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3년.
북방군은 조선의 북부를 지키는 최정예의 군대이다. 물론 북방군이 정식명칭은 아니다. 단지 북쪽에 있는 군대이니 북방군이라고 부를 뿐이며 그 구성원은 함경도와 평안도에 거주하는 양인장정들과 중앙군에서 파견되는 여러 부대들, 그리고 죄를 짓고 그 벌로 북방군에 복무하는 사람들이다.
비록 북방군이 여진족과 잦은 전투로 조선 최강의 전투력을 확보하고 있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많아서 병사들의 사기는 낮았다. 특히 조선의 경우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에게만 무거운 의무를 부가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조국을 지키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이 무너지면 자신의 가족들이 다치니까 싸운다는 생각으로 힘든 임무를 수행하는 상황이었다.
북방군의 규모가 큰 만큼 여러 개의 군사기관이 나누어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평안감영, 평안병영, 함경감영, 함경남병영, 함경북병영. 이렇게 5곳이었다. 이중 함경남병영은 다시 5개의 진관으로 구성되는데 이중에서 갑산진관이 있었고 이곳의 주요 군 지휘관중 하나인 운총만호(종 4품)는 이동명이라는 인물이었다.
이동명의 본관은 영흥 이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전주 이씨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형인 이원계의 자손으로 그의 가문이 함경도 일대에서 대를 이어 무관직에 종사를 하는 덕분에 갑산진관의 경우에는 총지휘관인 갑산부사보다도 운총만호인 그의 영향력이 더 컸다.
그래서인지 오늘 이동명의 집에는 당번인 장수와 군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동명의 부름에 응하여 회의장에 모였다. 참석한 자들은 장수 수십 명에 군관이 백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는데 이동명의 집은 그들을 모두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컸다. 군관들이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동명과 장수들은 이번에 한성부에서 전해진 소식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나으리. 아무래도 도성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조선왕이 대규모 군제개혁을 단행하는 바람에 무려 1만 3천명이 군대에서 쫓겨났고 덕분에 이곳에 위치한 양계갑사들도 군대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동요하고 있습니다."
"후후후. 군제개혁이라 뭐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빨라. 역시 왕이 너무 어린 아이답다는 생각이 드는 군."
"그렇습니다. 나으리. 사람들이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는 무척 민감한 존재입니다. 왕이 내쫓은 자들이 무능하기는 하지만 한번에 그렇게 많이 잘라내는 것보다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조금씩 제거하는 편이 상책인데 너무 급하게 처리를 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뭐. 어찌 되었던 간에 우리에게는 잘 된 일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나으리. 병사들이야 이 지방의 주민들이라서 대를 이어 이 지방에 세력을 떨쳐온 나으리를 주저하지 않고 따르겠지만 한성부에서 파견된 중앙의 경군들이 나으리의 통제에 따르지 않아서 거사를 치르기 힘들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그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나으리께서 그들을 조금만 위해주셔도 그들은 나으리를 따를 것입니다."
"옳은 말이야. 원래 경군이 이곳 함경도에 파견된 이유가 북방군을 통제하여 반란을 막으라는 뜻이 강하지 않은가? 그런 자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으니 이번 왕의 능력을 알만하네. 하하하."
"하하하!"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부하장수들과 균의 실정을 비웃고 있는 이동명의 선조인 이원계는 역시 이성계 못지않은 장수로 요동정벌전에 참가한 고려의 무장이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할 무렵 그의 형인 이원계는 이에 불복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거기서 다시 지금의 갑산 일대로 옮겨 왕위를 찬탈한 자신의 동생과는 일절 교류를 끊어버린다.
나중에 태조 이성계가 함흥으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형 이원계는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성계가 이방원을 공격한 조사의의 난 때 제 숙부인 이성계를 지지하여 이성계측의 장수로 참전하여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고 그 시신도 찾지 못했다.
