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228)

 개혁의 시작 "신 호조정랑 이이가 아뢰옵니다. 소신의 경륜이 부족하고 그 생각이 짧고 모자라 주상전하의 심기에 불편을 끼치고 나라의 대사를 망쳤사옵니다. 이에 소신은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호조정랑의 자리를 체직하기를 바라옵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경과 호조판서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기존의 상단들이 붕괴하여 새로운 거래선을 찾는 것도 힘겨워 그 노력이 빛을 보고 있지 못하다고 들었다. 특히 경의 노고는 상당한 것이나 글만 배우는 사대부들이 상계의 복잡한 생리를 안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경의 생각이 그러하다니 호조는 그 임무를 차례로 외수사에 이관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또한 이이의 청을 받아드려 호조정랑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나, 이이에게 큰 죄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조와 삼사에서는 이 점을 명심하여 차후에 이번 일이 거론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음날 사정전에서 열린 상참에서 이이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체직을 청했다. 체직이란 벼슬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사직을 청하는 것이다. 원래라면 조용한 자리에서 직접 사직을 청하거나 사장(요즘의 사표)을 올려서 사직을 청하는 것이지만 이번 일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을 하여 이렇게 조정의 주요 대신들이 참석하는 상참에서 공개적으로 체직을 청했다.

당연히 조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호사림들의 표정은 놀라움과 혐오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표정은 비웃음으로 바뀌어갔다. 원래부터 그들 중에서 이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이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표해서 나섰지만 그 호응이 많지 않았던 것인데 그가 자신들의 지원금을 받고는 얼마 뒤 균에게 항복을 하여버리자 실망감과 평소의 시기심과 겹쳐서 '잘 난체 할 때부터 알아봤다.' 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이도 그런 점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기호사림들이 모아준 10만 냥의 거금을 날려버린 이상은 아무리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균을 견제해도 돌아오는 것은 동료들의 싸늘한 비웃음뿐이다. 그래서 정계에서 매장당하여 초야에 은거할 바에는 차라리 자신에게 손을 내민 균을 따르는 편이 더 나았다. 자신이 글공부를 한 것은 자신의 뜻을 펼쳐서 흔들리는 조선을 반석위에 세우는 것이지 시골 훈장노릇이나 하자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이는 균의 의견을 따랐고 균은 이를 받아들여 잠시 함경도 암행어사로 파견했다.

이이가 물러난 후 외수사가 한성부의 상권을 이양 받는 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균이 이동명령을 내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 규모가 국내 최대 상단인 송상에 비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수사의 주요 관헌들 즉 비금도 상회의 주요 부장들은 한발 앞서 한성부로 상경하여 주군인 균을 알현했다.

"하하하. 경들을 다시 보게 되니 과인의 감회가 새롭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과인이 한성부에 있었다고는 하나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경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소. 비록 경들이 지금은 낮은 관직에 머무르고 있으나 과인이 믿고 일을 맡길 만 한 신하는 경들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간의 자세한 사항은 이미 보고를 들어 알고 있고 또한 시국이 하 수상하여 경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도 못 베풀어 주는 것이 과인은 마음에 걸리오. 하지만 경들에게 각각 집 한 채씩을 하사하고 살림살이를 따로 준비하여 줄 것이니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시오."

"어찌 소신들이 주상전하께 서운함을 느끼겠사옵니까? 소신들은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그 기쁨을 억누를 길이 없사옵니다."

63년 초에 마지막으로 보고 66년 말에 만나는지라 거의 4년 만에 만나는 가신들이지만 아직 역모사건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많은 시간을 같이할 여유가 없는 것이 균은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만이 자신의 신하가 아닌지라 다른 신하들의 동향도 눈여겨 봐야하는 처지기에 균은 크지 않은 살림집을 직접 마련해주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신하들이 트집을 잡을까 봐서 나상도방 김형중의 돈을 조금 사용하여 마련했다.

외수사의 가신들 특히 재정부장 김호진이 올라오자 외수사는 점차 제 기능을 발휘하며 조금씩 호조의 권한을 이양 받았다. 거기에 나상도방 김형중은 김호진의 밥(?)수준이기에 호조와 외수사 그리고 나상이 협력을 하여 비축물자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한성부의 상권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반 공백상태인 한성부의 상권을 노리고 송상이 진출을 시작하고 나상과 송상의 점유율에 놀란 기존의 한양상인들도 연합체를 구성하여 대항하는 등 한성부의 유통망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갔다.

