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화 (93/228)

 개혁의 시작 "전하. 홍문관 교리 구본민, 사간원 헌납 예양 입시이옵니다."

"들라하라."

지난번 공포의 점심시간에 한 번 당한 후 알현을 자제하던 구본민은 이번에는 자신의 동료까지 대동하고 일부러 점심시간을 피해서 알현을 요청했다. 둘 다 촉망받는 조정의 인재이기는 했는데 신권주의의 신봉자라서 그런지 균의 정책에 반대의견을 많이 내놓았다. 특히 사간원 헌납(정 5품) 예양 같은 이는 지방의 군수자리(종4품)로 갈 기회도 있었는데 '네가 아니면 전하의 잘못은 누가 간하겠는가?' 라는 말을 남기고 이를 거부한 이였다. 요즘으로 치면 균의 저격수라고 해야 하나...

"그래 경들은 과인이 신임 사헌부 지평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무슨 일로 과인에게 알현을 청한 것인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왕에게 알현을 청하는 것은 예의에 옳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유학에 밝은 저들이 이지함이 알현중이라는 사실을 대전내관에게 들었을 텐데도 알현을 청했다는 것은 그 정도는 상쇄할 카드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균의 옆에도 이지함이라는 거물이 있는데다가 그 구본민과 예양 둘은 번번이 균의 마수에 걸려서 고생을 해본 적이 있는 자들이기에 균은 그들이 내놓을 카드를 걱정하지 않았다.

"신 사간원 헌납 예양이 아뢰옵니다. 전하. 당장 수미법을 폐하시옵소서."

"수미법을 폐하시옵소서. 전하."

두 사람이 수미법을 폐지하라고 청하자 균은 이를 궁금히 여겼다. 두 사람 모두 수미법에 관련되어 발생하는 일에만 반대를 했을 뿐 이렇게 직접적으로 수미법의 폐지를 요청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균도 이를 어여삐 여겨 공포의 점심시간 뒤에 야근을 하는 구본민에게 특식을 내려주는 등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반대는 각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같이 와서 수미법의 폐지를 권하자 균도 기분이 나쁜지 목소리가 커졌다.

"과인에 정확한 이유도 고하지 않고 다짜고짜 수미법을 폐하라는 소리를 하다니 경들이 지금 제정신들인가? 공납제로 인해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이 수미법이 시행되자 춤까지 추었다는 암행어사들의 장계가 여기 이렇게 쌓여있거늘, 경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망발을 입에 담는 것인가?"

"전하. 공납들을 여러 토산품이 아닌 쌀로 받다보니 수확기인데도 쌀값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농사를 지을 땅이 없어 쌀을 사서 먹어야 하는 한성부의 주민들이 고통이 크다 하옵니다. 때문에 한성부의 민심이 나날이 나빠지고 각종 유언비어가 날뛰고 있사오니 큰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홍문관 교리의 말이 지당하옵니다. 가뜩이나 흉년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데 수미법은 백성들로부터 쌀과 베를 거두어 드리는 것이옵니다. 하오나 베는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길이가 들쭉날쭉하는 바람에 제대로 수령이 안 되옵고 덕분에 백성들은 비싼 쌀을 사서 조정에 세금으로 바치옵니다. 때문에 쌀값이 폭등하여 백성들의 부담이 무척이나 크고 한성부민들은 먹을 쌀이 없어서 굶주리는 자가 부지기수이옵니다. 이 상황에서 어찌 수미법을 고집할 수 있겠사옵니까? 다시 생각해주시옵소서. 전하."

"전하. 이미 소식을 접한 조정의 대소신료들도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조정에 비축된 양곡이 적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옵니다. 차라리 공납제를 다시 시행하여 여러 산물을 골고루 받아들이는 길이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음~!"

