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2년.
"형님, 조선사신의 말이 사실이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토모는 지금 당장이라도 규슈를 통일할 만큼 그 세력이 강합니다. 이런 오토모가 총력전을 펼친다면 우리 시마즈의 용맹한 무사들도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거기다 화포까지 도입했다면 공성전 자체가 무의미해 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사신의 정보가 꼭 사실이라고 단정을 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조선군을 이곳 가고시마성 근처에 주둔시킨다는 것 자체가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선군이 주둔하는 섬은 그다지 큰 섬이 아닙니다. 마을 하나가 간신히 유지되는 작은 섬인데 병력이 주둔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거기다 일꾼들을 포함하면 기껏해야 백여 명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한 조선인들은 밥을 많이 먹는 자들이라서 식량과 물의 소모량이 많습니다. 조선본국에서 보급을 하기에는 너무 멀고 우리 시마즈에서 대부분의 식량을 사드려야 하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그들이 우리의 인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에히사. 거성 근처에 군대가 주둔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조선의 속국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유력한 다이묘들을 보더라도 종속가문의 거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 종속가문을 수족처럼 부린다. 하물며 상대는 일국의 왕이고 우리는 겨우 일개 영주에 불과하니 여기서 빈틈을 보이면 우리 시마즈가 조선의 세력에 눌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둘째 요시히로와 넷째 이에히사는 성격이 급한 맹장들이었다. 그래서 타카히사와 요시히사 그리고 신중한 지장인 셋째 토시히사는 머리를 굴린다고 정신이 없는 데 두 사람은 빨리 결정을 내리고 찬반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결국 보다 못한 타카히사가 요시히사에게 눈치를 주자 요시히사가 중재에 나섰다. 명목상이지만 당주는 요시히사였기 때문에 타카히사는 앞에 나서는 일은 피했다.
"요시히로의 말도 옳고 이에히사의 말도 옳다. 하지만 조선 사신이 넘겨준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알아보고 결정하자. 내 말에 이견은 없겠지?"
"예. 형님."
"저도 사실여부를 알아본 후에 결정하자는 큰 형님의 말씀에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이미 우리 시마즈가 내분으로 그 세력이 약화된 지도 몇 십 년입니다. 때문에 용맹했던 우리의 무사와 병졸들은 피곤함에 지쳐서 약해지고 오토모의 세력은 나날이 강대해지고 있습니다. 이때 조선의 군사파견 제안은 구미가 당기는 일입니다."
"토시히사. 그게 무슨 말이냐?"
요시히사가 두 사람을 말려 논쟁을 종식시키기 무섭게 셋째 토시히사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얼핏 들어보니 조선군의 주둔을 찬성하는 것 같아서 요시히로가 반발을 했다. 그러나 제 형인 요시히로의 말에도 불구하고 토시히사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요시히로 형님의 말대로 조선군을 가고시마성 일대에 들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조선의 휘하에 들어간다는 인상을 주게 되니 여러모로 그 손실이 큽니다. 하지만 조선군의 주둔이 주는 이익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그런 손실을 상회하고도 남는 것이 많으니 마냥 거부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을 믿는 것이 아직 힘들기는 하지만 조선인들은 유학을 배워서 대의명분에 죽고 사는 족속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무척 상대하기 좋지요. 우리는 실리를 챙기고 그들은 명분만 세우면 되는 것이니까요. 한 마디로 우리가 이용해 먹기 편한 상대라는 말입니다. 그런 자들이 우연하게 우리에게 좋은 제안을 해왔는데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오~. 토시히사. 네 말이 맞다. 조선인들도 명분을 찾는 것 하나는 명나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지."
토시히사의 말에 감탄을 한 사람은 뒤에 있던 그의 할아버지 타다요시였다. 시마즈 타다요시는 원래 방계의 가주이지만 시마즈 내전을 통해서 아들 타카히사를 본가의 당주로 세운 인물로 '시마즈 중흥의 조' 로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이미 기력이 쇠하여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기에 아들인 타카히사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는데 연락도 없이 타타요시가 나타나자 모두들 놀랐다.
"아버님."
"할아버님."
"허허허. 왜?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이냐? 왜들 그렇게 놀라는고?"
