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228)

 즉위 2년.

왜국 규슈 남부의 사츠마국과 오오츠미, 휴가의 일부를 다스리는 대명가는 시마즈가문이다. 수백 년 전의 시마즈 타다히사로부터 시작되는 시마즈가는 한 때 규슈 남부를 거의 장악했지만 가문간의 내분으로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16세기 초반에는 가주의 자리를 놓고 방계의 가문들까지 내전을 벌이는 상황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 가주인 시마즈 타카히사와 그의 아버지 시마즈 타다요시는 경쟁자인 카츠히사와 사네히사를 물리치고 1539년 일단 가주로써의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아직 방계출신의 가주 타카히사를 따르는 세력은 약하고 이에 반대를 하는 세력은 강해서 시마즈의 발전은 더디기만 했다. 그러다가 1562년 비금도와의 교역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시마즈는 본격적으로 회복세를 타기 시작하여 조선철포로 무장한 정예부대를 창설해 휴가의 이토가와 오오츠미의 키모쯔기가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하는 한편 대 조선교역에서 많은 이익을 얻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주군. 비금도의 상관장(사츠마지부장)이 주군을 친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금도의 상관장이? 비금도주가 직접 만나러 와도 격에 맞지 않는데 당주인 내가 상단의 일개 간부 따위와 만나야 한다는 말인가? 또한 그와는 오늘 약속이 잡힌 것이 없지 않는가? 그런 무례한 자는 그대가 직접 상대하라."

"저도 제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지만 꼭 상관장이 주군을 뵙고 전해야 할 문서가 있다고 해서……."

왜 에이로쿠 10년 서기 1567년 7월. 사츠마의 가고시마성 천수각(천수각: 일본 성의 가장 내부에 위치한 곳으로 영주가 거처한다). 시마즈가의 제 16대 당주인 시마즈 요시히사는 대 조선교역을 전담하고 있는 이주인 다다무네의 보고에 이마를 찌푸렸다. 고작 상단의 일개 간부가 대 시마즈가의 당주를 약속도 없이 만나겠다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옆 자리에 안자서 아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전 당주 시마즈 타카히사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다. 요시히사. 네가 직접 상대하라."

"아버님."

"요시히사. 그들과의 교역은 우리 시마즈 가에 큰 도움이 된다. 만일 그들이 이번 일을 핑계 삼아 우리와 소원해지면 류조지나 오토모랑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시마즈에 큰 화가 된다. 일단은 만나보고 당당하게 행동하여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하지만 아버님. 이미 우리는 그들이 팔고 있는 철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며 남만상인과 교역을 성사시킨 데다가 명나라도 조만간 해금령을 풀어서 교역을 할 상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격에 맞지 않는 자들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손을 잡을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아버지 타카히사의 말에도 요시히사는 비금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비금도와의 교역이 시마즈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고 질 좋은 무기를 싼 값에 공급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일부러 친서를 보내고 선물을 보내어 호의를 보인 반면에 비금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비금도주를 대신해 수석부장이라는 작자가 답서를 보내왔으며 그들이 파견한 상관의 인물들은 첩보를 수집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 마디로 믿음이 가지 않는 상대였다.

하지만 타카히사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의 말대로 명의 해금령이 해제되어 많은 교역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명의 물건은 너무 비싸서 이문이 남지 않았다. 남만의 물품도 이문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그 물량 대부분을 오토모가 차지하고 있어 시마즈의 재정에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그러나 조선은 어느 나라보다도 왜국과 가깝다. 거기다 물건은 싸고 질은 좋아서 큰 이문이 남았다. 자존심을 세운다고 그런 고객을 놓쳐버리는 것은 큰 손실이다.

또한 질 좋고 값싼 조선철포와 화약이 공급되지 않는 것도 상당한 문제이다. 시마즈 역시 만약을 대비해 철포의 달인인 다네가시마가에 요청하여 조선철포의 복제시도를 몇 번 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사실 56식소총은 그리 좋은 총이 아니다. 비전문가인 균이 설계제작한 실패작을 병기부장 나원호등이 죽어라 고쳐서 완성시킨 총이기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 총을 복제하겠다고 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복제는 했지만 그 결과 나온 총은 다네가시마 철포보다도 더 잘 폭발했다.