균이 새로 시행한 수미법은 쌀과 베로 공납을 대신하도록 하였는데 문제는 베의 길이가 들쭉날쭉하고 그 질이 천차만별이라서 16세기 중엽에는 물품화폐로써의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선관청에서는 수납을 쌀로만 받고 있었다. 덕분에 수확기인데도 쌀값이 올라서 한성부과 산간지방, 북부지방 등 쌀이 나지 않은 지역에서는 쌀의 품귀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런 소식을 접한 젊은 두 사람이 나서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다시 공납제로 돌아가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충분히 두 사람의 의견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실제로 비싼 물가 때문에 추석차례상을 차리지도 못하다는 한성부민들의 불만은 상당한 것이었다. 거기다 이러다가는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좌, 우 포도청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균이나 이지함 모두 그 얼굴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균은 헛기침을 한 후에 단호하게 말했다.

"불가하다."

"전하.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경들은 암행어사의 장계들을 읽어보았는가?"

"예. 전하."

"거기에 올해 농사가 흉년이라고 하였던가? 아니면 풍년이라고 하였던가?"

"흉년이 든 곳도 있고 풍년이 든 곳도 있다고 하였나이다."

균은 암행어사를 20명이나 파견했다. 덕분에 살인적인 일거리에 치어죽기 직전이지만 대궐에서도 지방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암행어사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각 도에 2~3명꼴이니 서로 경쟁이 붙어서 보고서의 내용이 충실했다. 그래서 균은 자신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세세한 사정까지 다 알고 있었고 일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도 잘 알았다. 덕분에 균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강녕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러한 균의 목소리와 함께 균이 서안을 두드리는 소리도 요란하여 밖에 있던 내관과 궁녀들이 모두 놀란 가슴을 달래야 했다.

"그렇다면 조선 전체의 농사는 평년작이다. 그런데 작년의 흉작 때보다 쌀값이 비싸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거기다 조정이 바쳐지는 쌀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은 쌀을 각 지방의 관청에서 토산물을 사는데 사용되기에 다시 지출된다. 당장 조정의 창고에 그만한 쌀이 없는데 조정의 관리라는 자들이 수미법으로 쌀값이 오른다는 그런 헛소문을 믿는 것인가?"

"하오나 전하. 실제로 쌀값이 많이 오른데다가 백성들의 생각이..."

"쾅! 쾅! 쾅!"

"...."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 어찌 막중한 나라의 일을 다루겠는가? 밖에 대전내관은 있느냐? 당장 내금위장과 좌우포도대장을 불러들여라! 한성판윤도 같이!"

"예. 전하.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잠시 후 한성판윤(정 2품) 박순, 내금위장(종 2품) 곽흘등 당상관급의 대신들이 줄줄이 강녕전으로 불려왔다. 구본민과 예양에게 무신들이야 품계가 높아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박순 정도 되는 사람이 불려왔다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역사대로라면 5년 후에 정승이 되고 10여년 후에는 영의정이 되어 15년간 그 자리를 지키는 거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순이 나타나자 젊은 두 문신의 얼굴을 사색이 되었다. 까딱하여 박순의 눈밖에라도 나면 앞으로 진급에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생각은 균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깨끗이 사라졌다. 균의 눈 밖에 나면 진급은커녕 벼슬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과인이 듣기로 한성부 백성들 사이에 수미법이 실시되어 쌀값이 올랐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다. 하나 작년의 흉작에 비해서 올해는 평년작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쌀의 수확량이 많은 데 이 소문이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런 헛소문이 도는데 한성부를 책임지는 한성판윤과 치안을 맡는 좌우포도대장들을 무엇을 했는가? 이는 엄연한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

"송구하오나 전하. 신 한성판윤 박순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말해보라!"

"신들도 이에 대하여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오나 물건이란 많이 사용되면 사용될수록 가치가 늘어나는 법이옵니다. 더욱이 쌀은 중요한 식량뿐만 아니라 사실상 우리 조선의 화폐로 쓰이는 물건이옵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쌀로만 세금을 바치게 하니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판윤. 고작 그것이 핑계인가?"

