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전의 새로운 주인.
"하긴 과인도 명의 가정제가 전 황제의 사촌동생이라고 알고 있소. 그러니 명도 관례에 어긋난다는 핑계로 많은 예물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니 빠른 시일 내에 세자책봉을 치루는 것이 좋을 듯하오. 하지만 올해는 이미 가을이라 늦었으니 내년에 세자책봉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영상."
"올해는 문정왕후께서 승하하신 해이고 통상 세자의 책봉은 봄철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상전하의 말씀대로 하심이 옳은 줄 아뢰옵니다."
"영상의 생각도 과인의 뜻과 같으니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오. 그럼 내년 봄에 좋은 날을 골라서 덕흥군의 삼남인 하성군 이 균을 세자로 책봉하겠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지금 명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영의정 이준경은 중종, 인종, 명종 세 임금을 섬긴 노신이다. 원래는 내년에 영의정의 자리에 오르지만 윤원형이 일찍 쫓겨나는 바람에 영의정이 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치고 명종 10년(1555년) 을묘왜변때 도순찰사로 왜구를 격퇴시켰으며 그 뒤에 우찬성과 병조판서를 역임한 인물로 당시 병조판서로서 판옥선의 개발배치를 담당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지만 정확한 자료는 없다.
이후 을묘왜변의 전승을 바탕으로 승진을 거듭하여 윤원형의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되었으며 선조를 대신해 조선의 국정을 담당했던 거물급 관료였다. 후일 선조를 추대하고 선조초기의 통치를 도운 공로로 충정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으며 보수적이기는 하지만 강직하고 청렴하여 그의 형 이윤경과 함께 이봉이라 칭송받았다. 당시 정통성에 무리가 있던 선조에게는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로 죽기 전에 붕당의 조짐을 알린 인물이기도 했다.
이처럼 원래 역사에도 선조의 후원자이고 명재상이던 이준경은 역사가 많이 어긋난 지금에도 하성군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고 이를 명종에게 알렸다. 이러한 이준경의 말을 듣고 결심을 굳힌 명종은 즉시 중전 심씨를 자신의 결심을 알려주었다. 역시나 중전 심씨는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전하. 옳으신 판단이십니다. 비록 하성군이 전하와 신첩의 친 자식은 아니오나 이미 궐 내외의 인심이 하성군을 향한다고 들었습니다. 내년에 하성군이 세자로 책봉되면 그간의 슬픈 일들로 힘들어하던 이 나라 만백성들도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중전마마의 말씀이 극히 지당하다고 사려 되옵니다. 연이은 두 번의 국상으로 백성들의 걱정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세자를 책봉하여 국본을 든든히 하심은 당연히 만백성들이 기뻐할 일이옵니다."
"중전과 영상의 말을 들으니 과인의 마음도 놓이는구려. 하나 아직 세자책봉까지는 거의 반년의 시간이 있으니 이를 함부로 발설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또한 영상께서는 하성군이 서원부원군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정대신들에게 알리어 여론을 유리하게 바꾸도록 힘을 써주시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명종은 자신과 중전 심씨, 그리고 영의정 이준경과 논의하여 세자책봉의 문제를 결정하고 근처의 내관과 궁녀들에게 함구령을 하달하여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였다. 동시에 하성군의 지지를 바탕으로 윤원형의 사면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덕흥군의 아들로써 윤원형에게 적대감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던 균이 윤원형을 옹호하는 반응을 보이자 이번에는 신하들끼리 반으로 갈라져서 각기 다른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전하. 윤원형의 큰 죄를 작은 벌로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아니 될 일이옵니다. 당장 북방의 오지로 귀양을 보내신다고 하여도 주상전하의 인자하심을 보이는 데는 충분하옵니다. 하니 윤원형의 죄를 엄해 다스려주시옵소서."
