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228)

 청혼을 받다.

균은 잠에서 깨어나기 무섭게 한성부를 떠나야했다. 당장 비금도의 일도 걱정되었 지만 균의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모두 손을 잡는다면 상당한 세력을 모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무능하고 돈 밖에 모르는 자들이 었다. 결국에는 타도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거기에 이미 남명학파라는 상대적으로 유능하고 강대한 세력과 사실상 연계되어 있 는데 그런 모리배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컸다. 그래서 균은 정신 을 차리기 무섭게 말을 타고 남으로 질주했다. 그래봐야 이제 10살 꼬마에 불과한 균의 남하속도는 추운 날씨와 맞물려 더디기만 했다.

특히나 이제는 관사에 머물수도 없었다. 각 고을 수령은 물론 충청도관찰사, 전라 도관찰사까지도 지나가는 균을 청하는 처지였다. 심지에는 각 도의 병마절도사같은 무관들도 자기관할에서 며칠 쉬어가라는 청을 넣는 지경이였다. 처음에 염전을 경 영하기위해 내려왔을때 전라감사의 얼굴도 못 보던 때와는 이미 하늘과 땅차이에 가까울 정도로 대우가 달랐다.

수십여명이 넘는 관리들이 청을 해온 상황이라서 다 들어주었다가는 올해내로 바금 도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래서 균은 모든 청을 거부하고 민박을 하 거나 주막에 묵으면서 최대한 빠르게 남하했다. 겨우 나주에 도착한 균은 먼저 정 인기를 만나서 그간의 한성부의 정세와 정인기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다시 나주 일대의 상황을 점검한 후에야 비금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비금도는 무사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뚜렷한 이인자가 없어서 균의 부재 시 유기적인 협동에 문제가 생길 것을 예상했지만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서 자신들 이 처리할 수 있는 한계까지의 일들은 알아서 처리했다. 균이 그간 회의를 주재하 면서 기르게한 실력들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였다.

아직까지 조금 미숙한 점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균의 예상보다는 부장들의 실력이 좋은 편이라서 힘겹게 내려온 균을 기쁘게 했다.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산처럼 쌓여있는 결재서류를 보았다면 균은 아마도 한숨만 내쉬었을 것이다. 그래서 균은 이번 일로 인해 부장들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다들 오랫만이구려."

"마마. 한성부에서 세자저하와 같이 공부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다고 해도 말도 없이 몇 달이나 자리를 비운 나 때문에 고생했을 그대들만 하겠소? 그동안 부족한 나로 인해 고생들이 많았소."

"아니옵니다. 마마께서 세자저하께 충언을 아끼지 않아서 마마에 대한 주상전하의 총애가 하늘을 찌른다고 장안의 백성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마마께 옵서 연락도 없이 안 돌아오시길래 각 부장과 병사들 그라고 백성들이 걱정이 컸는 데 이렇게 큰 일을 하시고 돌아오실줄은 몰랐습니다. "

"벌써 백성들 사이에서는 하성군마마님이 영의정 윤원형과 공조판서 이량을 능가 하는 최고의 세도가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에 주상전하께서 겸직이기는 하나 우부빈객의 벼슬을 내리셨으니 앞으로 마마께서 하시는 일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마마."

오랜만에 균이 참가한 정기회의에서 각 부장들은 자신들의 주인인 균이 세자의 동 무이고 종2품의 고위직 관직을 겸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는 앞으로 균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조선 전체가 점차 이 곳 비금도와 같이 풍요롭고 살기 좋은 땅으로 바뀔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을 의 미했다.

이미 각 부장들이 균을 따라서 비금도에서 일한 지도 수년씩이나 되었다. 그동안 균이 보여준 뛰어난 능력과 그에 의한 성과, 그리고 이상을 보면서 여러가지로 놀 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속 깊이 따르고 있었다. 오죽하면 박수익이 나중에 출사 를 하지 않고 균을 따라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이니 그들의 충성도는 충 분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유능하고 충성심이 깊은 부장은 많았지만 명백한 이인자가 없었다.

앞으로 역사대로라면 약 3년 반 동안 균은 비금도에 거의 있지 못한다. 따라서 대 신 균이 한성부에 있는 동안 대신 비금도의 일을 유지라도 시킬만한 인물이 필요했 다. 하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다.

각 부장들을 보면 염전의 황재훈, 병기의 나원호, 재무의 김호진은 이른바 창업공 신이고 경비의 임꺽정등은 합세한 세력의 수장이라 비중이 크며 정보의 박수익은 무반출신의 중요인재였다. 나머지 건축, 농업, 나주지부의 세부장들이야 비중이 낮 다고 해도 상위 5명의 부장들중에서 정확한 우열을 정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뚜 렷히 다른 부장들을 압도하며 이끌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 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균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저 대충 미소 만 짓고 있는 것이다. 그 뒤에 회의는 곧 끝났다. 이는 균이 각 부장들이 처리해둔 일을 대체로 보고만 받고 허락해주는 것만으로 간단히 회의를 끝냈기 때문이었다.

