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228)

 개혁의 시작 원래 조선국왕의 권한은 그다지 약한 편은 아니었다. 태조 이성계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강력한 사병집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수가 몇 천이나 되었고 이들이 이성계를 따라서 종군을 하면서 이성계는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위화도회군 때도 이성계의 사병은 원정군중에서도 상당한 전력이었고 이성계의 부는 원정군전체를 유지할만한 했다. 거기에 이성계 자신의 카리스마까지 겹치니 이성계는 원정군을 쉽게 자신의 군대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성계의 무력을 기반으로 고려왕조를 물리치고 일어난 조선왕조는 전기까지는 국왕의 힘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왕들은 여러 가지 실수를 한다. 정치적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많은 특혜를 나누어 주었는데 양반들은 이 특혜를 기반으로 세력을 기른 것이다. 초기의 신권은 그 기반이 미약하여 상대적으로 왕권이 강했는데 점차 신권이 강화되면서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왕권은 땅에 떨어진다.

그 뒤로 중중과 명종은 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지만 이미 강화된 신권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지방에서는 사림들이 향약을 통하여 자신들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었는데도 왕권은 중앙의 정쟁에 휘말려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계의 왕족출신으로 왕위를 계승한 선조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했다. 그래서 선조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두려워하여 이이 등의 개혁 건의에도 불구하고 정공도감이라는 관청을 만드는 정도의 미봉책으로 일관하였고 대동법의 시행은 훨씬 뒤로 늦추어졌다.

하지만 새로운 14대 조선국왕 균은 달랐다. 먼저 왕실의 숙원사업이던 종계개정을 즉위 1년 만에 관철시키는 큰 공을 세워 가장 큰 약점이던 정통성의 문제를 극복했다. 거기다 역대 최강의 내금위 4천명을 거느리고 있고 개인적인 자금력 역시 국가재정을 매우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그 왕권은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강대한 왕권을 능가하는 막강한 신권이었다. 그러면 두 세력을 간단히 비교해보자.

먼저 군사력 면에서 균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군사력은 내금위 4천명이 전부였다. 20만 조선정규군은 왕의 군대가 아니라 신하들의 정책결정협의체인 비변사의 통제를 받고 있었고 양반들이 거느리는 노비중 젊은 장정만 골라도 그 정도의 수는 채우고도 남는다. 일단 질을 떠나서 수적 최악의 경우에는 4천대 40만의 대결이 된다. 물론 질로 따지면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들지만 그래도 균이 밀린다.

경제력 면에서 균의 가용자금력은 내수사와 외수사를 합쳐서 현재 1년 수입이 약 60만 냥이 넘는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토지 중에서 소작농이 경작을 하는 토지는 약 40%, 여기에는 왕실의 내수사전도 포함되지만 대신 양반들이 노비로 직접 경영하는 토지도 있으니 약 80만결이상의 토지가 양반들의 소유였다. 여기서 나오는 소득은 매년 이천만 냥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60대 2000의 대결. 그나마 흉년이라서 저 정도 소득이다. 그러니 균의 열세가 두드러진다.

나머지는 유교학적인 대의명분의 대결인데 어느 쪽이 압도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균은 정통 설을 갖춘 조선의 왕이지만 사대부들은 역성혁명론을 내세워 왕조를 교체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 분야는 균이 크게 딸리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균의 왕권에 비해서 신권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균의 세력은 단일 세력이고 양반들은 이해관계에 따라서 서로 뭉치거나 대립을 하는 관계였다.

이러한 세력구도하에서 균은 절대로 전체양반층을 상대로 한 개혁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양반을 여러 세력으로 나누고 왕권을 이용하여 세력균형을 맞추어 주면서 조금씩 그 세력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래서 균은 일단 가장 폐단이 심한 공납제에 총력을 집중하여 적을 적게 만들면서 효과는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한동안은 다른 개혁논의는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아니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균을 가만히 놔둘 신하들이 아니었다.

