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228)

 청혼을 받다.

"대비마마, 주상전하 드셨사옵니다."

"드시라고 하여라."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이른 아침. 하지만 이미 경복궁은 그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조선의 왕인 명종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먼저 모후인 대비를 찾아 아침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 일과를 시작했다.

"어마마마. 소자, 아침문안 드립니다."

"오~, 오늘따라 주상의 용안이 무척 밝구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소."

"예, 어마마마. 사실은 이번 불사에 부족한 재원을 마련했습니다."

"사실이오? 주상. 이미 내탕금은 바닥났다고 하시지 않았소?"

대비윤씨 즉 문정왕후는 최근 들어 여러가지 불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나 어린 손자 세자 부의 건강을 염려하여 많은 내탕금을 사용하여 전국의 사찰에서 세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어 정작 부족한 국가재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과 불사에만 치중하는 문정왕후는 전혀 상관없이 돈을 낭비했다.

이 때문에 당시 불교가 잠시 중흥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철퇴를 맞아서 쇠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어 가는데 쓸데없이 소모된 돈과 식량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의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적인 승려인 보우역시 귀양을 갔다가 거기서 사사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러나 지금 문정왕후는 명종이 마련했다는 돈에 무척 기쁜 표정을 지었다.

"예, 어마마마. 이번에 하성군이 염좌를 대여하고 받은 돈 중에 무려 5만 냥을 보내왔습니다."

"하성군이... 5만 냥이나?"

"예. 이미 자신이 간소하나마 먹고 살 돈은 충분하다며 나머지 돈은 자기가 가지고 있어도 그다지 이익이 될 것이 없으니 소자가 더욱 큰일에 써달라고 하였습니다. 알아보니 5만 냥이면 하성군이 염좌를 대여하고 받은 돈의 반 이상이 넘는다고 합니다. "

명종이 하성군에게 처음으로 받은 돈이 5만 냥. 이중 2만 냥은 자신이 사용하고 남은 돈 3만 냥과 이번에 받은 2만 냥을 다시 합쳐 5만 냥을 문정왕후에게 넘기기로 하였다. 어차피 문정왕후의 불사나 자신의 이런 행동이나 다 세자를 위한 것이기에 명종은 별로 아깝지는 않았다.

이 5만 냥으로 어머니의 근심걱정을 해소하고 자신의 발언력도 높이며 아들 세자의 건강도 축원하고 또한 하성군을 세자의 친구로 만들어줄 수 있으며 거기다 원래 제 돈도 아니니 명종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역시나 문정왕후의 표정도 계속 밝아졌다.

"오, 이런. 하성군의 왕실에 대한 충성심이 예상보다 높구려."

"예, 그러하옵니다. 소자도 크게 놀랐습니다. 하옵고 어마마마. 이번에 하성군을 세자의 놀이동무로 삼고자 합니다."

"하나, 그 문제는 저번에 이 어미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어마마마. 공부에 지친 세자에게 하성군만한 친구가 없사옵니다. 이미 세자가 어마마마께 계속 청을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 것 때문에 내 골치가 아프다오. "

문정왕후는 세자의 청에 따끔하게 매를 때렸지만 며칠밖에 소용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명종의 말을 들으니 귀가 솔깃했다. 거기에 하성군이 5만 냥의 돈을 바친 것도 기특했다. 하지만 종친인 하성군이 세자의 총망를 받는다면 윤씨가문의 세도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문정왕후의 고민을 눈치 챈 명종의 말이 이어졌다.

"어마마마. 저도 하성군이 교만해지지는 않을지 걱정해 보았습니다. 하오나 하성군의 아비인 덕흥군은 죽고 또한 지인도 없습니다. 외가인 정세호대감은 이미 실권을 잃었고 자식들중 가장 높은 자가 겨우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 있습니다. 거기에 두 집안의 교류는 거의 없어 이번 추석때 하성군이 외가집에 인사도 안 갔다고 하옵니다.

어마마마의 사려 깊으신 생각은 소자도 모르는 바는 아니오나 아비를 잃은 어린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세자의 놀이동무로 삼아 종친이지만 도성 밖을 나갈 수 있는 특권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어마마마의 뜻에 더 부합한다고 사려 되옵니다. "

현재 하성군은 도성밖 출입이 허락된 유일한 종친이다. 원래 종친은 도성 밖으로 나갈 수 없으나 윤원형이 도성근처의 염좌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 바람에 다른 지역의 염좌를 허가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리고 돈도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하성군이 딴 마음을 먹을 걱정은 없지만 나이가 찬다면 필히 금해야하는 특권 이였다.

