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3년.

"지난 2월까지 호조에 올라온 상납미는 총 40여만 섬이옵니다. 이중에서 토지세가 20만 섬, 수미법으로 거두어 쓰고 남은 것이 15만 섬, 나머지는 잡세이옵니다. 작년에 관리들의 녹봉으로 지출된 것이 약 30만 섬이니 전하께오서 특별한 일만 아니하신다면 올해 재정수입은 15만 섬의 흑자가 예상되옵니다."

"웅성웅성."

오늘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참이 있는 날이라서 한성부에 있는 관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균은 근정문 앞에 마련된 옥좌에 앉아서 호조판서 조식의 작년 조세수입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조참에서 받는 보고를 조계라고 하는데 원래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 재정위기에 빠졌던 조정의 상황이 자신의 정책에 의해서 나아졌음을 많은 신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로 조식에게 보고하게 한 것이다.

과연 균의 의도대로 조식의 외침과도 같은 보고를 들은 관리들은 당상관, 당하관할 것 없이 모두 그런 효과가 난 것에 놀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실 여부를 묻는다고 정신이 없었다. 균은 그런 신하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고 영의정 이준경은 그런 균을 과할 정도로 칭송했다.

"선대왕마마 때는 언제나 재정이 부족하여 나라에 큰 일이 생기어도 제대로 못한 일이 많았사옵니다. 하오나 주상전하께오서 즉위하시어 어질고 바른 정사를 펼치시니 하늘도 주상전하의 크나큰 덕에 감복하시어 이런 경사스러움 나타났사옵니다. 경하 드리옵니다. 전하."

"경하 드리옵니다. 전하."

"보위에 오른 지 고작 3년째인 과인이 무슨 덕이 있다고 이런 반가운 일이 생겼겠소? 다 과인의 뜻을 따라 열심히 나랏일을 돌본 경들의 노고덕분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제 3월이니 한해 농사가 시작되는 달이오. 여기 있는 만조백관들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지방의 수령방백들에게도 명을 내려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또한 봄철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들이 굶주리는 경우가 많소. 이 또한 백성들을 다스리는 관리들이 돌보아야 할 사항이니 경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오."

"명심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그렇게 조참을 마친 균은 따로 삼정승과 육판서를 모두 강녕전으로 불러들였다. 자신과 9명의 주요대신 그리고 사관 한 명까지 총 11명이 모인 가운데 균은 올해 자신이 중점을 두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 언급하고 신하들의 생각을 물었다.

"경들도 알겠지만 이제 과인은 이 나라의 군사문제를 해결하려 생각중이오. 과인이 보기로 우리 조선의 군사력은 형편이 없는데 백성들의 부담이 너무 커서 시급히 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큰 화가 될 것이오. 그래서 지난번에 과인이 공언한대로 먼저 병무청을 신설할까 하오.

병무청은 병조의 속아문으로 모든 군역대상자를 관리하고 병력의 동원과 소집을 대행하여 지방군영의 업무를 분담하며 군포의 수납과 분배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는 조선의 병무행정을 총괄하는 독립기관이 될 것이오. 직제는 종 2품 당상관이 총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전하. 신 병조판서 정세필이 아뢰옵니다.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전하의 어의에 무슨 이견이 있겠사옵니까? 하오나 전하. 지방군영의 재정이 너무 어렵사옵니다. 백성들의 부담을 더는 것은 좋지만 지방군영의 재정을 중앙에서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또한 중종대왕이래로 방군수포제가 등장하여 군적(병역대상자 명단)이 어지러우니 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한 줄로 아뢰옵니다."

"전하. 신 호조판서 조식이 아뢰옵니다. 선대왕마마 대에 이르러 역신 윤원형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흔들어 군적은 물론이고 호적과 전적(토지대장)마저 어지럽사옵니다. 그간 인구와 토지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탐관오리들이 개입하여 문제가 많으니 빠른 시일 안에 전국의 인구 토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정세필과 조식의 말에 균은 고개를 끄떡거렸다. 조선시대에는 인구조사는 3년, 군적조사는 6년, 토지조사는 20년마다 한번씩 했는데 특히 토지조사의 경우 토지소유자들의 반발이 많고 자금이 많이 소모되는 관계로 자주 시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수십 년에서 백년에 한번씩 그것도 각 지방별로 내키는 대로 시행되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인구, 토지, 군적조사야 말로 절대왕정을 꿈꾸는 균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당장 국가의 조세수입이 늘어나고 백성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물론이고 신하들의 비리를 포착할 수 있어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 다만 당시 기득권층인 양반지주들의 반발은 감수해야 했다.

