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전의 새로운 주인.
명종 20년 서기 1565년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침소. 명종은 작년에 어머니 문정왕후를 창덕궁에서 잃고 그 거처를 다시 경복궁으로 옮겼다. 비록 순회세자를 잃은 아픔이 있는 경복궁이지만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오래 비울 수가 없었고 또한 어머니 문정왕후를 잃은 창덕궁을 빨리 떠나고 싶은 명종이 작년 말에 다시 거처를 옮긴 것이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았다. 경복궁은 눈을 뒤집어쓴 채 새로운 정취를 한껏 붙어내고 있었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그 정취를 감상할 수 없었다. 명종이 고뿔에 걸려서 자주 자리에 누웠기 때문이었다. 원래 건강하지 못한 체질의 명종은 연일 계속되는 격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에 내의원에서 올린 약을 먹어도 쉽게 고뿔을 떨치고 일어나지 못했다.
"콜록콜록!"
"전하. 몸이 성치 않으십니다. 그만 정무를 보는 일은 잊으시고 옥체를 생각하시옵소서."
"콜록콜록! 중전. 과인도 쉬고 싶지만 일국의 왕인 과인이 쉬는 만큼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오. 또한 과인뿐 만아니라 조정의 대소신료들도 연일 계속되는 격무로 고초가 많은데 그들을 두고 과인이 어찌 마음을 편히 하고 쉴 수 있었소? 콜록콜록!"
"전하. 하오나 계속 기침소리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하는 바로 이 나라 만백성의 어버이 이십니다. 이미 백성들도 전하의 건강을 걱정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옥체를 생각하시옵소서."
명종은 윤원형일파의 처벌문제로 엄청나게 늘어난 일로 인하여 와병 중이었지만 제대로 쉬지 못했다. 때문에 날이 갈수록 기침소리가 심해져 중전 심씨와 대소 신료들의 걱정이 컸다. 명종도 당장 쉬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국정이 마비될 만큼 많은 일들이 산적하여 있어서 몸을 혹사시키는 처지였다.
덕분에 지금의 명종은 더욱 살이 빠지고 안색이 창백하여 마치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였다. 중전 심씨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걱정이 되어 요즘에는 자신의 처소인 교태전보다 명종의 처소인 강녕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명종의 말동무를 해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콜록콜록! 중전. 너무 걱정 마시오. 당장 올 봄이면 하성군이 내 일을 도와주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 뒤에는 과인과 중전은 여유 있게 세월을 보내면 되는 것이오. 이제 몇 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 일이오. 밖에 눈이 많이 내리는 구려. 콜록! 저 눈을 보니 올해는 풍년이 들 것 같아서 과인의 마음이 흡족하오. 콜록콜록! 올해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백성들이 없어야 할 것인데..."
명종은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가 얼어 죽지 않아서 보리농사가 잘 된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벼농사가 매년 흉작인 이 때에 보리풍년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아니 이번 보릿고개라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명종은 무척이나 기쁠 것이다.
하지만 하얀 눈이 명종에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얀 눈은 순수함을 상징하지만 또한 외로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어느덧 쌓여가는 눈을 보는 명종은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꼈다. 이제 가족이라고는 중전 심씨만이 남았을 뿐이고 하나뿐이던 자식을 잃은 후부터 그에게는 어떠한 즐거움도 없었다. 그저 이 나라의 임금으로써 자신의 책무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명종은 계속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다시 산적한 일 더미 속으로 돌아갔다.
