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228)

 세력을 기르다.

"뭐? 시마즈 이에히사?"

"예. 마마..."

보고서에 올라온 왜장이름을 본 균이 벌떡 일어나자 옆에 있던 부장들도 놀랐다.

애늙은이 균의 얼굴표정이 저렇게 변하는 일은 자주 없다. 거기다 저렇게 놀라서 일어난 후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경우는 더욱 없다. 단지 약간 웃음끼가 있는 얼굴 로 일관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지금 균에 얼굴은 여느 또래 아이들만큼이나 풍부한 표정변화가 느껴졌다.

"마마가 어제 밤새시더니 조금 이상한데..."

"나주에서 엄청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휴유증인 모양이지. 나중에 우리 부장들 끼리 돈을 모아서 보약이라도 해드자."

각 부장들의 걱정어린 쑤근거림따위는 한 귀로 흘려버린 균은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씩하고 음흉한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외쳤다. 덕분에 부장들이 균을 제지할 수 없었다.

"왜장들과 같이 식사를 할테니 그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난 알아볼것이 있 어 이만 가보겠소."

"하성군마마! 마마! 아직 결제하실 것이 산더미인데.... 망했다. 오늘도 야근이야."

이렇게 부장들의 절규를 뒤로한 채 균은 즉시 자신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곽재 우와 삼식이의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하고 자신의 서재에 박혀서 한동안 나오지 않 았다. 바로 백과사전과 다른 책에서 일본의 현 정세에 대한 자료조사를 시작한 것 이였다.

한편 창고에 갖혀있던 이에히사와 다다무네가 안내된 곳은 본단에 있는 작은 방으 로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방이였다. 그래서인지 작은 것을 좋아하는 왜인들 답게 무식하게 큰 창고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특히 옆에 있는 산만한 조선무사 와 그의 거대한 도가 아니라면 두 소년의 마음은 더욱 편했을 것이다.

오늘 만날 자는 이곳의 도주라고 들었다. 거기다 조선의 왕족이란다.조선의 왕족으 로 그렇게 강력한 조총부대를 보유하는 자라면 조선내에서도 유력한 자임이 틀림없 었다. 만일 이번 일로 조선이 막부에 항의라도 한다면 시마즈가의 명성에 누가 될 것 같아서 두 소년은 걱정이 컸다. 그 경우 둘에게 남은 길은 할복하는 것 밖에는 없다.

옆에 있던 늙은 통역이 가끔 이상한 발음으로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았지만 정 작 도주는 기다린지 한참이 되어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일본 유력영주의 가 신인 자신들의 처리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되었다. 그 래서 계속 물만 들이켰다.

한참후에야 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 들어온 소년은 일본 에서라면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약간 어린듯하지만 얼굴은 10살 남짓한 앳띤 소년이 였다. 둘은 무사와 통역이 간단한 예만 취하기에 저 소년이 이 곳 도주의 애첩으로 착각했다.

일본에서면 저 정도의 미동이면 영주들의 남색상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는 학문이 깊은 일본유학자들도 조선통신사와 이야기하다가 '아직도 그 맛을 모르 느냐?'라고 말했을 정도로 보편적이였다. 그래서인지 둘은 작은 목소리로 저 미소 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감을 풀었다.

"다다무네. 여기 도주는 역시 권력가인가봐. 저런 미동을 애첩으로 데리고 있으니 말이야. 저정도면 전 규슈를 다 찾아보아도 몇명 안나올거야."

"그렇습니다. 조선인들이 몸도 크고 잘생겼다는 말을 들었지만 저정도라면 상당한 권력자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

"조용히하시오! 저 분은 이곳 비금도주이신 하성군영감이시오. 그런 해괴한 소리를 잘못 입에 담으면 이곳 사람들이 당신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오. "

듣고 있던 통역이 화가 나서 주의를 주었다. 일본에서야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에서 는 천인공노하고도 남을 일이다. 특히 상대는 비금도의 훌륭한 주인이며 주상전하 의 조카인 하성군 이였다.

원래 원판도 좋은 편에다가 쌀뜬물로 세수를 하고 자주 씻어서 피부가 깨끗한 덕분 에 어이없게도 제 자신의 첩으로 오인받은 균은 앞에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런 데 이상하게도 두 왜장이 움찔하는 듯했다. 그리고 옆의 통역이 화가 난듯한 표정 을 짓고 있었다. 왜 분위기가 안좋은지 모르는 균은 분위기를 풀기위해서 먼저 식 사를 권했다.

식사는 무척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실수를 범해서 기가 죽은 두 왜장과 덩달 아 차가운 분위기에 말도 못 꺼내고 식사를 하는 균. 하지만 왜장들은 식사를 하면 서 점차 반찬보다는 그릇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눈을 빛내면서 침까지 삼켰다.