"전하의 뜻이 지당하시옵니다. 윤원형을 삭탈관직하고 전 재산을 빼앗아 이를 백성들을 구휼하는 데 쓰는 것만으로도 결코 가벼운 처벌은 아니옵니다. 특히 돌아가신 문정왕후께서 특별히 유언하신 일을 자식 된 도리로 거부하신다는 것은 힘든 일이오니 그 정도의 처벌로 마무리 짓는 것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전하. 윤원형의 악행은 하늘이 알아서 벌써 몇 년째 흉작이 들고 이변이 발생하여 민심이 극도로 흉흉하옵니다. 이때 처벌을 미루거나 약하게 하신다면 나라에 더 큰 화가 될 것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소신이 듣기로 하성군이 저런 자들은 당을 망친 환관들과 같은 숨은 큰 병이라고 평했다고 들었습니다. 윤원형의 악행도 악행이거니와 윤원형을 비판하는 자들 중에는 원래 윤원형과 친했던 박쥐같은 무리들이 많사옵니다. 이들에게 더 큰 벌이 내려져야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에는 신하들이 일방적으로 명종에게 처벌을 요구했었는데 이제는 자신들끼리 알아서 잘 싸워주고 있었다. 하긴 현재의 왕과 미래의 왕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에 반하는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신에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전에는 침묵을 하던 반대파들이 들고 일어나서 신하들 간에는 치열한 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두 무리의 대결을 바탕으로 명종과 이준경은 무척이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갔다. 명종의 의견을 지지하는 훈구파는 수는 적어도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어서 윤원형을 처벌하자는 신진사림세력에 비해서 발언력이 뒤지지 않았다. 또한 현 국왕인 명종, 영의정 이준경, 하성군 이균등 거물급 인사들이 훈구파를 편들고 있었기에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며칠간의 토의 끝에 나온 명종의 전교는 다음과 같았다.
"과인은 서원부원군 윤원형의 26개에 달하는 대 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도다. 과인과 승하하신 문정왕후께서 그의 재주를 믿고 국정을 맡기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라고 하였거늘. 윤원형은 과인과 문정왕후의 뜻을 잃고 그 재주를 축재에만 사용하여 그 죄가 매우 크다. 과인은 신하들의 주청을 받아드려 윤원형을 삭탈관직하고 먼 곳에 위리안치 하고자 하였으나 영의정 이준경, 하성군 이균등의 말을 들으니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과인은 승하하신 문정왕후의 유조를 받들어 특별히 윤원형의 모든 관직과 봉작을 폐하고 그 기록을 지우며 그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여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 앞으로 윤원형은 과인이 내려준 집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윤원형의 처인 정난정의 외명부(관리의 처가 받는 품계.)품계도 폐하지만 양인의 신분은 인정한다. "
이로써 약 18년간 조선을 전횡하던 윤원형은 목숨만 건진 채 자신의 집에 갇혀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외척전횡의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곧 대규모 인사가 단행되어 상당수의 윤원형일파가 관직을 잃고 밀려나고 친 국왕파와 신진 사림의 인재들이 등용되어 그 빈자리를 채워나갔다. 이로써 명종은 정치적인 부담을 주던 외척세력을 완전히 제거한 채 마음껏 국정에 전념할 수 있었다.
명실상부한 명종의 친정시대가 열리자 백성들은 모두 기뻐했다. 기뻐하는 백성들이 윤원형의 집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고래등 같던 열다섯 채의 집을 빼앗기고 조그마한 기와집으로 이사했던 윤원형은 왕명이 아니라고 해도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조정에 그의 세력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는 세도가가 아니라 별 볼일 없는 뒷방 늙은이의 처지였다.
"허허허, 하성군이 우리를 살려주었구나. 그 위급한 지경에서 구해주었어. 그런대도 나는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라는 옛말이 무척이나 실감이 난다. 이렇게 한성부에서 살게 된 것도 주상전하의 보살핌과 하성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이루어진 일인데 집은 너무 작고 음식도 거친 것만 같으니...."
"대감. 힘을 내시옵소서. 일단 우리는 살았습니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그 부귀영화를 되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난정아 나는 이제 무관무직의 일개 늙은이에 불과하니 대감이라고 불릴 수도 없는 처지니라. 그리고 조정에서 나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밀려나서 관직을 잃거나 좌천당했는데 무슨 수로 다시 세력을 되찾겠느냐?"
