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228)

 개혁의 시작 "탁~!"

균은 갑자기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방바닥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하지만 방안에 같이 있던 도승지 정인기는 균의 행동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균은 책을 집어던지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앞에 있던 서안을 주먹으로 내리쳐 조용하던 강녕전 안을 울렸다. 그리고는 식식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도승지. 이게 정녕 사실이오?"

"송구스럽사옵니다. 전하."

"아니오. 이번 일은 도승지의 책임이 아니니 그렇게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소. 도승지는 그만 나가보시오."

"예. 전하."

도승지 정인기를 내보낸 균은 분을 삭이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균의 얼굴에 언제나 있던 미소는 사라지고 마치 한증탕에 들어간 사람처럼 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누가보아도 균이 진노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균이 이렇게 화가 나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방금 정인기가 올린 전세수입보고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재정의 태반을 토지세에 의존하였고 토지세로 받은 곡식을 조운선을 통하여 바다와 강을 지나 수도인 한성부로 운반했다. 때문에 운송시간이 많이 소모되어 조선의 그해 재정수입은 다음해 2월 달이 지나야 대강 알 수 있었고 심하면 4월 달에까지도 세금이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봄철에는 일년 예산을 각 부서에 분배하고 이를 다시 집행하는 일로 무척이나 바빴다.

그래서 작년에 명종이 어린 균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이면에는 바로 한창 바쁠 때였기 때문에 일손을 거들라는 의미가 컸고 세자로써 대리청정을 하던 균은 국가재정상황을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균이 세자로 책봉될 무렵에 이미 상당부분의 예산집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이 왕위에 올라서 조선의 국가재정상황을 살펴보니 이건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조선의 세금수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세(토지세)와 전세가 아닌 수입. 농업국가인 조선에서는 이렇게 극단적인 세금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흉년에는 재정압박을 받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전세는 토지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세종때 전분육등법과 구분연등법의 등장으로 조선초기의 수취제도가 마련되었다. 이때 전국의 토지는 약 120만 결에 1년 전세수입은 약 20만 섬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15세기의 조선은 국가가 안정되면서 계속 발달하여 성종때는 170만 결에 약 27만 섬의 전세수입을 걷어 들여 조선의 국고가 가장 풍족했다. 조선왕조의 평균 세출은 주로 관리들의 녹봉이 대부분인데 이것이 매년 14만 섬 규모였다. 따라서 15세기의 조선은 매년 10만 섬 전후의 재정흑자를 보면서 많은 양곡을 비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면 사정은 달라진다. 연이은 흉년과 정치적인 혼란이 겹치면서 세금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중종때의 전세수입은 평균 10~12만 섬으로 매년 수만 섬의 재정적자가 발생하여 비축양곡을 소진하기 시작하더니 균의 즉위원년인 1566년경에는 총 200만결의 토지를 보유한 조선의 전세수입이 최하 7만 섬에 불과하였고 비축양곡마저 거의 다 소진하여 도저히 재정적자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렇듯이 조선은 전세수입만으로는 도저히 국가운영이 불가능한 처지에 이르렀다.

물론 조선시대에 전세를 제외하고도 다른 세금이 있기도 하다. 잡세, 부역, 공납, 군포등인데 실제로 재정에 도움을 준 것은 거의 없었다. 부역은 백성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는 것이니 대동법이 시행되지 않은 조선전기에는 재정문제와는 상관이 없고 공납은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으로 백성들의 부담은 크지만 재정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군포는 양인장정들에게 부과되는 일종의 방위세인데 이 돈은 각 지역 군부대에서 사용해서 중앙의 재정문제에는 도움이 안됐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소금에서 나오는 염세정도인데 이마저도 조선전기에는 생산량의 10%를 걷는다는 규정만 있을 뿐 제대로 과세가 되지 않고 그나마 상당수가 면세특권이 있는 종친들이 경영하였기에 실수입은 적었다. 따라서 조선의 국가재정은 전세와 잡세, 그리고 국왕의 개인재산인 내탕금으로 유지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처지였다. 그러니 균의 입장에서는 어릴 때부터 별의별 생고생을 다 해가며 간신히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알고 보니 거대한 부실회사를 떠맡은 재수없는 상속인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다.