지금은 인상이 좋아보이는 할아버지 같지만 사실 타다요시는 상당히 무서운 사람이다. 타다요시는 세살 때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의 지원 하에 겨우 세력을 유지하다가 수많은 방계의 경쟁자를 차례로 물리치고 아들 타카히사를 현 시마즈의 당주로 만든 대단한 인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는데 이것은 그의 자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아버님. 저희들이 어찌 아버님을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허허허. 농담이니 너무 신경들 쓰지 말고 긴장을 풀거라. 그래? 조선에서 사신이 와서 군대를 주둔시키겠다고 했다며?"
"예. 아버님. 우리의 교역 상대였던 비금도주가 조선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와의 교역량을 증대시키고 상관과 창고를 지을 섬 하나를 빌려달라고 해서 이를 승인했지만 그 섬에 주둔하게 되는 조선군 경비대의 문제로 의논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래? 별 문제도 아니구나. 토시히사의 말이 옳다. 조선인들은 명분에 죽고 사는 존재들이니 다루기가 편하지. 다 같은 오랑캐일 뿐인데도 스스로 소중화로 칭하고 허례허식에 물든 자들이 뭐가 겁이 난다는 말이냐? 거기다 본토도 아닌 섬에 소규모의 경비대를 주둔시키겠다고 하면 이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할아버님. 조선군의 병사들은 약할지도 모르지만 병기의 수준은 이를 만회하고도 남습니다. 지금 수입하는 조선철포로 무장된 조선의 정병 몇 백이면 우리 시마즈의 강병으로도 상대하기 곤란합니다. 그런 군대가 우리의 거성 옆에 군사기지를 만들고 주둔한다면 우리는 마음 놓고 잠을 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시히로는 조선철포로 무장된 정예부대를 이끌고 전투를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장수였다. 그래서 조선철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조선철포와 일본철포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조선철포가 무게가 무겁다는 이유 말고는 다 일본철포를 앞질렀다. 조선철포는 무겁기는 해도 사정거리도 길고 파괴력도 뛰어났으며 폭발사고도 없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3천의 철포병을 동원하여 삼단방포술을 선보이기 이전까지 철포부대는 일본의 일부 다이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비싼 가격도 문제였지만 툭하면 폭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철포를 복제할 때 가장 중요한 약실부분의 제조기술을 물려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심지어 어떤 무장은 총이 폭발하면 전투대형이 무너진다고 철포병을 본군에서 떨어진 곳에 배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철포병은 사격대형을 이루어 일제사격을 할 수 없었고 그만큼 그 활용도가 제약을 받았다. 그래서 규슈의 영주들은 앞 다투어 서양세력과의 접촉을 통한 철포의 보완에 들어가 1571년 나가사키가 개항한 이후에는 그 문제점을 상당히 보완하였지만 현재는 1567년이었기에 아직 일본철포로는 사격대형을 구성하려면 지휘관의 인내와 병사들의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요시히로는 이런 점을 잘 알았기에 조선의 무기제작 기술력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좋은 철포도 만들어 내는데 그들이 말한 개보리보다 더 사정거리가 더 긴 대포를 보유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요시히로는 적극 반대했는데 타다요시 역시 이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요시히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조선군이 가고시마성을 기습공격을 한다면 우리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예. 할아버님. 조선군의 경비대는 그 수가 적지만 조선철포로 무장하고 있어 그 몇 배의 대군을 동원해도 쉽게 깨트릴 수 없습니다. 그런 조선군이 가고시마성 인근에 진을 치고 성을 공격해온다면 우리 주력군을 회군시키지 않는 이상은 격퇴하기 힘들게 됩니다. 우리 주력군이 회군하는 사이에 조선화포가 성벽을 무너트리면 우리는 본거지를 잃게 되니 그것으로……."
"조선군은 가고시마성을 칠 능력과 의지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타다요시는 요시히로의 말을 듣다가 말고 갑자기 단언했다. 그런 타다요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인물은 타카히사와 토시히사, 그리고 따로 배석하고 있던 이주인 다다무네였다. 방안을 살펴보던 타다요시는 다다무네를 지목하여 그 이유를 말하게 했다.
