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3년.
원래의 복잡했던 중앙군을 균이 크게 손 본 이후 조선중앙군 소속의 여러 부대는 그 임무에 따라서 크게 2곳으로 나누어 배치되었다. 부대의 임무가 방어적이면 내금위, 공격적이면 오위도총부로 배치된 것이다.
내금위는 총 2개 여단, 병력 6천여 명을 병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복궁을 지키는 근위연대 1천명, 북한산성을 지키는 산성연대 1천명, 비금도를 지키는 비금연대 1천명과 한성부를 지키는 수도여단 3천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임무는 중요거점의 방어이다. 그래서 내금위는 균의 특명이 없는 이상 절대로 주둔지를 떠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오위도총부는 총 5개 사단, 병력 5만 명을 지휘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지방에서 올려 보내는 병사가 없어 장교와 부사관 같은 직업군인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병력만 1만 명에 달하는데다가 작업보다는 훈련에 신경을 많이 쓴 덕분에 그 전투력은 대단한 부대였다.
현재 오위도총부의 임무는 훈련이다. 군사개혁이 단행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훈련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 조선군 제 3사단 소속 군사들도 북한산성에 위치한 훈련장에 주둔한 채 무더운 여름을 힘든 훈련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구보를 하는 도중에 무시무시한 협박을 받으며 말이다.
"빨리빨리 뛰어라! 늦게 당도하는 열 놈은 오늘 저녁밥 없다!"
"헉~!"
그 협박에 뒤에 쳐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군사들이 갑자기 힘을 냈다. 하긴 요즘보다도 밥을 더 많이 먹고 살던 조선 사람들이니 만큼 밥을 굶긴다는 말은 꿈에서도 듣기 싫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들이 힘을 낼수록 앞서 가는 군사들의 속도도 빨라졌다. 잠시 후 군사들은 저녁밥을 위해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곧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늘에서 소금을 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군사들은 곧 원기를 회복하고 자신의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달콤한 휴식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보통 이렇게 더운 날이면 휴식시간이 많이 주어지기에 낮잠을 청하는 군사들도 곳곳에서 보였고 간단한 놀이를 즐기는 자들도 있었다.
"휴~!"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평화롭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유독 한숨을 내쉬며 수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조선군 제 3사단 호분위 소속 군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이순신이었다.
'통상적으로 무더운 여름에는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물며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길 가던 행인들이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잦은데 이렇게 군대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있다는 말이다.'
이순신의 생각처럼 보통 군대에서는 여름철에 너무 더우면 훈련을 중지한다. 그 이유는 병사들이 탈진으로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마신 물에 소금이 섞여 있는 이유도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한 것인데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그늘에서 쉬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조선군의 훈련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도 높게 실시되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낮이라서 강도가 낮지만 밤에 실시하는 훈련은 이렇게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다른 군사들은 죄 없는 지휘관들을 욕하고 있었지만 이순신은 달랐다. 무엇인가 느낌이 오는 것이다.
'주상전하께서는 군사를 부리는데 능한 분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여름철에 훈련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실 터이고 거기다 무리한 훈련으로 군사들이 상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으실 것이다. 하지만 이런 훈련이 실시된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조치가 없다는 것은 이 훈련이 전하의 뜻이거나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조선에서 중앙군이 출정해야 할 일은 아직 없다. 물론 남쪽의 왜구들과 북쪽의 여진족이 변방을 어지럽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겨우 1만에 불과한 중앙군을 원정시킨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 조선이 명나라와 싸우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무리한 훈련을 강요할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 이순신이 고민을 하던 사이 달콤했던 휴식시간은 끝났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훈련시키는 내금위의 장수들과 군관들이 정렬을 하라는 명을 내렸다. 군사들은 훈련을 받은 직업군인들답게 재빨리 정렬을 했고 훈련교관을 맡은 내금위 장수들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살짝 이빨을 내보였다.
"잘 들 쉬었나?"
"예. 나으리!"
"그간 무더운 날씨에도 훈련을 받는다고 수고가 많았다. 하지만 그대들이 기뻐할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훈련은 몸 풀기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
훈련교관의 말을 들은 군사들은 모두 굳어버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 훈련 1년만 받으면 무과시험에 응시해도 급제는 기본, 장원은 선택이다.' 이라고 할 정도의 힘든 훈련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무과응시를 결심해서 무과에 급제를 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으니 그 혹독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눈앞의 훈련교관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까지는 몸 풀기였다고 하니 군사들은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군사들에게 정신공격을 가한 훈련교관은 옆에 있던 군관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고 그 군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길쭉한 물건을 가지고 왔다. 훈련교관은 그 물건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나?"
"막대기입니다!"
"……."
자신 있다는 듯 우렁차게 대답하는 군사들의 외침에 이번에는 훈련교관이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조선최강의 무기를 막대기로 표현을 하는 무식한 군사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암담했지만 당시 조선에는 화약이 부족하여 화약무기를 구경도 못한 병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수도여단 소속 교육연대장직을 수행하고 있던 내금위 부장 남창완은 일단 그 위력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고 옆에 준비하고 있던 군사들에게 사격준비를 시켰기고 자신은 준비해둔 솜을 꺼내어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곧 약 30여 정의 소총이 일제히 발사되는 요란한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타다다탕~~!!!"
