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228)

 동궁전의 새로운 주인.

세자책봉례는 세자가 봄과 연관이 있다는 믿음에 따라 주로 봄에 치루어진다. 세자책봉례의 거행장소는 대궐의 정전의 앞이 원칙이지만 원칙이 전부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 예로는 명종의 친아들 순회세자는 어리다는 이유로 사정전에서 세자책봉례를 올렸다. 하지만 균은 올해 14살의 소년으로 이미 충분히 장성하였다고 판단되어 근정전에서 세자책봉례를 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고 사실은 명종의 노림수가 있었다. 아무리 세자가 되어도 친자식이 아닌 세자가 정통성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당장 명종의 서자가 하나만 태어나도 폐세자 논란이 일어나서 쫓겨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경우에는 세자 균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고자 하는 명종의 기대에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렇게 크게 세자책봉례를 열어서 균을 확실한 자신의 후계자로 공인시키려는 것이 명종의 속셈이었다.

또한 이런 세자책봉례는 균도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원래의 선조가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이 바로 정통성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 긴 재위기간 동안 선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일들을 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는 명종이 선조를 지목하지 않고 급사하여 중전과 대신들이 명종의 심중을 헤아려 선조를 세우는 바람에 즉위후의 선조는 이황, 조식, 이이등 유명한 사림의 거두들을 출사시켜 사림세력의 지지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무리수를 두다가 동서분당의 사태를 맞게 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임진왜란의 국난을 맞게 된다.

하지만 역사와는 다르게 명종의 양자로 세자위에 오른 균은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특별히 사림세력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개인적인 군사세력과 자금력을 보유한 균은 원래의 선조와는 달리 신하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강력한 군왕이다. 또한 아직 사림의 적인 훈구파도 유지되고 있으니 역사와는 달리 사림의 세력은 충분히 균이 통제할 만한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 친 가족들과의 이별은 슬펐지만 앞으로의 정치적인 부담을 크게 덜은 균의 표정은 점차 밝아지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종친이라는 신분적인 한계마저도 벗어나 명실상부한 조선의 이인자로 거듭났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근정문이 열리고 균은 차분하게 마음을 먹은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근정전안에는 월대(기단. 건물 바로 아래의 단.)위의 옥좌에 앉아있는 명종과 중전 심씨를 비롯하여 영의정 이준경이하 문무백관들이 동반(문관)과 서반(무관)으로 나누어 동서로 품계석에 맞추어 금관조복(신하들의 최상급 예복.)을 착용한 채 균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균의 형인 하원군과 하릉군도 종친으로써 참가하여 제 동생의 세자책봉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균은 어께를 피고 당당히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명종의 앞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이들을 다루었고 저승사자들도 피해가는 염왕인의 주인이며 지금은 명종의 유일한 후계자로 공인된 이상 움추려들 필요가 없었다. 그랬기에 균의 위엄과 기세가 한껏 뿜어져 나왔다. 아직 소년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균의 기운은 대단한 것이었다.

걸어가는 균의 좌우로 도열한 신하들과 종친들은 균의 엄정한 기운에 속으로 탄성을 터뜨렸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소금장사를 하던 소년이라고 우습게보던 신하들도 세자로써 손색이 없는 균의 모습을 보고는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고 은근히 질투를 하던 종친들은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더욱 고개를 숙였다.

일국의 세자로써 부족함이 없는 균의 모습을 보는 명종과 중전은 기쁨과 슬픔이 같이 교차했다. 자신들의 후계자로써 힘든 일을 맞아주기에는 충분하게 보여 기쁘지만 저 자리에 순회세자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바램이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균은 월대 앞에 도착하고 균을 따르던 행렬이 멈추었다.

"과인은 이르노라. 과인이 인종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도 언 이십년이 지났다. 하나 계속되는 대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는 백성들은 유리걸식(돌아다니면서 빌어먹음)하거나 굶어죽고 남은 자들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이며 이들을 구휼해야할 나라의 재정은 바닥나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하지 못하니 이 모두가 다 과인의 덕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다.