이것이 바로 균의 노림수였다.

'후후후. 역시 아직 왜국에서 그런 제대로 된 조선도자기를 구경이나 했겠느냐? 고 작해야 가보라고 방안 깊숙히 박아두었겠지. '

두 왜장들은 혹시나 그릇에 금이라도 갈까봐 조심스레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이 얼 마나 우습게 보이는지 균도 기침을 하는 척하고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필사적이였다. 혹시나 저 비싼 것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걱정은 식사후에 더했다. 아까 전의 그릇들은 일반적인 도자기였다. 하지만 이번에 들어온 찻잔과 주전자는 균도 잘 안쓸정도로 비싼 고급도자기였다. 균은 여 유있게 차를 한잔 마시는데 그들은 수전증이라도 걸렸는지 두손으로 잡고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균은 이제 그만 놀려먹기로 했다. 그래서 후식으로 다과를 들었는데 나무통에 담긴 것을 가져오게 했다.

"일단은 만나서 반갑다라고 해야 하나? 내가 조선의 왕족이고 이 섬을 다스리는 하 성군이다. 너희들이 시마즈 이에히사와 이주인 다다무네라는 해적두목인가? "

균은 일부러 위압감을 주기위해서 세게 나갔다. 물론 옆의 통역이 잘 번역해야 하 는데 아까전부터 화가 났던지라 상당히 험하게 통역을 했다. 이에히사와 다다무네 는 일단 발뺌을 했다.

"저희의 이름은 맞지만 저희는 해적이 아닙니다. 단지 식량이 떨어서 식량을 구하 기위해 이 섬에 상륙한 것뿐입니다."

"그래? 그럼 왜 그렇게 무장을 많이 하나? 전투병력 200명이 무장을 하고 무엇을 사냥할 예정이었나? 이 곳은 섬이니 들쥐라도 사냥하려고 했나? "

"저희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협에 대비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전혀 조선령을 침 입하고자 하는 뜻은 없습니다. "

"보통의 조선 섬같으면 인구가 200명도 안되고 병사도 없는데 뭐가 위험한가? 육지 의 호랑이가 출장이라도 오는가? 아니면 늑대들이 개헤엄으로 백여리 험한 바다를 건너온다던가? 거기다 조선군을 보았으면 응당 무기를 버리고 자신들의 사정을 설 명할 것이지 먼저 철포를 쏘아?"

"그것이 저희 병사들이 놀라서 그만...."

"요즘 왜인들은 놀라서 전투대열을 정비하고 돌격대형을 취하는 모양이지? 거기다 장수라는 놈은 칼들고 '시마즈의 용사들이여~' 하고 병사들을 격려하고. "

"...."

나날이 말빨이 단련되고 있는 균의 반박에 두 소년은 대답할 수 없었다. 따지고 물 고 늘어진다면 한참이 걸리겠으나 이미 그들은 이미 여러모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들의 목숨과 가문의 명예를 한 손에 쥐고있는 조선의 왕족인 것이다.

두 왜장의 기세를 꺽었다고 생각한 균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대가 시마즈 이에히사. 현 시마즈가의 가주 다키히사의 4남인가? "

"예. 그렇습니다."

"특별한 제의가 있네. 들어 보겠나? "

"예."

"자네들의 이번 일은 일단은 비밀에 붙이지. 하지만 그대신 우리와 교역을하는것이 어떠한가?"

"네? 하지만 조선은 대마도와 교역을..."

이에히사나 다다무네 모두 균의 제안에 놀랐다. 균의 제안은 전적으로 시마즈에 유 리한 의견이였다.

"일단 현 대마도주 종의조는 왜구를 조정해서 온갖 악행을 자행하고있어 믿기힘들 고 또한 조선과 왜국중간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네. 그래서 조선조정에서는 지리적 으로 가까운 규슈일대의 영주와 교역을 추진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규슈에서 가장 강대하고 상업이 발달한 시마즈가가 적격이라고 생각하네."

"!!!"

둘은 좋아서 어쩔줄을 몰랐다. 조선과의 교역을 튼다면 힘들게 왜구노릇할 필요가 없다. 그 차익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으로 돌아가서 보고하면 가주 다키히사와 할아 버지인 다다요시는 이에히사가 잃어버린 함대따위는 금방 잊어버릴 것이였다. 하지 만 그것이 끝이 아니였다.

"먼저 이 일은 절대 비밀이네. 만일 함부로 발설한다면 시마즈가는 절대 조선과의 교역은 불가능하네. 그리고 곧 자네들 배를 보수해 줄테니 몇명만 남기고 돌아가서 의논한 후 다시 만나도록 하세."

