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2년.

균의 질문에도 신하들의 답변은 없었다. 아니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미 3년 동안 균에게 시달릴 만큼 시달린 신하들이기에 말 한마디 잘못하면 순식간에 다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용감하게 입을 연 사람이 있었으니 예조참의 민강욱이었다.

"전하. 신 예조참의 민강욱이 아뢰옵니다. 현재 나라의 살림에 극히 어려운 때입니다. 지금은 내치를 든든히 하여 국력을 배양할 때이지 지나치게 군비에 신경을 쓰시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옵니다."

"먼저 국력을 배양하는 것은 좋은 일이오. 하지만 그 국력 배양에 몇 십 년이 걸리는 것은 과인을 비롯하여 역대 제왕들께서 무능하기 때문이오? 경들을 비롯하여 역사 신하들이 무능하기 때문이오? 지금까지 이런 논의가 나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오. 그때마다 신하들은 내치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들어 선대왕마마들의 의견을 반대하였는데 그 결과가 무엇이오? 미개한 왜인들이 침공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오?"

"송구하오나. 전하. 아직 왜인들의 병력이 그 정도는 되는지 확인되지 않았사옵니다. 저들이 우리를 위협하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좋소. 왜인들의 문제는 경의 말대로 더 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소. 하면 서해평의 여진족들을 토벌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이오? 때를 기다린다고 하여 좋은 방책이 있는지 알았는데 벌써 1년이 다 되었소. 그간 경들이 서해평의 여진족들을 물리치려고 한 일이 무엇이 있소?"

"……."

균의 입에서 서해평의 문제가 언급되자 민강욱을 비롯해서 다른 신하들의 표정도 굳어버렸다. 서해평은 작년 여진족에게 점거당한 후 그 일대를 순찰하던 조선군 정찰기마대가 공격을 받아 전원 전사한 곳이다. 이에 평안도 병마절도사 남치근은 즉시 2천의 군사를 출동시켜 여진족을 격퇴하려고 하였지만 비변사회의에서 신하들이 이를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하지만 조선의 대응이 없는 것을 본 여진족들은 조선을 우습게보고 올해 초에 대규모 이주를 시작하여 작년에 비해 몇 배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안도의 조선군 전력으로는 격퇴를 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고 여연, 무창, 우예, 자성 4군은 세종대왕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그 옛날 세종대왕께오서는 김종서와 최윤덕을 파견하여 오랑캐를 몰아내고 사군 육진을 개척하시었소. 이것이 비록 세조대왕 때 이르러 일부를 포기하였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과인이 다스리는 영토인 것을 분명한 것인데 그에 대하여 경들이 한 것은 무엇이오? 북방의 여진족에게 영토를 다 내주자는 말이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원래 비변사란 잦은 왜인과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를 신속히 대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관이오. 한데 요즘 들어 비변사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일선 지휘관들의 지휘권에 간섭하여 번번이 때를 놓치게 하는 일이 태반이니 이를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경은 국경내로 침입한 적을 물리친 연유에나 내치를 운운하시오. 아시겠소?"

"……."

"현 국제 정세는 절대 평화기가 아니오. 서쪽의 명나라는 혼란스러운 데다가 몽고족에 묶여 대군을 움직일 수 없고 북방의 여진족은 아국을 만만히 보고 계속적으로 침입을 해오고 있소. 거기에 또 남쪽의 왜는 어떻소?

왜군이 140만이던 아니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소. 문제는 왜국이 통일되었을 때 남는 군사력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문제요. 우리 조선에 선비들이 있다면 왜에는 사무라이라는 무사들이 대접을 받고 있소. 그런 자들이 자국내 전쟁이 끝나서 자신들이 필요없게 된다면 어떻게 나오겠소? 그냥 농민들처럼 땅이나 일구며 살겠소?

이 경우 왜가 통일되었다고 해도 왜왕의 입지는 불안하기 짝이 없소. 왜왕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요. 하나는 왜국이 더 큰 내전을 한번 치러 상당수의 사무라이가 몰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군사력을 국외로 돌려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오. 경들이 왜왕이라면 어찌하겠소?"

강녕전 내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균이 말한 것. 그것은 임진왜란의 발발요인이다. 1590년 왜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두 가지의 중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하나는 자신의 후계문제로 그의 나이 53세 때 겨우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기다릴 정도로 히데요시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에 반해서 주변의 영주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강력한 영주들이 아직 건재하여 토요토미가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했다.

