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123 회]
즉위 3년.
개성은 고려의 오백년 도읍지로 발달된 상업으로 번영하던 도시이다. 하지만 고려말기 잦은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고려의 북방은 물론이고 수도 개경마저도 이민족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특히 고려왕실에 큰 타격을 입혔던 전쟁은 홍건적의 침공이다. 2차에 걸쳐 약 14만의 대군을 투입한 홍건적에게 개경은 함락되고 공민왕은 안동으로 달아났다.
고려는 나중에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홍건적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홍건적이 끼친 민폐가 컸던 탓에 개경의 민심이 급격히 이반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성계의 위화도에서 회군을 할 때 최영이 일국의 수도인 개경에서 모은 군사가 고작 수십 명이었다는 것은 고려왕조가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고려는 이성계에게 무너졌고 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와 정도전등은 고려의 뿌리까지 뽑기 위해 왕씨들을 학살하고 고려의 옛 도읍인 개성에도 무자비한 철퇴를 가했다. 고려왕조의 몰락을 지켜만 보았던 개성사람들은 그제서야 후회했지만 이미 조선왕조의 기반은 단단해진 후의 일이다.
그렇게 나라를 잃고 죄인처럼 살게 된 개성사람들은 한정된 농경지에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었고 그 대안 중에 하나인 조선의 관리가 되는 것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가업이기도 한 상업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조선최고의 상단 송상의 기원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현 송상대방은 송민진이라는 인물이다. 한때 송상의 도방을 지냈던 할아버지의 후광으로 상단에 입단한 그는 빠른 속도로 승진을 거듭하여 나이 사십 줄에 송상대방이라는 조선상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상재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조직관리에 능한 인물이었는데 덕분에 송상은 그가 대방의 자리에 오른 후 더욱 발전했다.
그래서 상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송상은 조선상권을 거의 장악할 만큼 전성기를 맞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정세변화로 인해 송민진의 심기가 불편했다. 덕분에 지금 본전의 재무상황을 관장하는 행수이며 자신의 조카딸인 안지연의 보고를 받은 송민진은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그러니까? 올해 세금으로 빼앗긴 돈만 벌써 십만 냥이 넘는다는 말이냐?"
"예. 대방어른.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작년보다 더 많은 이십만 냥 이상을 세금으로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이런. 망할 것들. 우리 송상이 지난 170여 년간 고생고생하며 상단을 길러올 때는 훼방을 놓더니 이제는 좀 살만하니까 세금으로 뜯어가다니……."
"대방어른. 제가 말씀드릴 것은 아니지만 그간 우리를 봐주던 관리들이 많았기에 세금이 적게 들었던 것이고 대신 뇌물로……."
"시끄럽구나. 다음 보고나 계속해보아라."
송민진은 기분이 나쁜지 괜히 안지연에게 역정을 냈다. 이번에 균이 외수사의 상인들을 동원하여 상업세를 무겁게 먹이고 암행어사들을 대거 동원하여 탐관오리들을 제거하자 송상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송상의 매출과 매입은 알 길이 없지만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보부상단까지 운영하고 있었던 만큼 많은 이익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상업에 무지하여 막대한 이익이 남는 상업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적정한 수준의 세금을 송상으로부터 거두지도 못했다. 물론 모든 관리들이 다 바보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약간의 뇌물로 충분히 무마가 되었고 송상은 세금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새로운 왕이 즉위하고 나자 무거운 세를 부담해야 했던 것이다.
"예. 대방어른. 이번에 시전상인들의 몰락으로 공백지가 된 한성부에 진출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었습니다. 원래부터 한성부의 상권을 상당부분 장악해오던 외수사가 막대한 자금력을 풀어서 우리 송상과 육의전의 후신인 한상을 대대적으로 압박하여 조만간에 한성부와 그 일대의 상권은 외수사가 차지할 기세입니다."
"……."
"거기다 전라도 일대에서는 나상이라는 신흥 상단이 등장하여 이미 전라도를 독점하고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송상의 지점들은 악전고투를 하거나 밀려나는 입장이고 경상도 제일의 상단인 경상의 경우에는 조만간에 합병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외수사와 나상이라……. 그렇다면 우리 송상은 삼남지방과 경기도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있다는 소리구나. 그럼 조선상계는 한성부의 외수사와 남부의 나상, 그리고 북부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우리 송상의 삼파전 상황이 되겠군."
"이런 상황이라면 조만간에 그리될지도 모릅니다."
그간 균이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하나의 개혁정책에만 죽자살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뒤로는 외수사와 나상을 동원하여 조선의 상계를 조금씩 점유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조선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던 송상은 그 기반을 조금씩 잠식당하고 북쪽으로 밀려가는 처지였다.