"그러면 어떤 것을 교역하고 싶으신지?"

"일단은 다 결정되지 않았지만 먼저 시마즈측에서는 금, 은, 동, 유황,후추등을 수 출하고 우리측에서는 소금, 도자기, 인삼그리고 화약과 철포를 수출했으면 하네."

"네? 화약과 철포까지!"

이에히사는 왜 조총까지 수출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에서 환호하는 다다무네는 몰랐겠지만 조선군은 전투에서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화약의 위력은 몸소 느껴보았으나 조선의 철포는 자기 매형의 다네가시마철포 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균의 다음 말은 충격적이였다.

"자네들이 가진 철포는 일반적으로 약 사십보(50M)거리의 적을 맞출 수 있고 숙련 된자는 약 팔십보(100M)까지 사격이 가능하다고 들었네. 그리고 백육십보(200M)이 상은 맞아도 피해를 입히기 힘들다지?

우리의 철포는 기본이 팔십보일세. 숙련된 자라면 백 오십보정도도 나가고 한 삼백 보내라면 중상을 입힐 수도 있지. 거기다 자네들 것처럼 뒤가 잘 터지지 않아서 무 척이나 안전하지. 그러니까 우리병사들이 밀집대형을 취한 것이네.

뭐 싫으면 말구. 나는 그저 험난한 전국시대에 우리의 협력세력인 시마즈가 좋은 철포로 무장해서 계속 우리랑 교역했으면 하는 생각이여서 한정당 20석씩해서 싸게 줄려고 했는데 관두지. "

'그렇다면 우리 다네가시마의 두 배나 되는 사정거리인데가 가격은 비슷하고 거기 다 폭발사고도 없다면...'

다네가시마뎃뽀는 1543년 포르투갈인들이 전해준 사냥총을 이용해서 만든 총으로 다네가시마가에서 약 2년반 만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세가 지 있었다.

첫째는 긴 장전시간과 짧은 사정거리로 기병이 총의 최대사거리인 약 600미터를 이 동해오는 시간이 총을 재장전하는 시간보다 짧아 이 빈틈을 노리는 적 기마대의 공 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이때문에 다른 지원병이 많이 동원되야했다.

두번째는 창, 칼보다는 비싼가격. 조총의 초기가격이 오늘날로 따지면 약 1200만엔 당시로는 쌀로 따지면 400석이였다. 1만석의 곡식의 수입이 있는 영지를 가진 최약 체 다이묘(영주)라면 1년에 한 정 구입하기도 벅차다. 그나마 지금은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대략 20석의 가격이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요인은. 총의 약실부분이 폭발한다는 것이였다. 앞에 모든 문 제는 따지고 보면 문제가 아니지만 이 문제만큼은 중요했다. 가뜩이나 명중률도 떨 어지는데 집단사격이 불가능해서 조총의 효용성을 떨어드렸다. 더욱히 조총이 폭발 하여 전투진형을 무너트리는 경우도 있어서 많은 배척을 받았다.

균의 제안은 이런 조총의 단점를 보완해 주겠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시마즈 가의 규슈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나아가서는 일본 역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였다. 균은 자신의 말에 시마즈로 돌아가서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웃 고 있는 두 왜장을 보면서 속으로만 웃었다.

'하지만 금속제련기술이 떨어지는 너희로서는 총을 복사하기도 힘들 것이다. 거기 에 화약도 우리것을 쓰지 않으면 그만한 성능이 나지않지. 이제 일본의 철포시장은 조선의 것이 된다. 너희는 그렇게 우리의 구식무기만 열심히 사주면 되는 거야. '

균이 시마즈가를 선택한 이유는 먼저 그만한 강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시마즈가의 16대 가주인 요시히사때는 거의 전 규슈를 통일한다. 그러다가 1587년 토요토미 히 데요시에게 패해서 항복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한세력에 많은 명장들을 보유하고 있다. 눈앞의 이에히사만 해도 원래 상당한 용장이고 그의 큰형 요시히사는 도쿠가 와 이에야스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군주였다.

따라서 균이 가능성이 있는 시마즈가를 지원해서 규슈에 독립정권을 세우게 도와주 고 일본본토의 세력과 완충지대로 만들어 일본 중심세력의 조선본토침공을 막는 것 이 이번 일의 주목적이다. 동시에 일본에 전래되는 서양문물을 차단할수도 있고 안 정적으로 유황을 공급받을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유황때문이라도 배를 구해서 사신이라도 보내볼까 하던 차에 이에히사의 비금도상륙은 균의 번거러움을 덜어주고 또한 시마즈와의 관계를 빠르게 성립시킬 수 있는 행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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