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의 즉위년에 일어난 일들 균의 즉위년인 서기 1565년 9월의 한성부는 무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점차 가을철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직 한성부까지는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이미 북쪽지방에서는 단풍이 시작되어 내려오는 추세라서 조만간에 북한산도 아름답게 물들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북한산 아래의 조선의 왕궁인 경복궁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명종이 죽은 지 겨우 석 달이 지나서 그 슬픔이 다 가시지 않은 점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왕인 균과 대비인 심씨 사이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균은 왕위에 오르면서 지지세력이 없는 왕대비 박씨와 손을 잡았다. 정확히는 균이 가끔씩 외로운 박씨의 말동무를 해주고 박씨의 친가 쪽에 약간 배려를 하는 대신에 박씨는 왕대비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대비 심씨의 간섭을 막아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균은 대비 심씨에게도 나쁘게 대하지 않고 잘 챙겨주었으며 친정동생인 심의겸의 벼슬을 올려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대비 심씨는 균을 미워했다.
요즘 들어서는 균이 아침문안을 오는 것까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막는 바람에 벌써 며칠째 균은 대비 심씨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석고대죄(멍석을 깔고 용서를 비는 것.)라도 청해야 할 판국이라서 균의 심기도 안 좋았다. 그래도 균은 이 것이 기회라는 생각으로 궁의 요소요소에 정내관과 양상궁을 따르는 사람들을 포진시키기 시작했다. 대비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꼭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 결과 대비 심씨의 대비전을 제외한 모든 전각은 차례로 정내관과 양상궁이 장악하였다.
물론 궁내의 세력들도 상당했지만 국왕 자신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처리한데다가 유일한 대항세력인 대비 심씨가 대비전에서 나오지도 않고 간섭도 하지 않았기에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경복궁은 균의 통제 하에 들어왔다. 이렇게 경복궁을 거의 장악한 균은 대전내관과 제조상궁을 통하여 궁내의 중요한 사안을 꼼꼼히 따졌다. 아직 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백과사전에는 안 나와 있기에 잘 모르는 균으로써는 이렇게 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전하. 소인 정내관이옵니다."
"어서들라."
균에 의해서 상온으로 임명되어 내시부를 관장하게 된 대전내관 정성우가 들어오자 균은 자신이 보고 있던 자료들을 내려놓았다. 대전내관 정성우와 제조상궁 양상궁은 매일 번갈아 가면서 균에게 궁내의 소식을 전했다. 오늘은 정성우의 차례였는데 마침 이틀 전에 균이 조사하라고 한 일이 있기에 정성우가 보고할 것이 많았다. 한참을 보고를 받던 균은 정성우의 보고가 끝날 쯤에 자신이 조사하라고 한 일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래. 궁내에 별일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구나. 그런데 과인이 말한 것은 알아 보았느냐?"
"예. 전하. 말씀드리기는 송구하오나....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바와 같았사옵니다."
"그래.... 알겠다. 그대는 계속 그 동태를 살펴서 과인에게 보고하라."
"예. 전하."
대전내관이 물러간 후 균은 두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무척 난감한 일인 듯이 균은 자기 앞의 서안을 손가락으로 몇 차례 두들기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방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균이 향한 곳은 경복궁 후원에 있는 취로정이었다. 경복궁에는 크게 두 곳의 연못이 있는데 하나는 경회루 주변의 연못이고 또 하나는 취로정 주변의 연못이다. 균은 특히 취로정에서 연못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는 경회루 근처에는 다른 이들의 눈이 너무 많아서였다.
참고로 취로정은 세조때 만들어진 것으로 그 후에 소실되었다가 나중에 고종이 향원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은 곳이다. 지금의 취로정은 다른 전각들보다 작지만 아담한 느낌이 들었기에 균이 많이 애용을 했으며 머리가 아플 때는 거기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머리를 식히고는 했다.
한참을 머리를 식힌 균이 다시 강녕전에 돌아오자 반가운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 나주목사인 정인기가 드디어 한성부로 올라온 것이다. 균은 즉위와 거의 동시에 정인기를 인사 발령하여 나주목사로 임명했다가 약 두 달 만에 다시 해임하고 한성부로 불러들였다.
"전하. 신 전 나주목사 정인기가 문안드리옵니다."
"그간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고생이 많으셨소. 숙부."
"망극하옵니다. 전하."
오랜만에 보는 외숙부 정인기의 모습에 균은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띄우고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이제는 숙부와 조카가 아니고 임금과 신하의 관계인지라 정인기가 절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아끼던 조카가 임금이 된 모습을 본 정인기는 기쁜 마음에 균에게 넓죽 절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과인이 숙부에게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이오. 이미 숙부는 지도군수로 5년간 재직하면서 좋은 실적을 올린 탓에 다른 이들로부터 그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조만간에 내직(중앙의 관직)의 중요한 자리에 오를 것이오 하지만 선대왕마마때의 윤원형이나 이량처럼 과인의 외숙임을 믿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하오. 이는 이미 과인과 숙부가 예전에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니 숙부도 명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약 3년 만에 보는 외숙부 정인기였지만 균은 먼저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는 경고부터 했다. 균이 아는 바로는 정인기는 성품이 바르고 성실한 인물이지만 재물과 권력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그래서 균은 혹시나 제 손으로 정인기를 치게 될 일이 있을까 봐서 이렇게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말하면서도 경고를 한 것이다.
정인기 역시 균의 경고를 듣고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슬렀다. 이미 아기 때부터 계속 보아왔던 조카였다. 밝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지만 최소한 헛소리를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믿기 어려운 소리들은 모두 현실이 됐다. 만일 자기가 뇌물이라도 받는 다면 앞장서서 처벌을 가하고도 남을 만한 아이였다.