또 하나는 토요토미가의 재정문제였다. 히데요시는 모리, 쵸쇼카베, 시마즈 같은 대영주를 굴복시키는 방법으로 상대의 몇 배를 상회하는 대병력을 투입하는 작전을 펼쳐 피를 흘리지 않고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 대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이 엄청나게 소모되었고 또 군대를 축소하고 싶어도 항복한 대영주들의 세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데다가 사무라이들의 반발이 심해서 사실상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히데요시에게 쫓겨난 사무라이들이 이에야스 편에 가서 붙는다면 세력균형이 무너져 다시 전국시대로 돌입하는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초기에 군대에서 쫓겨나 일자리 없이 전국을 떠도는 낭인의 숫자가 40만이었다고 하니 그 수가 과장되었다고 해도 충분히 히데요시정권을 뒤집을 만한 세력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자신의 가문에 위협이 되는 대영주들과 사무라이들을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그는 영주들을 16개 군으로 나누어 차례로 조선을 침공하는데 전쟁의 승패는 부수적인 것이었고 주로 대영주들과 사무라이가 전사해 세력이 약화되는 것을 노린 전쟁이었다.

"경들은 왜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소. 경들 중에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를 읽어본 자가 있소? 있으면 어디 한 번 말해보시오. 신숙주가 왜에 대하여 뭐라고 평가를 했는지?"

"전하. 신 좌의정 이명이 아뢰옵니다. 신숙주가 이르기를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배타기에 익숙하다.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례 조빙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득 함부로 노략질하였다.'라고 하였사옵니다."

"과연 좌상의 학식이 깊구려. 우리 백성들은 순박하기 그지없어 천성이 싸움을 모르는데다가 그간 큰 난리가 없어서 전쟁이 나면 싸울 줄 모르는 이가 태반이오. 하나 왜인들은 원래 싸움에 익숙한 족속들인데다가 최근 들어 100년간 싸움질을 벌였으니 지금은 얼마나 싸움을 잘하겠소? 이런 왜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들면 하삼도(경상, 전라, 충청)의 군사로 버티어낼 수 있겠소?

영상은 직접 토벌을 해서 과인보다 더 알겠지만 지난 을묘년에 고작 몇 천의 왜구에 전라도 남부가 쑥대밭이 되었소. 그런데 몇 만의 왜구가 몰려든다면 그 피해가 비단 전라도에 국한 될 것으로 생각하시오?"

"전하. 신 영의정 이준경이 아뢰옵니다. 물론 그때 우리의 피해가 컸던 것은 사실이오나 너무 심려하실 일은 아니옵니다. 선대왕이신 명종께서는 그 후에 군비를 증강하여 판옥선을 배치하시고 각종 화포를 새로 만드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때의 조선군과 지금의 조선군은 큰 차이가 나옵니다. 성려(임금의 생각)를 거두시옵소서."

"전하. 성려를 거두어주시옵소서."

"경의 말대로 수군에 판옥선이 배치되고 각종 화포를 개량하여 우리의 군사력이 일부 강해진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무기의 차이보다는 그런 무기를 운용하는 병사들의 사기와 훈련도라고 할 수 있소. 영상은 현재의 우리 병사들이 그때의 병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시오?"

"……."

영의정 이준경의 말문이 막히자 더 이상 발언을 하는 이가 없었다. 먼저 국왕의 입에서 외국이 침공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신료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거기에 그것을 부인하던 이준경이 단번에 무너지니 과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균은 일부러 한 템포를 쉬면서 그들에게 불길한 예감을 전해주기 위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덕분에 강녕전의 분위기는 무겁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과인이 경들의 우국충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 경들의 생각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지어가면서까지 언제 침공할지 모르는 외적을 대비해 군대를 기를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일 것이오. 그렇지 않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를 부강히 하려면 먹을 것을 풍족히 하고 강한 군대를 기르며 백성들에게 신의를 보여라고 하시었소. 그중에서 부득히하게 제한다면 첫째로 군대를 제하고 둘째로 먹을 것을 제하되 백성들의 신의를 잃지 말라고 하시었소. 과인의 뜻도 이와 같소.

하지만 그 흉폭한 왜구의 무리들이 과인의 자식과도 같은 백성들을 노리는 데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소? 그래서 과인은 백성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느 정도 대비를 할 것이니 경들은 그리 알고 과인의 뜻을 따르기 바라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번에도 균은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한참 밀어붙인 후 적당한 선으로 알아서 물러나는 전술을 구사했다. 단번에 바꾸어 버리는 것도 좋지만 독불장군스타일로 밀어붙이다가는 오히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균의 왕권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양반들의 세력에 비하면 절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적당히 돌아가는 것이 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과인이 아는 바로는 양인 장정 1인당 매년 군포 2필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지방의 병영과 수영들은 이를 잘 지키고 있지 않고 심지어는 이를 착복하는 자들도 있어 일반 백성들의 세부담이 심각한 수준이오. 단순히 세부담이 심각하다면 천천히 고쳐나가도 되는 문제이지만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는 데도 이것이 국방력의 강화로 나타나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소.

