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2년.
조선시대의 휴일은 매달 1일, 8일, 15일, 23일 그리고 각 절기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다수의 국민들이 휴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신분과 경제사정에 따라서 많이 달랐다. 예를 들면 농민의 경우에는 절기를 전후해서 농사일로 바빴고 국왕의 경우에는 일거리가 산적하여 쉬고 싶어도 못 쉬었다. 대궐에 출퇴근을 하는 내관이나 무수리, 의녀들도 그런 휴일을 지키지 못했고 교대로 돌아가면서 쉬고는 했다.
수많은 대전내관중에 하나인 상촉(종 6품: 왕의 행차시 초를 들어준다.) 홍번구는 어제의 일을 마치고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상선(종 2품) 정성우의 호출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바로 퇴근을 하고 싶지만 내시부의 수장인 상선 정성우는 주상전하의 심복 중에 하나였다. 몇 년 내로 판내시부사(정 2품)라는 최고직에 오를지도 모르는 정성우의 눈 밖에 나면 내관의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기에 홍번구는 눈물을 머금고 정성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인 홍번구입니다."
"들어오게."
홍번구가 정성우의 방에 들어서자 정성우와 함께 사복을 입은 선전관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전관이나 내관이나 왕의 옆에서 근무를 하는 자들이라서 그런지 그 선전관의 이름도 홍번구가 잘 알고 있었다. 선전관중에서 무예가 출중하기로 소문난 남형의라는 인물이었다. 홍번구가 자리에 앉자 정성우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다 대전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니 따로 소개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대들을 내가 부른 이유는 오늘 주상전하의 암행이 있기 때문이네."
"하지만 상선영감. 오늘이 관청이 쉬는 날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낮부터 암행 있다니요? 전하께서 처결해야 하실 계본(정식보고서)이며 계목(약식보고서)이 하루에도 수백건이온데..."
"자네는 명색이 대전내관이면서 전하의 별호가 일인조정이라는 것도 모르나? 선대왕마마때라면 오늘 같은 휴일이라도 정무를 돌보셔야겠지만 주상전하께서는 시간이 남아서 정아공주마마를 친히 돌보실 정도네. 그런 것은 걱정말고 두 사람 모두 주상전하를 보필해서 잘 다녀오도록 하게."
"예. 영감."
두 사람은 잠시 후 사복을 곱게 차려 입은 균을 만날 수 있었다. 균의 복장은 일반적인 젊은 유생들이 입는 복장이었는데 얼굴이 흰 편이라서 그런지 기생오라비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균의 얼굴색은 굉장히 흰색은 아니었지만 균의 직업이 주로 방안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에 얼굴이 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작년 여름에는 수미법의 시행과 향리들의 녹봉지급문제로 바빴기에 햇볕을 쬐고 다닌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균의 현재 인상은 유약한 미소년과 같았다.
"이제부터 과인의 호칭은 도련님이니라. 이를 꼭 명심하도록."
"예. 전하.....아니 도련님."
버릇대로 전하로 부르던 두 사람은 균의 째려보기에 놀라서 도련님으로 바꾸어 불렀다. 그래도 균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건춘문으로 향하면서 균의 시험은 몇 차례 이루어졌고 곧 세 사람은 대궐의 동문인 건춘문을 벗어나서 한성부 시가지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건춘문을 통하여 기골이 장대한 장정 백여 명이 쏟아져 나왔다. 내금위장 곽흘이 비밀리에 파견한 정예위사 백여 명이었다.
약 2년 만에 사복을 입고 한성부의 대로를 활보하는 균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러나 뒤를 따르는 두 사람은 뒤를 따르는 내금위 위사들의 존재를 모르는 지라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균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한성부의 중심부인 운종가로 향했다. 운종가는 지금의 종로로 당시에도 육의전등 상가가 밀집하여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그래서 종로를 기준으로 하여 북쪽은 북촌이라 하여 대체로 부유한 자들이 살았고 남쪽은 대체로 남촌이라 하여 가난한 자들이 살았다.
운종가에 나온 균은 먼저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궁중요리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는 각종 떡이나 약과, 강정, 과편, 다식, 실과, 유밀과 엿등을 닥치는 대로 사먹었다. 홍번구와 남형의는 그 좋은 궁중음식은 놔두고 서민들이나 먹는 간식을 맛있다고 먹고 있는 균을 보고 그 속을 모르겠다는 듯 고래를 절래절래 저었다.
