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3년.

"북방군은 총 5곳의 군영과 군영에 딸린 36개의 진관으로 구성되는 조선 최대, 최강의 부대입니다. 하지만 각 부대마다 그 사정이 달라서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고 아무리 반심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해도 국경선을 포기하면 여진족이 밀고 내려와 자신의 가족들이 다치는 것이기 때문에 접경에 위치한 북방군의 주력이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시애의 난을 비추어 볼 때 북방군의 후방부대들이 반란에 참가할 가능성은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농민군이 가세하고 여진족 중에서 용병으로 팔려온 자들이 합류할 가능성도 있으니 그 병력은 족히 수만 명에 이르고 그중에 약 1만 명은 상당히 훈련이 잘된 정예병으로 예상되옵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3만도 안되는 반란군이네. 그 정도라면 조선전체의 병력을 모아서 토벌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도승지 자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일세. 내가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재직을 하면서 본 병사들은 결코 한성부의 중앙군에 떨어지지 않네. 무장이야 우리 중앙군이 우세할지도 모르지만 풍부한 실전경험은 그런 단순한 훈련으로 매울 수 없는 것이야. 거기다 충청도에 반란이 일어나면 삼남의 군사를 동원할 수가 없고 중앙군의 수도 적네. 그 점도 고려를 해야지."

아무래도 제반사정을 잘 모르는 문관인 정인기의 지적에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특히 북방군의 전력을 잘 알고 있는 곽흘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어 앞장서서 정인기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해주었다. 뛰어난 무장인 내금위장 곽흘이 심각한 표정으로 북방군을 평가하자 그제서야 정인기는 보통일이 아님을 깨닫고 균에게 말했다.

"전하. 그러면 정말로 큰 일이 아니옵니까? 당장 중신들에게 알리고 반역자들을 색출하여 처결을 하시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아니오. 도승지. 그런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지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고 된 바 없소."

"……. 그럼 아직 역도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이옵니까?"

"그렇소. 과인이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소?"

"……. 그럼 고변 같은 것은 없었사옵니까?"

"그런 것이 있었다면 아마 사정전에서 대신들과 의논을 하고 있을 것이오."

"……."

정인기는 신고도 없는 데 반역이 있을 것이라고 모여서 의논하고 있다는 것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그 말을 들은 곽흘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으니 정인기가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여 제대로 된 정보조직이 없었다. 앞서 언급된 친군위 같은 특수 군사조직은 물론이고 경재소와 유향소 같은 지방통제기관을 두었고 갑사나 내금위를 지방군의 지휘관으로 파견하는 등의 조처를 취해야 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왕의 오후일과가 한성부로 돌아오는 지방관들에게서 지역의 정보를 듣는 것이었을 정도로 조선정부의 지방통제력과 정보수집 능력에는 큰 결점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중앙정부가 반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바로 반란내부자들의 신고와 그 지역의 소문이었다. 덕분에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잡아드리는 것이 조선시대의 반란대처법이다. 이시애의 난 당시 이시애의 거짓신고를 받은 세조가 자신의 심복인 신숙주를 당장 옥에 가두어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신고 또한 없는 반란을 찾아내서 대책을 세우고 있었으니 당시로써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빠른 대처였다. 덕분에 정인기와 곽흘 두 사람은 균이 정보조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전하께서 즉위하신지 이제 고작 3년이 아니던가? 그런데 벌써 천리 밖 함경도의 소식까지 알 수 있는 전국적인 첩보조직을 갖추고 계셨다니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두 사람이 제멋대로 균의 능력을 몇 단계 높여 잡고 있는 사이 균은 박규남의 보고가 다 끝나자 대강의 반란세력에 대한 예상을 언급하고 참석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아직 누가 주동자이고 누가 가담자인지 정확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 없지만 과인과 여기 박 선전관의 예상에 의하면 충청도에서 3~4만, 함경도에서 2~3만, 나머지 지역에서 약간 해서 전국적으로 약 7만 정도의 반란군이 봉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오. 그래서 과인이 경들을 부른 것이오."

"송구하오나 전하. 부족한 신들이 어찌 좋은 계책이 있겠사옵니까? 조정에 명망 높은 대신들이 많으니 그들을 은밀히 불러서 의논을 해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소신도 도승지의 말에 동감이옵니다. 소신들의 소견으로는 철저한 조사를 하는 것과 그 수 밖에는 별다른 수가 없사옵니다."

균의 설명이 끝나고 대책을 묻는 듯한 눈길이 이어지자 정인기와 곽흘은 일찌감치 두 손을 들고 난색을 표했다. 이는 다른 참석자들도 마찬가지의 모습이었고 균 자신도 그런 대책을 원한 것이 아니었기에 균은 고개를 흔들어 그럴 뜻이 없다는 것을 보였다. 균이 이 자리에 그들을 부른 것은 단지 그들에게 자신의 신임을 보이기 위한 수단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니오. 반란이 일어나지 않은 현재로써는 사실 대처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소. 당장 일부지역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정도가 고작인데 고명한 조정의 대신들이라도 그 대책을 찾기는 어렵소. 오히려 대소신료들에게 알렸다가는 반란이 끝난 후 우리가 상당한 정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문제를 삼을 것이 분명하오.

또한 역심을 품은 자들이 우리의 계획을 알고 숨어버릴 가능성도 있으니 괜히 잘못 건드려서 잡아야 할 것을 놓치는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가 있소. 더욱이 그들이 아직 구체적으로 움직인 것도 아닌데 조용히 숨어들면 무슨 수로 그들을 잡겠소. 조선 천지에 과인이 언급한 반란을 일으킬만한 불만과 능력을 가진 자들은 수레로 실어 날라도 부족할 것이오.