올해 조선조정의 총 세입은 전세 8만 섬과 잡세 2만 섬, 총 10만 섬에 정도인데 기본세출만 14만 섬이 넘으니 대략 4~5만 섬의 적자를 내수사(왕실재산)와 외수사(균의 재산)의 자금으로 막아야 할 실정이었다. 내수사의 자금력은 왕실토지의 소작과 이자수입에서 나오는데 약 3만 섬 정도였고 외수사는 약 10만 섬 정도의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균이 즉위하지 않았으면 조선개국이래 최초로 관리들 녹봉이 지급정지되는 사태가 발생할 뻔한 것이다.

당장 재정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개혁은커녕 재정적자를 막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균은 다음날 강녕전으로 삼정승과 육조판서 등의 대신들을 불러들여 재정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특별히 홍문관 대제학 이황, 사헌부 장령 조식도 참석을 하였는데 관직은 낮아도 명망이 높은 자들이라서 다른 재상들도 감히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과인이 경들을 오라고 한 연유는 경들도 잘 알겠지만 과인이 올해 조정의 전세수입을 보고 놀라움과 경악함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오. 당장 조정의 일년 지출이 14만석인데 올해 전세가 8만석에 잡세가 2만석, 총 10만석으로 현재 거두어진 세금으로는 도저히 앞으로 일년을 버티기도 힘드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사료되어 경들의 의견을 묻고자하니 경들은 좋은 방도를 과인에게 말해보시오."

균의 말이 떨어졌지만 신하들은 뚜렷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재정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국가와 백성사이의 수취제도에 끼어있는 잡초들을 제거하면 끝나는 문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잡초가 손만 가져다대도 물어버리는 악성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균의 시선을 견디다 못한 신하들의 대답은 균을 실망시키는 것들이었다.

"전하. 신 우의정 홍섬이 아뢰옵니다. 이러한 재정문제는 비단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라 폐주 연산군시절부터 시작된 문제이옵니다. 폐주 연산이 왕위에 올라 참담한 일들을 저질러 하늘이 크게 노하시어 많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으며 결국 중종대왕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폐주 연산을 몰아내고 다시 바른 뜻을 세우셨으나 간신인 남곤등이 임금의 눈을 멀게 하여 조광조등을 사사하고 국가기강을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인종대왕이 즉위하시어 잠시 태평성대가 열리는 듯하였으나...."

"우상. 과인이 지금 역사공부를 하자고 경들을 부른 것이 아니오. 과인이 원하는 것은 현재 조정의 재정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오. 당장 국가재정이 파탄이 나게 생겼는데 연산조때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논해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렇게 따진다면 세조대왕 시절부터 따지는 것이 옳으니 이런 위급한 지경에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전하. 신 영의정 이준경이 아뢰옵니다. 폐주 연산 때만 해도 충분하던 조정의 재정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각 창고를 관리하는 자들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은데 기인합니다. 성종대왕때만 하더라도 각 창고에 100만 섬의 쌀이 쌓여 있어서 나라에 급한 일이 있으면 바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아니옵니다. 이는 그간 흉년으로 전세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지만 창고를 관리하는 자들이 근무를 태만이하여 썩어버린 양곡이 십만 섬이 넘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당장 나라의 양곡을 보관하는 관리들의 죄를 추궁하고 그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할 줄 아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래도 보관기술이 떨어져서 창고에서 썩어버리는 쌀도 적지 않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조선조정은 세 곳에 양곡창고를 짓고 관리를 파견하여 쌀을 관리하게 하였는데도 썩어서 못 쓰게 되는 쌀이 많았다. 그 결과 조정의 재정압박을 더욱 가중시켜 지금 균이 벌어둔 돈까지 까먹게 생긴 것이다. 덕분에 예기치 못한 거금을 날리게 생긴 균의 분노는 상당하여 평소에는 우대를 하던 노대신들에게 까지도 분노의 기운을 날리고 있었다.