거기에 균도 비상시국을 유지하는데 정치적 부담이 크기에 서둘러 역모사건을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먼저 의금부에 잡혀왔던 상인과 역관들중 조금이라도 쌀값폭동에 연관이 있는 자는 전원 효수(목을 베어 죽임)하였고 방납으로 축재를 한자는 묵형(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벌)으로 처벌하고 그들의 전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켰다. 거기에 나머지 상인과 역관들도 죄를 꼼꼼히 따져서 그 죄질에 맞는 벌금형을 내리고 방면시켰다. 덕분에 상인들의 횡포에 고생을 해오던 한성부의 백성들은 강도 높은 처벌에 크게 기뻐하였고 균과 호조판서 홍담은 국고에 들어온 막대한 자금에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또한 박수익의 비밀탐보망에 걸린 정보와 이번에 상인들의 입에서 나온 정보를 합치자 거물들의 비리사실도 상당수 들어났다. 하지만 균은 적당히 소문을 내어 그들의 영향력을 축소시켜 나가기를 원했다. 썩은 환부를 확 도려내는 것도 좋지만 그 환부가 낫고 있는데 무리하게 수술을 해서 덧나버린다면 그보다 삽질은 없을 것이다. 거기다 이러한 비상시국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정치적인 부담이 되기에 균은 마무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한성부가 역모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을 무렵 조선의 북단인 평안도 옛 자성군일대에서는 조선군 평안병영 소속의 기마대가 압록강 일대의 변경지역을 수색하고 있었다. 세종대왕때 사군육진이 개척이 되어 조선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자연경계로 삼게 되자 조선은 더 이상의 북진을 포기하였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강이 주는 방어력이다.

사람들은 산맥이 방어하기 쉽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산악지역은 아군의 기동력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았고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강은 최고의 자연 방어시설이었고 조선은 이를 백분 활용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추운 겨울철에는 강이 얼어붙어서 여진족들은 손쉽게 넘어와서 약탈을 한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여진족이다!"

고작 수십 기에 불과한 조선군 정찰기마대를 향하여 최소한 일 백기는 되어 보이는 여진족 기마대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 것이다. 그것도 강을 건너서가 아닌 강변을 따라서 출현을 했다. 강을 건넌다면 미끄러운 얼음 때문에 조선군 정찰대가 도망칠 여유라도 있었겠지만 옆구리를 찔러오는 여진족을 발견한 것이 너무 느렸다.

"후퇴하라! 본진으로 퇴각하라!"

조선군 정찰기마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지휘관의 후퇴명령이 떨어졌지만 원래 오위도총부소속 별시위(중앙군 기마대)로 있다가 처음으로 정찰에 나온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 무과급제자출신들은 지급된 각궁을 쏠 준비를 하면서 동료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랐지만 그들 역시 실전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주인의 불안한 마음을 말들도 아는지 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무엇들 하는 것이냐? 빨리 정신을 차려라!"

'제기랄. 이렇줄 알았으면 보병이라도 데리고 나오는 것인데....'

만포진관 소속의 권관(종 9품) 유재명은 보병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만포병마첨절제사(정 3품) 장필무가 새로 만포진관에 배속된 군관들을 데리고 간단히 작전지역을 설명해 주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가 죽게 생겼다. 이미 노산군(단종)때 자성군이 폐지되고 버려진 땅이었기에 가장 가까운 조선군 주둔지는 만포진관이다. 물론 곳곳에 권보(권관이 주재하는 소규모 기지)가 있기는 하지만 기병은 거의 없고 보병 약간이 고작이었다.

유재명이 부하들을 다독거리는 사이 여진족 기마대는 시시각각 빠른 속도로 접근해왔다. 아까는 백여 명으로 보이던 여진족이 최소 이백은 되어 보이는 대병력임을 확인하자 혼란에 빠졌던 조선군도 정신을 차리고는 각궁을 꺼내어 편전을 날리며 철수하기 시작했다. 조선의 비밀병기인 편전은 그 사거리가 천보(1.2KM)에 이른다는 막강한 무기이다. 하지만 실제 유효사거리는 그보다 훨씬 짧아서 조선시대 무과 시험기준인 130보(156미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죽기 직전의 조선군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쑹~! 쑹~!"

조선군의 편전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자 몇몇 여진족들이 피를 뿌리며 타고 달리던 말에 떨어졌다. 하지만 여진족들은 죽어가는 자기 동료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조선군을 추격했다. 이제는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여진족들의 비명소리가 들릴만한 거리까지 접근했지만 조선군의 두 귀에는 여진족의 말들이 달리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편전을 날릴 만한 여유가 없자 조선군은 말을 달리는데 만 주력했지만 농사를 짓는 조선인이 기마민족인 여진족의 솜씨를 따를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조선군의 뒤를 따라붙은 여진족은 자신들의 활을 꺼내서 조선군을 향해 발사했다. 일명 만궁이라 불리는 여진족의 활은 사거리나 위력 면에서 조선의 편전에 비할 것은 못된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 발의 화살이 조선군 기마대의 머리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으악!"

"히히힝~!"

조선군의 귀에는 죽어가는 동료의 비명소리와 활에 맞아 쓰러진 말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 반전을 하여 싸우다가는 숫적으로도 상대도 안 되고 접근전에서 동북아 최약체를 자랑하는 조선군은 전멸이다. 차라리 한명이라도 만포진관에 여진족이 강을 건너지 않고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이 낫다.