오히려 그들을 잡는다고 다른 자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준다면 그 또한 큰 우환이 될 것이고 그 틈을 타서 진정한 역도들이 훗날을 기약할 것이 두고두고 나라에 큰 우환이 될 것이오. 차라리 현재처럼 비밀리에 조사를 계속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여 신속히 제압하는 것이 상책이오."

균의 설명을 들은 정인기와 곽흘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에는 반란의 주동자가 되거나 가담자가 될만한 세력을 지닌 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을 모두 반란군이라고 조사하다가는 오히려 그들이 반란군에 가세할 수도 있다. 그들을 구체적인 물증이 없이 단지 낌새가 이상하다는 말로 잡아드렸다가는 그때는 정말 나라 망한다.

인조 때 있었던 이괄의 난의 경우에도 거짓된 고발을 믿은 조정에서 이괄의 아들을 반역죄로 잡아오도록 하자 이에 이괄이 외동아들을 구하고자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이다. 이괄이 조정의 김류라는 대신과 사이가 안 좋기는 했지만 그 정황을 보아서 처음부터 반란을 생각한 것은 아닌데 조정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터져버린 것이다.

덕분에 조선은 북방을 지키던 뛰어난 장수 이괄과 최정예부대를 반란으로 소진하고 북방 방어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후금의 침공을 받게 된다. 가뜩이나 인조반정으로 어수선 하던 조선은 그런 실책으로 인해 더욱 빨리 후금에게 무너지고 결국 삼전도의 굴욕 같은 치욕적인 수모를 겪어야 했다.

거기다 아직 균은 전국적이고 치밀한 정보망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부와 나상이 만들어진 것이 각각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며 그 상황에서는 정보조사에 실수가 없을 수가 없다. 또한 반란을 진압하는데 균의 정보조직이 공을 세우더라도 왕이 가진 정보력을 문제로 삼을 만한 자들은 많았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반란이라는 시한폭탄을 해체해야 하는데 어떤 선을 잘라야 할지 알려주는 설명서는 일부분이 찢어져 있거나 인쇄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비슷하다. 거기에 제대로 된 설명서를 가지고 와도 그 능력을 경계하고 시비를 걸 사람들도 많으니 균의 말처럼 적의 윤곽이 보일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일단 오늘 과인이 경들을 부른 것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어느 정도 대비를 하라는 것이오. 특히 도승지는 문신들의 동향을 잘 조사하여 과인에게 보고하고 내금위장은 무신들의 동향을 조사하여 보고 하시오. 역도들이 생각이 있는 자라면 분명히 조정의 동태를 살피려 할 것이니 오히려 그들의 실체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예. 전하.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과인이 사가에 있던 시절부터 과인을 따르던 이들이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이번 반란을 신속히 진압하느냐? 아니면 겨우 진압하느냐? 또한 이번 반란의 규모와 우리의 대처에 따라서 이번 일은 우리에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될 수 있소. 모두들 이를 명심하시오."

"예. 전하."

균의 말에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반란이 일어나서 진압당하면 일반적으로 진압한 세력에 유리한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후대의 일이지만 조선 20대 왕 영조 때 있었던 이인좌의 난은 영조가 소론세력을 쓸어버리는 데는 일조했다.

하지만 영조가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지는 바람에 영조에게 정치적인 부담을 안긴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영조의 자격지심이 사도세자를 사사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도 하는데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힘들게 반란을 진압한 것 치고는 손해가 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홍경래의 난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조정은 조선 23대 왕인 순조와 김조순 간에 세력다툼이 한창이었다. 흔히들 순조가 유약한 왕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14살 즉 균과 같은 나이에 친정을 시작했을 정도로 유능한 왕이다. 친정을 시작한 순조는 장인이며 정적인 안동김씨의 수장 김조순과 대립하면서 왕권강화를 시도했는데 마침 홍경래의 난이 터지고 만다.

덕분에 순조는 1809년의 대흉작과 1813년의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국정주도권을 김조순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렇게 홍경래의 난은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의의가 높지만 역설적으로 안동김씨의 60년 세도정치를 반석위에 세운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이인좌의 난으로 노론이 정권을 잡고 홍경래의 난으로 안동 김씨가 정권을 잡았듯이 조선의 실권이 신하들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정인기와 곽흘은 생각했다.

'이번 반란이 전하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라는 말이군.'

하지만 균의 직속부하들 즉 구 비금도 상단의 부장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가 보아오던 균은 위험한 도박을 할 인물은 아니다. 철저히 이익이 남는 안전한 길로만 골라 다니는 인물이지 돈이 많이 남는다고 겁도 없이 호랑이 사냥 다닐 하룻강아지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균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는 회의가 파하고 나자 박규남을 찾아갔다.

"사실대로 말해보게 자네라면 정보를 책임지는 전하의 최측근이니 전하가 무슨 복안을 세우셨는지 알고 있지?"

"글쎄."

"이 사람. 우리들이 만난 것이 벌써 몇 년째인가? 그런데 그것도 못 말해주나? 우리나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것도 아니지 않는가? 전하는 우리의 주군이시고 전하의 운명은 곧 우리의 운명이시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이 없으니 답답해 죽겠네."

"나도 모르네. 단지……."

"단지……."

"그것도 말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으셨지만……."

"계셨지만……."

옛 부장들이 한참을 어르고 달래자 박규남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박규남이 말해줄 듯한 운을 띄우자 그들은 반색을 하면서 박규남을 감싸고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말하면 감봉이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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