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전의 새로운 주인.
"형님 글공부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인이 너야 어렵겠지. 네 동생 균이를 보아라. 꼼짝도 안하고 책만 읽고 있지 않느냐?"
"형님이야 원래 글공부를 잘 하셨고 균이는 자신이 꼭 배워야할 공부가 아니옵니까? 저만 힘들게 공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인아, 균이가 듣겠다. 그리고 너는 언제 철이 들 것이냐? 비록 우리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공부는 나중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내년이면 너도 열여섯 살이 되는데 계속 투정만 부릴꺼냐?"
대신들이 앞 다투어 집으로 찾아와서 가르치는 공부들은 세자시강원의 교육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상당히 수준이 있는 교육이었다. 균은 이미 순회세자랑 같이 공부한 경력도 있는데다가 나중에 필요하기에 지겨움도 잊고 열심히 공부하였고 큰 형 정은 원래가 책을 좋아하는 지라 이번의 교육을 반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글공부에 흥미가 없던 둘째인 인은 죽을 맛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은 세 형제를 교육시켜 종친으로써의 품위를 되살린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하성군에 대한 예비왕세자교육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조선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들러리를 서서 어려운 공부를 하게 된 둘째 인이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형님이나 제가 받아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균이가 존귀한 자리에 올라도 저희는 그대로 평생 글만 보다가 써먹지도 못하고 늙어죽는 종친이 아닙니까?"
"그래서 너도 균이처럼 되고 싶단 말이냐? 너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어?"
"아닙니다. 그냥 저는 편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들러리로 머리가 아픈 공부를 하는 것은 싫다는 말입니다."
"하~! 인아, 너는 언제 철이 들꺼냐? 우리는 지금 잠시 들러리를 서고나면 그 후로는 균이가 잘 보살펴 주겠지만 균이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이런 공부를 매일하면서 일거리에 치어 살아야 한다. 같은 형제로써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생각은 없고 왜 그렇게 투정을 부려? 더욱이 지금 공부가 힘든 것도 아니다. 재작년에 균이가 쓰러질 뻔한 것이 기억이 안 나느냐?"
재작년은 균이 순회세자와 같이 공부했던 해였다. 그때 정과 인은 균과 같은 집에 산다는 말이 무색하게 얼굴 한 번 구경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니 얼굴에 볼살이 빠져서 헬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잠시나마 균이 벼슬을 받은 것을 부러워했던 마음을 버린 적이 있다.
그때의 일을 기억하자 인도 더 이상은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천자문을 뗀 신동인 균이 그 정도라면 자기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죽도록 공부를 해야 할 균이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부가 너무 어려운 것은 사실이기에 인은 속으로만 '나는 공부가 싫어'를 외쳤다.
형제들이 이런 이야기를 바로 방옆에서 하는 바람에 귀가 좋은 편인 균은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렇게 불만이 있다고 해도 균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도 아니고 두 형제는 균의 성장을 바로 옆에서 보았던 지라 균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아서인지 형제애가 강한 편이라서 뒤통수를 때릴 만한 사람들이 아니고 더욱이 그럴만한 능력과 욕심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균에게 그보다는 손에 들린 서찰의 내용이 더 중요했다. 살짝 미소를 띄우는 평소의 얼굴표정과는 달리 지금의 균은 한껏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다. 서찰을 몇 번이나 다시 읽은 균은 서찰을 두 손으로 구기고는 벽에 집어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앞에 있던 서안(옛날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인이 자기 때문에 그런지 알고 깜짝 놀라서 급하게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균이 화가 난 이유는 방금 집어던진 서찰이 바로 윤원형이 보낸 편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성군 영감. 제발 나 좀 구해주시게. 자네도 알겠지만 나는 더 이상 권세는커녕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네. 승하하신 문정왕후께서 남기신 유언을 자네도 들었겠지만 문정왕후께서는 나를 살리고 자네를 세자로 삼기를 주상전하께 권하셨네. 나와 문정왕후께서 자네의 집안에 끼친 죄는 많지만 문정왕후께서는 자신의 유언으로 우리집안이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줄여달라고 부탁하신 것이라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나는 더 이상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성부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네. ...... '
엄청난 장문의 글이지만 대충 내용을 따지면 '내가 다 잘못했다. 하지만 문정왕후가 유언으로 화해를 바라셨으니 귀양만이라도 면하도록 조금만 도와 달라.' 이었다. 균의 마음 같아서는 역사대로 귀양을 보내어 홧병으로 죽게 만들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균의 친아버지 이초의 죽음이 그들을 향한 홧병 때문이었기에 윤원형은 균에게는 아버지를 빼앗아간 원수였다. 하지만 균이 화를 내는 이유는 길게 보면 윤원형을 살리는 것이 균에게는 이익이라는 점이었다.
