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삼려의 난

만주는 남으로는 한반도, 북으로는 흑룡강, 동으로는 태평양, 서쪽으로는 대흥안령 산맥에 접하는 거대한 평원이다. 현재는 중국의 동북평원과 러시아의 연해주로 양분이 되어있지만 한때는 고구려와 발해가 다스리던 한반도 북쪽의 대평원을 가리켜 만주라고 하며 조선의 잃어버린 영토였다.

현재 만주의 주인은 바로 동북아 최강대국인 명나라였다. 주원장이 일으킨 명나라는 원나라를 몽고로 밀어내고 원나라와 고려의 연계를 우려하여 요동을 공략하고 고려에 압력을 가했다. 이에 고려는 이성계에게 대군을 주어 요동을 정벌하려고 했지만 위화도 회군으로 실패하고 명나라는 순조롭게 요동지방을 장악했다.

명나라가 군사력으로 차지한 땅은 요동지방에 지나지 않았지만 곧 명나라는 만주 전체를 자신의 세력판도 안에 넣을 수 있었다. 바로 여진족들에게 유화책을 사용하여 여진족의 부족장들에게 벼슬을 하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식적이기는 해도 만주는 명나라의 신하들이 다스리는 땅이었기에 명나라의 영토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만주의 명목상의 주인은 명나라였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여진족이었다.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구성원이던 여진족은 발해의 멸망 후에 잠시 금나라를 세워 세력을 떨쳤으나 그 금나라가 원나라에 망한 후로는 고향인 만주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진족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았다. 먼저 식량이 부족했다. 만주는 날씨가 추워서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특히 쌀같이 생산성이 높은 작물은 자라지 않았다. 거기다 목축은 농사에 비해서 효율이 더 떨어지는 식량생산법이다. 거기에 여진족의 낮은 농업기술력까지 더해지니 식량부족 현상이 심했다.

이렇게 식량이 부족한 여진족은 다른 부족을 습격하거나 명나라와 조선을 공격하여 식량을 약탈해야 했다. 이러다 보니 필요한 것인 무기인데 여진족의 기술력이 낮아서 철제무기를 만들 수 없었다. 거기에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철제 농기구도 필요했고 옷감이나 소금 역시 자체적으로는 구할 수 없어서 약탈을 하거나 교역을 통하여 얻는 실정이었다.

운총만호 이동영(이동명에서 고칩니다.)이 착안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여진족에게 식량과 철제 농기구, 무기 등을 공급하고 대신 그들을 반란에 끌어드리자는 것이다. 이동영에게는 그만한 재력이 있었고 여진족에게는 싸울 수 있는 전사들이 넘치도록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동영의 노력은 곧 결실을 맺었다. 이동영은 백두산 근처에 위치한 장백여진에 협력을 제안하여 주셔리부, 너연부, 야류장부. 이렇게 세 곳의 여진족들에게서 협력을 약속받았다. 그래서 오늘 수십 명이나 되는 여진족 사절단이 이동영의 집에 도착하여 이동영을 기쁘게 했다.

"하하하. 먼저 이곳까지 오신다고 수고가 많았소. 내가 이동영이오."

"처음 뵙겠소. 나는 주셔리부의 돈고호리라고 하오."

"나는 너연부의 아패란이오."

"나는 야류장부의 타오가치이오."

"다들 잘 오셨소. 내가 연회를 준비했으니 배불리 먹고 피로를 푸시오."

여진족을 만난 첫 날부터 이동영은 골치가 아팠다. 세 부족은 장백여진에 같이 속하는 서로 이웃한 부족인데 여진족 중에서 이웃한 부족은 서로 적대관계였다. 그래서 이동영은 어느 한 부족을 너무 편애하지도 너무 홀대하지도 않는 대접을 해주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부족으로 돌아간 그들이 그들의 부족장에게 말해서 많은 병력을 보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영은 그들을 접대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미 반란을 결심한 이상 그리고 자신의 힘만으로 반란의 성공이 불확실한 이상은 그들이 이번 반란의 성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흘 동안 이동영의 집은 여진족들을 대접하느라 매일 잔치를 열었다. 때문에 며칠 후에야 이동영과 여진족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일단 각 부족에서 동원할 수 있는 군세는 어느 정도요?"

"뭐. 성의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우리 쥬셔리부의 전사들은 족히 1만은 되오. 그러니 부족을 지킬 전사들을 제외하면 절반정도는 동원할 수가 있소."

"우리 너언부는 8천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소."

"우리 야류장부는 7천의 전사들이 있소."

이동영이 들어보니 대략 세 곳의 군세는 총 2만 5천이었고 이중 절반정도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면 약 1만 2500여명인데 통상적으로 여진족 기병은 조선기병보다 강하므로 이동영은 기병 2만 명을 지원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이동영은 크게 기뻐했다.

"하하하. 상당한 전력이구려. 거기에 내가 거느린 병마가 약 3만 명이 넘으니 거의 5만의 군세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소. 그 정도면 한성부로 진격하는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오."