이성계는 형의 가문에 보답을 하고 태종 이방원에게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기 싫을 마음에서 자신이 가진 재산의 상당수를 이원계의 손자에게 넘겨주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일종의 군벌로 성장한 것이 바로 이동명의 가문인 것이다. 균이 외수사를 감추기 위해 조작한 이성계의 유산이 실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동명의 선조들은 용의주도했다. 태종 이방원에게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자신들의 본관을 바꾸어 버렸고 함경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삼수갑산에 터를 잡고 세력을 유지했다. 특히 그들의 근거지인 갑산은 함경도의 중앙부에 속하는 곳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방어를 하기 좋은 지형과 함경도의 주요 요지를 기습할 수 있는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지리적인 이점과 강력한 영향력, 방대한 재산을 보유한 이동명의 가문이었지만 딱하나 갖추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동명처럼 야망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번번이 이징옥, 이시애같은 자들이 반기를 들었지만 이동명의 가문은 방관을 했고 역설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동명은 그의 선조들과는 달랐다.
"그간 우리 가문은 조용히 지내왔다. 하지만 왕실은 너무 혼란스러웠어."
"옳으신 말씀입니다. 왕실이라고 해봐야 처음부터 형제들 간에 왕위를 두고 피바람을 일으키더니 형을 제치고 동생이 왕위를 얻는 일은 부지기수이고 숙부가 조카를 살해하고 조카가 숙모를 취하며 어미가 자식을 죽이고 손자가 할머니를 죽이는 등 도저히 일국의 왕실로써 자격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왕이 된 하성군은 중종의 서손자에 불과한 자. 운 좋게 왕위를 얻기는 했지만 원래 왕위를 차지할 인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왕권을 강화시켜 보겠다고 움직이니 양반들이 반발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성군은 분수를 모르고 있는 자이지요."
이동명이 거느린 장수들은 앞 다투어 현 조선국왕인 균의 험담을 계속했다. 조선군에 소속된 장수들이라고 해도 모두다 조선왕에게 충성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는 조사의의 난 이래 함경도를 박대했다. 함경도 사람들의 기질이 드세서 반란이 잦다는 이유에서 이다. 하지만 함경도는 조선왕조가 일어선 땅이니 자식이 부모를 욕하는 격이다.
거기다 반란 후 조선왕조는 가혹할 정도로 함경도를 박해했다. 도의 이름을 함부로 바꾸어버린다거나 함경도 출신의 선비들을 과거 시험에서 낙방을 시키는 듯 여진족을 막는다고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던 함경도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유력한 지역토호들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었고 이동명은 그중에서도 유력한 토호중에 하나였다.
또한 150년이 넘도록 한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가문은 흔하지 않았고 그런 가문인 만큼 가신들도 적지 않았다. 주인인 이동명의 가문이 대대로 무관직을 수행했던 만큼 가신들도 군관이나 하급 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자신들의 주인을 따르른 경우가 많았다. 여기 있는 군관들과 무관들의 대부분도 다 이동명의 가신들이었고 그래서 자신들의 왕에 대한 험담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대를 이어 자신의 가문에 충성을 해온 자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현 조선왕실과 국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이동명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꺼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자들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오니 나라가 흔들리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맞습니다. 나으리."
"이럴 때 새로운 성군이 출현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구원할 필요가 있다. 그 옛날 발해는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건국왕인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후손이 왕위를 이어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우리 조선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옳습니다. 나으리."
"그대들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조선의 태조대왕의 형 이원계장군의 후손이다. 우리 가문 이원계장군 때부터 태조대왕을 위하여 큰 공을 세워던 가문. 조사의의 난에 참가하신 나의 조상께서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자 태조대왕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의 대부분을 아들인 이방원이 아닌 우리 가문에 하사하시었다. 이것이야 말로 태조대왕의 뜻이 이방원의 후손인 현 왕실보다도 우리 가문에 있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장군이야 말로 태조대왕의 고명을 이은 진정한 가문의 후손이십니다."
이성계의 뜻을 이은 것이 자신의 가문이라고 이동명이 밝히자 장중의 장수와 군관들은 이에 크게 동조하며 그런 이동명의 말에 반가워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이동명은 자리에 박차고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말했다.
"그래서 나 이동명은 더 이상 현 왕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150여 년간 우리 가문이 기회를 주었는데도 왕실은 우리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태조대왕의 뜻을 이어받은 우리 가문이 일어나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은 하늘이 정하신 이치일 것이다."
"저희가 장군을 따르며 견마지로를 다하여 장군의 큰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앞장을 서겠습니다. 소장들을 믿고 그 뜻을 이루시옵소서."
