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228)

 세력을 기르다.

"충~!"

긴장된 표정의 균이 경비대병영의 본부막사로 들어서자 임꺽정등의 장수들이 일제 히 예를 표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실전상황인데도 막사안의 사람들은 전혀 긴장 하지않고 있었다. 하긴 이미 실전경험을 가진 자들이니 그렇겠지만 긴장감은 커녕 평소와 다르지 않아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균이 자리에 앉고나자 10여명의 장수들도 모두 자기자리에 앉았고 본부초관 서유생 이 균에게 지금까지 확인된 사항을 보고했다.

"섬의 서쪽으로 나갔던 어부들이 말을 종합해보면 왜선은 곧장 이곳을 향해 이동하 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선은 단 한 척이라고 했으며 그다지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 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더욱이 왜선이 추격할 의사도 보이지 않은 상태여서 모든 어선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

"그렇다면?"

"태풍에 표류했거나 자기들끼리 내분이 있어서 피하는 왜구같습니다. 이미 조선해 안쪽은 판옥선의 등장으로 왜구들이 기피하고 있습니다. 이때 고작 한 척의 배라면 결코 노략질을 하러 온 적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왜선의 수도 많고 어선들도 많이 파괴했을 것입니다. "

"음."

지난 을묘왜변이후 등장한 조선의 신형주력전함인 판옥선은 약 4년만에 남해안의 왜구를 거의 소탕했다. 이에 왜구는 대부분 명나라쪽으로 약탈대상을 옮겼으며 가 끔씩 표류하다 떠내려오는 왜구만 존재할 뿐이었다. 작년에 흑산도에 침입했다던 왜구는 피로로 지쳐서 별 저항도 못하고 주민들에게 잡혀 정인기에게 넘겨질 정도 였으니 이번에도 그 정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은 왜구를 전멸시키느냐 나포하느냐가 문제인데 균은 나포하기로 마음을 먹었 다. 왜선은 겨우 1척. 거기다 적대의사를 안 비칠만큼 지쳐있다고 한다. 그런 배에 서 동원할 수 있는 병사라면 고작 백명안팎이다. 그에 반해서 균의 경비대는 경계 병력을 빼고 4백명의 정예부대를 투입할 수 있다. 별 이변이 없다면 무기도 우세한 경비대가 가볍게 나포할 것이다.

그리고 나포된 왜구들은 노예로 부려서 힘든 일을 시키고 빼앗은 배는 보수개조시 켜서 임시전투함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익이 될 듯했다. 거기에 왜선의 노군에 는 조선인이 포함됬을 가능성이 있어서 함부로 격침시키는 것도 곤란했다. 대강 생 각을 정리한 균은 자신의 의견을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번의 왜구도 작년의 흑산도에 침범한 왜구처럼 전투력이 약할 것으로 예상되오.

마침 우리 비금도로 오고 있다고 하니 놈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부리고 노군중에서 조선인이 있다면 구출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럼. 나포를 하시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그냥 다 죽이고 격침시키는 것도 가능은 하나 우리는 아직 화포도 없어서 왜구가 상륙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오. 어차피 그렇게 적의 상륙이 이루어진다면 적 군을 우세한 전력으로 적을 반포위해서 우리의 무기를 구경시켜주고 항복을 받아내 는 것이 좋을 듯하오. "

"하성군마마님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그러면 왜선도 고스란히 우리 손에 들어오고 노예도 생기니 일석 이조일 것입니다."

"하지만 왜구가 예상보다 강하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대다수의 장수들이 찬성을 표했지만 전라도출신의 장수들은 달랐다. 이미 많은 왜 구의 전투력을 보았던지라 균과 황해도출신 장수들이 왜구를 약하게 보는 듯한 분 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이미 16세기 들어서 왜구들은 벌써 3차례나 조선군을 격파 하고 성을 함락시킨 적이 있다.