"신 홍문관 교리 구본민이 주상전하께 아뢰옵니다. 이번에 주상전하께서 암행어사들을 전국팔도에 파견하시어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처벌하는 일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옵니다. 하오나 암행어사로 파견되는 이들이 모두 조정의 중책을 맡고 있는 젊은 인재들이옵니다. 특히 강직한 인재들이 많은 삼사의 대간들이 주로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삼사의 임무에 지장이 많사옵니다. 전하께오서는 이를 굽여 살피시어 앞으로는 다른 부서에서 암행어사들을 파견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홍문관 교리 구본민은 요즘 들어 가장 균을 많이 알현하는 신하였다. 그의 조상 중에 왕실의 공주와 결혼을 한 이가 있어서 왕실의 피가 섞인 구본민은 균에게 친척뻘이지만 고향에 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으며 학식도 깊은 자로 신권주의를 신봉하는 자였다. 그래서 그는 균이 암행어사를 핑계 삼아서 삼사를 약화시키는 것을 간파하고 저렇게 매일 찾아와서 균을 괴롭혔다.

"경의 말을 잘 알겠노라. 하나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과인도 조정의 젊은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원치는 않으나 과인이 믿고 그런 중책을 맡길만한 인재가 부족하다. 특히나 삼사의 대간들처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신하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과인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니 경은 이에 대하여 논하지 말라."

"하오나 전하. 요즘 삼사가 인력부족으로 인하여 본연의 임무도 제대로 수행을 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요즘 중앙관아의 관리들이 저지르는 문제가 급증하고 있사옵니다. 옛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당장 한성부의 관리들이 썩어 가는데 멀리 떨어진 지방관아를 단속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옵니다.

또한.... "

좀 지겹기는 해도 구본민의 말은 양호한 편이다. 다른 신하들은 '민심이 좋지 않다.', '백성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쌀로 납부를 하는 바람에 쌀값이 뛰었다.' 등의 이유로 수미법의 전면백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피 같은 자기 돈 50만 냥을 투자한 균이 그런 헛소리에 귀를 기울일 사람이 아니다. 특히나 역사의 흐름을 잘 아는 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의견을 채택할 인물도 아니었다.

그래서 균은 그런 자들을 좋은 말을 해서 돌려보내는 대신 그들의 뒷조사를 시작했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은 부정축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거물급이 아닌 잔챙이들만 균에게 찾아오고 있는 상황이라서 나중에 개혁이 더욱 진행되어 그런 거물급 탐관오리가 움직이면 같이 아작 내기로 균은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더욱이 아직은 탐보망에 한계가 있어서 한성부일대를 조사하기도 힘들어 너무 성급하게 숙청을 하려다가는 오히려 거물급 탐관오리들의 반격을 받을 염려가 컸다.

때문에 균의 행동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냥 일상적인 국왕의 일과를 따라서 역대 국왕이 이백년이나 그렇던 것 그대로 행동하면서 이번 일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왕위에 올라서 주도적으로 밀어붙인 첫 번째 일이 성공을 거두어야 나중에도 다른 일을 시작해도 신하들이 따를 것이기에 기다림의 미덕을 떠올리며 상대적으로 급한 자신의 성격을 억눌렀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균은 곧 바빠졌다. 수미법과 녹봉지급이라는 큰 제도가 실시된 이상 균이 결제할 일도 많아지고 찬반양론이 분분한 상소문도 몇 배로 늘어났으며 앞서 말한 대로 직접 찾아오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균은 역대 국왕들 중에서도 일을 빨리 처리하는 왕이었고 상소문은 도승지 정인기가 10일 연속 숙직의 대기록을 세우며 열심히 처리하는 중이었으며 직접 방문을 해오는 신하들은 두 가지 비밀 병기로 상대를 했다. 하나는 바로 지금 하고 있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딴 생각하기이고 또 하나는 공포의 점심시간이었다.

".... 그리하여 조정의 기강이 무너져가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하여..."

"어허! 벌써 정오가 다 되어가는 군. 경도 과인과 함께 간단히 냉면이나 들지 않겠는가?"

".....아.. 아니옵니다. 감히 신하된 자로써 어찌 주상전하의 쉬는 시간을 방해할 수 있겠나이까? 소신은 그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아니다. 경이 아침부터 과인을 위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는데 과인이 그냥 보내면 그 또한 도리가 아니다. 여봐라. 오늘은 홍문관 교리와 점심을 같이 할 것이니 그에 맞추어 준비하도록 하라."

"예. 전하. 곧 수라간에 일러두겠사옵니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일단 신하된 자가 국왕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영광이기에 구본민은 입으로 감사함을 표시했지만 속으로는 빨리 물러나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조정 관료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공포의 점심시간은 현대인인 균과 조선시대 사람들의 차이를 이용해서 균이 만든 비장의 무기다. 조선시대와 현대의 밥상은 큰 차이가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가 밥그릇의 크기이다. 원래 우리 민족은 밥을 많이 먹는 대식가들로 현대의 우리에 비해서 밥을 2~3배쯤은 먹었다.

