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228)

 개혁의 시작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

균의 출신내력이 떠오른 이황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평화로운 궁궐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자라난 왕자가 아닌 어린 나이에 죽은 아비를 대신하여 가족을 부양하다가 여러 종친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런 자 앞에서 현실은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황이 물러나자 더 이상 균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신하는 없었다.

아니 머리는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이 따르지를 않았다. 상대는 방계의 왕족출신으로 왕위를 계승한 소년이지만 지금 내뿜고 있는 기운은 선대왕 명종과는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었다. '하성군이 왕위를 잇기 위하여 순회세자를 염라대왕이 데리고 갔다.' 는 옛 소문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신하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의 감각이 '나가면 찍힌다.'라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간 크게 균에게 말하는 이가 있었으니 얼마 전 호조정랑(정 5품)으로 승진한 이이였다.

"신 호조정랑 이이가 아뢰옵니다. 소신은 주상전하께서 바른 뜻을 굳게 세우시고 그런 모리배들을 처단하여 백성들을 기쁘게 하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하나 주상전하께서 한성부에 대한 식량과 생필품 공급을 외수사에 맡기심은 옳지 않사옵니다. 먼저 외수사는 주상전하의 재산을 관장하는 기관일 뿐 조정의 정식관청이라고 보기고 어렵사옵니다. 본래 왕실의 재산을 맡고 있는 내수사의 경우에도 전하의 위엄을 빌려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많아서 지탄을 받았는데 외수사가 그렇게 중차대한 일을 맡는다면 필시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전하의 위엄에 누가 될 것이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이이가 나서기 무섭게 신하들은 모두 통촉하여 달라고 외치며 균의 한성부 상권장악에 반대를 표했다. 이이의 표면적인 뜻은 외수사도 내수사처럼 국왕의 권력을 믿고 여러 가지 불법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서 안 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내수사는 백성들의 농지를 강제로 빼앗는 등 왕의 권력을 믿고 일부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이의 속뜻은 한성부의 경제권이 왕의 손에 쥐어지는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이번처럼 물가변동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정국을 만들려는 균의 내심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당장 사람은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왕이 이것을 통제한다면 민심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었고 이는 왕권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이가 나서고 신하들이 반대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미 왕권은 충분히 강했다. 아니 왕권이 강하다기 보다는 왕이 너무 뛰어났다. 저 정도의 왕이라면 신권을 누르는 것은 일도 아닌데 그런 권한마저 왕에게 넘어간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목을 죄는 칼(여기서는 죄인들이 목에 차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이가 용기를 내고 신하들이 뒤를 이어 균에게 반대를 표한 것이다.

그런 이이의 신하들의 반대에 직면한 균은 오히려 우습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고려하는 바로는 도저히 외수사를 제외한 대안이 없다. 호조 같은 정부기관은 경제를 모르는 사대부들의 모임이니 제외, 현재 한성부의 상권을 잡은 상인들은 반역죄이므로 이들을 용서하자고 하다가는 역모에 동조하고 있다고 숙청이 가능할 것이고 지방의 상단들도 알게 모르게 방납의 문제에 관련이 있다. 그러면 남는 것은 국왕의 외수사일 뿐 별 다른 대안이 없는데도 이이와 신하들은 무조건 반대를 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균은 살짝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좋다. 그렇다면 경은 한성부의 물자보급을 외수사가 아닌 어느 곳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 전하. 소신의 생각으로는 조정의 재정업무를 수행하는 호조와 그 속아문(소속 관청)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사료되옵니다."

"호조가 가장 적합하다.... 그렇다면 한성부의 백성들은 다 굶어죽겠구나. 왜 선대왕들께오서 큰 이익이 남는 염전이나 다른 사업들을 나라에서 직접 경영하지 않고 궁방(종친들)이나 상인들에게 맡겨 세금만 받도록 하신 연유를 경은 제대로 모르는 것인가? 아무리 호조의 관리들이라 하여도 상업에 밝은 자가 없거늘, 이십만 한성부민들이 호조의 실수로 다 굶겨죽이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인가?"

원래 고려 때는 소금은 국가의 주 수입원중 하나였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대부분의 소금은 지정된 소금상인들에 한하여 허락되고 일부 관청의 재원이 되었을 뿐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조선 초기에 농업으로만 해도 재정이 충분했던 데다가 사대부들이 상업을 천시하여 소금관련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대의 일이지만 호조가 소금전매제를 시행했다가 소금품귀현상이 발생하여 얼마 못가서 소금전매제는 폐지된 적도 있었다.