"일단 현재까지라면 소총으로 무장된 우리의 화력이 압도적이오. 하지만 그대들의 말대로 우습게 볼 수도 없는 일이니 죽폭까지 병사들에게 배분하시오. 그정도라면 1천의 적이라도 능히 격파할 것이오."

죽폭은 말 그대로 대나무수류탄이다. 원래는 화포류가 먼저 만들어져야 했지만 황 이 부족해 제대로 된 화약의 생산이 적어서 도저히 화포에 쓸 정도의 화약이 나오 지 않았다. 이에 대나무통에 초석과 목탄만 넣은 죽폭과 화살에 매달아 쏘는 지폭 이라는 무기를 만들어 대신 사용하게 했다. 오늘날로 치면 죽폭은 수류탄이고 지폭 은 유탄에 가까운 무기들이다.

균이 화력을 총동원하겠다고 하자 전라도장수들의 반대도 사라졌다. 장수들은 이미 몇차례의 훈련으로 화약무기들의 위력을 본 상황이라서 그 정도라면 엄청난 전력이 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화약재고량에 문제가 생길 듯한 점이 걸렸다.

"일단 왜선의 움직임을 수시로 파악하고 병사들과 지휘부를 섬의 서쪽 거점으로 옮 기도록 합시다. 그리고 거기서 왜구의 움직임을 살펴 다음의 대책을 논의하도록 하 고 지금은 병영의 4개초를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경계병력에게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라고 명하시오."

"예. 마마."

이미 어둠이 짙어가는 밤이었다. 경비대는 소금운반을 위해 넓게 만든 길을 따라서 대오를 맞추어 이동했다. 단지 오고가는 연락병들만이 부산할 뿐이고 4백명의 본대 와 그 뒤의 수래는 비교적 조용하게 이동했다. 특히 마을들을 지나치지 않고 조용 하게 이동하느라 군대의 움직임을 눈치챈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잡담을 하는 병사나 겁먹은 병사. 또는 탈영하려는 병사따위는 없었고 모두들 자신 이 지급받은 강력한 무기과 자신과 같이 생활하는 지휘관들 그리고 섬의 주인이자 자신들의 주군인 균을 믿으며 최초의 실전이 될지도 모르는 전투를 향해 나아갔다.

한편 균이 노리고 있는 왜선에서는 장수로 보이는 두 명의 사람이 점차 다가오는 비금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어려보이는 소년장수는 배 곳곳에 쓰러져 자고있 는 자신의 부하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다무네. 저 섬에는 조선군이 없겠지?"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이럴때 판옥선 한 척만이라도 나타면 우리는..."

"이에히사님, 힘을 내십시오."

"망할 놈의 류조지놈들..."

일본은 오닌의 난(1467년)이래 각지의 다이묘들이 사실상 실권을 장악한채 난립하 고 있었다. 무로마치 막부라고도 불리는 아시카가막부는 완전히 권력을 상실한채 교토일대을 유지하기도 힘들었고 이미 일왕은 실권이 없어진지 몇백년이나 되였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부재는 지방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서 당시의 일본 은 몇십개나 되는 작은 나라들의 연합체나 다름없었다.

규슈지방도 마찬가지로 시마즈가, 류조지가, 오토모가 같은 강대한 다이묘들이 존 재하였고 이밖에도 이토가, 키모츠키씨, 아리마씨 등의 작은 다이묘나 다네가시마 가(조총만든 가문.) 같은 종속 다이묘들까지 존재하여 수많은 다이묘들이 항쟁을 벌이는 상황이였다.

이중에서 가장 강대한 가문을 꼽으라면 단연 시마즈가였다. 시마즈 중흥의 조라는 시마즈 다다요시이래 현 가주 시마즈 다카히사는 한창 시마즈가의 기반을 닦았고 종속가문인 다네가시마가문으로부터 조총을 받아드리고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쳐 서 규슈내의 최강세력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다른 다이묘를 압도하지는 못 하여 여러면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였다.