얼핏 보면 조선 8도중에서 경기도는 외수사가 차지하고 경상, 전라, 충청도는 나상이 차지하고 나머지 4도는 송상이 차지하고 있으니 송상이 가장 큰 상단으로 보이지만 사실 북방의 4개도는 면적만 넓을 뿐이고 농경지와 인구가 적다. 토지면적으로 비교해보면 전라도의 농경지면적이 함경, 평안, 황해, 강원 4도의 농경지 면적과 비슷하다. 그러니 단순히 비교를 해보아도 나상의 상권은 송상의 2배가 넘는다.
그렇다고 외수사가 만만한가? 아니다. 일단 인구 20만의 소비도시 한성부를 부양하는 것은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여 거의 1개도에서 얻어지는 상업이익과 필적할지도 모른다. 거기다 외수사는 조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매년 유지비만 수백만 냥이 나가는 균의 군대에도 무기와 보급품을 공급하고 있으니 송상에 뒤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송상은 덩치만 클 뿐 사실상 조선 3위의 상단으로 밀려버린 셈이다.
이렇게 균의 상계장악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송상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위축되어 가는데 상업세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돈을 뜯어가니 송민진으로써는 균이 미워죽을 지경이다. 물론 외수사와 나상도 균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화병으로 피를 토하고 죽을지도 모를 정도다.
'170년. 아니 옛날 후삼국시대 때까지 소급하면 7백년에 달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송상이다. 그간 조선에서 우리 송상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 상계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아왔다. 그런데 내 대에 이르러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니…….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맥없이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자신의 외숙부를 잠시 바라보던 안지연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방어른.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조만간에 조선에서 반란이 예상되옵니다."
"뭐라고?"
이미 균의 군사개혁이 단행된 지도 여러 달이 지나 한창 무더운 여름이었다. 방안에는 잠시 적막이 감돌았고 바깥의 매미 울음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송민진은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제 조카딸의 앵두 같은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지난 군사개혁으로 약 1만 3천의 병사들이 원한을 품고 해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이름만 병사였던 자들은 제외하고 약 1만 명이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양반에게 고용된 것을 최종 확인했습니다. 양반들의 핑계야 호랑이사냥과 화적떼 토벌이지만 너무 과도한 전력입니다. 따라서 야심이 있는 자들이라면 한번 움직일 만 합니다."
"전쟁이라, 좋은 돈벌이가 되겠군."
"그렇습니다. 군대라는 것은 돈을 먹는 괴물입니다. 이번 내전을 계기로 우리 송상은 다시 예전의 상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긴 양반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면 상당히 무섭지. 이번에 흡수한 1만의 군사를 중심으로 그들이 거느린 노비와 소작농들만 동원해도 족히 3만이상의 군대는 만들어지지 않겠느냐?"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기호지방의 양반이 들고 일어난다고 해도 많아야 3만에 불과하지만 영남과 호남의 양반들이 뭉치면 각각 3~4만의 군사는 모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의 10만의 대군을 모으는 것도 가능합니다."
안지연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상을 내놓았다. 이렇게 북쪽에 위치한 일개 상단의 행수가 남부지방의 반란과 그 규모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전국 보부상들의 총본산이 바로 송상이기 때문이다. 보부상이란 행상을 하던 상인들을 말하는데 덕분에 송상의 유통망은 아직도 외수사와 나상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보부상들의 가치는 상당히 컸다. 일단 교통이 불편한 조선시대에 전국 방방곡곡에 물자를 공급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가끔은 편지를 전달해주고 다른 지역의 소문을 전해주는 역할도 했다. 거기다 보부상들은 산길을 오가는 바람에 체력이 좋아서 알아서 산적들을 소탕하기도 하는 등 거의 만능에 가까웠다.
그러다보니 보부상의 본산인 개성의 송상은 전국의 소식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다. 거기다 수도인 한성부가 지척에 있으니 정세변화에 발 빠르게 대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송상의 최대 강점이었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장점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10만이라. 정말 큰 돈벌이가 되겠구나. 물론 불쌍한 백성들이야 고생이 많겠지만 우리 송상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로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방어른. 북쪽 국경을 지키는 북방군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북방군이?"
"예. 북방군은 대부분 함경도와 평안도의 병사들로 이루어지지만 그들을 지위하는 사람들은 중앙군에 소속된 갑사들입니다. 그래서 어느 야심에 찬 장수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해도 북방군의 허리와도 같은 갑사들이 반대를 한다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왕이 자충수를 둔 덕분에 갑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북방군은 최소 5만은 되는 대규모 부대입니다. 그렇게 많은 군대가 몰려있으면 개중에 누구 하나 야심에 차지 않은 자가 없을 리 만무합니다. 제 2의 이성계가 되고 싶은 야심가에게 지금의 상황은 무척 유리한 것입니다. 거기다 한성부 일대에서 양반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최상의 조건이 되는 것이지요."
송민진은 웃고 싶었지만 곧 참았다. 이런 밀담을 나누는데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었고 또한 자신들이야 돈벌이도 되고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왕조가 고생을 할 것이니 기분이 좋지만 전쟁으로 희생될 백성들도 많을 것이니 아무리 조카딸 앞에서라도 웃음을 보이는 것은 자제해야 했다.