"과인의 생각도 경들과 같소. 그간 과인이 그런 일에 소홀히 하였는데 경들의 말을 들으니 극히 지당하오. 올해 흑자가 들어 국고에 자금이 충분하니 전국적으로 호적과 군적, 전적의 재조사를 할 만하오. 병판과 호판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작업을 당장 시행하도록 하시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또한 병판의 말대로 지방군영의 재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오. 거기에 지방관아의 재정역시 문제가 있는 곳이 많아서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걷고 있으니 그런 문제도 해결을 보아야 할 것이오. 하지만 일단은 호적과 군적, 전적의 조사에 조정의 온힘을 기울이도록 합시다. 그것만 해도 보통일이 아닐뿐더러 이 일이 먼저 처리되야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도 편할 것이오"

"전하의 말씀이 극히 지당하시옵니다. 전국의 토지 중 절반을 양반들이 가지고 있사온데 그중에서는 불법적으로 차지한 토지도 많고 향리들이 고의로 누락시킨 토지도 많사옵니다. 그것을 찾아내어 지방관아들의 재정으로 돌린다면 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그날 오전은 균과 대신들이 병무청의 설치와 전국적인 일제조사에 대하여 논의 하는 것만으로 그대로 흘러갔다. 그들은 같이 낮것상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군사개혁에 대하여 논의했다. 하지만 봄인데다가 점심을 많이 먹고 난 후라서 그런지 대신들을 식곤증을 느꼈다.

보통 양반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 낮잠을 자는 것을 즐겼는데 한 나라의 대신들이라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되는 것이 보통인지라 벌써 한두 명의 대신들이 연신 균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고 나머지 대신들도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착한 균은 대신들의 잠을 확 깨워주기로 했다.

"이 나라의 군사력은 수륙군을 모두 합쳐 20만이나 되고 그중에서 경군(중앙군)은 약 7만여 명이오. 하지만 이는 서류상에나 존재하는 군사력이지 실제로는 얼마나 될지 짐작도 가지 않소. 과인의 마음으로는 이들을 모두 개편하여 강한 군대로 만들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으니 병무청을 신설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향군(지방군)과 수군의 문제는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소.

하지만 경군은 이 곳 한성부를 지키며 과인의 위엄을 나타내는 부대이니 이대로 방치할 수가 없소. 먼저 과인은 비변사를 혁파하여 중종대왕 이전의 체제로 돌아갈까 하오. 더 이상 비변사에서 군사업무를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오위도총부에서 군사업무를 관장하게 할 것이니 경들은 그리 아시오."

비변사의 혁파. 원래 임진왜란을 거쳐 조선후기의 국정최고의결기관이 되는 비변사는 서기 1555년 상설화된 이래 단 14년 만에 균의 한 마디로 소멸되었다. 균이 비변사를 해체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설되는 새로운 조선 중앙군의 통제권을 자신이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많은 돈을 들여 강한 군대를 만들었는데 비변사가 존재한다면 그만큼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은 작년부터 비변사의 문제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작년 겨울 대열에서 조선군의 무력함을 인식시켜서 비변사의 존재의의에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거기다 비변사가 상설화된 을묘왜변 당시에도 비변사는 변란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였기에 신하들은 균이 생각한 것보다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

하긴 지금의 영의정 이준경도 비변사의 무력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을묘왜변당시 비변사가 한 일은 윤원형을 중심으로 모여서 탁상공론을 전개한 일밖에 없었고 당시 왜구토벌의 총 책임자인 이준경은 무력한 중앙군을 포기하고 북방군에서 정예병력을 차출하여 토벌에 나서야 했다. 그래서 을묘왜변이 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준경을 비롯하여 균이 임명한 대신들은 어느 정도 능력과 안목이 있는 자들이라서 비변사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잠을 확 깰 정도로 놀라리라는 균의 기대와는 달리 별 반응이 없이 동의했다. 이로써 조선의 정치체제는 행정업무는 육조- 의정부- 국왕으로 이어지는 체제를, 국방업무는 오위- 오위도총부- 국왕으로 이어지는 체제로 다시 이원화되었다.

'쩝~! 너무 쉬우니까 재미없군. 어젯밤에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균은 자신이 어렵게 생각했던 문제가 빨리 끝나자 아쉬움을 느끼면서 다음 의제로 넘어갔다. 다음 의제는 중앙군인 오위의 완전개편에 관한 문제였다. 원래 오위는 5개 부대에 각 병과가 균등하게 배치가 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병과를 그냥 오위라는 이름 하에 묶어둔 수준에 불과했다.

그것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활동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은 상황이기에 오위는 소속된 부대만 여러 종류 일뿐 전시에 그 실효성이 의문시 되었다. 그래서 균은 여, 대, 오 같은 소규모 부대까지 모두 해체하고 내금위의 편제를 따라서 삼각편제(휘하에 3개의 하위부대를 거느리는 편제)로 부대를 구성하기로 했다.

*최하위 부대는 '대'로 병력은 10명 지휘관은 대정.

대가 3개가 모이면 '기'로 병력 30여명에 지휘관은 기수.

기가 다시 3개모이면 '려'라 하고 병력 100여명에 지휘관은 여수.

