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즉위 3년.

오위도총부는 전투부대가 아니라 조선군 전체에 명령을 내리는 군령기관이다. 오늘날의 참모본부에 해당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하지만 그 기능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있는데 조선의 군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바로 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오위도총부는 균의 명령을 전투부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오위도총부에는 정 2품 도총관 5명, 종 2품 부총관 5명 이렇게 10명의 수뇌부가 있다. 하지만 말이 수뇌부이지 그다지 실권은 없고 다른 벼슬과 겸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할 일 없기로 유명한 종친들이 도총관이나 부총관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거기에는 아무래도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군사권을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조선왕들의 고려가 숨어있었다.

이는 올해 초 군사개혁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균의 두 형 하원군 이정과 하릉군 이인이 각각 도총관으로 임명되었고 균의 숙부인 덕양군 이기 역시 예전부터 도총관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남은 두 자리는 공석이고 부총관들도 대부분 종친이니 오위도총부인지 종친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사한을 보면 분명 이곳은 조선의 군령기관인 오위도총부가 맞았다. 특히 오위도총부의 최고 수뇌부에 해당하는 덕양군과 하원군, 하릉군 이렇게 세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하위부대에서 올린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숙부님. 무더운 여름철이라서 그런지 조치를 취했는데도 탈진을 하는 자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총 1만의 군사들 중에서 벌써 수백 명이 탈진을 해서 의원들의 치료를 받고 있는데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즉시 훈련을 중단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지금 훈련을 받는 1만의 군사들은 보통 병사들이 아니라 나라의 녹을 먹는 군관들입니다. 그런 고급인력을 무리한 훈련으로 낭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즉시 주상전하께 고하여 훈련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어느새 하원군 이정의 나이도 24세, 하릉군 이인이 23세였다.(설정 바뀐 거 아시죠. 성격도 좀 바뀌었습니다.^^) 균이 세자로 책봉되어 집을 떠날 무렵 이후 하원군 이정은 무려 5명의 부인을 두는 기염을 토했다. 하릉군이 1명의 부인을, 균이 넘치는 정력을 주체 못해서 밤새도록 신하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것에 비하면 너무 심한데다가 그 애정행각도 과감한 면이 많아서 사람들의 비난을 많이 받았다.

하릉군 이인은 균이 세자가 된 이후 숙부인 금원군 이영의 양자로 들어갔다. 그는 그렇게 두각을 들어내지 않고 조용히 살았는데 너무 조용히 사는지라 균이 한 달에 한 번씩 선전관을 보내어 동정 살펴보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능력이 없지는 않았고 균이 믿을 만한 사람이기에 무난하게 도총관이라는 고위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주상전하의 어명은 조금 무리가 다르더라도 빠른 시일 내로 쓸만한 군대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더냐? 주상전하께서는 군사에 밝은 분이니 이번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것이 따로 있으실 것이다."

"숙부님. 지금 병사들이 쓰러져 가고 있습니다. 어서 조치를 취하셔야 합니다."

"한번 말씀이라도 드리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전하의 영명하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전하께서 모든 일은 돌보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안 된다."

"숙부님!"

그러나 두 사람의 건의에도 덕양군 이기는 쉽게 동의를 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종친부의 수장임과 동시에 오위도총부의 사실상의 수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두 곳 모두 권력과는 거리가 있는 명예직들이지만 한 곳은 조선군 전체를 지휘하는 곳이고 한 곳은 조선 왕족들을 관리하는 곳이니 그 위상은 정승판서에 못지않았다. 이는 균의 신임이 두텁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래서 어느 정도 균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두 사람의 의견에 무작정 반대만 하기도 곤란한 점이 많았기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던 그는 두 사람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균이 상세한 내용을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언질을 주었지만 두 사람 역시 균의 형제들이니 약간을 알려주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은 이번 가을철까지 전군의 출정준비를 마쳐두라는 주상전하의 밀명이 계셨다."

"추……출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나도 자세히 들은 것은 모르지만 이번에 추수가 끝나고 나면 군대를 움직일 일이 생긴다는 말씀이 있으셨다. 물론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십중팔구의 확률이라고 하셨으니 철저히 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군사들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탈진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너희들은 주상전하의 친 형제간이니 내가 말한 것이지만 이 사실은 원래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 점은 명심하고 각 부대에 공문을 보내서 훈련은 계속하되, 군사들의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라는 말을 전하거라."

"예. 숙부님."

출정이 있다는 소리에 두 형제는 얼굴빛이 변해서 오위도총부 회의장을 나섰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덕양군은 혀를 차면서 혼잣말을 했다.

"쯧쯧쯧. 아마 반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면 두 사람 다 쓰러졌겠지? 모두 같은 아비의 자식이지만 그 대범함에서부터 차이가 나는구나."

그 무렵. 중국 명나라의 수도 북경은 정치권력의 급변으로 인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내각수보(명나라의 수상)인 서계가 목종 융경제의 좋지 않은 행동을 고칠 것을 간언했다가 받아드려지지 않자 내각수보직을 사임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원래부터 명 황실은 문제가 많았는데 후대에는 더욱 심했다. 목종의 아버지인 세종 가정제는 지난 45년 동안 종교에 심취하여 국사를 돌보지 않아 명제국의 멸망을 앞당긴 인물이고 목종의 아들인 주익균은 나중에 황제가 되어 명나라의 멸망을 앞당기는 암군되는데 그 중간에 낀 현 황제 목종이 성군이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였다.