특히 규슈일대의 주민들은 계속되는 전쟁과 흉년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해적떼 로 변했는데 이를 왜구라고 한다. 이들 왜구는 이웃나라인 조선과 명의 해안은 물 론 자국의 해안가, 심지어는 베트남일대까지 약탈하였고 당시가 최전성기였다. 그 리고 그들뒤에는 다이묘들이 있어서 서로 대리전을 치루기도 했다.

이는 시마즈가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유명한 해적가문중 하나였다. 그래서 작년에 15세가 된 현 가주의 4남인 시마즈 이에히사와 시마즈의 중신인 이주인 다다아오의 아들인 이주인 다다무네도 명나라의 해안으로 노략질을 갔다. 성공적으로 약탈했지 만 귀환하는 길에 방심하다가 규슈 북서부의 류조지가의 사주를 받은 듯한 다른 왜구 들에 게 기습을 당해서 간신히 한 척의 배만 도주할 수 있었다.

거기다 원할한 보급과 최단거리 이동을 위해서는 오키나와쪽으로 귀환을 해야 되는 데 류조지의 해적들이 완전히 가로막는 바람에 요즘은 최대한 피하는 조선쪽으로 해서 귀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적은 피했지만 사츠마까지 돌아갈 물과 식 량이 바닥나서 조선수군이 가장 없을 것 같고 섬도 많은 이곳 다도해로 무작정 올 라온 것이였다.

"저희 아버님께 듣기로는 조선은 경상도라는 곳에만 판옥선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은 경상도에서는 제법 거리가 멀고 섬이 많아서 숨기에 편합니다. 거기에 우리 는 겨우 한 척이라서 눈에 띌 가능성도 적습니다."

"하지만 아까전 조선의 어선들 같은 것을 본 부하가 있다."

"아마도 하도 굶어서 헛 것을 본 것일 것입니다."

"그래도 왠지 불안하다. 무사로써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불길 한 예감이 자꾸 든다."

"이에히사님, 아직 우리 배에는 백명이 넘는 병사들이 있고 도키타가님이 주신 다 네가시마 뎃포(조총)도 있습니다. 거기에 용맹하신 이에하사님께서 계신데 무슨 걱 정을 하겠습니까? "

이에히사의 누이는 다네가시마 도키타가에게 시집을 갔다. 처음으로 먼 약탈원정을 떠나는 어린 처남을 걱정한 도키타가는 조총과 훈련된 병사 수십명을 보내서 이에 히사를 지키주게 했다. 그 덕분에 이에이사의 배만 적선들을 물리치고 도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다무네. 이제는 화약도 총알도 많이 없다. 거기에 병사들도 굶주림에 지쳐서 싸 울수 없다. 나 혼자서 싸울 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토키타가님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아직 조선에는 조총이 없다구요. 우리 들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조선인들도 총소리에 놀라서 혼비백산할 것입니다. "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지는..."

"우리가 상대할 자들은 조선군도 아니고 일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식량과 물만 구해서 급해 떠나면 조선수군의 추격도 따돌릴 수 있습니다. 이에히사님. 이제 섬 에 다온 듯합니다. 준비하시지요. 육전대 상륙준비! 조총부대도 상륙하니 준비하라 !"

왜선은 천천히 해안가로 다가왔다. 비금도 서해안은 절벽이 많아서 상륙할 곳이 한 정된다. 그 때문에 왜선은 균이 매복한 곳 근처로 접근해왔다. 그리고는 배가 더 들어올 수 없게되자 하나둘씩배에서 내려 약 백여명의 병사들이 해안가에 정렬했다 . 이윽고 장수같이 갑주를 차려입은 자가 내려서 병사들에게 뭐라뭐라 외치기 시작 했다.

"뭐라는 거요?"

난생 처음 듣는 이상한 소리에 궁금히 여긴 젊었을 때 경상도의 왜인들과 같이 살 았다는 이유로 반강제로 끌려온 촌로에게 임꺽정이 물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균에 게서 나왔다.

