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의 즉위년에 일어난 일들 "하지만 올해 안으로 과인이 내금위로 거둥하여 내금위 위사들의 훈련을 친히 관전할 것이오. 결코 내금위장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니 그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필요는 없소."
"송구스럽사옵니다. 전하."
"과인은 내금위장이하 내금위의 위사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오. 내금위장은 그 능력을 마음껏 펼쳐서 내금위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리시오."
"예. 전하. 신 내금위장 곽흘.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그럼 과인은 내금위장만 믿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균의 특기 중에 하나인 '최고로 대우하여 딴 생각 안 가지게 하기.' 와 '너만을 믿는다는 말로 충성심 이끌어 내기.' 에 걸린 곽흘은 균의 관심과 믿음에 감격한 듯이 보였다. 하긴 옛말에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주군의 믿음과 좋은 대우를 받는 신하는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그 방법이 다르기는 했지만 강직한 곽흘 정도라면 임금의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충성심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내금위장 곽흘을 돌려보내고 대전내관 정성우를 통하여 내수사의 내탕금을 내금위에 보내도록 명령한 균은 원상대신인 영의정 이준경, 좌의정 이명 등을 불렀다. 균은 이준경의 원상폐지요청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양보하여 원상을 유지시켰는데 이 때쯤에는 사실상 원상은 이름뿐이고 대다수의 정무는 균이 돌보고 있었다. 거기다 궁내의 장악과 내금위의 재창설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황이기에 더 이상 원상제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균은 이준경에게 원상을 폐지하고 자신이 친정을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선대왕께서 승하하신지도 벌써 석달이 다 되가오. 과인이 선대왕마마을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하였고 또한 궁내에 궁인의 법도를 어긴 자들이 많아서 이를 일소하느라 국사를 소홀히 하여 경들에게 막중한 업무를 맡겼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기에 원상을 폐하고 과인이 친히 국사를 돌보고자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신 영의정 이준경 아뢰옵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주상전하의 뜻이 극히 지당하시옵니다. 그간 주상전하께오서 선대왕마마에 대한 지극하신 효심을 문무백관들과 만백성들에게 널리 보이셨고 지엄한 궁중의 법도를 어기는 자들을 일소하시어 그 위엄을 보이셨습니다. 이제 궁내의 일들을 마치셨으니 마땅히 주상전하의 크고 깊으신 뜻을 조선 천지에 널리 알리시어야 할 때이옵니다."
"신 좌의정 이명 아뢰옵니다. 주상전하의 뜻이 옳으시니 어찌 소신들이 이에 가부를 표시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신료들도 신들과 같은 생각일 것이니 주상전하께서 그 뜻을 표하신다면 문무백관들은 모두 주상전하의 뜻을 따를 것이옵니다."
이준경과 이명은 균이 다시 정무를 돌보겠다는 말에 기뻤는지 바로 찬성을 했다. 하긴 그들로써도 원상이라는 임시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을 쥐고 천하를 호령하려는 젊은 신하들이라면 모를까 그들은 청렴하기로 소문나고 나이가 많은 노신들이라서 높은 벼슬보다는 이제 기로소(신하들의 노인정.)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두 사람 모두 선조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관직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1572년에 사망한다. 이처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적고 곧 물러날 나이가 다 된 노신들이기에 조정에 지지기반이 없는 균에게는 믿을만한 신하들이었다. 그러기에 균이 그들을 믿고 석 달이나 자신을 대신하여 원상을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연륜이 있는 신하들답게 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국정을 원만히 운영했다. 그래서 균은 다시 한 번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돌려보냈다.
이렇게 여러 명의 신하들을 만나고 나자 시간이 훌쩍 지나서 저녁때가 되었다. 그리고 균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저녁수라상이 들어왔다. 수라상은 대체로 12개의 반찬이 오른다고 하여 12첩 수라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20개의 반찬이 오른다. 문자 그대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을 정도로 반찬의 가짓수가 많아야 하는 수라상이지만 계속되는 흉년 탓에 반찬의 가짓수를 반으로 줄이라는 어명을 내린 터라 균의 수라상은 상대적으로 초라한 편이었다.