려가 3개가 모이면 '통'이라 하고 300여명에 지휘관은 통장.

통이 3개가 모이면 '영'이라 하고 약 1천명에 지휘관은 영장.

영이 3개가 모이면 '부'라 하고 약 3천명에 지휘관은 부장.

부가 3개가 모이면 '위'라 하고 약 1만 명에 지휘관은 위장*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하."

"……."

이번에도 대신들의 반대가 없었다. 상당수의 대신들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귀가 따가울 정도의 반대를 예상하던 균에게 대신들의 반발이 없는 것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차라리 반대라도 해주면 조목조목 따져가며 설명을 해줄 터인데 낮잠을 잘 시간이라서 그런지 대신들의 반응은 너무 시원치 않았다.

본래 부대의 편성은 하나의 상위부대가 3~6개의 하위부대를 거느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하위부대의 수를 줄이고 대신 하위부대의 전투력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 지휘하기 편하여 군대의 조직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군도 기존의 사각편제에서 삼각편제로 부대를 재편하고 있다.

균의 생각도 이와 같아서 기존의 오각편제를 삼각편제로 바뀌기로 하였고 이미 내금위에 시범적으로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 바가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오각편제를 버리는 것에 변화를 싫어하는 대신들이 반대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3이라는 숫자를 무척 좋아한다. 삼년상, 삼년고개, 삼세번 등등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숫자 3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는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균이 사각편제를 했다면 숫자 4에 생소함과 죽을 사(四)에다한 혐오감으로 난리를 쳤겠지만 3이란 숫자는 친숙했다. 거기다 이준경, 조식, 정세필 같은 이들은 어느 정도 군사에 대하여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라서 균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런 그들이 가만히 있자 다른 대신들도 무슨 속뜻이 있다고 생각되어 그냥 있었던 것이다.

'이게 아닌데, 되려 불안하다.'

덕분에 안하던 일을 하는 대신들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균만 전전긍긍했지만 좋은게 좋은 것이니 균은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균이 통고한 것은 기존의 위, 부, 영, 통, 여, 기, 대에 현재의 편제단위인 사단, 여단 , 연대, 대대, 중대, 소대, 분대를 대입하여 같이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의흥위'를 '제 1사단'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니면 '제 1사단 의흥위'로 부른 것이다. 요즘에도 'XX사단 OO부대'처럼 별칭을 다는 경우가 많은데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지휘관의 명칭이나 계급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순전히 현대의 부대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했다. 동시에 균은 대신들 앞에서 6명의 부대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른 조선 중앙군의 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수도사단 내금위- 위장은 곽흘, 병력은 6천

제 1기병사단 의흥위- 위장은 남언순, 병력은 1만.

제 2보병사단 용양위- 위장은 유태수, 병력은 1만.

제 3보병사단 호분위- 위장은 오운, 병력은 1만.

제 5보병사단 충좌위- 위장은 변양좌, 병력은 1만.

제 6보병사단 충무위- 위장은 장의현, 병력은 1만.'

이런 균의 계획에 따르면 조선의 중앙군은 기존에 7만 명의 병력에서 5만 6천으로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내금위는 전원 상비직업군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5개 사단은 분대장인 대정이상의 지휘관들만 상비직업군으로 충당할 계획이었으므로 실제 균이 거느리는 상비군은 내금위에 6천, 각 사단에 2천씩 총 1만 6천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하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원래 조선왕조가 해오던 것처럼 군사비 지출을 아끼기 위해서 병사들 교대로 돌아가면서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 1만 6천의 병력을 일년 내내 유지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다가는 조선의 재정이 거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전하. 신 이조판서 홍담이 아뢰옵니다. 무릇 경군이 주상전하의 위엄을 나타내고 전하를 호종하는 막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1만 6천의 병력을 상시 유지한다는 것은 올해 호조가 거둔 세수입을 모두 털어 넣어야 가능한 일이옵니다. 삼사는 물론이고 성균관 유생들까지 가만히 있지 않을 일이오니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전하."

"전하. 신 공조판서 노수신이 아뢰옵니다. 옛적에 선대왕들께오서도 그런 상비군을 유지하려하신 적이 있사옵니다. 하지만 군졸들이 먹어치우는 곡식을 대기도 벅차서 한성부로 번상시위(서울로 올라와서 지키다.)하는 정군들에게 식대와 경비를 직접 부담시켜 왔사옵니다. 전하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일에 막대한 군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백성들의 고충이 클 것입니다."

"전하. 신 영의정 이준경이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신들도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옵니다. 전하의 보령이 이제 겨우 열 일곱이시니 나중에라도 그 크고 깊으신 뜻을 펼치실 기회가 찾아올 것이옵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전하."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군.'

이준경을 비롯하여 홍담 같은 친 국왕파 대신들까지 앞 다투어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데도 균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누가 보면 변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제야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푸근해지는 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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