이처럼 아무래도 사대부들은 상업쪽에 밝은 사람은 드물었다. 당시에 상당한 수준의 산학을 사대부들이 익혔다고는 하지만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학문적인 목적이 강했고 또한 산학을 잘해도 경제문제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이가 호조와 그 속아문에서 맡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 자신이 생각해도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실제로 호조가 그렇게 계산에 밝았다면 정부와 거래하는 상인들이 자본을 비축하여 후대에 도고상인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호조가 한성부의 식량공급을 맡았다가는 식량폭동이 일어나기 딱 알맞다. 보나마나 현실과는 다른 계산으로 인하여 어느 한 곳이라도 구멍이 날 것이고 물가는 폭등하고 백성들은 불만에 가득 찰 것이다. 이이도 호조소속의 관리인지라 이런 사실을 잘 알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일단 호조에서 맡게 하여 한성부의 경제권이 국왕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이이는 한성부의 경제를 조정하는 것을 호조에서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송구하오나 전하. 국초에는 나라의 살림살이가 풍족하여 다른 일에 신경을 안 쓴 것 뿐이옵고 그때의 나라사정과 지금의 나라사정은 퍽이나 다르옵니다. 호조의 관리들은 무척이나 유능한 인재들이오니 너무 심려하지는 마시옵소서. 전하."

"한성부의 인구는 20만이다. 고작 수천 명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것도 상인들에게 속아서 번번이 비싼 값을 치루는 호조가 20만을 관장할 수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럼 호조정랑의 말대로 한 번 호조에 맡겨는 보겠다. 하지만 물자공급이 제대로 안되거나 물건을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사들여 국가재정에 피해가 간다면 그 피해의 2배로 호조의 모든 참상관이상(종 6품이상)의 관리들에게 책임을 묻겠다. 앞으로 호조의 유능한 인재들 때문에 국가재정에 쌀 한 톨의 피해라도 있다면 그것은 곧 공금횡령이다. 경들은 이를 명심하라."

"....."

"앞으로 호조의 임무가 막중해 졌기에 왕실에 물자를 공급하는 임무등 호조의 속아문이 맡던 일은 외수사가 담당한다. 호조는 호조판서의 지휘 하에 한성부의 물자보급에 만전을 기하라. .... 왜 대답들이 없는 것인가? 과인의 어명이 들리지 않는가?"

"...망극하옵니다. 전하."

"음! 음!"

균은 이이의 주청을 받아드려 한성부의 경제권에 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고는 즉시 옥좌에서 박차고 일어나서 얼굴이 창백해진 신하들을 놔둔 채 문을 활짝 열고 나왔다. 사정전을 박차고 나온 균은 웃고 싶어졌다. 신하들이 외통수에 걸린 셈이기 때문이다. 20만 명이 먹고 자고 입는 것을 관장하는 것은 대상인들 이라 하여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상인출신으로 구성된 외수사라고 하여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되는 일이다.

군대라고 해도 20만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은 엄청난 것인데 20만의 백성들이면 당연히 불평불만이 쏟아질 수밖에는 없고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실정으로 남게 된다. 조선의 역사를 둘러보아도 정부가 경제문제에 개입하여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앞서 말한 소금전매제는 물론이고 당백전과 당오전 같은 부실화폐의 발행으로 국가 경제력을 좀 먹는 등 경제라면 젬병인 자들이 20만 한성부민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장사수완이 없는 양반 사대부들이 20만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대로 공급하려면 상인출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너희와 손이 닿은 상인들을 가만히 놔둘 것 같았느냐? 잠시 조선상계는 초토화 되겠지만 이번 기회에 싹 판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너희들은 한성부라는 괴물에게 먹이나 열심히 대주어라. 그동안 나는 할 것이 많으니... 후후후.'