"질겅질겅"
"...."
"무엇들 하느냐? 너희들도 빨리 엿 먹어라."
"예. 도련님."
번듯하게 생긴 양반도령이 장수처럼 생긴 하인과 내시처럼 생긴 하인을 데리고 가면서 함께 엿을 질겅거리며 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양반의 체통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던 양반들은 한번씩 째려보고 지나갔고 일반백성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렇게 운종가를 활보하던 균은 배가 찼는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먼저 균이 간 곳은 서적을 파는 큰 책방이었다. 거기서 균은 세 시진(6시간)이나 서서 잡서를 읽어대기 시작했다. 잡서는 유교서적이 아닌 책들을 통칭하는 책들인데 옛날이야기나 웃기는 이야기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균은 세 시진이나 서서 잡서를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었는데 기다리는 두 사람이 먼저 지칠 만큼 균의 체력은 대단했다. 심지어는 균과 비슷한 시간에 책방에 들어와서 책을 읽던 유생들이 모두 숨이 차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나가는데도 균의 표정에는 여유마저 보였다.
"전... 도련님의 체력이 상당하십니다."
"겉모습은 연약한 서생인데 저렇게 한 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니, 저 정도면 무과시험을 쳐도 급제는 따놓은 당상일껄세."
저기서 균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는 두 사람은 모르지만 균은 전생에 서점에서 12시간을 꼬박 책을 읽어댄 경력을 자랑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균에게 대궐의 서적은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이렇게 잡서를 읽어보려고 암행을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균이 그간 세자가 되고 또 왕이 되면서 체력단련을 못했기에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결국 세시진을 조금 넘기고 가장 재미있던 책 한권만 사서 서점을 나오고 말았다.
그런 균의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매일 암행을 나올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잡서를 사들였다가는 삼사가 난리를 칠 것이고 까딱하면 대비에게 불려가는 불상사도 예상이 되었다. 그래서 균은 속으로는 숨이 차서 한계상황에 이르렀는데도 겉으로는 아쉬운 표정을 지어서 균을 지켜보던 두 사람을 기겁시켰다.
"벌써 세시진이나 책을 읽고도 아쉬운 표정이라니... 도대체 도련님의 체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소인도 맡은 직책이 오랫동안 서있는 경우가 많은데 감히 도련님을 따라가려면 십년도 부족하겠습니다."
균이 책을 읽는 사이 겨울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많이 시장해진 균은 근처의 허름한 주막으로 향했다. 지방에 주막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반면 상업이 발달한 한성부의 주막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주막의 기능은 거의 다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품보관소의 임무를 대신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주막에는 팔도 사람들이 다 몰려들어 숙식을 해결했기에 암행의 본래 목적인 민심을 파악하는데는 적격이었다.
"주모 여기 국밥 세 그릇 말아주시오. 자 다들 앉지."
"......"
문제는 그러다보니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주막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그런 주막에는 양반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높으신 양반네들이나 입는 명주로 된 옷을 입고 하인을, 그것도 좋은 옷을 입은 하인을 둘이나 거느린 균이 국밥을 주문하자 주모는 물론이고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에 균에게 쏠렸다. 상당히 머쓱해진 균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남형의가 알아서 험악한 목소리를 냈다.
"주모. 우리 도련님 말 안 들려? 빨리 국밥을 내오게. 그리고 구경거리 났냐? 다들 고개 안돌려!"
남형의의 기세가 험악했던지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모는 좀 꺼리기는 것이 있던지 머뭇거리다가 남형의의 시선을 한번 받고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국밥을 내왔다. 주모가 내온 것은 콩나물국밥이었다. 콩나물국밥은 전라도의 향토음식인데 고기 기름끼가 들어가는 음식이라서 일반 평민들에게는 고급음식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저녁식사 아니 양반의 저녁식사로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까 전에 주모가 버벅거린 것이었다. 몰락한 양반도 아니고 척 보아도 상당한 지위를 가진 양반댁 도령 같은데 그런 사람에게 쇠고기가 목욕한 콩나물국밥이 마음에 들리가 없었다. 그러면 행패를 부릴 터이고 곧 포도청에서 나와서 양반을 희롱한 죄로 주모 자신을 처벌할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다 지금 양반도령은 콩나물국밥을 보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주모는 물론이고 홍번구와 남형의도 균이 화가 났다고 믿었다. 콩나물국밥은 궁에서는 개도 안 먹을 음식인 것이다. 잠시 적막이 흐른 후 균이 입을 열었다.