이 날의 회의에서 논의된 굵직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더 이상 비금도내에 염전의 건설이 힘들다는 보고와 함게 이로 인해 도초도에 진출하자는 건의가 들어왔다. 도초도는 비금도의 바로 이웃섬으로 비금도에 비해서 염전을 건설할 장소는 적지만 농업이 성했다. 현재도 반쯤은 균의 세력권하에 들어 오는 상태였으므로 염전의 건설과 다른 시설의 부지확보등의 차원에서 진출할 필요 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도초도의 인구과 조금씩 이주하는 유민을 합쳐서 약 2만의 인구를 확 보하게 되고 염전을 약 500개쯤 더 늘릴 수 있는 해변가를 얻게 된다. 동시에 도초 도에도 견종법을 실시하게 되면 상당한 수확량의 증가로 식량확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제안이기에 균은 별 이견 없이 찬성했다.

두 번째는 시마즈가와의 무역에서 수입되는 유황이나 후추등의 판매문제였다. 비금 도에서 수출하는 것들은 일본에는 귀한 것들이 많았다. 화약과 철포야 일본의 무기 시장 선점을 위해서 싸게 판다고해도 소금도 조선 못지않게 일본에서 비싼 물건이 고 도자기와 인삼은 소량이지만 엄청날 정도로 큰 차익을 안겨주었다.

그나마 무역선을 전적으로 시마즈측에 의존하는지라 조금 싸게 처분했는데도 그쪽 에서도 거래선을 완전히 트기위해서인지 예정보다 많은 물품들을 보내주었다. 덕분 에 부족해서 미칠려고하던 유황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래서 창고를 짓 고 최대한 많이 보관하고 1천 병력의 사격훈련을 강화하는데도 남아서 이제는 역으 로 조선본토로 판매를 생각해야 할 지경이었다.

물론 대량으로 팔기에는 위험하기에 정인기나 경재명을 통한 소량판매을 제안했다.

균은 이것도 별 무리가 없는 지라 허락했다. 그리고 어떤 상품이던 한성부일대로 흘러들게 하지마라는 충고를 해서 혹시나 자신이 없는 새 느슨해질지도 모르는 분 위기를 잡고자 했다.

세 번째는 풍부해진 화약을 바탕으로한 화포의 주조였다. 만일 장거리 화포를 보유 한 적이 등장한다면 비금도의 경비대는 고작 200미터나 겨우 날아가는 지폭을 단 화살로 응전하다가 괴멸하는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장거리 화포의 주조는 필수적 이였다. 하지만 이미 조선에 천, 지, 현, 황포가 존재하기에 대량의 주조는 아닌 최소한의 주조만 하도록 했다.

그대신 56식 소총의 대량생산을 요구했다. 일단 일본 수출용인 강선이 없는 56-수 출형 소총과 경비대의 신병들에게 보급되는 56-국내형 소총의 생산에 중심을 두고 시간나면 경비대로부터 사용시의 단점을 전달받아서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현 무기공방의 수준으로는 그정도가 한계였다.

네 번째는 현재 조선의 판옥선에 준하는 크기의 전투상선의 건조였다. 현재는 시마 즈의 교역선에 의지하는 바가 커서 시마즈의 왜선에 놀라는 이가 많았다. 때문에 시마즈의 사쯔마로 직접 상선을 보내는 한편 왜구같은 해적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포르투갈의 마카오까지 교역을 할 수 있는 대형함의 건조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대형함의 건조는 균 같은 초보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숙련된 조선 기술자만 수십, 동원되는 인원만 수백명은 넘어야한다. 또한 비금도에서 구하기 힘든 자재들도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단시일내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였다. 그래서 일단은 배의 건조보다는 전문가와 필수자재들만 확보하고 나중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낮겠다는 대답으로 보류시켰다.

다른 소소한 의견도 있고 균이 하고 싶은 일들도 있었지만 균은 현재의 과업에만 최선을 다하고 아랫사람들을 교육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한 채 금방 회의 를 마쳤다. 자신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없는데 일을 벌리는 무모한 짓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균이 간단히 회의를 마치고 나서 잠시 기다리자 다른 부장들은 모두 나가고 박수익이 다시 회의장에 들어왔다. 당연히 다른 부장들을 모르게 하는 정보보고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222222222222

"다른 별일이라도 있소?"