잠시 후 안지연이 물러가고 혼자가 된 송민진은 두 곳에서 동시에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했다. 그는 개성 송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개성 왕씨이다. 그의 선조가 이성계의 왕씨 대학살을 피해 송씨로 성을 바꾼 것인데 그 뒤로 가문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다.
약 170년이 흐르고 송민진의 대에 이르러 조선왕실에 대한 원한은 많이 누그러들었고 송민진은 상인으로써의 임무에 더욱 충실하여 송상을 잘 이끌어왔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자신들의 옛 성인 왕씨 성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은 해오고 있었는데 조선왕조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으니 그의 희망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거기다 자신은 현재 송상의 대방이다. 수천에 이르는 보부상과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동원할 수 있다. 일부 도방들이 반대를 할지도 모르지만 개성출신의 도방들은 모두 찬성을 할 것이고 반란에 자신들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약간의 도움만 주어도 분명히 반란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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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천둥번개가 쳐서 컴퓨터 사용이 금지되는 바람에 글을 늦게 올렸습니다.
이제는 3곳 균이 고생좀 하겠군요.^^ (아이구 좋아라.)
그간 균이 고생하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 왕이 되기 전에서는 한번 실수하면 끝장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넣을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작가의 로망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흐흐흐.
일단 균의 적대세력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진기-양반기득권층을 대표 현재 병력 5,000. 후에 30,000~100,000의 병력
이동명-무관과 함경도민들을 대표
현재 병력 10,000. 후에 50,000~10,0000명
송민진-구고려 및 상인세력을 대표 현재 보부상 3,000명.
그래서 3곳의 반란군을 합치면 최소 10만에서 최대 20만의 병력입니다.
이에 반하여 나머지 조선군은 사실상 동원해도 도움이 안 되고 국경을 지켜야하니 진압군은
내금위 약 6천+중앙군 1만+나중 증가분. 이런 10%도 안 되는 군요.^^ 하지만 서로 준비가 안 된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그럼 리플답변입니다.
1. 함경도는 이성계 고향으로 일종의 성지형식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함길도는 산천이 험하여 막히고 길이 멀어서 조정이 풍속을 교화시키려고 해도 잘 미치지 못하는 수가 있다. 민간의 습속 또한 매우 어리석고 잘 현혹되는데다가, 도의 경계가 야인과 연접하여 있는데도 어질고 아니고를 가리지 않고 무사로서 수령을 삼으니 백성들이 하루 아침에 이시애를 따라서 적의 무리가 된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세조 13년 9월 조선왕조실록.)
함경도는 이미 조사의의 난 이후로 반란의 고장으로 배척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조~태종때 많은 반란이 있었는데 대부분 군대가 집중된 북쪽에서 일어났습니다. 거기다 세조때 이징옥, 이시애 같은 사람들이 등장 결정타를 입힙니다. 참고로 왕실의 뿌리인 전주가 있는 전라도도 정여립의 난 이후 차별하던 것이 조선왕조입니다.
2. 너무 반란이 일어나는 근거가 부실하지 않나요?
->반란이 일어나는 근거는 확고합니다. 먼저 반란 동조층의 경우 이동명의 반란을 예시로 들겠습니다. 원래 3만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던 조선중앙군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새로 들어온 사장이 갑자기 1만3천명을 정리해고 시켜 버립니다. 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들도 짤리지 않을까, 또는 동료들이 생각나서 불안감이 생깁니다.
본사의 경우에는 사장이 그런 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만 산 넘고 물 건너 한달쯤 이동해야 도달하는 북방지사의 경우에는 직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그것을 명망 높은 지사장이 앞장서 좋은 조건을 내걸고 분사를 주도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회사에 남느냐? 아니면 유망한 회사로 옮기느냐? 상당수의 움직임은 뻔합니다.
반란주도층의 경우에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의 관점은 오늘과 다릅니다. 우리의 자유라는 것은 남의 자유를 해치치 않은 한도에서의 제한적인 자유지만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생각하는 자유는 내 마음대로 평민, 노비들을 부리는 것이 자유이며 아무리 많은 수입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고 모든 일에서 자신만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니 균은 죽일 놈으로 보일 수밖에요.
3. 임진왜란 때 국가존망을 걸고 신립이 동원한 군이 약 6천이라면서 반란을 일으키는 군대가 3만이 넘는다니 좀 이상합니다....
->먼저 115화에 조선의 군사력과 군사제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국가존망을 걸고 신립이 동원한 군이 약 6천이라면서'라는 구절 자체가 제 글에는 없습니다. 또한 반란군의 상당수는 조선군이 아니기에 심하면 100만 이상을 설정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당시 조선에서 싸울 수 있는 남자들만 해도 수백만은 되고 여진족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