"다다무네. 자네도 내말을 이해를 하는 듯 하군. 어리석은 내 손자에게 가르침을 주게."
"어찌 나이도 어린 제가 요시히로님께 가르침을 드리겠습니까? 하지만 몇 가지의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나는 조선의 화포이던 남만의 대포이던 공성전보다는 함대전을 목표로 만들어진 포라서 성벽을 부수기에는 그 위력이 낮습니다. 특히 이 가고시마성은 잘 지어진 성이기에 화포로 인한 피해는 적을 것입니다.
그래도 시간을 들이면 화포로 성벽을 부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소모되는 시간과 화약의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렇게 힘들여 반파된 가고시마성을 조선군이 점령해도 군사적, 경제적으로 이득이 없습니다. 아니 그전에 급히 회군한 우리 주력군에게 포착되어 전멸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 화포문제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선이 오토모랑 손을 잡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경우 조선본토에서 조선군이 증원될 수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다무네의 이야기에 요시히로는 즉시 반론을 제기했다. 섬에 주둔하게 될 조선경비대는 많아야 몇 백 명 수준이겠지만 그 뒤에는 수십만의 조선군이 있다. 일단 조선경비대가 거점을 확보하고 그 거점으로 조선의 대군이 밀어닥치는 것을 요시히로는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다무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먼저 조선이 빌리고자 하는 섬은 군사기지로써는 손색이 없는 크기지만 자체적인 보급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조선의 대군이 공격거점으로 삼으려면 먼저 대규모의 식량을 반입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우리의 정보망에 금방 포착이 됩니다. 따라서 조선이 가고시마성을 점령하려면 우리의 주력군이 성을 비운 틈을 타서 경비대병력으로 기습을 하는 것뿐입니다. 물론 성공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또한 오토모는 우리 시마즈보다 강대하고 조선에 가깝습니다. 조선의 왕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가까운 오랑캐인 오토모의 힘이 강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조선왕이라면 차라리 우리 시마즈를 지원하여 원교근공, 이이제이의 책략을 시행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측이 우리를 공격할 의사가 없기에 적당한 크기의 섬을 요구하고 경비대 파견을 통고한 것이지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큰 섬을 요구한 후에 아무 말이 없이 병사들을 일꾼으로 위장해 주둔시켰다가 기습을 해올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은 우리를 칠 의도가 없으며 조선경비대도 가고시마를 위협하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다다무네. 훌륭했다."
"송구스럽습니다. 타다요시님."
요시히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다무네의 말처럼 조선에서 시마즈는 멀고 오토모는 가깝다. 그리고 오토모는 강하고 시마즈는 약하다. 자신이 조선왕이라고 해도 주변의 오랑캐가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니 시마즈와 손을 잡고 오토모를 견제하려는 것이 타당했다. 즉 이번의 조선의 제안은 원교근공과 이이제이의 책략을 시행하려는 조선왕의 시마즈 지원책일 가능성이 극히 높은 것이다.
"제 생각일 짧았습니다. 그렇게 깊은 곳까지 보지 못하고 단순히 조선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에 우를 범했습니다."
"아니다. 요시히로의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조선이 어떤 의도로 우리에게 접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 이번 일은 조선사신과 협의하여 허락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강력한 반대론자인 요시히로가 물러나자 좌중의 의견은 조선군의 주둔을 묵인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요시히사가 타다요시와 타카히사에게 그렇게 고하자 타다요시는 몇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그래. 너희들의 결정대로 하거라. 하지만 조선군의 병력수준이나 무장에 대해서 잘 알고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이번의 제안을 계기로 상당한 군사적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상대는 체면치레를 무척 좋아하는 조선인들이니 조금만 고개를 숙이고 그 이익을 취하는 데 최선을 다하거라."
"그렇다면 할아버님. 그 방법을 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좋겠다. 요시히사. 너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구나."
큰 손자인 요시히사의 의견에 타다요시는 미소로써 답해주었다. 타다요시는 요시히사가 어렸을 때부터 직접 보살피면서 가르쳐온 아이였다. 그래서 나머지 세 형제들은 모두 무장으로 성장한 반면 요시히사는 군주로 성장을 했다. 그래서인지 형제들 중에서 가장 깊이 생각하는 편이었다.