"주모."
"예. 도련님."
"막걸리는 왜 안 주나?"
"네?"
"콩나물국밥은 달달한 막걸리를 곁들어 먹어야 제 맛이 아닌가? 콩나물국밥은 전라도 전주지방의 이름난 음식이고 콩나물국밥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라는 사실은 기본에 가깝거늘, 주모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가 보군. 달달한 막걸리도 같이 내어오게.
"예....."
주모는 그 말투와 행색으로 보아 분명히 서울에 사는 높은 양반인 균이 콩나물국밥에는 막걸리가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놀라웠다. 설사 전라도에 살았던 양반이라고 해도 그런 음식은 자주 먹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전라도 서민들의 음식을 서울의 양반네가 잘 알고 있다는 것에 전라도출신의 사람들 역시 입을 딱 벌리고 놀라워했다. 어느덧 막걸리가 나오고 균은 친히 두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주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우와! 저걸 저렇게 잘 먹는 양반은 처음이야. 전에 전라도에서 귀양살이 한 양반이 아닐까?"
"그려. 자네 말도 일리가 있구만. 보통 양반들이라면 체통 때문에 청주를 마시지 맛있다고 탁주를 먹겠나? 다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그놈의 체통도 안 찾는 법이지."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무시하면서 세 사람은 맛있게 국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셨다. 주모가 양반임을 감안해서 고기를 듬뿍 넣어준데다가 많이 배가 고팠던 지라 세 사람의 국밥은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특히 균은 비금도시절에 한성부를 오갈 때마다 자주 먹었던 음식인지라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횟수로 치면 몇 년이 안 되지만 발각당해서 개죽음 당하는 것은 아닐지 가슴을 졸여가면서 미래를 대비했던 기억은 좋은 추억이었다. 그래서 균은 그때를 추억하며 국밥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삐리리~!"
"도련님 정신 차리십시오."
국밥과 술은 맛있게 먹었지만 문제는 균이 술이 무지 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술도 안마시고 식혜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추억을 떠올린다고 무리를 하는 바람에 지금의 균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암행은 물 건너간 것이고 두 사람은 균은 좌우에서 부축을 하며 경복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균의 체력이 좋은 것인지 술을 마셔서 일시적으로 힘이 세진 것인지 두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균은 비틀거렸다.
한편 균의 맞은편에서는 두 사람이 역시 술에 취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젊어 보이는 두 사람은 모두 양반의 행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한 명의 행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행색이 좋지 않은 청년이 오히려 행색이 좋은 청년보다 건강해 보였고 상대적으로 술도 덜 취해서 다른 청년을 부축해주면서 오고 있었다.
"형님. 못난 아우 때문에 형님도 대감마님께 혼이 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닐세. 나도 오늘은 취하고 싶었네. 작년에 준비했던 과거시험이 역모사건으로 취소되었을 때 나도 많이 허탈했다네. 거기다 아우와 내가 어디 남이던가?"
"그래도 형님은 올해 식년시(3년에 한번 시행되는 정식대과)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형님의 학문을 출중하니 꼭 급제를 하실 겁니다. 아니, 장원을 하실 겁니다."
"허허허. 내가 많이 취한 줄 알았더니 아우가 정말 많이 취했군. 빨리 내 집에 가서 푹 쉬다가 내려가게."
두 사람은 사이좋게 한성부에서도 남부에 속하는 낙선방 먹절골로 향했다. 두 사람은 친형제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된 친구였다. 한때 같은 동네에서 살던 두 사람은 아우라고 불리는 사람의 가문이 빈궁하여 지방으로 낙향을 하는 바람에 몇 년 전 헤어졌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아우가 찾아왔는데 문과를 포기하고 무과시험을 치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무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에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늘 진탕 술을 퍼마셨다.
"아우. 자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용의는 없는가?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조선에서 어디 무관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직책인가? 그냥 나와 함께 대과 시험을 준비하세."