먼저 윤원형은 명종의 외숙부이다. 연달아 가족을 잃은 명종이 가까운 친척인 윤원형을 벌하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또한 어머니 문정왕후의 유언이 있기에 아무리 신하들의 주청이 많아도 명종은 홀로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때 자신이 윤원형의 처벌을 반대한다면 우군을 만난 명종은 무척 기뻐할 것이다. 그러면 일단 미루어지고 있는 세자책봉을 빨리 치루도록 생각해볼지도 모른다.
또한 윤원형은 마지막 훈구세력의 거두이다. 그를 끝으로 대규모 숙청작업을 통하여 사림이 조선의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문제는 이제 세력을 잡기 시작한 사림파의 거대한 세력이었다. 사림파는 훈구파에 비해 그 학문적 소양이나 인원면에서 압도적이다. 질적으로 양적으로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훈구파는 전통적으로 왕권에 붙어서 정권을 유지해왔다. 이럴 때 윤원형으로 대표되는 훈구파를 내치다가는 조정은 역사대로 사림의 세상이 되고 만다.
따라서 윤원형의 훈구세력을 존속시켜서 계속 사림과 대결을 벌이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할 일이다. 훈구파의 열세를 왕권과 남명학파와의 동조로 어느 정도 만회시켜 사림의 대대적인 진출을 막아낸다면 균이 세력을 모으는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일단 윤원형을 도와서 훈구파의 타격을 최소화 한 후 나중에 다른 우두머리를 내세우고 윤원형을 제거하면 상책이다. 균의 머리는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윤원형을 당장 죽이고 싶은 것이 균의 진심이었다.
며칠 후, 그 날도 여러 대신들이 균과 형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균의 집으로 찾아왔다. 원래라면 궁에서 하는 것이 좋겠지만 해당자가 같은 집에 사는데다가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어수선한 대궐에서 교육을 하기는 곤란하고 또한 주요 대신들이 모두 교수관이 되기를 원하여 매일 다른 집을 돌면서 배우기도 불가능한지라 이렇게 균의 집에서 강의가 진행되었다.
강의는 왕세자가 배우는 내용의 축소판이었다. 처음에는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암송하고 그다음에는 글공부의 진도를 나간 후 나중에는 국정에 대한 가상토의를 통하여 국사를 돌보는 실력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어느덧 오늘의 교육도 거의 끝나고 교수관을 맞은 대신들과 균의 세형제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 오늘은 당 현종과 양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군이던 당의 현종이 양귀비를 황후로 맞아들인 후부터 당나라는 외척의 발호로 국정이 문란해지더니 결국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키는 난으로 인해 당 현종은 장안에서 쫓겨나고 양귀비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이러한 옛 이야기가 조선의 현재 정세와 부합되는 면이 있어서 오늘은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하원군부터 차례대로 그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시지요."
그 때 마침 이제 막 영의정으로 승차한 이준경이 세 형제의 교수를 맡고 있었고 그 외에도 홍문관 부제학 김귀영등 서너 명의 대신들이 교육에 같이 참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준경이 그런 양귀비의 이야기를 토의주제로 꺼내들었다. 현재의 정세와 비슷한 민감한 사항인지라 주변의 교수관들은 동요했지만 세형제는 차례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정과 인의 대답은 무척이나 정석적인 것으로 외척은 무조건 나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균의 대답은 틀렸다.
"예로부터 외척은 너무 가까이해서는 안 되지만 너무 멀리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외척이 나쁘다고 하지만 혼인관계만큼 군주에게 든든한 자들도 찾기 힘들기에 외척들의 권력이 강합니다. 그리고 예시하신 안녹산의 반란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군사적인 이유는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정부군의 내분 때문이지 외척으로 인한 패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로 외척을 간신배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발상입니다."