"요시히사. 조선만큼이나 큰 이문이 남는 교역상대가 있더냐? 우리가 대 조선교역을 시작한 전과 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너는 모른단 말이냐? 그리고 조선철포를 본 따서 만든 것이 폭탄이지 어디 철포냐? 거기다 조선화약은 어디서 구할 것이냐?"

"하지만 아버님. 우리 시마즈는 수만 대군을 거느리고 남규슈를 호령하는 대명가입니다. 비금도는 많아야 수천의 군사를 보유한 작은 섬 일뿐 우리 시마즈의 상대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저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오토모 소린."

"......"

오토모 소린의 이름이 나오자 요시히사의 안색이 변했다. 오토모 소린은 현재 규슈의 삼분지 이를 차지하고 있는 대영주였다. 남규슈의 시마즈가 수만의 군사를 보유한 반면 오토모의 군사력은 10만을 상회했다. 거기다 시마즈 동쪽의 적대세력 이토가 역시 오토모의 동맹세력이니 시마즈에 비해서 오토모의 세력은 몇 배 수준이었다. 거기다 오토모 소린은 기독교를 믿는 크리스찬 영주였다. 그래서인지 남만과의 무역에도 적극적이었고 조선, 명나라와도 무역을 하여 막대한 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강대한 세력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마즈로써는 상당한 돈줄인 조선과의 교역이 주요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함대를 잃고 돌아온 시마즈 이에히사와 이주인 다다무네가 오히려 타카히사의 칭찬을 받았을 정도니 대 조선교역이 가져다주는 부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비금도 측의 태도가 불량해도 시마즈로써는 인내를 하면서 관계를 유지시켜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요시히사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좋다. 상관장을 만나겠다. 내 아우들을 모두 부르고 간단한 연회를 준비하도록."

"잘 생각했다. 이익을 위해서 명분은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 시마즈가 더 강대해지면 그 때는 너의 뜻대로 해도 옳을 것이다."

요시히사 역시 무능하거나 기분에 휩쓸리는 자는 아니었다. 훗날 에도 막부의 창시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주의 재질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고 칭찬을 한 인물이며 오토모를 격파하고 시마즈의 전성기를 이룩하는 인물답게 요시히사는 유능했다. 그런 요시히사기에 자존심을 접고 비금도의 상관장을 잘 대접해주기로 결심했다. 타카히사의 말대로 자신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이익을 버리는 짓은 경쟁이 극심한 전국시대에 죽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시히로, 토시히사, 이에히사. 마침 성에 있었구나."

"예. 형님."

이윽고 요시히사의 세 형제가 차례차례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요시히사가 형제들을 부른 이유는 모두 뛰어난 무장이기에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들을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먼저 둘째인 시마즈 요시히로는 시마즈가 자랑하는 뛰어난 맹장이다. 역사적으로 조선침략군 제 4군 사령관이었으며 특히 전라도 일대를 약탈한 적이 있다. 조선의 도공들을 잡아가 사츠마의 도자기공업에 기여(?)한 바 있으나 덕분에 균이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다.

셋째 시마즈 토시히사 역시 뛰어난 무장으로 히데요시의 규슈정벌 당시 시마즈가문이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후에도 히데요시에게 끝까지 저항을 하다가 제 형인 요시히사에게 패해서 죽은 인물이다. 넷째 시마즈 이에히사는 균에게 잡혀 노예가 될 뻔했지만 운 좋게 풀려난 인물로 시마즈 가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이다. 히데요시의 규슈정벌때 히데요시의 동생인 히데나가에게 독살 당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가문의 유지를 위해서 서로 싸우고 죽이던 관계가 되지만 현재의 형제들은 대체로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특히 이에히사는 위의 세 형들과 다른 어머니를 두고 있지만 아버지 타카히사가 죽은 후에도 다른 별 문제가 없이 잘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형제들은 사이좋게 무게를 잡고 앉아서 상관장을 위압할 준비를 하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의외로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요시히사들도 대강은 알고 있던 사츠마 지부장 김석현이었고 또 한 명은 자신들이 전혀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지위가 제법 높은 듯 지부장 김석현이 쩔쩔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모습에 요시히사들이 흥미를 느끼는 가운데 김석현이 그 사람으로부터 봉서를 받아서 옆에 있던 가신에게 넘겼다. 그 가신은 먼저 요시히사에게 공손히 봉서를 바치고 요시히사는 다시 문관인 이주인 다다무네에게 봉서를 다시 넘겨 대신 읽도록 했다.

