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2년.
다음날 균이 신하들에게 별시를 치르자고 하니 모두 다 찬성을 하였다. 과거시험에는 3년에 한번씩 치르는 식년시,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 치르는 증광시, 그리고 관리가 부족할 때 치르는 별시, 이렇게 세 종류의 시험이 있었는데 마침 올해에 식년시가 예정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신하들은 균의 말에 단 한명의 반대도 하지 않았다.
"과인이 듣기로 그간 별시나 증광시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유생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들었소. 재작년에는 부왕께서 승하하시었고 작년에는 역모사건으로 별시가 취소가 되니 유생들이 실망하여 글공부를 게을리 하고 술을 마시다가 행패를 부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큰일이오. 그래서 올해 식년시가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별시를 열어 그들에게 면학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어떻겠소?"
"전하. 신 영의정 이준경 아뢰옵니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주상전하께서 이토록 유생들을 아끼시는 마음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더욱 학문에 정진하는 계기가 되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것이옵니다."
"신 좌의정 이명이 아뢰옵니다. 소신들의 뜻도 주상전하와 영상대감의 뜻과 같사옵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
과거는 양반들의 최고의 목표인 벼슬자리로 가는 필수적인 관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음서는 존재를 했지만 알게 모르게 불이익이 주어졌다. 그래서 왕의 특지로 관리가 된 사람들도 따로 과거를 치루기도 했을 만큼 과거의 비중이 컸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초야에 뭍혀있던 사림들의 정계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과거 시험장이 부족할 만큼 응시자들이 몰리기 시작했지만 과거에 합격하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어서 응시자들, 정확히는 자신들의 후배들이 불만이 많았는데 균이 먼저 별시를 열자고 하니 신하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균의 대리 청정기간까지 포함해서 균이 조선의 통치권을 행사한지도 약 2년. 그간 명종의 사망과 두 번의 역모사건으로 증광시나 별시가 제대로 치루어지지 못했기에 벼슬길에 나서지 못한 후배 유생들이 선배유생들인 조정 관리들에게 넣는 압력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균이 알아서 처리를 하자고 하니 신하들은 그런 균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경들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니 과인도 크게 기대가 되오. 그럼 이번 별시는 소관부서인 예조에서 담당하여 조만간에 열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이번 봄을 전후로 해서 북한산에 내금위 훈련장을 신설하고자 하오. 현재 내금위가 세 곳의 대궐에 분산되어 배치가 되어있는데 대궐 내에서 훈련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냥 놀려두었다가는 병사들의 예기가 무디어 질것이오. 그래서 한성부에서 가깝고 산세가 험한 북한산일대에 내금위 훈련장을 신축할 생각이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역시나 균이었다. 신하들이 원하는 과거시험을 치르는 대신 한성부 근처에 군사시설을 신축하겠다고 공언을 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북한산에 군사시설을 신축하는 것은 상당수의 병력을 북한산의 방비에 돌려야 한다는 말이니 그만큼 균의 군사력이 감소한다. 이는 분명히 신하들로써는 좋은 소식이지만 또 균이 무슨 일을 버리려고 하는 의심스러워 신하들은 일단 반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균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면 별시가 위험해진다. 왕이 별시를 열겠다고 말을 했는데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별시의 급제인원이 규정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시험의 최고채점자는 왕인 균이다. 그런 균이 마음에 안 들면 아무래도 급제자의 수는 최소화된다. 그래서 신하들이 균의 속셈을 알아내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느라 잠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단번에 썰렁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싶은 자가 있었으니 사헌부 헌납 예양이었다. 그는 지난번 일로 타격을 입고 벼슬자리에서 쫓겨날 뻔도 했지만 균이 일부러 막아주었는데 사실은 균이 만만하다는 이유로 유임시킨 것이다. 하지만 예양은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나서기를 잘했다.
"전하. 신 사헌부 헌납 예양이 아뢰옵니다. 북한산에 새로운 병영을 건설한다는 것은 결코 옮지 않은 일이옵니다.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예헌납.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하. 현재 내금위의 병력이 삼천이나 되어 새로운 훈련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오위도총부가 사용하는 훈련장을 같이 사용하여도 충분하옵니다. 이미 훈련장이 충분하고 가뜩이나 국고에 자금이 부족한데 이런 태평성대에 북한산에 새로운 병영을 건설하심은 옳지 않다고 사료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
예양은 이때쯤 따라서 터져야 하는 다른 신하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져 고개를 살짝 들어보았다. 그런데 주변의 신하들이 모두 예양을 향해서 분노의 오라를 피워 올리고 있었고 균은 웃겨죽겠다는 듯 헛기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분명히 북한산의 병영건설은 신하들에게 나쁜 것이 아니다. 왕의 군대가 도성 밖으로 철수할 가능성이 높은데 오히려 두 손을 들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균이 손해를 볼 사람은 아니기에 신하들이 걱정할 뿐이다. 현재 한성부 일대의 군사력은 총세 8천정도이다. 이중 3천이 균의 내금위이고 5천이 오위도총부의 번상병이다.
