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화 (78/228)

 균의 즉위년에 일어난 일들 "휴~!"

체념을 한 듯이 차분히 말을 내뱉는 대비를 보던 균은 한숨을 내쉬더니 같이 들어왔던 어의 양예수와 의녀에게 이르러 대비의 상태를 돌보게 했다. 의녀의 도움으로 대비의 맥을 집혀본 양예수의 표정이 밝아지자 균의 표정도 같이 밝아지더니 양예수에게 먼저 태아의 상태를 물었다.

"복중의 아이는 무사 하느냐?"

"예. 전하. 복중의 아기씨는 무사하십니다. 전하께서 심려를 놓으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그것 참 다행이로다. 과인이 너무 늦지 않았는지 심려하였거늘. 너는 대비전에 상주하면서 대비마마와 태아의 건강을 책임지도록 하라."

"예. 전하. 성심을 다 하겠나이다."

"그럼 어마마마. 소자를 물러가옵니다. 야심한 밤에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하옵니다."

대비의 예상과는 달리 균은 어의에게 태아의 상태를 듣고는 오히려 반색하였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의녀에게 대비와 태아를 돌보라는 말을 남긴 채 조용히 대비의 방을 떠났다. 당장 태아와 자신을 죽이려고 할 줄 알았던 균이 오히려 태아의 무사함을 기뻐하며 의녀까지 붙여주고 나가자 대비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방을 나가는 균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균이 떠난 후 궁금함을 참지 못한 대비가 의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다.

"주상이 어찌하여 나와 복중의 아기를 해하지 않고 그냥 돌아간 것이냐?"

"대비마마.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주상전하께서 대비마마를 해하신다니요? 그런 천인공노할 일이 어찌...."

대비의 물음에 의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조선의 왕이라도 자식인 균이 양어머니인 대비 심씨를 해친다면 그것은 패륜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 칭하며 소중화 문명국을 자처하는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는 감히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끔찍한 말이다. 의녀의 표정을 보고 한 치의 거짓도 느끼지 못한 대비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의녀에게 물어보았다.

"내 말이 잠시 헛 나온 듯 하구나. 방금 전 그 말은 네가 잘못 들은 것으로 해라. 그건 그렇고 오늘 주상이 왜 내금위를 동원하여 내가 아끼는 상궁을 잡아갔는지 아는 바가 있다면 한 번 말해보거라."

"예. 대비마마. 사실은 오늘 낮에 주상전하께서 왕대비마마와 후원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시다가 대비마마가 생각이 나신다고 하여 직접 방문을 하시었는데 대비마마께서 대답이 없자 대비마마의 옥체가 크게 상하지나 않은지 심려를 하시어 어의영감을 강녕전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대비전 상궁이 내의원 의관들을 대신하여 대비마마가 드실 탕약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크게 격노하셨습니다."

"주상이 내가 회임사실을 숨긴 것에 격노를 한 것이 아니고?"

"아니옵니다. 대비마마. 소인이 아는 바로는 주상전하께서도 대비마마의 회임사실을 얼마 전에 알고 계셨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수라를 드시다가도 대비마마의 수라상의 반찬수를 물어보시고 걱정을 하시느라 수라를 제대로 드시지 못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상궁이 대비마마의 탕약을 결정한다는 말을 듣고는 당장 그 상궁을 잡아들이라고 명하시고는 어의영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과인이 아는 바로는 회임 중에는 함부로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음식도 가려야 할 것이 많다. 그런데 의술을 모르는 상궁이 대비마마의 탕약을 결정한다면 대비마마의 옥체는 물론이고 복중의 내 동생까지 위험한데 아무리 대비마마의 명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죄는 무척이나 큰 것이다. 그 상궁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위험한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의도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 죄가 크기에 만일 두 사람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다면 과인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고 최선을 다하여 대비마마의 안위를 살피도록 하라.' "

의녀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대비 심씨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자기 생각에는 영특한 균이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아기를 먼저 제거하려 할 것이라는 생각만하고 혼자서 임신사실을 숨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실제로는 균은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주다가 자신과 아기에게 위협이 있다고 생각하자 즉시 개입해서 다 처리를 해준 셈이었다.

