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삼려의 난

즉위 3년 서기 1568년 8월. 경복궁 강녕전. 균은 계본과 계목 같은 서류들을 결재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옆에 있던 사관 유성룡과 심재호에게 쳐다보았다. 원래 사관은 좌사와 우사 두 명이 입시하여 좌사는 임금의 동작, 우사는 임금의 발언을 기록한다. 하지만 원칙일 뿐 역대 임금들은 사관의 입시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왕도 사람이니 개인적인 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는데 사관들이 있다면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의 경우에는 괴롭힐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사관들을 세 명씩 들이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균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관은 긴장을 했다.

"오늘은 남송정과 심재호 두 사람이 번을 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자네가 입시했는가?"

"예. 남 검열이 몸이 편치 않아서 소신이 대신하고 있사옵니다."

"어허! 이것 참 큰일이로다. 무릇 사관이라면 사초를 작성하는 중차대한 일을 맡고 있고 또한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들이 아닌가? 그런데 몸이 아프다니 과인이 무척 안타깝도다."

"……."

균의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할 말을 잊었다. 원래 사관은 총 8명이다. 물론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2명이 4번 교대로 사초를 작성하는데 그 정도만 해도 상당히 힘든 격무다. 문제는 거기에 균의 괴롭힘이 가해지니 벌써 두 사람이 과로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물론 신하들이 종종 격무로 쓰러지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균의 경우는 특히 얄미웠다.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쓰러지는데 자신은 안타깝다 이렇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특기이니 사관들은 기가 막혀서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했다. 대신 사초의 말미에 이런 사족을 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억울함을 푸는 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사신은 논한다. 아조(조선)이 개창 된지도 언 이백년이 지났고 수많은 역대 제왕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사관들이 고난스러운 적이 없었다. 무릇 사관이란 기록을 남겨 후대를 경계하는 것이 그 본분이거늘, 당금의 상황은 승지나 사관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아~! 이 일을…….'

"유 검열. 과인이 한 말보다 길게 적는 분위기인데……. 뭘 적나?"

"……망극하옵니다. 전하."

원래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관들의 개인적인 견해를 적는 사족이 있다. 물론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지만 갓 조정에 출사한 청렴하고 강직한 신하들이 적은 글이라서 참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왕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를 들면 명종이 시집간 제 누나의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온 것까지 '남매의 우애는 알겠지만 왕이 할일은 아니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균의 경우는 독특한 행적이 많아서 사관들이 적을 것이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족을 달 시간마저 균이 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딱 걸려버린 유성룡은 그 서류 더미에 가려 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상소문을 읽고 요약정리 하라는 어명을 받았다. 당장 서류 더미 뒤에서 균을 욕하기는 편했지만 그 많은 글을 읽고 사초까지 기록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렇게 유성룡에게 상소문을 한 아름 안겨준 균은 다시 그 시선을 심재호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는 알아서 유성룡이 맡은 상소문중 일부를 가져와 요약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도승지 정인기는 속으로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지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았다.

원래 임금을 돕는 일을 하는 승지와 임금을 감시하는 일을 하는 사관은 그 입장이 달랐다. 그래서 두 무리는 서로 경원시하고는 했는데 그래서 승지들의 수장이며 임금의 외숙인 정인기에게는 그런 사관들의 고난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하지만 균이 준 일거리는 너무 많아서 두 사람은 아직도 상소문의 절반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관리들의 퇴근시간은 유시(오후 7시부터 9시)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원칙에 해당되는 것이고 사관은 왕의 일과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까딱하다가는 균과 함께 밤새도록 일하게 생겼으니 두 사람은 죽을 맛이었다.

"휴~! 다행이다."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나서면서 유성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균이 신하들을 괴롭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괴롭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출퇴근시간을 칼 같이 지켜주었고 아픈 신하가 있으면 전의감을 통해 약이라도 한 첩 내려주었다. 그래서 유성룡은 다른 관리들과 비슷한 시간에 퇴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도착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주로 경복궁 근처의 북촌에 살았는데 그의 집은 남쪽에 있어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에 피로가 밀려와서 서있기도 힘들었다.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온 유성룡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그의 눈앞에 반가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 이제 퇴궐하십니까?"

"아니 아우가 아닌가? 장기간 훈련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이제 끝이 난 것인가?"

"아닙니다. 훈련은 계속되고 있지만 형님을 뵙고자 제 상관에게 허락을 받고 잠시 나온 것입니다."

"허허허. 아무튼 오랜만에 건강한 아우의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군. 자 어서 들어가세. 그동안 못 다한 회포를 풀어야 할 것이 아닌가?"

몸은 힘들었지만 이순신을 만난 유성룡은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안부를 묻던 유성룡은 곧 이순신을 사랑채로 안내했다. 그리고 유성룡은 하인들을 닦달하여 즉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이순신에게 대접했다. 당시에도 군대에 가면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군대에서 군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급식이 이루어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유성룡의 기우(쓸데없는 근심)에 불과했다. 균은 자신은 밥을 잘 안 먹고 돌아다니지만 제 부하들을 먹이는 것은 철저했다. 그래서 새로운 중앙군에는 풍족한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이는 군사들이 혹독한 훈련을 버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아니. 군대에 있는다고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인데 왜 더 안 먹는가? 혹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인가?"

"아닙니다. 형님. 이렇게 진수성찬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식사가 잘 나옵니다. 제 동료들 중에서는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잘 먹는다고 하는 이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나는 군대에서 고생을 하는 아우의 뒷바라지도 못해서 마음에 걸렸는데……."