유난히 많은 눈이 내린 겨울이 가고 어느덧 조선의 수도인 한성부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새로운 봄이 시작되기 무섭게 조선에는 전국적으로 지진이 일어나고 밤하늘에 이상한별이 등장하여 민심이 흉흉해졌다. 백성들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명종의 건강악화를 걱정하며 하루라도 빨리 세자책봉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이미 봄이 된데다 가 그런 소문을 접한 명종은 드디어 종6품이 상의 벼슬아치가 모이는 조참에서 세자책봉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한성부와 전국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났소.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없지만 집이 흔들리고 지붕의 기와가 떨어지는 근래에 보기 힘든 지진이라 하니 이는 과인의 덕이 부족하여 하늘이 경고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현재 우리 조선은 계속되는 흉년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있는데 백성들을 이끌어야할 왕실은 작년과 재작년의 흉사로 인해 그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오. 또한 백성들이 믿고 의지해야 할 왕실에 세자가 없어 백성들의 걱정이 크다고 들었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에 과인은 덕흥군의 삼남인 하성군 이균을 세자로 삼아 국본을 튼튼히 하고 왕실의 위엄을 되찾고자하니 경들은 길일을 택하여 세자책봉례를 준비하도록 하시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조참에 참가한 몇 백 명이나 되는 신하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들 크게 놀랐다. 물론 명종이 하성군을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사실은 저잣거리에서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지만 그러한 이야기는 신하들이 주청을 올리면 임금이 허락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명종이 봄철이 되자마자 자신의 입으로 세자책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말은 그만큼 명종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는 말이고 조만간에 대리청정이나 양위를 통하여 새로운 세자에게 권력이 주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물며 그 대상이 하성군이라면 십중팔구는 그렇게 된다는 소리였다.
하성군 이균은 올해 14살의 어린 소년이지만 그 비범함은 이미 장안에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뛰어난 소년이다. 이미 순회세자의 글동무로 왕세자교육을 일부 수행했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명종의 총애를 받아서 문정왕후와 명종의 병시중을 든 경력이 있으며 명종이 보내준 사부들로부터 학문을 닦았다. 그리고 조정대신들과의 토의에서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언변을 보여주면서 웬만한 선비들도 두 손을 들만큼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조참이 끝나기 무섭게 한성부에는 명종이 신하들에게 한 말이 알려지면서 많은 백성들이 새로운 세자가 될 하성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별일이 없는 한 다음의 조선 왕이 되어 자신들을 다스릴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은 곧 인달방 의 하성군의 집까지도 흘러들었다.
"경하 드립니다. 도련님."
"경하 드리옵니다. 도련님."
균이 데리고 온 자들까지 합쳐서 십여 명에 달하는 자들이 일제히 균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정집사와 어머니 정씨도 조용히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두 형 정과 인도 옆에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축하해 주었다. 단지 진이만이 제대로 영문을 몰라서 어머니 정씨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어머님 왜 우세요? 균이 오라버니는 왜 인사를 받나요?' 라는 철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균은 자기 방에 앉아서 앞으로 나가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킨 채 앞으로 궁에서 살면서 해야 할 일들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궁에서 파견된 선전관들과 겸사복(금군중 하나 주로 세자를 경호.)이 하성군이 사는 옛 덕흥군의 집 주변에 늘어서고 오위도총부의 병사들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금군의 경호를 받는 집에서 제 방에 혼자 앉은 균은 조용히 제 방의 물건들을 손수 정리했다. 남사고가 주었던 옛 백과사전은 거의 태워서 없앤 지 오래였지만 자신이 써둔 글도 있던 지라 다락에 있던 종이들까지 모두 꺼내어 일부로 준비한 청동화로에서 조금씩 찢어가며 태웠다. 한참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균은 마치 기계처럼 조금씩 태우면서 멍하게 불타오르는 종이들을 지켜보았다.
어느덧 종이를 모두 태우자 균은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왔다. 작고 볼품없는 집이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을 바라보는 균의 마음은 착잡했다. 태어나서 처음에는 민속촌인줄알고 빨리 크겠다고 발악하던 일부터 어머니에게 장난치려다가 맞아죽을 뻔했던 일. 그리고 아버지 이초의 죽음등 균의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서려있는 곳이었다. 균은 천천히 집안 구석구석을 돌면서 옛 기억들을 되살렸다.
균이 이렇게 감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당상관이상의 고위관리들은 관례에도 없는 세자책봉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하성군을 명종의 양자로 들 인후 세자로 책봉하는데 양자로 들이는 의식을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와 덕흥군부인과 하원군, 하릉군등 균의 가족들에 대한 대우문제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하느라 경복궁의 궐내각사(궁내에서 신하들이 일하는 곳.)는 그 밤중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가끔씩 들리는 고함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맞았다.
