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을 받다.
곽재우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 했다. 그간 배워온 성리학적 가치관과 최근에 배운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 때문이였다. 이미 아버지와 스승으로부터 배운 사상이 진리 라고 믿고 있던 그에게 그 진리에 반하는 새로운 사상과 그 결과물은 혼란을 주고 있었다. 균도 흔들리는 듯한 곽재우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휴~! 우리 조선국의 전신은 고려라는 나라였다. 지금의 개성근처의 벽란도라는 곳이 우리처럼 해상교역을 했다. 또 그 고려의 앞에는 신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도 청해진이라는 곳이 있어 우리 비금도와 비슷했다. 그 신라의 북쪽나라인 발해는 그 먼 동해를 가로질러 왜국과 교역을 했으며 신라에게 흡수된 백제라는 국 가도 멀고먼 안남까지 세력을 떨쳤다.
우리 조선민족이 세운 나라중에서 상업을 무시하는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 조선국뿐 이다. 만일 우리 조선이 상업을 경시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의 몇 배는 벌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이면 조정이 가난한 백성들로 세금을 걷지 않아도 버틸 정도의 거금이다. 하나 조선은 상업을 금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양반은 잘 먹고 잘 사니까!"
"....."
"너도 어리지만 양반이라는 특권계층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조선 천지 에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널려있어도 네 입에만 맛난 음식이 들어오면 되고 헐벗 어 얼어 죽는 이가 있다해도 너는 따뜻한 비단옷을 입으니 상관이 없느냐? 네가 나 주까지 오면서 보았다던 백성들의 모습은 단지 길가의 구경거리일 뿐이냐?"
"...아니옵니다."
균의 단호한 물음에 곽재우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균은 일부러 곽재 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긴장을 풀게 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생각도 결코 절대적으로 옮은 것이 아니다. 단순히 비교한다면 당연히 너의 스승님이 가진 생각은 나의 생 각보다 훌륭하다. 하나 상업으로 번 돈이 농업으로 번 돈보다 못하다는 사실은 확 실히 틀린 것이다. 돈은 단지 돈이란 어떻게 벌었느냐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그 차이가 나는 것이다.
너도 들어보았겠지만 옛말에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는 말이 있다.
양반지주들처럼 고귀한 농업으로 모아서 창고에 썩히는 돈보다는 비천한 상업으로 모아서 백성들에게 쓰는 돈이 더 가치있고 소중한 돈이다. 그래서 나는 상업보다는 농업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틀렸다고 하는 것이다. 너에게 더 이상의 답은 묻지 는 않겠다. 나의 생각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너의 답은 네가 찾도록 해라."
".... 예."
균은 곽재우가 시간을 두고 생각하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더 낳겠다고 마음을 돌린 것이다. 어차피 아직 10살 꼬마였다. 절 대적인 존재이던 아버지와 스승의 그림자를 혼자서 지우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다 . 조금 더 자라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거라고 균은 자신했다. 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벌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느덧 명종 18년 서기 1563년의 새해가 되었다. 새해 첫 회의에서 균이 처음으로 결정한 일은 각 부서의 명칭을 간소화 시키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서 소금생산부는 염전부, 무기생산부는 병기부, 자치경비부는 경비단, 인사관리부는 재정부, 정보감 찰부는 정보부, 토목건축부는 건설부, 농경수리부는 농업부로 간소화시켰다.
또한 그간 균과 각 마을 촌장들이 맡았던 행정업무를 따로 독립시켜 행정부를 만들 어 주민들의 관리를 맡겼다. 이렇게 비금도내에 8부제를 성립시킨 균은 나주거점을 나주지부로 개칭하고 싸츠마에도 싸츠마지부를 작게나마 만들어 조선과 왜국의 정 세분석와 교역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렇게 본단과 예하의 8개 중앙부서 그리고 2개 지부로 이루어지는 행정개편이 단행되었다.
균은 앞으로 몇년간 자신이 사실상 신경을 쓰기 힘든 기간동안을 대비한 준비를 시 작했다. 먼저 각 중앙부서에 연구과제를 한 아름씩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매년 10 만 냥의 거금을 투입하여 연구비로 사용하게 했다. 그 이상 투입할 정도로 돈이 남 는 처지였지만은 인재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 정도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균은 생각 했다.