원래 외수사를 한성부로 불려 들이려고 했던 균은 이이의 말에 다시 생각을 바꾸어 대궐일대로 한정시키기로 했다. 당장 한성부를 장악하는 것도 좋지만 양반사대부들이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은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양반들은 20만 한성부민들을 먹여 살리느라 막대한 자금을 낭비할 가능성이 높으니 신하들과 대립해가면서 급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또한 양반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깨닫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이성적인 균의 머리는 이것이 더 이익이라는 계산을 내린지 오래였다. 그래서 균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고는 일부러 대립을 하는 척하다가 그 권한을 넘겨줘 버린 것이다. 균은 곧 강녕전으로 향했다. 거기서 새로운 밀명이 외수사와 내금위에 내려질 예정이었다.

균이 신하들과 사정전에서 한창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내금위장 곽흘이 지휘하는 내금위 위사 2000여명은 주둔지를 출발하여 한성부내의 소문난 부잣집들을 포위하고 수색했다. 부잣집의 곳간에는 충분한 쌀이 쌓여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내금위는 이것을 증거로 하여 부자들을 쌀값급등을 배후 조작한 죄로 모두 체포하고 전 재산을 압수하였다. 물론 억울한 자가 수없이 많았지만 상당수의 부자들이 공납업자들과 간접적이라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검거 열풍은 한성부를 사정없이 몰아쳤고 어느덧 역관 민세현의 집에도 내금위의 병사들이 밀려들었다.

"쾅! 쾅! 쾅!"

"이 밤중에 누구시오?"

"주상전하의 어명이다. 역관 민세현은 어서 문을 열고 나와 오라를 받으라!"

"어.. 어명이라니.."

"뭐하느냐? 감히 주상전하의 어명을 받들지 않을 것이냐?"

"아닙니다요. 즉시 대문을 열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따라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민세현은 이러한 소란에 잠에서 깨어났다. 한때 촉망받던 역관이던 민세현은 균이 왕위에 오르고 정인기가 도승지에 올라 권력자로 등장하자 더 이상 사행에 참가할 수 없었다. 역관의 수입이 좋다보니 역관지원자가 증가하는 바람에 조정에 연줄이 없으면 명나라로 파견되는 사행단에 포함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세현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그 이자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조용히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밤에 잠에서 깨어보니 수많은 병사들이 그의 집을 에워싸고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창고에 있던 재물을 모조리 끌어내고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자신의 몸은 오랏줄에 묶여가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바짝든 민세현은 발버둥을 치려고 했지만 그의 목에 느껴지는 칼의 차가움에 민세현은 침만 삼키고 있을 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힘들게 모아온 재산들이 병사들에 의해서 집 밖으로 나가자 민세현은 용기를 내어 말을 해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보아하니 군사들 같은데 왜 이렇게 약탈행위를 하는 것이오? 하늘이 두렵지 않소?"

"탁!"

인간의 머리와 육모방망이가 부딪치는 엄청난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그 단단한 육모방망이가 부러졌을 정도로 세게 맞은 민세현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민세현의 아내가 제 남편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지만 병사들은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방이 떠나갈듯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아이고. 여보~! 아이고. 내 서방 죽네~!"

"역적질을 한 자들이 왜 이렇게 시끄럽나? 저 계집도 조용히 시켜라."

"예. 여수님."

"탁!"

내금위 제3부 소속의 수많은 여수(장교급)중에 하나인 진성확은 감히 주상전하께 반하는 역적의 무리들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자 무척이나 짜증이 났다. 그가 내금위 제 3부장인 정병은에게 들은 바로는 이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방납업자들을 지원하여 이번 반역을 뒤에서 조정한 자들이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특히 방납업자라면 이를 가는 진성확의 몽둥이는 과히 살인적이었다.

지금은 내금위소속의 장교인 진성확은 원래 황해도에 살던 자영농중 하나였다. 하지만 흉년이 들어 자신의 세금을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옆집 사람들이 야반도주하고 관아에서 그 세금까지 진성확에게 부과하자 조그마한 토지를 빼앗기고 소작농이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공납의 부담은 남아있었는데 고작 베 1필을 대신 납부한 상인들이 베 10필을 내놓으라는 억지를 부리고 관아와 결탁하여 그나마 남아있던 살림살이마저도 가져가 버렸다.