"친애하는 시마즈 가문의 당주 도진의구(시마즈 요시히사)에게.

지면상으로나마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게 생각한다. 나는 전 비금도주이며 지금도 그대들과 교역을 하는 비금도 상단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그간 나에게 바쁜 일이 생겨서 그대들이 보내준 친서와 선물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우리의 관계가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내가 그대들에게 이렇게 사신과 친서를 보낸 것은 몇 가지를 통지하기 위해서이다. 먼저 비금도 상회는 이미 그 명칭을 바꾸어 외수사로 개칭되었다. 외수사는 조선의 대외교역을 주도해 나갈 조선조정의 공식적인 기관이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이 그대들과의 교역을 유지하려 한다. 그대들도 양측이 교역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내 대리인을 통해서 일부 수출입물품의 물량조절을 요구하는 바이다.

또한 현재의 비금도 상관을 내수사의 사츠마지부로 확대개편을 하고자 하며 이에 따라 그대들의 영지 중에서 섬 하나를 영구적으로 빌렸으면 한다. 해당 섬은 향후 백년간 우리의 영향력 하에 들어오게 되며 그대들의 영향력은 일체 배제되지만 이 섬을 조차하는 이유가 다 그대와의 교역을 증대하고 유사시 그대들을 도와주기 위함이니 귀측의 우호적이고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

이러한 논의의 세부적인 사항은 내가 파견한 대리인과 상세한 논의를 통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양측간의 우호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융경 원년 5월 17일 조…….조선……."

잘 읽던 다다무네가 갑자기 말을 더듬더니 얼굴표정까지 바뀌자 보다 못한 이에히사가 편지를 낚아채서 대신 읽기 시작했다. 그 역시 얼굴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했지만 용맹한 무장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거기에 적힌 글씨가 가진 위력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인지 말을 더듬지 않았다.

"융경 원년. 5월 17일 조선국왕 이연."

"조선국왕이라고?"

"조선국왕!"

"각하. 국왕전하십니다. 옆에 사신도 계시니 요시히사 각하께서는 예를 차려주십시오."

김석현의 지적은 타카히사와 요시히사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앞서 타카히사가 생각했던 대로 조선은 시마즈와 가장 가까이 있는 외국중 하나다. 조선산 도자기와 옷감(면포, 저포), 화문석과 나전 같은 상품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고 종이와 서적, 소금들도 싼값에 많은 양의 수입이 가능하여 시마즈에게 짭짤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과의 교역을 주도하는 세력은 소씨의 대마도였고 시마즈와 비금도의 교역은 말 그대로 밀무역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래서 양측 모두 그렇게 큰 이익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조선왕이 정부공식기관을 통해서 교역을 요구해왔다. 당연히 그전의 교역에 비해서 크게 늘어난 규모의 교역이 예상되었다. 아예 상관을 크게 설치할 땅을 요구하는 정도라면 그 규모는 대마도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대마도의 규모나 생산력으로 보아서 석고(식량생산량)은 아무리 잘 보아주어도 5만 섬이 안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임진왜란때 동원한 전력은 무려 5천명. 20만석의 영주와 맞먹는 병력을 동원했다. 그 정도로 조선과의 교역이 이익이 컸다는 소리다.

