서 내 가르침을 받는 너에게는 말을 놓는 것이고 나를 도와주는 각 부장들에게는 말을 놓지 않는 것이다. 알겠느냐?"

"....예."

"하지만 앞으로 너는 성장할 것이다. 그래서 나를 도와줄 수 있게 된다면 나 역시 너에게 다른 대우를 해줄 것이다. 그 점 명심하고 또 여기서 너보다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말도록 해라. "

임꺽정등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두 소년중 하나는 애어른이라서 냉기를 날리며 주의를 주고있고 또 하나는 혼났다고 생각하는지 기가 죽어있는 모습에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균이 혼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둘이 다니면서 비교가 되니 확실히 균이 애어른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오전에 각 시설들을 돌아보고 병영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두 소년은 경호병력 30여 명을 대동한채 마을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병사들은 곤봉으로 무장한채 무척이나 긴장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균 역시 얼굴 곳곳에서 긴장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곽 재우는 왜 긴장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마을로 가보면 안다는 균의 말에 조용 히 따랐다.

"앗! 하성군마마님이시다!"

"와! 진짜다."

"마마님~. 마마님~."

잠시후 곽재우는 귀를 막아야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균을 보고는 이야기라도 한 번하려고 난리를 치는 것이였다. 원래라면 주변 사람들이 다 좌우로 비켜서서 고개 를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접근하지 못해서 난리였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균에게 해를 끼칠랴고 접근하는 것 같지도 않는데 왜 왕족인 균에게 다가오려 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후에야 사람들을 뚫고 균과 곽재우가 도착한 곳은 서당같이 생긴 곳이였다. 곽 재우는 이런 고립된 섬에도 서당이 있고 양반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원래 양반 들은 최우선 목표가 조정에 출사하는 것과 다른 양반과의 교류를 학문을 닦고 인맥 을 쌓는것이라서 한성부나 기타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사는 것이 보통이였다.

그래서 이런 섬에는 양반들이 사는 대신 지역의 토호들이 살거나 가끔 귀양온 양반 네가 주민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대신 서당훈장노릇을 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 곳의 서당은 다른 곳보다 무척 규모가 큰 편이라서 곽재우는 훌륭한 훈 장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당의 내부에 들어가자 곽재우는 다시 한 번 입을 벌려야 했다.

"마..마마님. 무슨 서당에 천자문은 없고... 언문책만 즐비하고... 또 저기 계집애 들은 서당에 왜 있는지... 거기다 주판은 또 왜 있는지..."

"누가 서당이라고 하더냐? 여기는 학교라고 해서 아이들을 모아서 간단한 교육을 시키는 곳이다. 그래서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주로 가르친단다. 한문은 안 가르 치니 나중에라도 오해하지 말거라.

"하지만 아랫 것들에게 왜 저런 것을.... 악! "

균은 바로 곽재우에게 꿀밤을 한 번 먹였다. 순간 잘익은 소리가 서당 안에 울려퍼 져서 서당안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균이 막 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 음 보았다.

"쯧쯧쯧. 그러면 너는 양반이 한문을 배우는 것만이 배움의 전부라고 생각했느냐?

내가 이런 골칫거리를 내가 왜 맡았지? 혹시나 남명선생께서 글과 산술을 빼고 다 른 것을 가르쳐 주시더냐?"

"입문한지 고작 2년이 넘어 천자문과 산술을 약간 익혔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더 자세한 것은 내가 나중에 가르쳐줄 것이다. 하지만 아까전의 마을과 이곳 서당을 보면서 느낀점은 없느냐? 전부 말해보거라."

"초가집들이지만은 새로지은 듯 깨끗하고 튼튼해보였고 사람들의 옷차림새도 반듯 하며 세면을 자주하는 듯 깨끗해 보였습니다. 거기에 놀고 있던 아이들은 살이 올 랐고 아이들이 일하지 않고 한 곳에 모여 공부할 정도인 것을 보아 상당히 부유한 마을이라고 생각하옵니다. "

'그래도 생각은 깊은 편이군.'

곽재우의 대답에 만족한 균은 몇 곳의 마을을 더 구경시켜주었다. 그리고는 삼식이 가 지어준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둘이서 성치산성의 망루에 올라서 섬 전체를 내려다 보게 하였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 가운데 섬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 고 있었고 멀리 지평선에는 아직도 해가 지고 있는지 빨간 빛이 남아서 지평선을 물들였다.

"무엇이 보이느냐?"

"마을곳곳에서 연기가 보입니다. 아마도 저녁밥을 짓는 듯합니다."

"네가 나주로 오면서 많은 마을들을 보았을 것이다. 저처럼 거의 모든 집에서 밥을 짓는 연기가 나더냐?"

"아니옵니다. 몇 집을 빼고는 연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사람들역시 못 먹 은 듯이 말라있었고 또한 아이들도 놀 힘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집들도 제대로 보 수 못하여 허물어져가는 집도 많았습니다. "

곽재우는 아까전에 보았던 마을들과 나주로 오면서 보았던 마을들을 비교하면서 말 했다. 거의 천지차이라고 할만큼 차이가 컸다. 그곳 사람들과 이곳 사람들이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곽재우의 생각을 아는 것 마냥 잠시후 균의 질문이 이어졌다.

"네가 네 스승님과 본 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아는 조선이고 오늘 나와 본 것이 사람을 살게하는 도리를 아는 조선이다.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

곽재우는 이미 벼슬길에 나선 아버지 곽월과 스승인 조식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어려서 너무 작게 배운 탓인지 아니면 균의 말을 반박할 수 없기에 그랬는 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균은 곽재우의 대답이 없자 그 해답을 인자하면서도 잔잔 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 질문에 네 스승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라 답할 것이고 나는 사람을 살게하 는 도리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는 아직 정답이 없다. 너의 스승님은 네가 스스로 그 정답을 찾게 하기위해서 너를 보낸 것이다.

너의 스승님도 자신의 생각을 너에게 강요하지 않고 너를 나에게 맡기셨듯이 나도 너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최대 5년이라는 긴 시간이 너 에게 있으니 너라면 충분히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균이 하는 말이 멋진지 곽재우는 눈을 초롱초롱거리며 균을 바라보았다. 마침 균은 곽재우를 등진채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엄청난 망상을 했다.

'요즘 말빨이 많이 늘은 것 같군. 내가 생각해도 좋은 말인걸. 다음에도 써먹어야 지.'

 '와. 역시 스승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여기에 보내신거구나. 나와 같은 나이라는데 저정도라니... 어서 많이 배워서 스승님을 기쁘게 해드려야지.'

그렇게 두 소년이 서로 다른 생각에 빠져서 상상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때 망루로 급히 뛰어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균이 이름은 모르나 대총(분대장급)으로 보이 는 병사였다.

"하성군마마. 급보이옵니다."

"무슨 일인가?"

"조업나갔던 어부들이 고하기를 왜선이 이 곳으로 접근중이라고 합니다."

"뭐라?"

잠시 망상에 빠져있던 균은 즉시 정신을 차리고 인상을 굳혔다. 왜선의 침입. 당장 군사적으로도 큰 위협이고 전라우수영의 출동을 부를 수도 있는 막중한 일이였다.

드디어 균이 바라지 않던 상황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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