그래서 과인은 군포를 일괄적으로 호조에서 거두어들여 적정량의 예산을 각 병영과 수영에 나누어주고 남는 세액을 이용하여 오위도총부의 군사를 기르고자 하는 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전하. 신 우의정 홍섬이 아뢰옵니다. 백성들을 생각하시는 전하의 뜻을 알겠사오나 역사가 오래된 제도를 함부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특히 군포를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받아드렸다가 각 병영에 분출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고 그런다고 하여도 세액이 남는다는 보장이 없사옵니다."

"경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군포를 중앙에서 거두어 드려 백성들의 세부담을 더는 것 하나만으로도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오. 군포는 원칙적으로 단 2필을 징수하지만 백성들의 부담은 그 몇 배에 달하는 실정이오. 당연히 부정이 개입해 있을 소지는 충분한 터, 공납을 폐지한 후 세금수입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최소한 나라와 백성들에게는 손실이 없는 일이오."

"전하. 신 예조참의 민강욱이 아뢰옵니다. 공납이 폐지되고 난후에 세금을 내는 법이 바뀌어 백성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사옵니다. 수미법을 폐지하고 공납으로 다시 바꾸어 백성들의 불편을 덜어주어야 할 때에 군포의 징수방법마저 바꾸심은 옳지 않은 일이옵니다. 거두어 주시옵소서."

민강욱은 원래 윤원형과 손을 잡고 있던 자로 부패한 벼슬아치 중에 하나였다. 윤원형이 몰락하자 당장 손을 끊고 다른 자에게 아부하여 그 자리를 지키기는 하였지만 그 성품이 비루하여 다른 관리들이 경원시했다. 하지만 균은 그것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그를 관직에 놔두고 있었는데 대신 근처에 탐보꾼들을 배치하여 그와 친분이 있는 자들을 조사하기만 하고 있었다.

'민강욱. 과인이 왜 네놈을 그 자리에 그냥 두는지 모르느냐? 무릇 살짝 곪은 곳은 노랗게 잘 익어야 짜는 법이다. 그래야지 한번에 뿌리를 뽑을 수 있거든.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계속 날뛰어 보거라. 그래봐야 네놈은 과인의 손바닥위에 있느니라.'

"과인도 그 점을 우려하여 작년에 수미법을 실시할 때 군포를 거두어들이는 방법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수미법을 실시한 결과가 어떠한가? 백성들을 좋아하고 나라의 수입은 늘어나지 않았는가? 경은 설마 과인이 보낸 암행어사들이 다 거짓을 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오나 전하. 군포의 문제는……."

"경도 알겠지만 그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방법들을 그대로 시행해보아도 백성들만 고단할 뿐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뀌어보는 것인데 왠 말이 많은가? 과인이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어들이는 것도 아닌데 백성들이 세금을 내는 방법이 바뀌어 혼란스러워 한다니 과인은 그런 소문을 들어본 바가 없다.

과인은 사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먹는 음식들도 많아 먹어보았고 멀리 나주로 떠나 염전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선대왕께 백성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고했던 적이 있는 것도 과인이다. 그런 과인이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닫고 산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

신하들이 왕의 결정에 반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심이 그렇다는 식으로 말을 꾸미는 것이다. 구중궁궐에 사는 왕이 백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 일은 거의 없기에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그런 것을 전해 들어야 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대부분은 양반 관료들이라는 점이다. 거기다 가끔 민심을 보여주겠다고 성균관 유생들이 데모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정작 백성들의 진실한 소리는 들리지 않고 양반들의 요란한 소리만 듣는 왕이 바른 정치를 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암행을 많이 나간 왕들이 성군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균의 경우는 전문적인 정보조직을 통해서 소문을 듣고 있으니 민강욱처럼 잘 못 말했다가는 본전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내년부터 모든 양인장정은 매년 2필의 군포를 각 지방군영이 아닌 지방관아로 납부하고 지방관아에서는 이를 수미법으로 걷은 쌀과 합쳐 한성부로 상납한다. 납세에 융통성을 두기 위하여 세금을 내는 백성들이나 세금을 상납하는 지방관아나 쌀이나 면포 어느 것으로 납부하여도 상관이 없으며 지방군영에서 임의로 징수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해당 병영의 지휘관까지 문책할 것이다. 경들은 그렇게 알고 즉시 시행할 준비를 하라."

"예. 전하."

말은 군포의 중앙수납을 통하여 부정을 없애고 남는 돈으로 오위도총부를 강화시키겠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균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당시 납세자인 평민들이 급감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평민들이 내는 규정된 군포로는 각 지방병영의 재정을 유지하는 것도 벅찼다.

하지만 군포의 수세권이 각 병영마다 따로 있어서 군포를 2,3중으로 부담하고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기, 그리고 도망간 이웃의 군포까지 부담해야했던 폐단을 막는 것만 해도 큰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균은 생각했다. 비록 자신의 재산은 또 축나겠지만 이럴 때 쓰려고 억척같이 모아둔 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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