그러니 타카히사와 요시히사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이에히사에게 봉서를 빠앗다시피 받아서 아래쪽에 찍힌 조선국왕의 인장을 보고 또 보면서 자신들에게 닥친 행운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재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그들을 가까이에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이번에 시마즈에 밀사로 파견된 박수익이었다. 원래 정보부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는 박수익이 밀사로 파견된 이유는 시마즈에는 이국적인 정취에 인형 같은 여인들이 많으니 휴가삼아서 다녀오라는 균의 감언이설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가를 포기해가며 왜국에 출장을 온 박수익이 보기에 과연 균의 말대로 이국적인 정취와 인형 같은 여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박수익은 이국적인 악취와 인형같이 작은 여인들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츠마의 거점인 상관으로 오는 동안 박수익은 많은 왜국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소녀나 할머니들만 보이고 성인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왜 이곳에는 성인여성들이 없느냐?'는 질문에 김석현의 대답은 기가 막혔다. '예? 지금까지 수백 명은 지나갔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박수익은 기가 막혔다. 자신의 옆으로 지나간 여자아이들(?)이 이미 다 자란 성인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지만 자신의 가슴에도 오지 않는 성인여성이라니 박수익은 입을 쩍하고 벌렸다. 거기다가 그녀들에게서 풍겨오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냄새에 박수익은 코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결국 박수익은 김석현을 재촉해서 빨리 상관으로 도망치든 향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을 빨리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가려고 이렇게 김석현을 닦달해서 가고시마성으로 오는 바람에 김석현만 무례한 자로 찍혀버렸다.

"저는 조선국왕 전하의 사신 박수익이라고 합니다. 시마즈의 가주이신 도진의구 각하를 뵙게 되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도 만나게 되어 반갑소. 조선국왕 전하의 사절인지도 모르고 대접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오. 여봐라! 무엇들 하느냐? 큰 손님이 오셨으니 연회를 준비하라! 잠시만 기다리시오. 지금 즉시 연회를 준비하겠소."

요시히사들이 달콤한 환상에 빠져서 계속 허우적거리자 박수익은 김석현을 통해서 말을 건네 그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그러자 요시히사는 먼저 대접부터 다르게 했다. 일개 도주의 사신과 국왕의 사신이 동급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시히사의 대접은 박수익을 만족 시켜주지 못했다.

몰론 요시히사가 베풀어 준 연회는 화려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처럼 화려한 음식들이 수십여 가지나 차려졌지만 정작 박수익이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박수익이 즐겨먹던 육류는 찾아볼 수도 없고 싱싱한 해산물만이 잔뜩 차려진 연회상은 박수익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박수익은 자신의 배를 든든히 채워줄 밥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자신의 바로 앞에 놓인 앙증맞은(?) 밥그릇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하가 왜 공포의 점심시간에 나를 참석시키셨는지 알겠군.'

박수익은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현지적응을 시킨다고 자신을 초대하여 같이 공포의 점심시간을 즐기던 균을 떠올렸다. 그때 균이 먹는 밥의 양은 다른 성인남자들에 비하면 절반정도였는데 그 것을 따라가다가 박수익은 허기져서 몰래 참을 먹고는 했다. 그런데 여기는 더 심해서 조선 사람들이 먹는 밥의 삼분지일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박수익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조금씩 먹어대니 왜인들이 아이들같이 조그마하지.'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조선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이었다. 당시 왜인들은 현대 한국인과 비슷한 양의 밥을 먹었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은 한 끼에 현재의 밥 세 그릇을 해치웠다. 교통이 불편해서 다른 부식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조선시대에 식사는 곧 밥이었다. 밥과 국 그리고 김치 같은 반찬 하나로 배를 채우다보니 밥을 많이 먹었던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밥을 많이 먹었던 덕분인지 왜인들에 비해서 체구가 무척 컸다. 조선이 멸망할 무렵에도 일본에서 가장 키가 큰 지방 사람들과 조선에서 가장 키가 작은 지방 사람들의 키가 비슷했고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기골이 장대하여 군인으로 쓰면 좋겠다.' 라고 평가를 했다고 하니 박수익이 보기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모두 아이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아니 박공. 음식이 마음에 드시지 않습니까? 따로 조선음식을 준비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가주님께서 이렇게 진귀한 음식들을 대접해 주시는데 조선음식을 먹으면 아마 평생을 두고 후회를 할 것입니다."

박수익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억지로 비릿한 해산물들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수익의 위장은 처음 먹어보는 해산물들에 자꾸만 거부감을 나타냈고 박수익은 열심히 먹는 척하면서 결국에는 슬며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박수익의 뱃속을 채우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은 연회가 끝나자 곧 박수익을 대표로 하는 조선 측과 요시히사를 대표로 하는 시마즈 측은 균이 제안한 사안을 두고 세부적인 계획을 작성하기 협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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