그래서 그는 다음해 가족들을 이끌고 임꺽정패거리에 입단하여 산적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과 이웃을 괴롭히던 자들과 싸움을 벌였는데 이에 백성들을 돌보아야할 조정은 탐관오리와 방납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토벌군을 보냈고 위기에 빠진 진성확은 그때 처음 현 주상 균을 보았다. 자신이 보기에는 치밀한 전략으로 토벌군을 처리한 균은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배를 동원하여 자신과 가족들에게 안전한 거주지와 보수가 좋은 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거기서 진성확과 가족들은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균은 왕위에 올랐고 진성확의 죄를 형조의 문서에서 지워주었다. 그리고 호패도 재발급하여 원래의 신분을 되찾아주었다. 이렇게 진성확에게는 균은 절대적인 은혜를 베풀어준 분이었고 내금위소속 병사들의 충성심은 남달랐다. 그런데 자신의 은인이자 이 나라의 주인이신 주상전하께서 다른 백성들도 잘 먹고 잘살게 하려고 공납제를 폐지하고 수미법을 시행하는데 감히 주상전하를 모함하고 폭동을 사주한 역적의 무리들을 이렇게 살려서 압송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진성확은 불만이었다. 하지만 명령이기에 꾹 참고 착하게 일을 하려는데 그것도 모르고 앞에서 왈왈거리는 꼴이라니...

아마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균의 어명이 없었다면 그날 저녁을 전후하여 염라대왕 최영도 오랜만에 바쁜 일과를 보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균의 어명을 어기는 자들은 없었고 진성확같은 내금위 위사들에 의해 부자들은 반죽음이 되어 의금부로 끌려갔다. 다음날 혜민서의 의원들이 모두 의금부로 출근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의금부는 죄인들을 취조하기는커녕 거대한 병원으로 변했다.

부자들이 초죽음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던 한성부 백성들을 처음에는 내금위가 횡포를 부린 것인 아닌지 의심하였으나 다른 소문이 퍼지면서 꼴좋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균이 박수익을 통하여 정보공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봐, 김서방. 이번에 주상전하도 연산군처럼 포악한 사람이 아닐까? 도성안의 부자들은 죄다 반쯤 죽여서 의금부로 끌고가다니 보나마나 나라살림이 어렵다니까 부자들 재산 빼앗으려고 저러는 것이 분명해."

"쯧쯧쯧. 박서방, 자네 소문도 못 들었나?"

"무슨 소문?"

"글쎄 저 부자 놈들이 이번에 쌀을 창고에 숨겨서 쌀값을 오르게 한 원흉들이래."

"그게 참말인가?"

균을 연산군에 비유하는 박서방에게 옆에 있던 친구 김서방이 자신이 들은 소문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물론 상당수는 박수익이 퍼트리는 소문이었는데 거의 사실이었다. 90%의 사실에 10%의 거짓이면 100% 사실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박수익은 이를 이용하여 적당한 수준의 거짓을 섞어서 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에 그 소문은 한성부 전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원래 상인 놈들이 쌀 1말을 대신 납부하고 쌀 1섬을 받아가고 베 한필을 대신납부하고 베 3필을 받아가는 놈들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런 짓을 하려면 그만한 돈이 없으면 불가능해. 조정에 바치는 시기와 백성들에게 뺏는 시기가 차이가 나니까. 그래서 지금의 부자 놈들이 자신들이 직접 방납을 해서 이익을 챙기거나 아니면 뒤에서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는 거야. 그렇게 해서 자기들 배를 불리고 있는데 주상전하께서 공납을 금하고 수미법을 시행하니 주상전하 때문에 쌀값이 오른다고 모함을 하려고 했다가 덜미를 잡혔다는구먼."

"그게 참말이여?"

"안 그래도 물건 값이 비싸서 추석상을 못 지내는 사람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았잖아. 그게 다 저 부자 놈들이 사주한거래. 그래서 주상전하께서 이를 반역으로 규정하시고 내금위를 풀어서 다 잡아드리시는 거래. 그러니까 죽을 놈들은 저기 부자 놈들이지."

"저런 쳐 죽일 놈들이...."

박수익의 탐보망에 힘을 입은 소문은 한성부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 덕분에 좀 나중에 체포되어 가던 부자는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죽을 뻔한 일까지 생겼다. 군중심리란 불이 붙으면 무서운 것이다. 백성들은 앞 다투어 의금부로 찾아와서 부자들을 다 죽이라고 난리를 쳤다. 덕분에 내금위장 곽흘은 내금위 수백 명을 포진시켜 잡혀온 부자들을 보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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