그래도 일반 서민의 밥상과는 비할 수 없는 것이 수라상이다. 일단은 조선 최고의 음식 전문가들이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 올리는 맛있는 음식들이다. 이제는 왕이 되어 특별하게는 눈치를 볼 인물이 없는 지라 마음 놓고 맛있게 수라를 즐기던 균은 문득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이 제조상궁인 양상궁에게 말했다.
"양상궁. 요즘 두 분 대비마마들께서는 수라를 어떻게 받고 있는가? 과인처럼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셨는가?"
"예. 전하. 두 분 대비마마들께서도 주상전하께서 솔선수범하시어 수라상의 반찬수를 줄이신 것을 보고는 모두 반찬수를 반으로 줄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단 말인가? 과인 때문에 두 분 대비마마들까지 고생이 많으시구나."
난데없이 밥을 먹다말고 두 대비가 먹는 반찬의 수를 물어본 균은 다시 천천히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 번 떠먹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평소에 비하면 반도 안 먹었기에 제조상궁과 대전내관을 위시하여 균의 식사시중을 드는 상궁나인들까지 모두 표정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도 그렇게 밥을 잘 먹던 균이 갑자기 식욕이 사라질 리는 없는데 대비의 이야기를 듣고 수저를 내려놓았다는 것은 대비들과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이 된다. 아무튼 양상궁이 균에게 다시 수라를 권했다.
"전하.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수라가 입에 안 맞으시면 다시 지어 올리겠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수라상은 그만 물리도록 하고. 제조상궁과 대전내관만 남고 모두 나가도록 하라."
"예. 전하."
상을 물린 균은 제조상궁인 양상궁과 대전내관인 정성우을 제외하고 지밀상궁들까지 방에서 내 보냈다. 지밀상궁들은 원래 왕의 성은을 입은 궁녀들로써 왕의 잠자리를 지키는 상궁들이다. 심지어는 왕이 중전과 잘 때도 옆에서 발을 내리고 감시를 하는 것이 지밀상궁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밀상궁은 균과 동침을 한 사람이 아니고 궁내의 상궁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상궁을 임명한 정도에 지나지 않기에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방밖에서 대기하게 했다.
"대전내관. 제조상궁."
"예. 전하."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 듯하다."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세 사람은 서로 가까이 앉아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명 모두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를 나누어 그 분위기가 자못 살벌했다. 잠시 이야기를 하던 세 사람은 균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숙여서 답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를 지었다.
다음날 사정전에서 이루어진 상참(약식조회)에서 원상을 거두고 균의 친정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대략 3개월 만에 영의정 이준경 등이 임시로 통치하던 조선은 다시 조선국왕의 직접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간 과인을 대신하여 어려운 임무를 잘 처리한 영의정 이준경과 좌의정 이명의 공을 크게 치하하는 바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런데 좌의정. 과인이 아침에 도승지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소. 사직상소를 올렸다고 하는데 어찌된 연유이오?"