안녹산의 난이 군사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정부군 진압사령관과 당시 현종이 파견한 내관의 사이가 나빠서 진압사령관이 모함으로 처형되자 정부군이 도망치거나 반란군화 해버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당의 동관 일대의 진압군 사령관이 서역개척의 영웅인 고선지장군이었다. 그렇게 균의 의견이 나오자 윤원형을 싫어하던 김귀영이 균의 말속에서 외척인 윤원형의 처벌을 반대한다는 뜻을 간파하고 즉시 반론을 폈다.
"그게 바로 양귀비가 현종의 눈을 가리고 양국충이 재상으로 폭정을 하였기 때문이 아닙니까? 양국충은 내관과 사이가 좋아서 황제의 눈을 가리고 국정을 전횡한 자입니다. 그렇기에 당이 쇠망한 것입니다."
"양국충은 당시 진압군대장 고선지가 서방원정에서 패하고 돌아왔는데도 숙청하지 않고 높은 지위를 유지시켜준 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녹산군을 막는 사령관으로 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심을 품은 부장의 밀고를 받은 내관이 현종에게 거짓으로 고하여 처형된 것입니다. 최소한 양국충의 인재 배치는 훌륭했지만 그런 어지러운 상황에도 자신의 이익만 탐하는 자들이 당을 망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국충은 피난 중 자결하였지만 내관들은 현종이후에도 황제의 눈을 흐리며 결국 황소의 난등 각종 반란을 방치하여 당의 멸망을 이끈 자들입니다. 양국충이 들어난 작은 병이라면 그런 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은 숨어있는 큰 병입니다. 안 보인다고 큰병을 방치한 것이야말로 당의 쇠망원인입니다."
균의 말은 외척도 문제지만 그러한 위기상황에서 이익을 챙기는 놈들이 더 나쁘다는 말이다. 당장 지금 윤원형을 쳐내고 그 세력을 확장하려는 자들은 당 현종의 내관과 같이 조선을 망치는 무리라고 비판을 가한 것이다. 김귀영등은 그런 역사까지는 공부를 하지 못하여 균의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이준경은 살짝이지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상대감, 하성군이 정녕 그렇게 말했다는 말이오?"
"예. 주상전하. 아무래도 하성군이 전하의 심기를 읽어낸 듯 하옵니다."
"과연 하성군이로다. 그런데 대감이 일러준 것이 아니오? 아니면 남의 나라 역사를 그렇게 자세히 알리는 없지 않소?"
"소신이 어찌 감히 주상전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하성군의 생각은 조정대신들보다도 높은 편입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학문에는 조금 미숙한 면이 있으나 그 나이에 비하면 높고 안목으로 친다면 소신이 백 살이 넘는다하여도 감히 말해볼 엄두가 나지 않사옵니다."
이준경의 비밀보고를 받은 명종은 하성군이 윤원형의 처벌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 아무래도 자기만 윤원형의 처벌을 감하자고 하는 것보다는 하성군까지 처벌을 반대한다면 처벌을 원하는 대신들의 기세도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반윤원형파의 중심인물인 김귀영이 반론을 못 펼쳤다는 말을 들은 명종은 더욱 기분이 좋았다. 비록 언관이라고 하나 너무 상소를 많이 올려서 자신을 귀찮게 하였는데 하성군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안색만 변했다니 더욱 기분이 좋아지는 명종이었다.
"하하하. 하성군이 그리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다니 과인의 마음이 다 흡족하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영상대감."
"예. 전하."
한참을 기분좋게 웃던 명종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이준경에게 말했다. 이준경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귀를 기울였다.
"내가 북경에 다녀온 사신을 통해서 들어보니 명의 가정황제가 몸이 많이 나빠졌다고 하오."
"소신도 명의 가정황제가 국사를 미루고 사치와 향락으로 몸이 많이 상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몇 해를 넘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과인도 그리 생각하오. 그래서 과인이 조만간에 하성군을 양자로 받아서 세자로 책봉할까하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명의 가정황제도 친척인 무종황제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황제입니다. 지금 세자로 책봉하신다면 명도 트집을 잡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하나 명종이 걱정하는 것이 명의 트집이었다. 명은 조선에 대하여 많은 공물을 요구했다. 대신 하사품이 있어서 손실은 거의 없었지만 이렇게 원래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로 책봉요청을 하면 많은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명황제도 하성군과 비슷하게 제위에 오른 자이다. 그래서 명종은 명 황제가 바뀌기 전에 세자책봉을 하여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을 떼어 명에게 주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