"대감. 대감이 무관무직이라 하여도 소첩에게는 아직도 대감이시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주상전하는 대감의 조카가 되시며 아직도 조정에는 많은 이들이 대감이 돌아오시기를 손꼽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감께서 힘을 내신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윤원형은 체념을 하고 한숨만 내쉬는 한편 정난정은 반드시 부귀영화를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정난정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명종이 보낸 병사들이 윤원형을 때려 죽이려는 백성들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나다니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래서 정난정은 그 영악한 머리를 굴려서 계책을 마련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 무렵 한성부에서 가장 철저한 경비가 이루어지는 곳이 열 곳이 있다. 먼저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의 세 궁궐과 동, 서, 남, 북의 사대문. 그리고 조선의 군사령부인 오위도총부와 항시 군사가 번을 서야하는 윤원형의 집. 마지막으로 차기 세자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하성군의 인달방집이 그 곳이다.
이미 겨울이 되어 날씨가 상당히 추워졌지만 하성군의 눈에 띄어 한 자리 잡아보고자 하는 이들이 발길은 언제나 인달방으로 향했다. 덕분에 하성군의 집 근처에는 그런 자들과 그런 자들에게 물건을 파는 잡상인이 들끊어 시장을 연상시켰다. 오죽하면 중앙군 병사 일백 명이 하성군의 집을 언제나 지키고 있고 안에는 하인 십여 명이 혹시나 나타날지도 모르는 자들을 막기 위해 교대로 순찰을 돌았다.
워낙 찰거머리가 많은지라 시장에 가려는 하녀들마저도 병사들이 따라가 주는 처지였고 이미 정씨부인과 네 자녀들의 외출이 불가능해진 것은 1년도 더 된 일이었다. 이렇게 사실상 감옥살이를 하게 된 균은 죽을 맛이었다. 설마 병사들을 보고도 저들이 도망가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왠 놈의 양반들이 병사들이 체포하려고 달려오면 바람같이 사라지고 병사들이 지쳐서 돌아가면 다시 모여 장사진을 이루며 간혹 하나둘 잡히는 자들을 보면 한 자락하는 자들과 친분이 있거나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양반들이라서 군졸들이 처벌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체포는 포기하고 접근만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던 균이지만 이제는 감옥살이에 지쳐서 죽을 맛이었다. 전생에 자신이 좋아하던 스타들도 이런 처지를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환생하여 미래의 한국에 태어나더라도 기필코 그런 직업은 피하겠다는 김칫국 마시는 꿈을 꾸는 자가 바로 지금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균이었다. 하지만 그런 망상가인 균에게도 막강한 천적이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이진. 바로 균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었다.
"균이 오라버니. 우리 오목 두고 놀아요."
"큰 형님하고 둘째 형님도 있잖아. 이 오라버니는 생각할 것이 많단다."
"두 분 오라버니는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오라버니덕분에 저도 밖에 놀려도 못 간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오라버니가 놀아주어야 해요."
"계속 보채면 어머니께 말씀드린다."
"호호호, 어머니가 오라버니랑 놀라고 하셨어요."
"......그래. 딱 한 시진(2시간)만이다."
심심하다고 보채는 진이를 균이에게 떠넘긴 어머니 정씨는 나머지 두 아들 정과 인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균의 방이 두 남매의 오목으로 화기애애한 편이라면 이쪽의 분위기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내가 소문을 들으니 이제 내년이면 아마도 균은 대궐로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는 구나. 비단 그런 소문만 아니라도 균이는 주상전하의 양자가 되어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잇는 대업을 맞게 될 것이다. 너희들도 균이의 친형제로써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매사에 행동을 바르게 해서 균이에게 누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예. 어머님."
"너희들이 균이보다 손위의 형제들이니 균이에게 시샘하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주인이 되는 일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해야한다. 돌아가신 너의 아버님께서도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지 않은 것을 행운이라 여기셨다. 그러니 힘든 일을 떠맡게 되는 균이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함이 옳은 것이다."
"네. 어머님."
"그리고...."
어머니 정씨는 앞으로 균의 신분변동으로 인하여 형제간의 우애가 깨어질까 두려워 정과 인을 불러서 조용히 타일러 주었다. 형제를 타일러 주는 어머니의 옆으로 조금 열린 창밖에는 하얀 눈들이 소리없이 내려와 마당에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균이 사는 인달방 집의 겨울은 다음에 다가올 일들을 대비하며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