"신 좌의정 이명이 아뢰옵니다. 신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옵니다. 이미 기력이 쇠하여 조정의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맡을 수 없고 또한 나이만 많이 먹은 소신이 유능한 신진관료들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되어 감히 사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되었나이다. 바라옵건대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조선시대의 정년퇴직연령은 일흔 살인데 좌의정 이명의 나이가 벌써 일흔 살로 이제 관직에서 떠날 나이었다. 이 정도가 되면 대부분의 재상들은 관리들의 양로원인 기로소에 들어간다. 기로소는 이미 고려조 때부터 기원이 있었던 기관으로 조선시대에는 태조가 처음으로 종 2품이상의 문무관들 모아서 연회를 베푼 것에서 기원한다. 주로 하는 일은 국왕의 자문을 원로대신의 자격으로 답하는 것이고 주로 연회를 즐기며 말년을 보내는 노대신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신하들뿐 아니라 왕도 나이가 들면 기로소에 이름을 올리고 기로소의 신하들과 어울렸으며 나중에는 문과를 치룬 종 2품이 상의 문신들에게만 기로소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는 등 그 조건이 엄격하여 신하로써는 기로소의 녹명안이라는 것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인이 보기에는 경이 관직에서 물러나기에는 그 재주가 무척이나 아깝소. 과인이 선대왕마마의 유지를 받들어 보위에 오른 지 고작 삼 개월밖에 아니 되었거늘 경이 이렇게 물러난다면 과인은 누구를 의지하며 정사를 돌보겠소? 이는 결코 윤허할 수 없는 문제이니 경은 맡은 바 책무에 충실하도록 하시오."
"하오나. 전하."
"경들은 들으시오."
"예. 전하."
균이 계속 거부했지만 좌의정 이명이 계속 사직을 청하자 균은 사정전내의 모든 대소신료들에게 크게 말했다.
"곧 궤장연을 열 것이오.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하기를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전하. 신은...."
"그럼 오늘 조회는 그만 파하도록 합시다."
좌의정 이명이 계속 말을 했지만 균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궤장연은 나이가 70살에 이르러 사직을 청하는 신하를 위해서 임금이 베푸는 연회다. 그렇다고 송별회 같은 것이 아니라 궤장이라는 팔 안장과 지팡이를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를 하는데 이것을 사용해서 조정에서 더 일하라는 일종의 압력이다. 이 역시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기에 궤장을 하사받은 신하들은 한동안 더 관직을 유지하며 건강이 나빠질 때까지 일을 해야 했다. 즉 균이 이명의 사직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뜻이 담긴 의사표시였다.
아직 권력기반이 약한 균에게 있어서 그 실무능력을 떠나서 명망이 높은 노대신을 거느리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오리지날 선조역시 이준경과 이명의 사퇴를 결사적으로 막는 한편 이이, 이황, 조식 등 덕망이 높은 학자들을 초빙하는데 힘을 쓴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균도 자신의 왕권이 공고해질 때까지는 그런 사람들과 협력을 할 수밖에는 없는 입장이었다.
자신의 친정을 선포하고 이명의 사직을 거부한 균은 다른 오전 중에 중요한 보고들을 받고 빠르게 처리했다. 아무래도 그 날 오후에는 자신이 무척 바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충 급한 일이 끝나자 오후에 만날 사람들을 모두 오전 중에 만나고는 점심도 먹지 않고 왕대비 박씨의 거처로 향했다. 균이 자주 찾기는 하지만 말동무가 없이 혼자서 외롭게 보내는 박씨는 형식상으로는 손자이며 실제로는 조카인 균을 무척이나 반겼다.
"주상. 이런 시간에 어인 일로 이 할미를 찾아온 것이요? 아직 주상이 처리할 일이 많을 것인데...."
"그간 원상대신들이 소손을 대신하여 국사를 잘 처리한 터라 소손이 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전 중에 일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니 할마마마의 생각이 나서 찾아온 것입니다."
"호호호. 이제 주상께서 친정을 펼치는 마당에 이 할미가 도와줄 것이 무엇이 있다고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게요? 이제는 주상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만 하면 될 것을..."
"아니옵니다. 할마마마. 소손은 단지 할마마마와 같이 있고 싶어서 온 것뿐입니다. 오후에 소손과 함께 후원에 나가 보심은 어떻겠습니까? 가만히 방안에 계시는 것보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간단한 산보라도 하시면 건강에 무척 좋을 것입니다."
평소에도 가끔씩 찾아와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산보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처럼 대낮에 찾아와서 산보를 하자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왕대비 박씨는 어린 주상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외롭게 사는 뒷방의 늙은이에게 이제는 친정을 시작하여 자신의 권위를 빌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잊지 않고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