 잡혀간 임상궁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임상궁이 중간에서 균과 대비를 이간질을 시킨 것으로 생각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었다. 즉 임상궁이 균의 행동을 대비에게 오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여 두 모자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대비와 뱃속의 아이에게 해를 끼치던 것을 대비가 불편해할까 봐서 옆에서 모른 척 지켜보던 균이 위험을 감지하고 즉시 개입을 하여 임상궁을 제거해버린 것이라고 하면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임상궁은 대비 심씨가 어렸을 때부터 대비를 따르던 거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도저히 그런 음모를 꾸밀만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임상궁에게 연줄이 닿은 사람은 고작 대비의 친정식구들뿐이다. 덕분에 대비의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모든 일은 임상궁이 꾸민 것이라면 이치에 맞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임상궁은 그렇만한 사람이 아니다. 대비는 복잡한 마음에 옆에 의녀가 있는데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그래 의금부에서는 죄인에 대한 추궁을 계속하고 있느냐?"

"예. 전하. 하지만 아직까지 죄인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가? 하긴 감히 대비마마와 과인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대비마마와 복중의 태아를 해하려 했던 대역죄인이다. 그렇게 쉽게 입을 열지는 않겠지. 계속 추궁을 하여 그 배후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인물들을 알아내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금부판사(의금부의 장으로 종 1품벼슬)에게 명하라. 하지만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왕실의 위엄과 권위에 먹칠을 할 수도 있으니 이를 특히 유념하라는 말도 전하라."

"예. 전하."

일단 임상궁을 의금부로 넘겨 국문을 하게하고 자신은 대비의 상태를 어의와 살핀 후 강녕전으로 돌아온 균은 이번 사건에 역모에 준하는 사건이라고 하면서도 대비와 관련이 깊음을 들어서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내금위, 의금부, 내의원등 여러 기관이 관련된 사건인지라 균의 함구령은 곧 유명무실한 것이 되고 말았다.

다음날부터 삼사의 상소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상소문의 수는 많지만 이번 역모와 대비의 임신에 대한 정황을 자세히 공개하고 이에 대하여 상참에서 공식적으로 의논을 하자는 소리였다. 하지만 균은 도승지 이양원에게 명하여 이에 대하여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대비산실청의 설치를 명하였다.

원래 산실청이란 임신한 왕비들을 관리하는 임시 관청인데 대략 임신한지 6~7개월쯤에 설치를 하며 주로 내의원소속의 의관과 궁녀들이 배속된다. 대략 대비가 임신한지 3~4달 정도이었기에 아직은 설치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균은 삼사의 의견을 무시하고 산실청 설치를 명하여 신하들의 관심을 역모사건에서 대비의 회임으로 돌리고자 하였고 균 자신은 대비를 보호하는 듯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겼다.

하지만 다음날 상참에서 삼사의 장인 사헌부의 대사헌 박응남, 사간원의 대사간 윤두수, 홍문관 대제학 이황 등이 공동으로 균에게 간언을 하여 이번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죄인을 추궁할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번 일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일을 조용히 끝내려던 균의 얼굴은 굳어졌다.