아예 따라서 관련된 각 부서들은 균이 제공한 기본개념과 자료를 가지고 업무와 관 련된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예를 들면 염전부는 죽염이나 구운 소금의 연구를, 병 기부는 56소총의 개량과 관련된 연구를, 경비단은 전술교리연구를, 건설부는 여러 종류의 기중기 연구를, 농업부는 여러 곡물의 품종개량연구를 떠맡았다.
하지만 재정부와 정보부, 행정부에는 특별한 일을 맞기지 않았는데 이들은 지금 하 는 일도 계속 불어나는 처지라서 도저히 맡길 수 없었다. 특히 재정부는 매년 비금 도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인력충원을 요청하는 처지였고 정보부는 왜국내 정 보망을 구축하라는 날벼락을 맞았으며 행정부는 아직 창설도 되지 않은 부서였다.
"그럼 올해 초를 기준으로 우리 비금도는 본단과 8개 중앙부서 그리고 2개 지부로 재편할 것이니 재정부장은 그에 대한 자금소요와 인력확보를 준비하시오. 또한 정 보부장역시 한성부와 비금도간의 연락체계를 구성할 자금과 인력을 산출해서 재정 부에 통보하시오.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재정부가 바쁘기는 하지만 이제 행정부를 따로 만들면 상당부분의 일이 줄어들 것이니 조금만 고생하시오."
"예, 마마. 그럼 신임부장들은 누구로 낙점하신 인물이 있으신지요?"
"두 신임부장 모두 여기있는 부장들이 협의해서 결정한 후 나에게 보고하시오. 특 별한 문제가 없는 한 그대로 임명할 것이오. "
"하오나 마마. 그래도 중책을 맡은 부장들인데 저희들에게 사실상 위임하심은 옮 지 않은 일입니다."
균이 새로운 부서의 책임자를 부장들의 추천을 받아서 거의 그대로 임명하겠다고 하자 각 부장들도 반대의 의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부장들의 반대에도 균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이제 나는 한성부에서 세자저하의 교수관으로 명을 받은 터라 그 전만큼 비금도 에 신경을 쓸 수 없소. 이런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앞으로 몇 차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이미 수년간 어린 나를 믿고 따라준 그대들이 있기에 나는 두렵지 않소. 그래서 그대들이 추천하는 인물들이라면 그 자리에 충분한 인재들이라 생각 하기에 그대들에게 맡기는 것이오.
자주 연락을 보내고 가끔씩은 내려오며 나중에는 다시 얼굴을 맞대고 회의에 열중 할 날도 있겠지만 한동안 그대들은 그대들끼리 이 거대한 비금도의 존망을 책임져 야 하오. 이제부터는 내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나마 내가 가졌던 권한을 축소하고자 하오. 중대한 사한은 계속 내가 판단하겠지만 다른 일들은 그대들이 회의를 열어서 결정하시오."
"...."
사실상 균이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일이었다. 자칫 균의 영향력에 한계가 오 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균은 많은 공을 들였다. 예상과는 달리 세 자의 동무가 되어 시간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꼼꼼한 성격을 가진 균은 조직곳곳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덕분에 비금도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비금 도에서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거기에 강력한 정보조직도 힘들게 만들어 두었다.
"내가 한성부에 있더라도 정보부장을 통해서 비금도의 소식을 듣고 또한 중대한 사한에 대해서는 명령을 내릴 것이오. 하지만 비금도에서 나와 소통하는 시일이 무 려 7일이나 되오. 해서 부장들 중에서 수석부장을 임명하여 일반회의의 진행을 맡기는 한편 비상사태 시 전권을 위임받아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할 것이오.
앞으로 염전부의 황부장을 수석부장으로 삼으니 내가 공석시 부장들의 중심이 되어 비금도를 잘 이끌도록 하시오. 하지만 이는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니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시기하거나 질투를 해서는 아니 되오. "
"예, 마마.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균은 황재훈을 대리인으로 삼은 것은 우직해서 믿을 만한 것도 있지만 다른 부서는 나중에 한성부로 따라서 올라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반면 염전부는 언제나 비금도등 다도해 일원의 섬들을 떠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참 후 에 다른 부서들과 부장들이 다 이동하더라도 비금도의 돈 밭을 믿고 맡길 만한 인 물이었다.
