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3년.
한성부 경복궁 강녕전 안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각도에 파견된 암행어사들의 올린 보고를 읽던 균이 도승지 정인기와 선전관 박규남을 불러 앉혀 놓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균은 먼저 도승지 정인기에게 보고서를 주어 읽게 하고 사실여부를 물었다. 아무래도 왕인 자신보다 정인기가 조정의 소식을 듣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당수의 양반지주들이 수미법으로 부과되는 쌀을 소작농들에게 부담시키고 어떤 자들은 납부를 거부한다는 말이오?"
"예. 전하. 암행어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런 문제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대신들도 우려하고 있사오나 아직 그 지역이 일부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또한 그런 사례가 미미하여 소신이……."
"알겠소. 도승지는 그만 나가보시오."
정인기에게서 특별히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균은 일단 그를 내보냈다. 하긴 조선시대의 여유 있게 사는 양반들의 관점으로 볼 때 문제가 커져서 국가에 큰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면 미미하고 사소한 일이 불과하다. 그것을 물어본 균이 잘못한 것이다. 정인기를 밖으로 내보낸 균은 이번에는 박규남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충청도 지역이 그렇다고 양반들의 횡포가 심하던데 사실인가?"
"예. 전하. 신들의 정보망으로는 아직 한성부와 경기도 일대를 감찰하는 정도가 한계라서 나상대방 김형중에게 협조를 요청한 결과 사실이라고 판명되었사옵니다. 또한 충청도만큼은 못하지만 경기도 일대도 그런 경향을 보이는 자들이 많습니다."
"음~. 작년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올해 초 해산된 군인들을 믿고 조정의 시책에 반대를 한다는 말인가?"
균의 정보조직이 생긴 것은 그가 즉위한 직후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도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직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경기도 일대까지 감시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조선역사상 수도근처의 반란은 2차례(중종반정, 인조반정)성공했지만 지방에서 성공한 반란은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균의 정보체계는 박규남의 정보조직으로 경기도를 감시하고 나머지 지역은 나상에 위임하는 임시체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조선에서 삼남지방만 장악하면 조선을 다 장악했다 할 정도로 남쪽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조선의 전체 토지가 약 175만결이라고 한다면 균의 눈이 미치는 경기, 충청, 전라, 경상 4도가 무려 128만결에 달한다. 그러니 조선의 경제력의 70%가 넘는 지역이고 그만큼 양반들이 많은 지역이라서 균의 관심은 남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남쪽이 수상한 분위기를 보였다.
"아무래도 그런 듯 하옵니다. 신들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에 해산된 병사 1만 3천명 중에서 3천명은 그대로 한성부에 남았고 약 7천 명이 충청도로, 2천 명이 경기도로 낙향을 했습니다. 나머지 1천명에 대한 정보는 곧 보고서를 작성하여 올리겠사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모든 일은 대국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 충청도에 비정상적으로 낙향한 병사가 많다고 하니 김형중에게 전해서 자세히 감시하라고 하게. 또한 그 일대의 곡식 값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자세히 조사를 하도록."
"예. 전하."
"이제 곧 추수철이다. 추수가 끝나면 농민들이 할일이 없어지고 이들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추수철 곡식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 곡식을 팔지 않고 다른데 쓰려고 하는 것이니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과인의 생각을 김형중에게 단단히 이르도록 하라."
"예. 전하."
박규남이 방을 나선 후 균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충청도는 호서지방이라고도 불리며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경기도의 사이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다. 또한 대부분 구릉성 산지와 평야지대로 구성되어 농경지가 많았고 금강 등 수자원이 풍부하여 조선의 곡창지대로 손꼽히는 땅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충청도는 기호사림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기호사림의 근거지는 경기도와 충청도인데 그중에서도 농경지도 많고 한성부와 적당히 거리를 둔 충청도야 말로 기호사림의 최대 거점이라고 할만했다. 미래에도 충청도를 양반의 고장이라고 할 정도이니 조선시대인 지금에는 양반의 영향력이 무척 강한 지역이다.
최근 들어 이런 충청도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수미법의 실시 후에 그럭저럭 따라와 주는 듯 하던 충청도 양반들은 그 부담을 소작농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너무 빠른 진행이었다. 그래서 균은 의심스러워했다.
'백성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신들의 부담을 덜고 백성들에게 나에 대한 불만을 심어줄 수 있지.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포악한 임금이라고 말이야. 아무리 내가 공납과 군포를 감해주었다고는 하지만 양반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백성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균은 양반들은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반들을 따라다닐 백성들이 두려웠다. 양반들의 숫자야 얼마 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작자들이니 균이 밀어붙이면 되지만 백성들은 수도 많고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양반들이 이런 점을 비집고 들어와 균과 백성들의 사이를 이간질 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백성들이 진정으로 누가 자신을 위하는 자인지 알아준다면 균의 인상을 밝을 것이다. 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소식을 알기도 어렵고 또 소식이 진위여부를 판단할 능력도 없다. 덕분에 균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헛소문유포로 덕을 보기도 했지만 그런 작전을 균만 사용하라는 법은 없다.
균이 가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에 대규모 흉작이 든다. 이에 양반들과 나머지 기득권층은 '왕의 덕이 없어서 재난이 닥쳤다' 는 명분을 얻게 된다. 동시에 소문을 펴트린다. '나라의 재정이 부족해서 세금을 더 거두어들인다더라. 수미법으로 쌀 10섬이 받는다더라.'