하지만 균은 속 알맹이는 현대인이다. 덕분에 식사량은 턱없이 작았고 밥보다도 반찬을 많이 먹는 형태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반찬보다는 밥으로 배를 채운다. 또한 임금과 신하의 상차림이 같을 수 없기에 균에게는 적당한 수준의 점심이라도 상대가 되는 신하는 주식인 냉면이든 반찬이든 훨씬 부족한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균이 즐기는 면류는 배가 잘 꺼진다. 현재는 일반적인 밀가루가 당시에는 비싼 물품이기에 균도 메밀국수를 많이 먹었는데 메밀도 소화가 잘 되는 음식중의 하나다.

구본민은 울고 싶어졌다. 그의 상위에서 무척이나 적어보이는 메밀국수와 약간의 반찬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왕인 균도 큰 차이는 없는 상을 받아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감히 신하가 불만을 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구본민은 젓가락을 들어서 국수가락을 잡았다. 국수가락은 밀가루가 적게 섞였는지 젓가락을 만나기 무섭게 끊어졌다. 참고로 메밀면은 열을 가하면 잘 끊어지기에 찰기가 있는 밀가루나 계란 등을 첨가해서 면을 만들어야 한다.

구본민이 메밀면에 겨우 적응하여 몇 가닥 입에 넣은 순간 균은 벌써 다 먹고 입을 닦고 있었다. 매일 점심을 메밀면으로 때우는 균과 가끔씩 재수없이 메밀면으로 배를 채워야 신하들의 식사속도가 같을 수 없다. 거기에 균은 식사속도도 무척이나 빠른 편이다. 결국 구본민은 다 먹어도 시원치 않은 메밀국수를 반도 먹지 못한 채 점심상을 상궁나인들에게 빼앗겨야 했다. 마침 그날 저녁에 숙직까지 겹쳐서 대궐에서 주는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구본민에게 오늘 하루는 배고픈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균의 공격은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 너무 과식을 했나? 경, 우리 소화도 시킬 겸 후원에 가지 않겠나? 요즘 꽃들이 보기 좋게 피어 여러 가지 일로 바쁜 경의 마음이 한결 편해질 거네."

"...망극하옵니다. 전하."

일부러 구본민을 조금 많이 괴롭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숙직을 할때 특식을 내려주라는 명을 내린 균은 오전에 구본민의 말을 들어주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 바람에 오후에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무척이나 바빴다. 특히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신하들을 만나면 수미법과 향리들의 녹봉지급에 대한 강도 높은 정신교육을 감행하여 균의 업무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도 오후에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자 균이 결제해야 하는 서류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승정원에 있는 정인기와 승지들은 벌써 10일째 퇴궐도 못하고 균에게 올라갈 상소문을 검토하느라고 피로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균은 그 날 저녁에는 승지들을 모두 강제로 퇴궐시킨채 자신이 직접 상소문을 일일이 검토했다. 문장은 달라도 거의 비슷한 내용의 상소문들을 읽으니 균은 금새 피로해졌다. 한참을 지루하게 상소문을 처리하다던 균은 스트레스도 해소할겸 대비전으로 향했다.

"주상. 오늘은 일이 많으셨던게요?"

"아니옵니다. 승지들이 열흘째 퇴궐도 못하고 있어서 소자가 직접 상소문들을 검토하느라고 많이 늦였습니다."

"역시 주상은 아랫사람들을 많이 생각해 주시는구려. 신하들은 그런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을 하니 주상의 옥체에 무리가 없는 한은 가끔은 그렇게 해주시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주상."

"예. 어마마마. 소자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런데 정아는 벌써 자는 것이옵니까?"

대비 심씨는 제 어린 딸을 무척이나 귀여워해주는 균이 마음에 들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균은 세근새근 잠이 든 아기를 보면서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대비 심씨는 자신이 아들을 낳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배로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균은 자신의 아들이자 아기의 오빠로써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남자아기였다면 아무래도 서로가 의심을 하고 다툼이 일어나서 어느 한쪽이 다쳤을 것인데 그런 일이 안 일어나게 된 것만 해도 좋은 일이라고 대비 심씨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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