하지만 직업상비군이며 균의 재력으로 잘 무장되고 훈련된 내금위의 전력은 압도적이고 오위도총부의 농민군은 내금위의 일부만 동원해도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거기에 내금위는 한성부 내부에 있고 오위도총부는 한성부 외부에 있어서 한성부일대의 군사력이 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은 결코 신하들이 원하는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좀 유능하다는 자들은 조광조의 신원에 정신이 팔려서 갑자기 늘어난 내금위에 관심을 못 가진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알아서 병력을 빼겠다니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숨어있을 균의 흉계(?)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신하들은 속으로 이번 일에 가지는 파장에 대해서 깊이 생각중이었는데 저 예양이라는 자는 되지도 않는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신하들은 혹시 균이 심어둔 간첩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예양에게 보내고 있었다. 마침 균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듯 기침소리가 요란해졌다. 신하들이 보기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쯤 되자 신하들은 예양의 말이 균의 마음에 쏙드는 말이라고 믿게 되었고 균의 노림수가 한성부내에 내금위의 주둔시설을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에 균의 말이 더해지자 의문은 진실이 되었다.
"예헌납의 뜻이 그러하니 북한산에 훈련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곤란할 듯싶소. 하지만 상비군인 내금위와 번상병인 오위도총부가 같이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소. 내금위는 한성부내의 작은 공간에서 싸우는 법을 훈련하는 부대이고 오위도총부는 탁 트인 벌판에서 적과 싸우는 법을 훈련하는 부대이니 그 훈련법의 차이는 크오. 그러니 한성부내에 빈 공간을 찾아서 간이 훈련장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보오."
내금위는 원래 궁궐을 수비하기 위한 군대이다. 그래서 주전장은 한성부 시내나 궁궐의 좁은 장소가 고작이기에 창이나 칼 같은 단병접전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오위도총부군은 넒은 지역에서 적과 싸우는 것을 상정하고 있기에 그에 관련된 훈련이 주가 돼야 한다. 주로 기병훈련이나 진법훈련같은 것이 주가 되는 것이다. 또한 내금위는 관직을 받은 군관들인 반면에 오위도총부는 그냥 징집된 농민병이라서 그 대우에도 차이가 많다. 따라서 같이 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곤란하다.
신하들이 생각을 해보니 그냥 초기의견을 따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이 되었다. 북한산이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엄연히 도성 밖이고 한 번 나간 군대는 다시 입성하는 것이 힘들다. 또한 군사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병력을 주둔시켜야 하니 균의 군사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비록 균의 숨은 흉계가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군대가 사라진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전하. 신 우의정 홍섬이 아뢰옵니다. 전하께서 하교하신대로 도성곳곳에 군사를 주둔시킨다면 백성들이 크게 놀랄 것이고 체아직을 가진 내금위의 위사들이 오위도총부의 일반 병사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옵니다. 하여 소신은 생각하기로는 북한산에는 옛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토성이 있어 조금만 손을 보면 훈련장을 만드는데 무리가 없사오니 전하께서 처음에 생각하셨던 대로 행하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전하. 신들의 생각도 우의정과 같사옵니다. 뜻대로 하시오소서."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
"좋소. 그대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니 그것도 좋을 듯하구려. 그럼 북한산의 옛 토성을 이용해서 그 곳에 내금위 훈련장을 만들도록 하겠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히히히. 내가 미쳤냐? 힘들게 입경시킨 내금위 병력을 밖으로 빼게...'
균은 속으로 히쭉거리며 웃었다. 분명히 균은 내금위의 훈련장은 만든다는 소리는 했다. 하지만 내금위를 동원해서 공사를 하겠다던지 내금위를 주둔시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신하들의 생각으로는 내금위의 병력을 동원해서 공사를 시작하고 공사가 끝나면 그 병력을 주둔시켜 수비를 하게되니 한성부내의 내금위병력이 축소되리라고 생각을 했겠지만 비금도에는 임꺽정아니 임충정과 서유생아니 서충선이 지휘하는 병력이 2천으로 증가되어 한성부로 입성을 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공사를 핑계로 쓸만한 장사들을 모집한다면 균은 한성부내의 3천 내금위와 비금도의 1천명, 북한산성의 2천명등 총 6천의 병력을 보유하게 된다. 내수사와 외수사 그리고 나상등 휘하세력이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난 균은 국고에서 돈을 타서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신하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균이 어린시절 돈을 죽어라 모은 것이기도 하다. 재력만 충실하면 신하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성부에서 문과와 무과의 별시가 치우러진 바로 그날 무과 시험장 옆에서는 대문짝만한 게 내금위모집의 깃발을 내건 사람들이 무과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유혹했다.