흉년이 들면 백성들의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그에 따라서 세 부담은 자연스럽게 두 배 이상이 된다. 그런데 이런 소문이 돌고 양반들과 기득권층이 수작을 부린다면 백성들은 균을 원망할 것이다. 덕이 없어서 흉년을 들게 해놓고는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짠다고 말이다.
거기에 다른 지역에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헛소문이 유포되고 양반들 중에서 제법 명망 있는 자가 농민들을 선동한다. 그리고 자신이 병사로 노비들 내놓고 곡식을 군량미로 내놓겠다고 하면 상당수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다. 그야말로 폭군을 타도하기 위한 농민반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다면 임술민란처럼 삼남지방 71곳에서 동학농민운동처럼 20만이 넘는 봉기군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봉기군이 충청도로 집결한 후 한성부로 진격한다면 균과 조선왕조 최고의 위기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균은 그런 숫자놀음에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일단 나에게는 남명학파와 영남학파가 있다. 당연히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는 제 스승인 조식과 이황이 조정에 있는 상황에서 불만이 있는 자라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다. 당연히 반란은 기호사림의 근거지 충청도와 경기도로 한정이 된다. 거기다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상권을 외수사와 나상이 잡고 있다. 정보전과 군수보급에서도 내가 앞선다는 말이다.
거기다 양반들이 데리고 있는 전직갑사들……. 그것도 병사들이라고 믿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불쌍하다. 내가 쓸만하면 다 데리고 있었을 텐데 내쫓은 것을 보고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는 말인가? 오합지졸 전직갑사들 1만에 농민군 몇 만. 이것들은 별것이 아닌데 나중이 문제라니까.'
2차 동학농민운동의 예를 따른다면 충청도의 봉기군은 10만이다. 하지만 균은 그렇게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조선의 인구는 약 1200만 명, 이중에서 토지비율을 근거로 충청도의 인구를 계산하면 약 180만이다. 이중에 조선시대 병역부과 대상인 16세 이상의 남자의 수는 인구의 3분의 1인 60만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균의 조심성 때문에 전체 양반들을 움직일 명분이 없고 양반들이 충청도 전체를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기호사림의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이황이나 조식 같이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란군은 고만고만한 자들 중 하나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경우 전체 양반들 중 1할이나 반란에 참여하면 대성공이다.
그래서 균이 산출해낸 반란군은 대략 2만~3만의 농민군, 거기에 전직갑사들이 1만해서 총 3~4만이라는 말이 된다. 물론 다른 지방의 반란세력은 제외가 된다. 이렇게 균의 예상은 김진기의 예상과 비슷했지만 딱 하나 틀린 것이 있다면 김진기는 그 이상 확대될 것으로 생각했고 균은 반대라는 점이다.
뭐 그 이상 되어도 훈련도 안 된 농민군 10만과 총으로 무장된 정규군 1개 사단이 붙으면 당연히 정규군의 승리가 된다. 갑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균이 몰아낸 자들은 일반 조선군 병사들과 비슷한 오합지졸들. 신무기인 총이 등장하여 병사 개개인의 무예실력이 낮아도 군대의 운용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균이 내보낸 사람들이니 그 전투력은 농민군보다는 낫지만 균의 관점에서는 한심한 것이다.
정작 문제는 그들의 군사적인 역량이 아닌 전후의 일이다. 일단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면 그만큼 균의 신망은 떨어지고 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자들이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특히 병무청의 신설로 인해 재정에 타격을 입은 지방군영들의 경우 지금도 동요를 하는 지역이 있어 골치가 아픈데 반란이라도 일어나면 동조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특히 조선의 최정예라는 북방군이 반란을 일으키면 정말 심각하다. 북방군의 전력이라면 동수의 중앙군을 격파할 수도 있다. 조선 내에서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 전력인 것이다. 거기다 북방군에 파견된 양계갑사들이 불안해 한다는 소문은 이미 한성부에도 알려져 있었다. 또한 그 정도는 균도 잘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정리해고가 단행된 회사에서 사원들이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거기다 함경도는 반역의 땅으로까지 지칭이 되던 곳으로 역대 임금들이 신경을 많이 쓴 곳이다. 안 그래도 가난한 조선왕조가 괜히 비싼 돈을 주고 갑사를 파견하여 북방군의 하급 지휘선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독자적인 반란으로는 한계가 있다. 북방군은 여진족과 대치하고 있는 부대로 여진족의 압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움직이기 힘들다. 또한 북방군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했지만 사실은 수십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져 있고 각 부대마다 사정이 다르니 모두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다.
따라서 북방군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 수는 한정되는데다가 이미 어느 정도 조치를 해두어서 반란이 일어날 확률이 낮다는 것이 균의 생각이다. 더욱이 균의 성격상 그 금쪽같은 실전경험자들을 반란군으로 만들 리는 만무하다. 균은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비범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김형중으로부터 송상의 보부상단이 유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인다는 소리는 들었다. 그것도 충청도와 함경도에서 활동이 특히 많아졌다지? 송상이야 홍경래의 난 때 상당한 재정지원을 해준 상단이고 조선왕조에 불만이 많으니 반란군과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두 곳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인데 어떤 놈일까? 백과사전에 나오는 사람은 아닐 것 같고…….'
"전하, 신임 병조 참의 김진기 입시이옵니다."
"들라하라."
균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새로 관직을 제수 받은 신하의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와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도 균의 머릿속은 심상치 않은 조선의 정세를 그리고 있었다. 잠시 후 김진기가 물러간 후 균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서안에서 어떤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걸 쓸 일이 없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