"지금까지 숙부가 해왔던 대로만 하면 되는 일이오. 그러면 숙부에게도 좋고 과인도 좋은 일이니 다시 한 번 명심하시오."
"예. 전하. 신 정인기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하하하. 너무 그렇게 할 것까지는 없소. 숙모와 동생은 만나보고 입궐했소?"
"아니옵니다. 전하. 어찌 신하된 자로써 주상전하께서 기다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식솔들은 나중에 보아도 되는 일이옵니다."
"숙부는 후환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구려. 과인은 한성부에 있었지만 숙모가 무서워서 귀여운 동생을 구경해보지도 못했는데... 일단 숙부는 다른 곳에 들르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서 숙모와 동생을 잘 다독거리도록 하시오. 이것은 어명이니 누가 방해를 하거든. 바로 과인에게 고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지금은 때가 아니나 나중에 과인이 한 번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때 회포를 풀도록 합시다. 숙부."
"망극하옵니다. 전하."
균은 일단 다음을 기약하며 정인기를 돌려보냈다. 무려 5년동안 식솔들을 보지 못한 정인기를 반갑다고 마냥 잡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절을 하고 물러나는 정인기를 보면서 균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막내외숙부가 없었다면 균은 비금도라는 세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지금쯤 왕위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균에게 있어서는 은인이라는 표현이 알맞은 인물이다.
방금 나간 정인기외에도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관리들과 다시 한성부로 올라오는 관리들을 만나서 격려를 해주고 각 지방의 사정을 파악하는 오후 일과가 거의 마무리 되자 균은 내금위장의 방문을 받았다. 내금위장은 내금위의 수장으로 종 2품의 고위무관이다. 정원은 총 3명이지만 현재는 단 한 명만이 내금위장으로써 내금위와 겸사복등 금군의 지휘까지 총괄하고 있다.
"신 내금위장 곽흘. 주상전하께 감히 암구호를 청하옵니다."
"벌써 오늘의 암구호를 정하는 시간이라니 오늘은 참 시간이 빠르구려."
그랬다. 현 내금위장은 한 때 균의 골치를 썩이던 전 전라우수사 곽흘이다. 잠시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했던 그는 원래는 제주목사를 거쳐서 다시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나두었다가는 비금도의 정체가 탄로나는 것은 시간문제인지라 균은 대리청정할때부터 전라도로 부임 못하게 견제를 했다. 그러나 당시의 곽흘은 꽤 이름난 무장인지라 아무 곳이나 부임시킬 수는 없어서 명종의 허락을 받아서 내금위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균에게 득이 됐다. 당시에는 무장중에 그다지 유명한 사람이 없었다. 평화기라는 특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군사지휘권을 문관들이 쥐는 바람에 무장들이 활약할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을묘왜변을 토벌한 사람은 현 영의정 이준경이고 그는 문신이다. 그래서 당시 이름 있던 장수라면 임꺽정을 토벌한 남치곤정도가 고작인데 이 사람은 무력과 지력이 뛰어나지만 윤원형과 이량에게 아부를 잘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균의 호위를 담당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곽흘의 평판은 무척 좋았다. 부하들을 제 몸처럼 아끼고 수차례 전공을 세웠다. 왜구에 대비하여 제주읍성을 크게 보수한 이도 곽흘이다. 유명한 장군은 아니지만 강직하기로 소문난 장수였기에 내금위장으로써는 적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무관무직의 임꺽정을 왕궁으로 불러 올려서 호위를 맡길 수 없던 균에게는 훌륭한 대안이었다. 그래서 균도 곽흘을 믿고는 다른 내금위장을 공석으로 두고 전적으로 그에게 호위를 맡기고 있었다.
"그러면 오늘 암구호는 울산, 바위 그리고 셋이오. 대궐의 야간 근무자명단은 가지고 오셨소?"
"예. 전하. 여기 있사옵니다. 그리고 암구호는 지금 즉시 내금위에 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대궐의 암호체계는 2중 암호였다고 한다. 먼저 숫자암호를 사용하여 피아를 식별하고 그다음에 암구호를 사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군부대에서는 숫자암호만 썼는데 이는 적군(왜구, 여진, 명등)과 언어가 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금위의 적은 반란군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중 암호체계로써 반란군을 식별했다.
"내금위가 새로 많은 인원을 받아들여서 내금위장이 혼자서 바쁘겠구려. 정말 수고가 많소."
"아니옵니다. 전하. 소장에게는 당연히 해야할 임무입니다. 어찌 수고라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예전에 내금위라면 평시에 이백 명을 넘지 못하거늘, 지금은 거의 천명에 달하오. 또한 일곱 개 부대가 하나의 부대로 합쳐졌으니 지휘엔 고충이 많을 것이오. 과인이 내수사(왕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는 기관)에 명하여 내탕금을 내릴 것이니 내금위 군사들에게 잔치를 한 번 벌여주고 나머지는 내금위장이 알아서 쓰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강직하기로 소문난 곽흘이지만 국왕이 내탕금을 내려주겠다는 말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내금위야 조선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군대이고 대부분 관직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내금위에 신경을 써주는 왕은 드물었다. 고작해야 연산군과 중종정도가 내금위에 신경을 썼을 뿐이고 나머지 왕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앞서 말한 우림위와 별시위가 사실상 금군에서 중앙군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러한 현실에서 내금위장이 되어 내심 금군의 부실을 우려하고 있던 곽흘에게 새로운 국왕의 금군에 대한 관심은 무척 반가운 것이었다. 여러 부대로 나누어지고 그 규모가 축소되어가던 금군을 하나의 강력한 부대로 재창설하더니 이제는 내탕금까지 내려주고 잔치를 벌여서 위사들을 위로하라고 할 정도로 계속해서 신경을 써주니 곽흘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