명종은 그 특권을 박탈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문정왕후도 명종의 말을 듣고보니 차라리 궁에 묶어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성군의 염전과 세력은 천리나 떨어진 전라도 끝에 있다. 그만큼 한성부근처의 세력이 부실하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하성군에게는 도성이 더 위험한 곳이다. 또한 낌새만 이상해도 마음대로 제거할 수 있는 곳이 궁 안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명종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주상의 말이 옳은 듯하오. 어린 아이하나가 궁안에 있다고 해서 그다지 큰 해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종친이 도성 밖을 활보한다는 것 또한 그리 좋은 일이 아니오. 주상은 생각하신 데로 일을 처리하시오."

"예, 어마마마."

비현각은 앞서서 소개한 자선당의 동쪽에 있으며 세자가 공부를 하는 일종의 편전이다. 비현각과 자선당일대를 동궁이라고 하며 궁궐내의 작은 궁궐이라고 할 만큼 다른 곳과는 다른 면이 있다.

세자를 보필하는 세자관속들은 동궁관이라 하는데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가 이에 해당하며 세자시강원은 교육을 담당하고 세자익위사는 호위를 담당한다. 세자시강원의 관료들은 문과에 합격하고 가문이 좋은 참상관들이고 세자익위사 관료들도 무관이지만 유교적 교양이 풍부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세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게 하였다.

세자는 국왕이 되기 전에 혹독한 교육을 받는다. 하루 종일 세자시강원의 관료들과 돌아가면서 유교공부를 하게 되는데 양녕대군처럼 스스로 포기한 경우도 있고 가끔씩은 요절해버리는 사태도 일어난다. 특히나 오늘처럼 의욕에 불타는 스승을 만났다면 세자의 고통은 가중된다.

"저하, 오늘은 간단히 예전에 배우신 천자문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한 번 외워보고 조강(아침에 하는 공부.)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교수관. 이미 천자문은 배운지 오래된 것이오."

"오늘은 소신이 처음으로 세자저하의 학문을 맡게 되어 저하의 학문이 얼마나 깊은 지 판단하기 어렵나이다. 그리하여 저하께 기초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천자문을 외워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사헌부 집의인 송하가 세자시강원의 보덕으로 겸임해왔다. 그리고는 세자에게 아주 간단한 기초 한자교과서인 천자문을 암송해보라고 말했다. 세자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자그만치 7년 전쯤 배운 글을 암기하라니, 아무리 쉬운 천자문이라도 글공부를 싫어하는 세자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원자는 3~4살 때부터 원자강학청이란 곳을 열어서 소학, 천자문, 격몽요결 등을 배우게 했다. 그다음에 7~8세가 되면 세자로 책봉되어 세자시강원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따라서 천자문을 배운 것은 이제 12살 남짓한 세자에게는 아주 옛날의 일이다.

하지만 전의 스승들, 그것도 당상관급의 높은 대신들이 세자에게 허술하게 가르쳐 두었을 리는 없었고 글공부라면 치를 떠는 세자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천자문을 암송하게 시작했다.

"천지현황우주홍황, 일월영측진숙렬장, 한래서왕추수동장 ,윤려성세율려조양 ,운등치우로결위상 ,금생려수옥출곤강 ,검호거궐주칭야광 ,과진리내채중개강 ,해함하담린잠우상 ,룡사화제조관인황, .... "

"역시 훌륭하십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하성군께서 암송해 보시지요."

세자가 천자문을 다 암송하자 송하는 이번에는 옆에 있는 균을 바라보았다. 균은 그냥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그동안의 노고가 다 허사가 될까봐 두려워 눈물을 머금고 천자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균도 어릴 때 아버지 덕흥군 이초에게 배운 글이 있어서 천자문 정도는 잘 알고 있기에 무사히 암송을 마쳤다.

"하성군께서도 잘 아시는 군요. 그럼 이번에는 뜻풀이를 같이 해보시지요."

"....."

"설마 모르십니까?"

"...., 천지현황우주홍황, 하늘과 땅사이는 넓고 커서 끝이 없은즉 세상이 넓다. 일월영측진숙렬장, 별들은 각각 제자리가 있어 하늘에 넙게 널려져 있다. 한래서왕추수동장, 가을에 곡식을 거두고 겨울이 오면 감추어 둔다. 윤려성세율려조양, ...."

옛 속담에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정인기의 벼슬을 올려주거나 자신의 품계를 높여줄거라는 기대에 차있던 균에게 내려진 것은 세자와 최대한 같이 있으라는 날벼락 같은 어명이였다. 뒤에 어찌된 연유인지 알아보니 기가 찼다. 자신이 돈을 준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서 한동안 비금도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문정왕후에게 전달된 거액의 돈은 그녀가 균을 경계하는 마음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명종이 받은 돈이면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불가능하리라는 생각과 불사에 쓰일 돈을 구했다는 생각에 문정왕후는 하성군 입궁금지령을 완전히 풀어주고 당장 명종은 세자의 놀이동무로 삼아버렸다.