"자! 무과시험에서 떨어졌다고 너무 낙심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 내금위에서 새로운 위사를 충원합니다. 물론 최소한의 실력은 갖추어야 하지만 구품관의 무관들과 대등한 녹봉과 직책이 주어집니다. 거기다 응시생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내금위로 충원되면 무관직으로 진출하기에도 유리하고 잘하면 주상전하의 주변에서 호종을 하는 선전관으로써 임명도 가능하기에 무과급제를 한 것 못지않은 자리가 바로 내금위 위사입니다. 거기 힘없이 지나가는 청년. 뭐해? 빨리 와서 신청서 작성해!"
"이거 정말 내금위 위사모집 맞습니까? 혹시 남사당패가 아닌가요?"
"그럼 한성부에서 내금위복장을 입고 다니는 남사당패라도 있나? 빨리 신청서에 이름이나 적어. 어디보자. 이순신? 이름이 눈에 익는데....."
선전관 남형의는 이순신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가우뚱거렸다. 둘 다 술 먹고 최후까지 주먹다짐을 한 사이였지만 둘 다 술에 취한데다 가 깜깜한 밤이었기에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서로의 얼굴에 붓기가 있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둘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순신은 작년부터 무과를 준비해왔던 터라 준비기간이 부족하여 이번 별시무과에서 보기 좋게 낙방을 하고 말았다. 힘없이 무과시험장을 벗어나는데 운 좋게도 옆에서 내금위를 모집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온 처지였다. 역시나 이순신의 무예실력으로 무과가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균의 배려 중에 하나였다.
한편 유성룡은 당당히 문과에 급제를 했다. 원래 유성룡은 작년 별시에 급제를 해서 관직에 나가는데 그 등수가 무척 낮은 편이었다. 실제로도 뒤에서 3등정도의 낮은 성적으로 급제를 했는데 덕분에 균은 이번 시험에 유성룡을 합격시키느라 수많은 사람들도 같이 합격시켜 주어야 했다. 한명은 꼴찌로 급제를 하고 한명은 그나마 낙방을 해서 내금위로 받아드리고... 균은 이들이 25년 후에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위인들이 됐는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날 무과시험장과 한성부 곳곳에서 지원자를 받아드린 내금위는 수천이나 되는 지원자로 몸살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에 가까운 시험을 거쳐 쓸만한 인재들을 추려냈는데 그중 일부는 박수익에게 보내져 탐보꾼으로 일하도록 하였다. 약 1천명의 인원을 추려낸 내금위는 내금위장 곽흘의 지위하에 북한산성 개축공사를 시작하였다.
북한산성은 한성부의 북쪽에 있는 산성으로 원래 백제시대에 하남위례성을 방위하고자 쌓은 산성이다. 북한산성은 한성부의 북쪽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인데다가 산세가 험준하여 수비하기에 알맞으며 그 터가 넓어서 유사시 한성부의 백성들을 모두 피난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에 성내에 돌과 물이 풍부하여 공성전에서 중요한 식수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석성을 쌓기에도 유리했다. 그래서 약 150년 후에 숙종이 이곳에 북한산성을 축성하여 청나라의 침공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균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비금도의 시설들을 옮겨오기 위한 것이었다. 한성부나 그 인근은 토지도 부족하고 눈에 잘 띄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이동에는 불편하지만 산성안에 주요 시설을 건설하여 무기도 만들고 연구개발을 하는 데 주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금도에는 염전시설만 남겨두고 다 철수하여 본격적인 한성부시대를 열고자 하는 뜻도 있었다.
그래서 균은 총 4천의 병력을 동원해서 단계적인 공사를 계속하여 10년 내로 완공을 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성부의 백성들을 동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균은 기존의 2,3부과 비금도에서 올라온 4부, 방금 창설된5부에게 돌아가면서 공사를 맡기는 한편 도성내의 군사력을 유지하는데도 신경을 기울였다. 그래서 성벽공사의 진척은 무척이나 늦었고 먼저 내부의 주요 시설들이 완성이 되기 시작했다. 즉 병기창이나 병영 같은 주요 시설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