"특별한 별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달에 전라우수사 곽흘이 함경도병마절 도사로 임명되어 가는 바람에 전라우수영은 찬바람을 맞고 다시 침체기로 빠졌습니 다. 기타 다른 관헌들은 나주목사 같은 탐관오리들이니 이제 전라도에서 걱정할 만 한 관리들은 없습니다. "

"정말 다행이였소. 다시 곽흘 같은 무관이 부임해온다면 아마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다른 보고는 ?"

"마마. 이미 비금도내부는 마마의 세력이 뿌리를 내린 후입니다. 그 부분은 별 걱 정하실 필요는 없으나 점차 시마즈와의 교역이 지속되면 우리의 위치가 탄로날 수 있어서 그 것이 걱정이옵니다. "

 비금도는 이미 3년에 걸친 균의 통치로 별 문제가 없고 전라도 일대의 관리와 군대 는 무능하고 부패하여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 비금도에 신경쓰기보다는 자 기 관내의 백성들을 고혈을 짜내어 축재를 하는 데 바빴다. 하지만 시마즈의 왜선 은 조선의 배와는 많이 다르기에 교역항로가 지나는 지역의 섬이나 우연히 마주치 는 자들의 신고가 지도관아에 접수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내 숙부님께 말씀드렸소. 소금배를 건조해 보았는데 그 모습이 흡사 왜선과 비슷하여 많은 이들이 놀랐다고, 하지만 보고을 받아서 아시겠지만 전혀 다 른 이들에게 해를 주는 일도 없고 또한 얼마 뒤에는 다른 배로 바꾸어 사용할테니 잠시만 양해해달라 하였소. "

"하지만 마마께서 배를 건조하자는 의견은 보류시키셨지 않습니까? 혹시 판옥선이 라도 구하실 계획이십니까?"

"그것은 다 다른 생각이 있어 얼마 뒤면 해결할 수도 있으니 걱정마시오. 그것보 다 앞으로 내가 한성부에 있을 일들이 많을 것이니 비금도와 한성부간의 연락체계 를 만들었으면 하오."

"예? 연락체계라고 하시면 일단 가장 빠른 봉화는 불가능하고 파발정도가 고작인 데 거기에는 시간도 느리고 마마와 저희들 간의 연락내용도 들어날 위험도 있습니 다. 차라리 다른 방도를 구해보심이 어떻겠는지요? "

당시 조선에는 우편체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 지역으로가는 사람에 부탁 하는 것이 고작이였다. 아니면 그곳까지 몇십리내지는 몇백리길을 걸어서 가야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휴대폰이라도 만들어 연락하고 싶지만 그건 아마도 균이 죽 을 때가 되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가장 빠른 연락수단인 봉화는 조선정부나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정확한 의사전달이 불가능하며 전서구라는 비둘기를 키워보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당장 써먹기도 힘 들고 또한 맹금류의 공격으로 제대로 전달하기도 힘들 듯 했다. 차선책으로 역참제 처럼 말을 탄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서 교대로 전달하는 방법이 있지만은 박수익이 지적한대로 말이 달릴 수 있는 대로로 내려와야 하기에 검문을 당해 탄로날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세자랑 대궐에서 지내면서 우연히 보게 된 명종의 일과중에 균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명종이 저녁이 되기전에 꼭한다는 야간 경비병의 암구호를 정하기와 야간 근무자의 명단을 확인하는 일이였다. 그것을 본 균은 암구 호와 암호등의 보안방법이 생각이 났다. 이중에서 암호를 도입해서 상호간에 연락 을 취하는 것이었다.

균의 암호는 무척이나 간단하게 당시 사용되는 한글의 28자에서 나중에 사라지는 4자를 빼고 A~X까지의 알파벳과 1~24까지의 아라비아숫자를 대응시키는 방식이였다. 그래 서 홀수날은 알파벳을 짝수날은 아라비아숫자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또한 각 줄의 세 번째 , 여섯 번째, 아홉 번째, 다시 열 세 번째, 열 여섯 번째 자리등 에는 해석이 불가능한 내용을 일부러 집어넣어서 다른 이가 암호문의 규칙성을 알 지 못하게 했다.

무척이나 기초적인 수준의 암호문이였지만 균이 한참을 설명하고 시범적으로 암호 문을 작성하여 보여주어도 박수익은 익히지 못했다. 특히나 생전 처음보는 문자와 숫자를 조합해서 써놓은 글이니 일반적인 조선사람들로는 거부감이 들어서 더욱 해 독을 못하는 듯했다. 거기다 한글의 28자중 미래에 안 쓰는 4자를 뺀 것 때문에 당 시 쓰던 한글과는 차이가 많이나니 더욱 해독하기 힘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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