다음날 아침에 명종은 밤새 의논을 하느라 누렇게 뜬 신하들과 상참을 열어서 세자책봉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양자로 들이는 의식은 생략하고 바로 사흘 후에 하성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하성군의 친 가족들은 이제 하성군과 가족이 아니므로 기존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시킨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삼일 후 균의 인달방 집에는 왕명을 받들고 파견된 도승지 윤의준이 내관, 궁녀들과 함께 내금위 병사들을 대동하고 명종의 어명을 전달했다.
"과인은 이르노라. 한 나라에 있어 왕실이란 만백성이 믿고 따르는 든든한 울타리이니라. 하나 불행이도 이 나라 왕실에는 거듭되는 흉사로 인하여 종묘사직을 이어갈 세자가 없어 문무백관들과 만백성들이 크게 우려하고 이를 걱정하였느니라. 지난번에 대소 신료들이 말하기를 '덕흥군의 삼남인 하성군 이균은 어리지만 총명하고 덕이 많아서 감히 백성들을 이끌만한 능력과 기량이 있으니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과인은 총명하고 덕이 많은 하성군 이균을 세자로 삼아 문무백관과 만백성의 근심과 걱정을 덜고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튼튼히 하여 열성조의 기대에 부흥하려 하노라. 이제부터 하성군은 덕흥군의 자식이 아닌 과인의 아들이자 이 나라의 세자이다. 세자는 즉시 입궐하여 세자책봉례를 치르고 열성조께 이를 고해하도록 하라."
무릎을 꿇고 앉아서 명종의 어명을 받은 균은 천천히 일어나서 뒤에 있던 어머니 정씨에게 큰 절을 올렸다. 이 절이 끝나고 일어나면 두 사람은 더 이상 어머니와 자식간이 아니었고 어머니 정씨는 웃는 표정을 억지로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절을 올린 균은 궁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사조용의 곤룡포(왕세자복)를 입고는 익선관을 쓰고는 집 밖에 준비된 연(임금이 타는 가마로 세자 것은 조금 차이가 남.)에 올랐다.
주변에 구경을 왔던 백성들은 균이 연에 오르자 모두 머리를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준비되었던 행렬이 앞쪽부터 천천히 출발하고 균이 타고 있던 연도 일어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균은 울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가야하는 길이고 바래왔던 길이었다. 억지로 웃음을 짓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는 균이었지만 애써 지우고 싶어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하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던 균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균이 타고 있던 연이 사라지고 행렬의 끝도 보이지 않게 되자 어머니 정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아끼던 셋째 아들은 더 이상 그녀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이 나라의 세자라는 존귀한 신분을 가진 명종의 아들일 뿐이다. 비록 아들에게는 잘 된 일이라는 것을 그녀의 이성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감정은 아들을 빼앗긴 것만 같아서 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었다.
주변의 가족들 역시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놀이동무을 빼앗긴 진이는 어머니 정씨 못지않게 울고 있고 두 형제도 모두 울상이었다. 아무리 균이 친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해도 앞으로 명종과 중전이 죽을 때가지는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세월이 흘러 둘 다 죽고 나도 균이 친가족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서 난리를 치기에 얼굴을 잊을 만 하면 한 번 볼 수 있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실상 완전한 이별이었던 것이다.
균이 탄 연은 어느덧 경복궁에 도착했다. 정문인 광화문을 통과한 균은 영제교를 지나서 근정문 앞에 서서 입장차례를 기다렸다. 근정전내에는 명종과 중전 심씨 그리고 문무백관들이 채비를 갖춘 채 새로운 세자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사이에 다시 균의 차림은 행사 때 입는 대례복인 칠장복(7개의 무늬나 그림이 들어간 옷)과 칠류관(7개의 줄이 달린 면류관.)을 갖추어 입은 균은 어느새 덤덤한 표정으로 책봉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