"영상. 지금 창고의 관리를 탓한다고 하여도 이제는 창고에 쌓아둘 양곡조차 없소. 물론 그런 자들을 벌하는 것은 좋으나 그 일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니 그보다 어떻게 하면 조세수입을 늘려서 재정의 부실을 막을지에 대한 대책이 더욱 우선돼야 할 것이오."

"송구하오나 전하. 지금은 흉년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고충을 받고 있어 더 이상 세금을 늘려 받기에는 무리가 있사옵니다. 그보다는 나라의 살림을 더욱 줄이고 검소하게 운용하여 경비를 줄이는 방책이 더욱 실효성이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영상. 이런 흉년에 백성들을 더 짜내어봐야 무슨 세금이 나오겠소? 과인의 말은 백성들에게 더 세금을 걷어 들이자는 말이 아니오. 또한 과인을 비롯하여 왕실은 물론 조정의 경비도 최대한 줄인지도 언 10여년이오. 이제 더 이상 줄일 수도 없는데다가 영상의 의견은 재정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 부족하오. 과인이 원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해가 가지 않은 범위에서 조정의 재정난을 해결하자는 말이오."

균은 많이 흥분했는지 앞에 놓여진 서안을 가끔씩 치면서 이상한 의견이나 내고 있는 신하들을 한 번씩 째려보았다. 균의 시선이 뜨겁게 느껴지는지 신하들의 머리는 더욱더 방바닥과 가까워졌다. 균이 한창 뜨거운 시선을 신하들에게 보내고 있을 때 호조판서 홍담이 입을 열어 균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나라의 재정을 담당하는 호조판서라서 그런지 균의 뜨거운 시선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견을 낸 것이었다.

"전하. 신 호조판서 홍담이 아뢰옵니다. 저희 호조에 젊은 인재가 하나있는데 소신에게 여러 번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사옵니다. 비록 그가 낮은 벼슬에 머물러 있으나 그 학식이 무척 깊고 사려가 깊으니 전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하~. ....... 좋소. 과인이 허락할 테니 그를 데리고 오시오."

균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도 무엇이 잘못되어 무엇을 어떻게 고치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도 우습게 볼 수 없는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버티고 있기에 저렇게 몸을 사리고 자신의 하급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균은 한숨을 내쉬면서 홍담의 의견을 허락하고 정내관을 보내서 불러오게 했다.

잠시 후 정내관의 안내를 받아서 강녕전에 들어온 자는 이제 막 이십대 후반에 이른 듯한 젊은 관료였다. 그 관료는 먼저 균에게 넙죽 절을 하고 방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데도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균에게 자신의 관직과 이름을 낭랑한 목소리로 밝혔다. 조금 흠이라면 강원도 사투리가 섞였다는 정도가 고작일 뿐이고 늙은이들의 탁한 목소리를 듣다가 젊은이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니 균은 기분이 좋아졌다.

"신 호조좌랑(정6품) 이이, 주상전하의 부르심을 받잡고 왔사옵니다."

".... 경에 대한 말은 호조판서로부터 들었다. 무척이나 유능한 인재라고 호조판서가 과인에게 자랑을 하더구나."

"망극하옵니다. 전하."

균은 강원도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을 하는 저 관료가 율곡 이이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는 많이 놀랐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긴 이이는 강원도 강릉에 살던 사람이 아닌가? 거기다 전생때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가 기억나서 균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원래의 선조에게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건의할 때 흥분해서 강원도사투리로 말하는 바람에 서울토박이인 선조가 그 중요성을 못 알아듣고 그냥 무시해버렸다는 이야기가 마침 기억난 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이가 10여년 이상 서울에 살아서 강원도사투리로 왕에게 말할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웃기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덕분에 균은 이이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을 했다.

"호조판서가 과인에게 말하기를 경이 조정의 조세부족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고들었다. 경도 알겠지만 올해 조정의 재정이 많이 부족하여 관리들의 녹봉을 대기도 부족한 실정이다. 경이 좋은 의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과인에게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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