이렇게 힘든 백성들을 이끌어 주어야할 왕실에서도 재작년에 순회세자가 요절하더니 작년에는 문정대비께서도 승하하시어 문무백관들과 만백성들이 왕실의 흉사를 보고 우려와 걱정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종묘사직을 이끌고 나갈 국본(세자)이 정해지지 않아서 그 근심을 더하고 있으니 이 역시 과인의 덕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다.

이에 과인은 가정 44년, 을축년 봄에 길일을 택하여 덕이 많고 총명한 하성군 이균을 세자로 삼아서 문무백관과 만백성들의 근심을 덜고 종묘사직을 튼튼히 하고자 하노라. 이제 하성군 이균은 과인의 자식으로 특별히 '연'의 이름을 내려 앞으로 '이연'이라 할 것이며 이연을 왕세자로 삼으니 문무백관들과 만백성들은 과인의 뜻을 따라서 세자를 보필하는 데 힘을 쓰는 것이 마땅할지어다."

도승지 윤의준이 세자책봉교서를 낭랑히 읽어 나가는 소리가 조용한 근정전 전체로 퍼져나갔다. 교서를 읽은 것을 마친 도승지는 명종이 주는 죽책문, 고명문, 세자인을 받아서 균에게 넘겨주었다. 균은 자신의 새아버지이자 국왕인 명종에게 큰 절을 올리고 세자의 지위를 상징하는 세 물건을 명종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죽책문은 세지의 임명서로 대나무로 만든 책에다가 임명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교명문은 세자의 주의사항을 담은 훈계문이며 세자인은 세자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이 세 가지의 물건을 국왕에게서 내려받고서야 비로소 조선의 진정한 세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의식이 끝나자 근정전의 뜰에 늘어서 있던 문무백관들은 일제히 천세를 외쳤다. 세자가 된 균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지만 후계자를 얻은 명종을 축하하는 의미의 천세소리였다.

하지만 이로써 세자책봉례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세자책봉의 사실을 종묘에 고해 역대 임금들에게 알리고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같은 자신만의 신하들과 만나는 등 상당히 바쁜 일정이 세자 균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명종과 중전을 만나서 말을 듣고 자신의 처소가 된 자선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된 후이었다. 온 몸이 파김치가 된 균은 즉시 잠자리에 들었고 곧 곯아떨어졌다.

"균이 오빠. 나 말 타기. 응~!"

"헉! 진이야 너 여기까지 어떻게?"

"나 말 타기 시켜줘오."

"여기는 대궐인데 어떻게 들어온 거냐?"

"그건.... 저하 기침하셨습니까?"

꿈속에서 말 타기 놀이하자고 균을 조르던 진이의 입에서 왠 아줌마의 목소리가 나오자 균은 놀라서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녀가 사십은 된 듯한 목소리로 말하니 엽기적이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 균이었다. 그리고 그 엽기적인 말은 계속 들려왔다.

"세자저하 기침하셨습니까?"

".....흠흠!"

"곧 세숫물을 대령하겠습니다. 저하."

"그리하라."

"예. 저하."

이윽고 궁녀들이 준비된 따뜻한 세숫물을 들고 왔다. 왕실에서는 몸을 움직이는 거의 경우가 없기에 균도 궁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아침세면을 마쳤다. 세면을 마친 균은 역시 다른 궁녀들의 시중을 받아서 곤룡포와 익선관, 옥대 등 왕세자로써의 복식을 잘 차려입고는 왕실의 어른들에게 아침문안을 들이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왕실에는 균이 문안인사를 드릴 사람이 세 명이다. 먼저 인종의 비인 대비 박씨(후일 인성왕후), 그리고 명종과 중전 심씨이다. 균은 먼저 가장 어른인 대비 박씨를 먼저 찾아서 문안을 들렸다. 그 사이 명종과 중전이 만나고 다시 균이 두 사람에게 안부를 물으면 명종이 직접 대비 박씨를 만나거나 아니면 내시를 보내어 안부를 묻는 복잡한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문정왕후 윤씨가 죽고 나서 왕실의 웃어른이 된 대비 박씨지만 그다지 힘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그녀를 세자빈으로 만들었던 세력은 20년 전의 을사사화때 쑥대밭이 되었고 대왕대비인 문정왕후의 위세 앞에 남편을 잃고 과부로 살아온 지 언 20년 이제는 쉰 살이 넘은 할머니가 다 된 그녀였다.