그래서 이에 실망한 서계가 사임을 하게 되자 이를 틈타서 정권을 잡으려는 인물이 있었으니 대학사겸 예부상서 장거정이었다. 그는 다른 신하들이 서로 다투는 사이 목종에게 '대본급부육사'라는 내정개혁안을 제시하는 등 착실한 모습을 보이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조선에서 밀서가 하나 날아들었다.

"뭐라? 조선의 정세가 어지럽다고?"

명나라의 외교임무를 총괄하는 예부상서 장거정은 예기치 못한 소식에 체통을 잃고 큰 소리를 질렀다. 그가 있는 명나라에게 있어서 조선은 제국의 동쪽 국경을 지키는 하나의 속국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고 명나라는 조선의 정세동향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조선이 강해지면 고작 2천리정도 거리인 북경을 위협할 수도 있다. 반대로 조선이 약해지면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왜구를 견제하는 막아주던 울타리가 사라지는 격이니 명나라는 그들의 위협에 바로 노출된다. 이렇게 조선의 정세는 곧 명나라의 정세에 직결되는 부분이 많았기에 장거정은 조선의 정보수집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장거정의 판단으로는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조선군이 감축되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왕에게 반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조선왕이 나이에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앞으로 조선이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던 장거정에게는 조선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선왕은 나이에 비해서 아니……. 일국의 군주로써 손색이 없는 자였다. 특히 조선은 사방이 3천리에 불과한 나라이니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무난히 다스릴 수 있을 것인데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이렇게 장거정은 한참이나 조선의 이상한 정세변화에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조선왕의 편지를 기다리기로 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조선사신단이 북경에 이르렀고 조선왕의 편지를 그에게 전하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을 놀라게 하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대명제국의 예부상서께 그간 별고 있었다고 들었소. 그대를 많이 도와주던 내각수보 서계공이 사임했다니 장공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을 것이오. 하지만 이제 서계공의 그들에서 벗어나 장공의 큰 뜻을 펼쳐 대명제국의 국운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니 과인 또한 흡족 하외다…….

아마 과인의 생각으로는 장공이 크게 당황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붓을 들었소. 그러나 장공이라면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고 믿소. 특히 무능한 전임자들이 심어든 첩자들이라고 해봐야 정확한 정보를 본국에 알리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것은 장공도 잘 알 것이오.…….'

역시나 자신이 하는 행동을 내려다 본 듯 정확한 내용이 담긴 서찰이었다. 서찰의 주내용은 먼저 간단한 안부인사와 현 명나라의 정세가 장거정에게 유리해서 기쁜다는 내용, 그리고 조선의 정세가 어지럽기는 자신도 이를 알고 대책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모든 사실을 알린 것은 아니지만 북경에서 3천리나 떨어진 조선의 한성에 있는 사람이 자신만큼이나 명나라의 정세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장거정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장거정은 조선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명나라가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이 명나라에 결정적으로 속국이 된 사건이 바로 1402년에 있었던 조사의의 난이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다툼에서 명나라는 태종 이방원을 지지했다. 그래서 태종 때부터 두 나라의 관계가 좋아지고 조선이 명에게 조공을 바치게 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장거정은 조선의 정세가 이상해지면 그냥 조선왕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현하는 정도에서 일을 끝내기로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조선왕의 능력으로는 분명히 조선을 안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나라는 지지를 표명하는 한 마디로 조선으로부터 푸짐한 조공을 받게 되니 가장 상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균의 사전정리 작업이었다. 당시 국내문제로 정신이 없던 명나라가 조선에 개입할 염려는 거의 없지만 일부 사대사상에 물든 자들에게 명나라의 한 마디는 조선왕의 한 마디보다도 더 비중이 있었다. 그래서 균은 장거정라인을 움직여 명나라가 자신을 지지하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는 공작을 펴고 있었다.

지금은 여름이 한창이 7월 달이다. 이제 곧 무더운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다. 그리면 추수가 시작되고 아직 이모작을 잘 하지 않는 조선의 농민들은 겨우내 상당한 여유시간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만일 반란세력이 일어난다면 추수를 끝내서 군량미도 충분하고 남는 인력이 많아서 병사를 모으기도 편한 늦가을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균은 군대를 급하게 훈련시키고 명나라의 개입을 막는 등 사전정리 작업을 많이 해두고 있었다. 명장은 싸우기 전에 이긴다고 했다. 균은 그런 글귀를 떠올리면서 오늘도 밤새도록 강장식품들과의 사투를 벌였다. 특히 자신이 즐겨먹던 메밀국수마저도 강장식품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졸졸 굶고 있었다.

'옛날 고려의 원종은 재정이 바닥나서 밥을 굶은 적이 있다고 해서 비웃었는데 나는 여자랑 동침하기 싫다고 밥을 굶고 있으니 더 별난 왕으로 기록되겠구나.'

"꼬르륵~!"

아마 역대 조선왕 중에서 쫓겨난 연산군을 빼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까지 밥을 굶은 왕은 균이 최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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