"제가 어찌 이 못난 아우를 생각하시는 형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참 그런 그렇고 혹시 요즘 우리 조선의 정세에 대해서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이 아우가 듣자하니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술을 한잔 마시려던 유성룡은 이순신이 갑자기 조선의 정세에 대해서 물어오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술잔을 다시 상에 내려놓았다. 물론 권력과는 거리가 멀기는 해도 엄연한 양반인 이순신이 조선의 정세를 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유성룡이 알기로는 지금까지 이순신은 한성부 근처의 외진 곳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랬던 이순신이 휴가를 나오자마자 조선에 무슨 일 없냐고 물어보고 있으니 유성룡은 자신이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반문을 한 것이다. 이순신은 그런 유성룡의 반응에 실망을 하면서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천천히 설명했다. 이순신의 설명을 듣던 유성룡은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점차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사실인가? 무리할 정도로 군사훈련이 강화되고 있다고?"

"예. 형님. 보통 여름철에는 탈진하는 사람이 많아서 훈련을 쉬거나 그 강도를 약하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힘들어 탈진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 나올 정도로 훈련이 힘들었습니다. 마치 당장이라도 전투에 투입할 것처럼 말이지요."

"전투라? 요즘 여진족과 왜구들의 활동이 많이 줄어서 그렇게 군대를 파견할 곳이 없는데……. 기껏해야 평안도 서해평을 점거한 여진족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그렇게 화급을 다투는 사한은 아니네. 그러니 우리 조선에서 급하게 군대를 파견할 곳은 없다고 볼 수도……. 아참!"

애써 이순신의 말을 부인하던 유성룡은 다른 생각이 들어서 소리를 질렀다. 얼마 전 경상도에 남아있던 자신의 동문이 올라오면서 '충청도의 민심이 크게 어지럽다.' 라고 제 스승인 이황에게 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동문의 말과 이순신의 말을 따로 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는 군사훈련을 좀 강하게 하고 있다는 말이고 하나는 충청도 사람들이 조정의 시책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개를 합치면 충청도의 민심이 흔들려 중앙군의 출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훈련이 강화됐다고 볼 수도 있다.

"설마!!!"

유성룡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성룡은 정 9품의 낮은 관리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임무를 맡은 사관이고 이황의 제자라는 장점으로 조선의 정세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균이 가끔 떠넘기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얻는 지식도 많았다.

현재 조선의 당파는 총 4곳이다. 이중에서 훈구파는 그 세력도 약하고 인물이 없어서 그렇게 위협적인 세력은 아니다. 훈구파를 제외하면 사림파가 남는데 사림은 다시 영남, 남명, 기호의 삼 파로 나누어진다. 이중에서 세력이 가장 큰 곳이 기호사림인데 이들은 균의 즉위 이래 계속해서 견제를 받아서 균과 조정에 대한 원한이 크다.

그런데 그 기호사림의 최대 근거지인 충청도의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고 중앙군이 무리한 훈련을 통해서 그 전투력을 향상시키고 있다면 기호사림은 언제 한번 들고 일어날 기회를 찾고 있다는 것이고 중앙군은 이런 징후를 포착하고 미리 손을 쓰려고 준비 중이라는 말이 된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친 유성룡은 크게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자기 마음대로 흔들렸다. 나중에는 임진왜란이라는 국가비상사태에서도 침착하게 조정을 잘 이끈 명재상으로 평가를 받는 그였지만 지금은 연륜이 부족한 20대의 청년이었다. 그래서 유성룡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기를 기원하면서 다시 한번 사태를 정리했다. 물론 그 결론은 같았다.

"저기, 성룡형님."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유성룡에게 이순신이 말을 걸어보았지만 유성룡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반란이란 중차대한 사건이라서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자신과 가족 및 친지, 그리고 스승과 동무들의 운명을 다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반란의 징후를 파악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의금부에 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이미 중앙군이 준비되고 있는 상황인 것을 보면 왕은 이번 일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반란사건이 있다고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따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고발을 하다가는 오히려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니 곤란하다.

그렇다고 반란의 징후를 알면서고 의금부에 고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반란동조죄에 해당한다. 이것은 더 곤란하다. 왕의 노여움정도가 아니고 멸문지화를 입을 수 있는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동요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쓰던 유성룡은 거의 반시진(1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이순신과 마주앉아 자신이 생각을 떨어놓았다.

"예? 그것이 참말입니까?"

뭐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이순신이지만 그것이 반란과 연관이 있고 또 정상적인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유성룡의 말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되찾고 대책을 논의했다.

"일단 내가 스승님을 만나서 이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그 대책을 물어보겠네. 그러니 아우는 입단속을 잘 해주게. 이런 이야기가 잘못 새어나가면 아무리 우리가 죄가 없어도 소인배들이 나타나서 우리를 모함할 것이네."

"예. 형님. 안 그래도 저는 곧 부대로 복귀를 해야 하니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거기서도 이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터이니 너무 심려 마십시오. 아 그리고 제가 중앙군의 군사훈련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는 말도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잘 알고 있네. 아우가 나를 믿고 해준 말인데 내가 함부로 흘려서 아우를 다치게 할 수는 없지."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각각 경복궁과 북한산성으로 향했다. 어제는 반가움에 밝은 표정으로 만났던 두 사람이지만 이 날 아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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