"저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학문도 짧아서 대과에 붙을 실력이 되지 않고 또한 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님도 잘 아시겠지만 몰락한 양반가문에서 대과 급제자가 나온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아우 하지만 자네에게는 내가 있지 않은가? 내 아버님도 아우를 아끼시니 결코 좌시하고 계시지는 않을 껄세."
"형님, 말씀은 고맙지만 저도 현실을 아는 나이입니다. 조정에 큰 세력이 없는 자라면 대과에 급제를 하는 것은 단지 꿈일 뿐이지요. 저도 이제 그 꿈을 버리려고 합니다. 더 이상 어머니와 가족들 그리고 제 처와 장인어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우! 그래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새로운 주상전하께서 등극을 하신지 고작 2년도 지나지 않았네. 작년의 상인세력 정리와 공납제의 폐지, 조광조선생의 신원 등 당금 주상전하는 역대 어느 주상전하들보다도 성군이시네. 조만간에 그러한 폐단들은 없어질 것이야. 그러니 자네도 생각을 바꾸게나."
아우라고 불리는 사람이 대과를 포기하는 이유에는 중종이후로 대과시험에 부정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원래 성종 때까지만 해도 관직은 많고 사람은 적어서 양민들의 대과급제도 가끔씩 있었다. 하지만 성종이후 사림세력이 정계에 진출하자 관직에 비해 사람이 많아서 양민층의 양반진출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거기다 중종이후에 조정의 재정이 바닥나서 관직을 줄이고 겸임제를 도입하게 되자 가뜩이나 좁은 벼슬길은 더욱 좁아져 이제는 양반 중에서도 관직진출자가 없어서 평민으로 격하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그 결과 대과시험의 경쟁은 치열해져 각종 부정행위가 자행되었고 감독관들은 인맥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거나 오히려 자신과 아는 사람들의 부정행위를 지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 좋게 합격을 하더라도 이번에는 관직이 부족해서 관직에 임명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역시 인맥이 없으면 한직을 전전하다가 퇴출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몰락한 양반가문의 자제들에게는 대과급제는 꿈이었다.
조선의 현실이 이러했기에 글공부에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문도 좋지 않은 아우라는 사람이 할 일은 그나마 좋은 체력을 믿고 무과에 응시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형은 무과 역시 인맥이 없으면 한직을 전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데다가 무반에 대한 조정의 대우와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만류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무과는 전공이라도 세우면 출세할 가능성이라도 있기에 대과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늘 술을 마셨다. 힘없고 연줄이 없는 사람이라면 과거에도 급제를 할 수 없는 현실에 두 젊은이는 실망을 한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양반의 체면은 버리고 한껏 취한 채 길을 걸었다.
"하지만 형님. 아무리 주상전하가 영특하신 분이라고 해도 그 막강한 신하들을 물리치고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형님. 아무리 지금 주상전하가 신하들을 몰아붙인 듯해도 퇴계선생과 남명선생이 다른 마음만 품으셔도 주상전하의 우세는 끝이 납니다. 훈구파든 기호사림이든 만만한 세력은 아니지요. 그래서 이 아우는..."
"악!"
"누구냐?"
"그러는 너는 누구인데 지나가는 사람을 치고 지나가느냐? 보아하니 나이도 어린 것이..."
"아니. 이분이 감히 누구신줄 알고?"
"그러는 너는 꼭 수염도 없는 하인주제에 내시같이 생겨서 우리 형님께 덤비는 거냐?"
그만 형과 아우는 지나가던 사람들과 싸움이 붙어버렸다. 누가 시작한지 모르게 이미 형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고 아우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울분을 주먹에 담아서 그 사람들과 싸움을 벌였다. 어찌 보면 그냥 사람들끼리 어깨가 조금 부딪친 것인데 술에 취한 사람들은 곧 자제력을 상실하고 잠시 말싸움을 하다가 주먹다짐으로 발전을 시켜 버린 것이다. 곧 두 사람이 더 쓰러지고 아우라 불리던 사람과 또 한 사람이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상대는 강했다. 처음에 비슷하던 두 사람의 싸움은 점차 아우의 불리함으로 기울었다. 거기다 저 뒤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전하를 호종하라!"
그 소리를 들은 아우는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결정타를 먹였다. 그렇게 아우도 차가운 겨울 땅바닥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