한성판윤인 박순이 변명을 한다고 하였지만 균의 말은 싸늘했다. 덕분에 강녕전 전체에 아직 가을철인데도 불구하고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작은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강녕전에 잠시 후 균의 불호령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올해 농사는 평년작이라서 백성들이 부족하게나마 밥을 제대로 챙겨먹을 수준은 된다. 이는 팔도의 관찰사들이 올린 장계에서 일치하는 내용이며 암행어사의 장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지방관아에서 수미법으로 쌀을 거두었어도 다시 그 쌀로 조정에서 필요한 물자를 사서 보내는지라 중앙관청이나 지방관아에 쌓여있는 쌀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전국팔도에 쌀이 부족하여 백성들이 아우성친다고 하니 그 많은 쌀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아니면 어떤 놈들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겠나? 경들이 생각하기에 어떤 것이 맞다고 보는가?"

"그야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을..."

"그래 바로 그것이다. 방금 과인이 말한 내용을 잘 들었으면 알겠지만 백성들에게서 걷은 쌀이 지방관아에서 원래의 방납업자들에게 넘겨졌다. 그 다음에 쌀이 부족하다고 백성들이 난리를 친다. 그렇다면 그 어떤 놈이 바로 방납업자라는 것은 저잣거리의 꼬맹이도 아는 사실이야. 그러면 과인과 경들은 어찌해야겠는가? 수미법대신 공납제를 부활시켜? 그것이 바로 놈들이 노리는 것이야. 한마디로 지금의 쌀값폭등이 과인이 추진하는 수미법 때문이라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백성들에게 폭동을 사주하여 과인과 조정의 바른 뜻을 꺾고자 하는 것이란 말이다."

"....."

"그런데 조정의 대소신료라는 자들이 쌀값이 오른다고 과인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수미법을 폐지하자고 조르는 꼴이라니 이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또한 한성부를 담당하는 판윤과 포도대장들이 그런 헛소문을 진정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쌀을 많이 쓰면 귀해진다는 말이나 하고 그래서야 과인이 누구를 믿고 백성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할 수 있겠는가?"

강녕전안은 균이 서안을 두들기는 소리와 균의 화난 말소리만이 지배할 뿐 신하들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하지만 이지함은 균의 호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균이 신하들을 휘어잡으려는 술책 중에 하나였다. 자신이 아는 한 균은 그렇게 허술한 정책을 펴는 이가 아니다. 당연히 쌀값의 폭등과 수미법에 반대하는 방납업자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나중에 공납이 대동법으로 바뀌어 토산물대신 쌀과 베 그리고 돈으로 대신하게 한다. 전하는 이점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시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일부러 돈을 포함시키지 않으셨다. 거기다 요즘에 베는 그 가치가 떨어지는 추세라서 사실상 조선의 화폐는 쌀뿐이다. 그렇게 전하께서는 일부러 쌀값을 올려서 함정에 걸려 쌀을 매점매석한 자들을 치려는 것이다. 동시에 그와 연계된 양반들에게도 알아서 기어라는 충분한 경고가 되겠지. 그리고 그들의 재산은 모두 국고로 환수되고 주상전하의 힘이 된다. 곧 내금위장에게 명령이 떨어지겠군.'

"내금위장은 지금 즉시 내금위의 위사를 이끌고 백성들의 고충을 생각하는 과인의 성지(임금의 뜻)를 꺾고 자신들의 잇속만 차리려고 하는 역적무리들을 토벌하라. 지금부터 한성부일대의 모든 군사권은 과인의 특명으로 내금위장 곽흘에게 귀속된다. 이는 오위도총부는 물론 좌우포도청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한성부 사대문의 개폐여부는 물론 경기도일대에는 과인의 허락을 맡지 않고 토벌활동이 가능하다."

"예. 전하. 신 내금위장 곽흘. 어명을 받들어 역적의 무리를 처단하겠나이다."

역시나 이지함의 예상대로 균은 내금위장 곽흘에게 방납업자들을 역적으로 규정하고 토벌을 명령했다. 일개 상인들을 역적으로 몰아버리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았지만 내금위가 개입할 명분과 강력한 처벌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적합한 명령이었다. 그래서 포도대장과 한성판윤을 불러들여 그들을 바보로 만들어 내금위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거리까지 만들어둔 것이다.