"와아~!"
분위기가 무르익은 장중의 사람들은 일제히 함성을 외쳤다. 얼마나 분위기가 달아올랐는지 이곳이 조선에서 가장 추운 함경도지역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몸에서는 열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이동명은 손을 들어 시끄러운 장중을 조용히 시키고 천천히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대들 같은 용장들과 맹장들이 나를 도와준다니 지금이라고 한성부로 출병하여 왕위를 차지하고도 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 그대들과 병사들이 무의미한 희생이 클 것이다. 나는 그대들과 조선을 반석 위에 세운 후에 부귀영화를 같이 하려고 하는데 그대들이 희생된다면 어찌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거사를 치르려고 한다. 내가 듣기로 이번에 해산된 병사들이 기호지방 일대의 양반들에게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신권주의를 표방하는 정도전의 후예들이 왕권주의를 표방하는 이방원의 후예들과 피를 흘리며 싸울 것이다. 단지 우리는 기다렸다가 둘 다에게 결정타를 입히면 된다!
거기다 그간 우리 용맹한 함경도 병사들이 왕실의 토벌군에 번번이 패한 것은 북방의 여진족을 경계하느라 주력부대로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간동안 여진족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여진족 추장인 이지란이 태조대왕의 의형제가 되어 큰 공을 세웠던 것처럼 나는 그전의 적인 여진족까지 포옹하여 우리 함경도의 진정한 힘을 남쪽의 겁쟁이들에게 보여주리라!"
"천세! 천세! 천천세!"
이동명의 설명과 장내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은 연이어 천세를 외쳤다. 함경도는 그 지역적인 특성상 아무래도 선비보다는 무사가 중시되는 고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중에서 어느 정도 학문을 공부한 자들은 극소수였고 이동명의 발언과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동의 중대함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분위기에 빨리 휩쓸려 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무식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동명의 말이 전부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앞서 김진기가 일반적인 양반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이 강한 인물이라면 이동명은 그간 조선왕조에 충성을 다하고 많은 일을 했지만 제대로 보답을 받지 못한 함경도 사람들의 불만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특히 문을 중시하고 무를 천시하는 조선왕조에 대한 무관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균이 군사개혁에 빨리 착수한 이유가 무관들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를 다독거리자는 것이었는데 너무 강도 높은 개혁으로 오히려 지방군소속 지휘관들에게 불안감을 안기고 말았다.
이동명은 이런 정세와 균의 실책을 이용하였고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무가의 자손답게 유약한 조선의 왕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강인한 장군의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물론 저 멀리 균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면 일을 달라지겠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균의 모습은 어리고 약한 꼬마에 불과했다.
거기다 유사시 반란군의 전력은 강대하고 관군의 전력은 약하다. 일단 관군은 양반들의 반란군을 진압하느라 정신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함경도에 반란이 일어나도 3만 정도의 토벌군을 파견하면 거의 조정으로써는 총력을 다한 셈이며 잘하면 먼저 반란군에게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동명이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갑산 일대의 군사만 약 1만 명에 이르고 함경도 일대의 북방군이 이동명의 봉기에 호응하면 최소 5만의 대군을 만들 수 있다. 거기에 이동명의 말대로 여진족이 가세를 한다면 10만의 군세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고 군자금으로 쓰일 자금도 충분하니 승산이 높은 것이다.
이동명은 자신의 의견을 열렬히 지지하는 장수들과 군관들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시조 이원계는 자신의 자손들에게 이성계의 자손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유언을 내렸고 그 유언을 어긴 이원계의 아들이 전사한 후 그 유언은 엄격히 지켜졌다. 하지만 이동명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제 조상이신 이원계 장군이시어. 장군의 후손인 저를 지켜 보아주십시오. 기필코 장군의 영전에 곤룡포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나 장군을 대왕으로 추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150년간 숨을 죽이며 살아온 가문의 이름을 빛내고 함경도 백성들과 우리 무관들의 울분을 풀어줄 것입니다.
물론 장군께서는 저를 말리려 하시겠지만 저는 더 이상 이런 시골구석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아니 저뿐만 아니라 이제 막 걸어 다니는 어린 아들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이런 시골구석에는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도와달라는 말은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후손들의 미래를 막지만은 말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