"으악~!"
그간 많은 훈련이 있었지만 난생 처음 듣는 총소리에 군사들은 동요했다. 군사들 중에는 대열에서 이탈해서 달아나려는 사람도 있고 귀를 막고 땅에 엎드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반응이 없이 총이 발사되는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사격이 끝나고 나자 군사들의 동요는 가라앉았고 남창완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이 무기는 56식 비금도 소총이라고 불리는 무기이다. 우리 조선군이 사용하는 주요 총통중에서 황자총통과 세총통(조선시대 권총)의 중간 정도 크기의 총통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탄환은 최대 6백보(약 750m)까지도 나가지만 실제로는 약 250보(약 310m)정도의 적을 살상할 수 있다……."
남창완의 설명은 거의 일다경 즉 15분에 걸쳐서 이어졌다. 사실 그렇게 설명할 것은 많지 않았지만 군사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무기라서 그 개념을 잡아주기 위해 여러 가지를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혼비백산했던 병사들이었지만 남창완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는 조선의 활에 있다. 조선의 활 중에 유명한 것이 바로 각궁과 편전이다. 각궁은 물소 뿔을 주 재료로 만든 활인데 그 탄성이 대단하여 사정거리가 길고 편전은 짧은 화살인데 특수한 발사방법이 있어 그 역시 일반 화살보다 사정거리가 길다. 그래서 각궁에서 발사된 편전의 경우 그 사정거리가 약 1천보, 1240m에 달했다고 한다.
편전은 현재는 실전되어 정확한 자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대사거리 면에서도 조총이나 56식 소총을 능가하는 사거리를 자랑했고 조선이 자랑하는 최강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대단한 무기와 함께 살아온 조선 사람들이니 소총에 대해 시큰둥한 것이다.
거기다 56식 소총은 편전에 비해서 짧은 사정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화약을 써야 하는데 당시 화약 값은 무척 비쌌다. 이는 균이 염초의 대량제조법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 당시 소총은 사거리도 짧고 돈이 많이 드는 무기로 오인당하기 쉬웠다. 하지만 남창완은 두 말하지 않고 자기 부하들 중 하나를 골라서 근처 소나무의 솔방울을 쏘게 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약 백보(124m)거리의 솔방울은 정확히 산산조각 나면서 떨어졌고 군사들은 그 솜씨에 '우와~!' 라는 환호성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그 환호성이 가라앉고 나자 남창완은 자신의 부하에게 물었다.
"자네가 이 소총을 배운 것이 얼마나 됐지?"
"예. 부장나으리. 이제 한달하고도 보름이 안됐습니다."
"세상에……."
"말도 안돼……."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시 활에 비해서 총은 성능도 나쁘고 사용하는데 돈도 많이 들어가는 등 불리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숙달되는 속도였다. 활은 10년을 배워도 부족하다고 하지만 총은 1년이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고도 남는다. 즉 소총병이 양성되는 시간은 궁병에 비해서 무척 짧다.
군사력은 아무리 질적으로 우세하다고 해도 양이 받쳐주지 않으면 전체적으로는 약한 군대가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타이거전차는 최강의 전차였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약한 T-34전차로 무장한 소련군 기갑부대에게도 독일군 기갑부대는 밀렸다. 그 이유는 타이거전차가 60대 생산되면 T-34전차는 2000대가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사력이란 질적우위와 양적우위가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고 군사들도 남창완이 보여준 행동의 의미를 하나둘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조선군은 농병일치제를 채택하여 병사들이 훈련할 시간이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훈련 안 된 궁병보다는 훈련된 소총병를 주력으로 삼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이순신도 설명을 다 듣고 나서는 숙련기간이 짧은 총이라는 신무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현재 이순신의 지위는 군관. 나중에 중앙군의 병력이 정상적으로 편제가 되면 중대장정도의 하급지휘관이 되어 부하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니 잘 배워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순신의 머리에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왜 이것을 지금 나누어주는 것이지?'
물론 군인인 자신들에게 신무기를 나누어 주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앞서
여름철에도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더니 이제는 숙련기간이 짧은 신무기를 나누어 준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설마. 우리를 급하게 써먹을 때가 있다는 말인가?'
그랬다. 급하게 자신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면 지금 군 지휘부에서 하고 있는 행동들은 모
두 설명된다. 자신들은 일반 병사가 아니라 직업군인들이다. 그런 자신들에게 급하게 훈련
을 시키고 숙련기간이 짧은 무기를 나누어 줄 필요가 없다. 이런 훈련법은 급하게 써먹을
농민군에게 어울리는 훈련법이었다.
'무엇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형님 댁으로 찾아가서 조선의 현 정세
에 대해서 물어보아야겠다.'
그래서 이순신은 나중에 조정의 관리로 있는 유성룡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성룡은
낮은 벼슬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황의 제자이니만큼 인맥이 좋아서 소식을 전해 듣기에
는 적합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한 이순신은 다시 눈앞의 56식 소총으로
관심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