균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 식식거리며 날카로운 인상을 지었다. 평소의 웃는 인상에 비해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균의 인상은 사정전마저도 계절을 몇 달 앞당겨 주기에 충분하였다. 덕분에 임시어전회의에게 참여한 신하들 역시 싸늘한 분위기를 느꼈다. 엄밀히 말해서 반역으로 몰기에는 어려운 사건이지만 상당수의 신하들도 내심 균의 행동에 찬성을 하고 있는 터라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납업자들은 상당수가 상인이라서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세력이 크기에 그렇게 군사력으로 밀어버리기는 곤란했다. 참석해야하는 신하들이 모두 모인 뒤에야 균이 입을 열었다.

"과인이 요즘 한성부에 해괴한 소문이 떠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고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노라. 감히 일개 상인 나부랭이들이 담합하여 쌀을 백성들에게 팔지 않고 창고에 쌓아두고 비싼 값으로 팔면서 그 비난을 과인에게 돌리고 있었다니 이는 과인을 능멸하는 대역죄에 해당한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경들도 이번 사태에서 보았겠지만 국초에는 상인들이 힘이 미미하여 선대왕들께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이제는 상인들의 힘이 커져 그들을 지금과 같이 그냥 나두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과인은 왕실의 통제하여 있는 내, 외수사를 동원하여 한성부의 백성들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또한 이러한 건방진 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한다."

"송구하오나 전하. 아니 될 말씀이시옵니다."

"대제학은 그것이 무슨 뜻의 말인가? 당장 일개 상인 놈들이 누구를 믿고 벌였는지는 몰라도 매점매석을 행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폭동을 사주하여 과인과 조정의 뜻을 꺾고자 하였다. 그런 반도들을 그냥 두고 보면서 과인이 그들의 눈치나 보고 백성들은 그들의 잇속을 위하여 죽어 나가라는 소리인가?"

균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자신의 학문스승이며 정치적으로 큰 도움을 받는 이황에게까지 역정을 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균이 건방지다고 하지 못했다. 감히 사농공상의 가장 끝인 상인이 가장 높은 사 즉 선비들이 결정하여 내린 일을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려고 했다는 데서 그들의 분노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 내에 있는 상인들과 연계한 탐관오리들도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황이 나선 것이었다.

"전하. 신 홍문관 대제학 이황이 전하께 한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상인들의 행동은 백번을 죽어서 마땅한 것이나 지금 상인들을 모두 제거하고 조정이 이를 대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옵니다. 이미 세종대왕께오서는 이러한 상업이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하시고 조선통보를 주조하시고 도량형을 정비하시는 등 여러 가지 일을 벌이셨지만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하셨사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내, 외수사로 상인들을 대신할 있다고 하셨으나 실패를 하면 백성들의 고충이 무척이나 클 것이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고 신중하게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과인과 백성들을 생각하는 대제학의 뜻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외수사가 무엇인가? 과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만든 일종의 상단이 아닌가? 지금 외수사의 관헌들이 과인의 옛 수하들이니 원래는 상인이라 할 수 있도다. 경의 염려대로 상업을 모르는 이가 상인을 대신할 수는 없어서 지금까지 상인들을 대신하려는 조정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하였고 경의 걱정이 그 것 때문이라는 점도 과인을 알고 있다. 하지만 외수사의 관헌들은 원래 남도의 이름난 상인들이니 그렇게 걱정할 것이 없다."

외수사의 전 명칭은 비금도 상회이고 그 주인이 바로 균이다. 균의 계획에 따르면 이번에 한성부를 근거로 하는 상인들은 모두 사라진다. 상당수가 비리에 관련되고 균의 정책에 반대하는 기득권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우 한성부의 백성들은 물자공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개혁을 하려던 조정의 노력이 번번이 실패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균은 이미 외수사라는 상인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다 그들은 몇 년간 자신을 따라서 고생을 한 일종의 가신들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성부일대의 상권을 맡기면 백성들의 생활안정과 기득권 상인들의 제거 가능, 그리고 가신들을 한성부 근처에 포진시킬 수 있다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균이 이번에 일을 꾸미고 화가 난 척 밀어붙이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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