그 결과 세자와 시강원의 교수관들은 살판이 났다. 하성군은 세자의 놀이동무로써의 역할뿐 아니라 글공부를 시켜야하는 교수관과 글공부를 싫어하는 세자의 사이에서 이용가치가 높았다. 앞의 예처럼 먼저 세자가 균을 공부시간까지 같이 있게 만들고 교수관들은 공부가 싫다고 투정부리는 세자에게는 쉬운 질문을 만만한 균에게 어려운 질문을 펼쳐서 간접적으로나마 세자의 공부를 돕게 한 것이다.

난데없이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는 왕세자교육을 덩달아 받게 된 균만 죽어날 뿐 공부에 대한 중압감이 살아진 세자와 명종의 과잉보호로 세자에 대한 제제방법이 없던 교수관들은 이러한 간접 교육방식을 크게 환영했다. 비현각을 지키는 익위사들 역시 이런 말을 남겼다.

'하성군의 등장과 희생으로 언제나 온갖 소리가 난무하던 동궁전은 평화를 찾았다.'

원래는 공부하기 싫다는 세자와 공부를 시켜야하는 교수관의 소리로 시끄러울 지경이던 비현각은 낭랑한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오는 학문의 전당으로써의 제 기능을 되찾았다. 비록 간접교육이지만 공부의 효율성도 증가하여 교수관들은 전보다는 만족스러운 보고를 명종에게 올렸고 명종과 중전도 크게 만족했다.

명종은 기뻐하며 아예 하성군을 교수관중에 하나인 우부빈객(종2품)을 겸직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왕족이 왕세자교육을 같이 받는다는 삼사의 탄핵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래도 삼사는 종친이 다른 관직을 겸임하는 것에 큰 우려를 표했지만 당장 세자시강원 교수관들의 평가가 좋고 왕의 의지가 확고한지라 별 탈 없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반발이 없던 것도 아니다. 교수관은 실권은 없지만 차기 국왕인 세자와의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이 무척이나 치열한 자리였다. 이런 자리에 종친이며 어리고 정치세력도 없는 하성군이 오른다는 것은 다른 당상관급의 교수관들에게 비웃음꺼리 이였다. 이런 교수관들은 겸직을 하기에 세자를 많이 가르치지는 않지만 균의 일과는 더욱 고달 폈다.

균이 아무리 환생하여 도래 아이들보다 남다르다고는 하지만 유교적인 학문소양은 도저히 나은 점이 없었다. 비록 종친인 균의 종아리를 때리지는 못하지만은 그런 자들은 일부러 비꼬아서 균을 질책하곤 했다. 아마도 균이 석강(저녁에 하는 교육.)과 야대(야간 보충수업.)까지도 같이 하였다면 차라리 반란을 꿈꾸었을지도 모를 만큼 힘겨운 나날이었다.

그나마 균에게 낙이라면 가끔씩 세자와 둘이서 쉬는 시간에 즐기는 알까기, 5X5 빙고, 오목두기, 등의 놀이였다.

알까기는 유명한 놀이로 균과 세자는 바둑판과 알을 이용해서 했는데 가끔 교수관들이 방구석에서 바둑돌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의심을 샀고 이에 장기알로 해보려다가 무식하게 생긴 통나무장기알에 아이들의 여린 손가락이 부서질 것 같아서 포기하는 바람에 바둑알로 가끔씩만 즐겼다.

5X5 빙고는 가로세로 각 5칸씩 총 25칸을 종이에 그린 후 1에서 25까지 숫자를 기입하고 차례로 숫자를 불러서 종이에서 해당숫자를 지우고 먼저 5줄의 숫자를 지우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였는데 대체로 한 번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어 중독성이 심하여 공부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목두기는 특히 근처에 다른 교수관이 출몰할 가능성이 높을 때 하는 놀이인데 급하면 바둑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많이 애용됐다. 그리고 가장 무난한 장기는 옆에 교수관이 있을 때 하는 놀이로 정해졌다. 이렇게 세자는 균을 만난 후 다양한 놀이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어 좋아했다.

참고로 균은 전국민의 놀이라고 칭하는 화투도 하고 싶었지만 먼저 일본의 놀이를 전래하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데다가 화투패를 만들기도 곤란하고 걸리면 뒷감당이 어려워 일찍 포기하고 말았다. 또 혹시나 술 먹고 화투를 치다가 재미로 건 내기돈 때문에 세자랑 멱살잡고 싸우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고생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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