"대비마마. 세자저하 드셨사옵니다."

"드시라고 해라."

"대비마마. 밤새 평안하셨습니까?"

균과 인성왕후가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전에는 균이 왕실일가가 아니었고 세자책봉때도 명종이 양자를 맞아드리는 형식이라서 참석할 수 없었다. 인종과 명종 두 형제는 사이가 무척 좋았지만 인순왕후와 중전 심씨는 주변 정황을 보면 그다지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덕분에 힘이 없는 대비 박씨는 새로운 세자 균을 오늘 처음 보는 것이다.

"이 할미가 오늘 세자를 처음 보나 그 기상이 남다른 것이 주상께 큰 홍복을 얻으신 듯 하오."

"망극하옵니다."

둘은 엄밀히는 조카와 숙모관계지만 법도 상으로는 할머니와 손자지간이다. 이는 명종이 인종의 뒤를 계승했기 때문인데 인종이 죽자 명종이 3년상을 치루어 자신이 인종의 후계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거기다 나이도 할머니와 손자관계가 어울리기에 대비 박씨는 자신을 할미라고 칭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지만 대비 박씨의 이야기는 그리 길게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는 명종과 중전을 기다리게 하기 때문이다. 대비전을 나온 균은 빠른 걸음으로 강녕전으로 향했다. 자신의 새부모에게 처음 드리는 인사를 지각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균은 별로 늦지 않았고 명종과 중전의 표정도 좋은 편이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밤새 평안하셨사옵니까?"

"그래 우리 세자도 잘 잤느냐?"

"예. 아바마마."

"그래 잘 잤다니 다행이구나. 세자는 잠시 기다렸다가 과인과 함께 경연에 들자구나."

"예. 아바마마."

이제 막 해가 뜨고 경연관들이 도착해서 명종의 조강이 시작되었다. 세자 때는 조강, 주강, 석강 등의 글공부로 하루를 보내지만 국왕이 되면 그보다는 산적한 정무를 돌보아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글공부를 하는 경우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국왕이 공부를 할 시간은 없었다. 균이 참가한 명종의 조강도 글공부는 짧은 시간에 끝나고 연이어 아침의 조회가 있을 때까지 국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토의했다.

경연이 끝난 후 자선당으로 돌아가서 아침수라상을 받은 균은 한참을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상궁과 나인들이 기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차 요식화된 의식이지만 원래 기미는 음식의 독의 유무를 검사하는 것이다. 그것도 상궁 하나가 아니라. 나인들은 물론 아기나인들까지도 맛을 본다. 그런 행위가 끝나서야 균은 겨우 밥 한 숟가락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서인지 입맛이 돌지않아서 인달방의 사가에서 먹던 밥보다도 맛이 없었다.

균은 식사를 마치자 또 편전인 사정전으로 향했다. 사정전에서 조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조회는 아침에 하는 국왕과 신하들 간의 회의인데 정확히는 신하들의 국왕을 배알하는 의식이다. 조회는 크게 조참과 상참이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했다. 이러한 조회가 끝나면 다음에는 조계라고 하여 업무보고가 이루어진다. 그 다음에는 윤대관이라는 관리를 만나서 또 보고를 듣는다. 이렇게 명종과 균의 오늘 오전일과가 끝이 나고 점심은 두 사람이 같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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