"빨리 이 근처에 마을을 찾은 후 조선군대가 오기전에 약탈하고 도망가자. 우리는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다."

"마마님. 왜어를 할 줄 아십니까?"

촌로나 주변의 장수들이 균이 무심결에 흘린 말에 놀라워했다. 종친인 균이 왜어를 안다는 것은 놀랍고 신기한 일이였다. 하지만 균은 일본어를 모른다. 단지 멀리 조 선까지 약탈 온 녀석들이 할 말이라곤 저런 것 밖에 더 있겠느냐는 생각에서 한 말 이다. 주변의 병사들까지 균을 바라보면서 놀라자 균은 머쓱해져서 촌로에게 계속 통역하라고 말했다.

"....할 것이다. 자 나가자 시마즈의 용사들이여!"

'시마즈? 사쓰마번!'

균은 촌로가 말한 시마즈라는 말을 듣고는 막 화가 나려고 했다. 시마즈가의 17대 가주 시마즈 요시히로는 일본의 조선침공군 제 4군 사령관으로 가장 많이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가고 도공도 끌고가 사쓰마도자기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 거기다 시마즈가는 규슈에 위치한 왜구를 지원하는 다이묘중 하나였다.

균은 순간 욱하는 마음에 사격이라는 말을 외칠 뻔 했다. 그랬다면 그의 명을 받은 100명의 궁병이 지폭이 달린 화살을 날리고 그에 맞추어 총병대가 일제히 죽폭을 던저버릴 것이였다. 그리고 도망치던 왜선도 지폭으로 불타고 끝나버린다. 하지만 균은 참았다. 한번 더 생각해보니 좋은 방법이 아니였다.

'시마즈라. 최대한 많이 잡아서 노예생활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죽을 때까지 부 려먹어주마.'

균이 참은 덕분에 왜구들은 대를 지어서 천천히 내륙으로 접근했다. 점차 왜구들은 균등이 매복한 지역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왜구들을 기다리고 매복한지도 한참이 지나 이미 새벽이 가고 아침이 밝아오려는 시간이 되자 왜구들의 초라한 행색이 균 의 시야에 들어왔다.

'완전히 무장한 난장이 거지집단이군.'

균의 감상평대로 며칠째 굶주리고 바다에 시달려 피로한 왜구들의 표정은 동전이라 도 한 푼 던져주고 싶었고 옷도 때가 끼고 곳곳에 기운 흔적이 있는데다가 몇년은 안 씻었는지 피부는 검었다. 거기다 왜인이라는 말에 걸맞게 작은 왜구들을 보니 자신이 조선에서 환생한 것을 다시 한 번 고맙게 여겨지는 균이였다.

거기다 저 앞에 가는 우두머리는 그나마 깔끔하고 몸집도 크지만 아직 어린 균이 보아도 큰 편이 아니였다. 조선으로 치면 한 열 세,네살정도인가? 그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사라도 긴칼을 차고 있는데 역시 조금 부담이 되어보였다.

아무튼 왜 태조 이성계가 무찌른 왜구의 대장 아지발도가 아기장수라고 불렸는지 알만했다. 분명 조선인에 비하면 다 꼬마이니 그런 별명이 붙었을 것이다. 저기 앞 에 가는 소년무사도 다 커봐야 균 옆에 있는 임꺽정의 반이나 되면 다행이라는 생 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균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시간에도 왜구들은 천천히 내륙으로 접근했다. 지금쯤 이면 각 망루에서 보고된 정보로 인해 만약을 대비해 다른 지역에 매복시켜둔 병사 들이 이 곳으로 접근하고 있을 터였다. 다행히도 왜구가 주력부대가 위치한 곳으로 와서 균이 편했지만 다 사로잡으려면 월등한 군사력을 보여주어야 하기에 균등은 조금 더 기다렸다가 공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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