거기다 황재훈은 세 명의 창업부장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경재명을 떠나서 균을 약 3년반이나 섬기고 자금원인 천일염개발에 공이 큰 인물이라서 누구나 다 두려워하 는 재정부장 김호진마저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균이 다른 부장들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수석부장으로 정한 것이었다. 과연 다른 부장들도 별 이 의는 없는지 혹시나 했던 반발이 없어서 균은 안심했다.
"그러면 신임 행정부장과 싸츠마지부장의 임명은 각 부장들이 한 명씩 추천한 이 를 여기 황수석부장을 중심으로 부장들이 토의하고 검증해서 결정한 후에 내가 다 시 최후결정을 내려 임명할 것이니 다음 회의때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시오. 그 럼 오늘은 올해 예상 예산안에 대해서 회의를 진행하겠소. 재정부장."
"예. 마마. 올해 우리 비금도의 총수입은....."
사실상 오늘 회의는 균이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회의였다. 나중에는 사후 결재만 하 며 점차 비금도의 경영에서 손을 때고 결국에는 균이 거느리는 여러 조직중에서 하 나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균은 몇 차례 회의에 참가는 했지만 황재훈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서 비금도의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두는데 주력했다. 자신이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아 도 될 만큼 완전한 체계를 만들어 마음 놓고 한성부에서 활보하기 위해서이다.
"하성군영감께 군례!"
"충!"
이미 10개초 1천명 병력으로 편성된 경비단은 56식 소총 600정과 이동식 황자총통 10문을 갖춘 강력한 지상군세력이었다. 무역을 위해 비금도에 오는 싸츠마상인들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한 번 구경한 후 격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이번 훈련에는 약 2백명의 경계부대가 빠져서 8백명의 병력만 집결했지만 그 위세는 재작년말에 치룬 첫 훈련에 비해서 엄청난 화력과 병력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역시나 전번과 동일한 군사훈련이 끝난 후 총검을 꽂고 벌이는 총검술, 황자총통 발사시범등의 다양한 훈련의 결과를 균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균은 장수와 군교들을 일일이 격려하고 칭찬했다. 마음 같아서는 병사들까지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추운 겨울날씨에 그런 짓을 하다간 오히려 신망을 떨어뜨리는 결과이기에 역시나 두둑한 포상을 내려 다시 한 번 그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밖에도 단 몇 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비금도와 도초도에 산재한 각 작업장들 을 일일이 방문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자신이 왕이라면 겨울철에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을 충분히 하는 길만이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래서 균이 떠나기 전날에는 자신의 세력권내에 있는 모든 이에게 조금씩이지만 음식과 물건을 나누어주게 하고 부장들을 자신의 거처로 불러 서 간단한 술자리를 열었다.
매년 백만냥이 넘는 돈을 만지는 거대상회의 주인과 핵심간부들의 술상답지 않게 그들 앞에 놓여진 술상은 조촐했고 누구도 제대로 술을 마시는 이가 없었다. 한참 후에야 균은 입을 열었다.
"이제 이 비금도와 2만여 백성들의 존망은 그대들의 몫이오. 언제나 그랬듯이 자 신들이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이라 믿겠소."
"예, 마마."
"그리고 내가 저번에 데리고 온 곽재우라는 양반아이가 있소. 내가 없는 동안 부 장들이 우리가 일구어온 결과를 대신 보여주어 책에서나 나오는 이상과 실제적인 현실을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기를 바라겠소. 또한 저 아이는 나의 특별한 명이 없 는 한 절대 비금도를 떠나서는 아니되고 또한 나주로 저 아이를 만나로 오는 이가 있다면 정중히 대접하여도 결코 만나게 해서도 아니되오. 이점을 각별히 유념해주 시오. "
"예, 마마"
균은 나머지 주의사항을 확실히 부장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는 술자리가 끝 날 무렵이 되자 특별히 준비해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새로운 인장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는 균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너희들은 내 부하이고 나는 너 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는 의미를 가진 행동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균은 부장들과 일부 주민들 그리고 곽재우와 삼식이의 환송을 받으 며 배에 올랐다. 그리고는 점차 멀어져가는 비금도만 유심히 바라보았다. 섬이 점 차 작아지고 어느덧 다른 섬과 안개에 가려서 사라지자 균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는 이 작은 비금도를 떠나서 더 큰 무대인 한성부로 향해야 하는데 균은 시원하면 서도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