땅을 울리는 말발굽소리, 말들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죽어가는 부하들의 비명소리가 권관 유재명의 귓전을 울렸다. 그리고 유재명 바로 옆의 군관 하나가 바로 유재명쪽으로 쓰러졌다. 문득 좌측으로 고개를 돌린 유재명의 눈에는 백여 기는 넘는 듯한 여진족이 또 나타났다. 그것도 얼어붙은 압록강이 아닌 아군지역에서 출현한 것이다. 이로써 유재명의 생각은 정리되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사실을 첨절제사 영감에게 알려야 한다. 여진족들의 출현 방향으로 보아서는 여진족들이 강을 넘어와서 우리 조선의 버려진 땅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래서 공격해봐야 큰 이익도 없는 우리를 이렇게 추적하여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살아야해. 알려야해.'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유재명의 말을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부하들의 구슬픈 비명소리와 말들이 쓰러지는 소리, 여진족의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의 뇌리에는 강계 진관에서 노닥거리고 있을 상관 장필무에게 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삼백여기의 여진족 기마대가 내는 고함소리는 우렁차게 들렸다.

"쑹~!"

"헉!"

유재명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 지나지 않았다. 등 한쪽에서 추위가 느껴졌다. 보나마나 여진족의 만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그의 등에 명중하여 갑옷이 뚫리고 뜨거운 피가 차가운 겨울날씨에 노출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감각은 무디어져 갔다. 그리고 잠이 마구 쏟아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성부의 군령통제기관인 비변사를 향하여 평안도 관찰사 김수문과 평안도 병마절도사 남치곤의 장계를 가진 전령이 평안도 감영이 위치한 평양을 출발했다.

상인들과 역관들에 대한 치죄가 끝나고 이이가 함경도 암행어사로 파견이 된 후 한성부는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오랜만에 농사도 평년이 들어서 쌀 등 식량공급은 충분했으며 한성부에서 독점적인 특권을 누리던 시전상인이 몰락하면서 나상, 송상이 한성부의 상권에 가세하여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물가는 계속 떨어졌다. 그래서 한성부의 사람들은 얼마 전의 피바람은 다 머리에서 지운 채 살기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도 돈의문을 통하여 달려오는 전령에 의해 깨어졌다.

전령이 전해온 장계를 전해 받은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곧이어 경복궁 궐내각사에는 비변사회의가 열렸다. 비변사는 현 조선의 최고의결기관으로 국정운영은 물론 군사전반을 관장하였다. 원래는 오위도총부를 통하여 군사권을 직접 챙겨오던 조선왕은 명종이후에 비변사가 상설화되면서 군사권을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비변사가 있다고 하여도 군권에 대한 왕의 영향력은 존재하지만 문제는 역대 조선왕들이 제 선조와는 달리 군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조선의 군사권은 신하들이 쥐고 있는 판국이었다.

물론 그 무렵 균도 계본(정식보고서)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궐내각사에 모인 대신들이 대책을 논의할 무렵 균은 시간이 남는다는 이유로 대비전에 거둥하여 이제 한창 기어 다니고 있는 정아공주를 데리고 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제 젖살이 한껏 오른 공주는 균의 홍색 곤룡포만 보아도 '까르르' 웃으며 기어왔다. 균이 들었다 놨다하면서 공주를 데리고 노는 사이 비변사의 일이 다 되었는지 영의정 이준경등이 강녕전에서 알현을 청한다는 내관의 말을 듣고서야 조선의 왕은 조선정부의 공식적인 군사대책을 알 수 있었다.

"자성은 옛날에 세종대왕때 우리의 강토로 편입된 곳이며 노산군때에 이르러 군을 폐하고 벼려둔 땅이옵니다. 하지만 엄연히 조선의 영토이거늘 호인들이 국경을 넘어서 서해평과 상단에 거주지를 건설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렇게 호인들이 자유롭게 사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다면 필시 나중에 화가 될 것은 자명한 일 이옵고 또한 그들은 우리 관군의 기마대를 기습하여 전원을 전사하게 한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나이다.

그리하여 평안도 관찰사 김덕룡과 평안도 병마절도사 남치곤이 상의하여 조정에 보고하기를 내년 4월에 지방군 이천을 동원하여 토벌작전을 시행할 것을 승인해달라는 보고가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비변사에서 여러 재상들이 의논한 결과 형편이 경솔히 거사하기가 어렵고 시기가 군사를 움직일 때가 아니니, 내년 여름의 거사는 우선 멈추고 힘과 예기를 길러 때를 기다려 움직여야 할 것이며 아무쪼록 만전을 기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내용으로 평안도 관찰사와 병마절도사에게 명령하는 것이 어떠할지 전하의 의중을 따르고자 하옵니다."

"비변사의 재상들이 신중히 결정한 것이니 아뢴 대로 하는 것이 좋겠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실제 명종 21년(1566)에 여진족의 자성군의 침입이 있었다. 그래서 관찰사 김덕룡과 절도사 오성이 토벌을 주창하자 비변사에서는 이를 거부하였고 당시 조선국왕 명종은 '아뢴대로 하라.'는 말로 그대로 승인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균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같아서야 자신의 백성들을 해친 여진족을 내금위를 파견해서 아작을 내고 싶지만 그만큼 균의 군사적 지지기반이 약화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균이 토벌을 주장하면 신하들이 최정예인 내금위를 파병하자고 할까봐 이렇게 균은 이를 악물고 그냥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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