큰 손자의 제안에 타다요시가 만족한 듯 미소를 짓자 타카히사와 나머지 세 형제들도 모두 따라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순수한 미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조선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얻어낼지를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서 짓는 미소들이었다.
그렇게 가고시마성의 천수각에서 시마즈일족들이 회의가 한창일 무렵 박수익과 김석현은 가고시마성 근처에 위치한 상관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원래부터 조선인은 무지막지한 대식가인데 시마즈 요시히사가 제공한 연회는 박수익의 위장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박수익은 김석현을 다그쳐 그가 감추어둔 조선음식들을 아작 내고 있었다.
"쩝쩝쩝, 아삭아삭."
"저~."
"꺼억~. 왜 그러나 김 지부장. 설마 내가 이 반찬들을 다 먹어치울까 봐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그게 아니라, 저는 이번에 주상전하께서 제안하신 사안에 대하여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되어 밥도 잘 넘어가지 않는 상황인데 박부장 아니 나으리께서는 천하태평이시기에 그 까닭이 궁금해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석현의 얼굴에는 반찬이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이 떠올랐고 그의 눈은 박수익의 젓가락에 가 있었다. 그런 김석현의 모습을 보던 박수익은 피식 웃으며 입안에 있던 밥을 꿀떡 삼키고는 말했다.
"이번 제안은 분명히 받아드려지네."
"네? 어찌 그리 확신을 하시는지?"
"저들은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있거든."
"네?"
"우리 조선 사람이 왜인들을 보면 예의범절을 모르는 섬나라 오랑캐이고 왜인들이 우리 조선 사람을 보면 고리타분하고 체면과 명분만 찾는 멍청이들이다. 전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네. 그래서 저들은 우리를 실리보다는 명분을 더 찾는 멍청이로 보고 어떻게든 우리들로부터 이익을 챙기려 들려고 할 것이니 이번 제안을 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계시네.
거기다 이번 제안은 그들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야.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지만 따지고 보면 군사적이나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더 큰 이익이 남는 일이지. 그래서 저들은 그런 이익에 눈이 팔려서 다른 것은 보지 못할 것이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노림수라는 사실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예. 나으리. 바로 진주사업을 숨기기 위한 포석이 아니옵니까?"
균이 박수익을 밀사로 파견하여 시마즈 요시히사에게 교역을 증대시키고 포병을 경비대로 파견하여 유사시 지원해줄 수가 있다고 제안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양식진주사업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시마즈측이 보기에는 조선이 교역을 늘리기 위해 상관과 창고를 지을 섬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조용히 양식진주를 할 곳이 필요했기에 섬을 얻은 것으로 물론 그 섬은 상품보관창고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 토지는 진주양식에 쓰일 예정이었다.
"그렇지. 저들이 우리가 내놓은 좋은 조건에 눈이 팔려서 희희낙락거릴 때 우리는 뒤에서 진주양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이지. 주상전하의 장기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하."
"하지만 나으리. 그러면 더 조용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경비 병력의 주둔사실을 통보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래도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군대가 주둔한다면 저들이 의심을 가질 것입니다."
"후후후. 경비 병력을 조용히 주둔시킨다고 해도 일 이년 있을 것도 아닌데 언젠가는 들통이 나겠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합법화시키는 편이 나아. 그래야지 더욱 의심을 받지 않지. 거기다 우리 군이 경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저들도 신중하게 대처를 할 것이니 함부로 섬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도 주상전하의 노림수라는 것이네. 저들도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많을 터, 왜 우리가 창고를 짓겠다고 교통이 편한 가고시마근처의 토지를 마다하고 멀찍이 떨어진 섬을 원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야. 하지만 아무래도 수도근처에 다른 군대가 주둔하는 것은 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니 그쪽에 신경을 더 쓰게 되고 사실과는 다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비밀은 안전해지네."
"그렇다면 저들은 우리에게 완전히 속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우리가 겉으로는 어수룩하게 속아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더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이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반찬 더 없나?"
박수익의 말에 방금 전까지 활짝 웃고 있던 김석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