"신 대사헌 박응남, 대사간 윤두수, 대제학 이황과 삼사의 대관들은 삼가 엎드려 주상전하께 고하옵니다. 신들이 듣기로 의금부에서 대비전의 궁녀 하나가 국문을 받고 있는데 입에 담기도 민망하지만 대역죄인이라고 하여 신들은 크게 놀라서 이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나이다. 하지만 주상전하께오서는 이에 대하여 왕실의 일이니 관여하지 말라고 하시고 대비산실청이라는 전례에 없는 기관을 설치하여 이번 사건을 조용히 끝내려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이번 사건이 대비전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한 대비마마께서 선대왕마마의 아기씨를 회임중이라서 번거로운 일에 신경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나 이처럼 중차대한 일을 그냥 넘기시려 하신다는 것은 오히려 왕실의 위엄과 권위에 큰 해가 되는 일이옵니다. 대비마마를 향한 주상전하의 지극하신 효심은 신들이 모두 알고 감격하고 있사오나 이번 일은 중대한 역모사건으로 그냥 마무리 짓는다는 불가한 일이라고 사료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대간들의 이러한 집단행동에 균은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역모사건이란 이번처럼 고작 궁녀 하나를 처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궁녀를 교사했다고 믿어지는 배후세력을 찾아내 제거하고 이와 관련된 자들. 심지어는 별 상관이 없는 일가전체를 처벌하는 것이기에 조정전체의 세력판도가 바뀌는 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문제는 그 중심에 대비 심씨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균이 양자라고 해도 대비 심씨는 균의 어머니이다. 거기에 선대왕인 명종의 유복자(또는 유복녀)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균이 대비문제를 처리하고 싶다고 해도 지금처럼 조정에서 공론화된 이상은 쉽사리 처리할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균이 어떻게 대처를 하든지 균에게는 부담거리이다. 역모사건을 대충 넘어가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명종의 유복자를 임신한 대비에게 혐의를 둔다는 것은 자칫 패륜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그래서 균이 함구령을 내리고 조용히 조사하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대간들의 뜻은 과인도 알겠노라. 하지만 대비마마께서는 현재 과인의 동생을 회임하고 계시고 오히려 대역죄인에 의해서 피해를 입으신 분이다. 이런 대비께 심려를 들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의금부에서도 그 배후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니 경들은 그만 물러나도록 하라."

"아니 되옵니다. 전하. 대비마마의 옥체와 복중의 아기씨가 위태로웠던 일입니다. 주상전하께서 그 배후를 충분히 조사하시어 대비마마의 불안을 해소하여 드리는 것이 오히려 대비마마를 위하는 길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그렇게 대비가 놀라면 안 되니 조용히 넘어가자는 균과 대비가 놀라더라도 그런 반역도당은 제거해야 한다는 삼사의 주장이 서로 부딪치며 상참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덕분에 균만 대비와 신하들 사이에서 이를 막느라고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대궐은 물론 한성부에도 알려서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끊임이 없었다. 덕분에 대궐 곳곳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어머머. 세상에.... 그럼 대비마마가 주상전하를 내쫓으려고 하신거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아기씨가 태어나면 주상전하의 입장이 난처해지니까. 일부러 숨겼데... 그런데...."

"그런데...."

"알고 보니 대비전의 임상궁이 다른 자의 사주를 받고 두 분을 이간질 시킨 거래. 정확히는 대비마마가 주상전하를 경계하게 만들고는 의술도 모르는 주제에 대비마마의 탕약을 이상한 것만 골라서 올리는 바람에 대비마마가 위험하셨는데 이를 주상전하께서 아시고 친히 거둥하신 것이지."

"어머나. 그래서 그날 내금위와 의녀들이 동원되어 대비전으로 갔던 거구나."

"응. 그런데 주상전하께서는 그 뒤에도 대비마마가 이번 사건에 연류 될까 걱정을 하시어 산실청을 만들어 대비마마를 보호하시고는 조사를 요구하는 대간들의 청을 물리친다고 정신이 없으시데."

"와! 주상전하, 정말 효자이시다. 대비마마가 덜컥 대군아기씨라도 생산하시면 가장 곤란하실 분이 주상전하이신데... 오히려 보호를 해주시다니. 효심이 깊으신 거니 배포가 넓으신 거니?"

궁녀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평가는 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다른 사람의 이간질에 넘어가 자신을 위협하던 양어머니를 그래도 끝까지 보호해주는 효자정도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대비의 경우에는 착한 아들을 구박하는 못된 계모 같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주상전하도 대단한 효자이신데. 그것도 모르고 대비마마는 주상전하를 의심하셨다지."

"그러게 말이여. 가만히 있었으면 대비마마든 뱃속의 아기씨든 다 잘못되고 주상전하는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인데 자기를 의심하고 경계하던 양모와 동생을 살리겠다고 지금도 대간들과 다투고 계신다며 그 정도면 자기 배로 낳은 자식보다 낫구먼."

"그게 어디 보통의 일인가? 군주란 자기 권력에 위협이 되면 혈족이라도 제거하는 법인데 우리 주상전하는 오히려 용서하고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하시니..."

"그렇게 좋은 분이 우리 주상전하시니 이제 조선에도 좋은 세상이 오겠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