이동영은 자신의 군세를 일부러 과장해서 말했다. 이미 대부분의 북방군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은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군대는 적었다. 먼저 이동영이 운총만호로써 지휘하는 군대가 3천여 명이고 그의 영향력 하에 있거나 그에게 동조할 자들의 세력을 합쳐도 정규군은 고작 1만 명 정도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동영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여진족과의 싸움이 매일 같이 벌어지는 조선의 최전방인 함경도이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도 무기를 익숙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을 징병해서 무기를 지급하고 약간의 군사훈련을 시킨다면 다른 지역의 조선정규군 못지않은 전투력을 가진 병사가 되는 것이다.

"장군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3만이나 된다니 우리 부족장들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오. 그리고 식량과 물자들은 준비가 되었소?"

"물론이오. 넉넉하게 준비를 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그보다는 그것들을 어떻게 운반할지를 걱정하는 편이 좋을 것이오. 하하하."

"그럼 장군은 어떻게 움직일 예정이오?"

"일단 내가 아는 바로는 충청도 양반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곧 무엇인가 큰 일이 있을지도 모르오. 그래서 한성부 근처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 내가 연락을 하고 군대를 일으키겠소. 당신들의 군대가 도착할 때쯤에는 내 군대의 준비도 거의 끝날 것이니 같이 함흥을 점령하고 그대로 조선의 수도로 남진을 하는 것이오.

일단 조선조정은 현재 남쪽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어 상대적으로 북쪽에 대한 관심이 적소. 거기다 근처에 우리를 도와주는 자들이 있어서 많은 정보를 넘겨주고 있으니 우리는 조선군의 혀를 찌르며 빠르게 남진할 수 있을 것이오. 그래서 남쪽으로 조선의 주력군이 출정한 사이 우리는 한성부를 가볍게 접수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오."

이동영의 설명을 들은 세 명의 여진족 장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들과 그들의 부족은 조선과 접경을 하고 있어서 조선군과의 교전경험이 많았다. 조선군과 싸울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지만 조선군은 너무 약했다. 숫자는 제법 되는 듯 하지만 조선군은 여진족과 일대일 대결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군들은 성이나 목책에 숨어서 겨우겨우 저항하고 있었기에 여진족들은 조선군을 겁쟁이라고 비웃고 있었는데 그렇게 약한 조선군이 조선에서는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하니 남쪽의 조선군은 얼마나 약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정세도 유리하니 여진족 장수들은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알겠소. 내가 부족장께 잘 말씀드려 많은 전사를 이끌고 오겠소. 기대해도 좋을 것이오."

"하하하. 잘 말해준다니 정말 고맙소. 원래 조선은 여진족과 친구였는데 지금은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깔보고 천대하고 있으니 이것은 잘못된 것이오. 내가 왕위에 오르면 가장 먼저 여진족들을 친구로 선포하고 여진족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물자들을 공급해 주겠소.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영원토록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오."

"말만 들어도 기쁜 말이오. 우리도 장군의 대업을 성취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니 우리만 믿으시오."

이동영이 이번에 여진족들에게 투자한 자금만 돈으로 삼십만 냥이 넘었다. 거기에 거사가 성공하면 추가로 백만 냥을 주기로 약조를 한 상황이었다. 덕분에 여진족들은 더없이 이동영에게 호의적이었고 이동영은 강력한 여진족 기병을 용병으로 동원할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함경도 일대의 북방군이 모두 움직이는 것보다 더 전력이 강화된 셈이었다.

송상대방 송민진은 작은 방에 홀로 앉아 찻잔에 든 차를 음미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상념은 마루를 울리는 소리에 방해를 받았다. 그 소리는 송민진이 있는 방문 앞까지 울리더니 곧 방문을 열고 실체를 공개했다.

"대방어른, 아니 숙부님.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송상이……송상이 멸망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지연아. 목소리가 너무 크구나."

"숙부님. 제가 안 그러게 생겼습니까? 반란군을 도우시다니요? 그런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만 우리 송상은 끝장나옵니다."

"반란군이라…….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반란군의 수장이었지. 단지 그는 성공한 반란군의 수장이었고 지금 일어나는 두 사람은 아직 그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것에 불과하단다. 아니 어찌 보면 조선이라는 거대한 반란군 내부에 다시 반란이 일어난 것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지연아. 너도 내 원래 성이 왕씨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안지연은 평소와는 달리 큰 목소리고 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송민진은 차분하게 조용한 말로 안지연을 다독거렸다. 원래는 송민진이 조금 급하고 안지연이 차분한 편이었는데 오늘은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 숙부님. 하지만 이미 고려는 망한지 170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선이 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에 이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숙부님께서 가문의 한을 풀려고 하시는 것은 저도 이해합니다만 숙부님은 송상의 대방이십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깊숙이는 개입하고 있지 않단다."

"부여의 김진기와는 별 거래가 없었다고 하지만 갑산의 이동영에게 무기와 자금이 지원해주신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 것입니까?"

"그것은 다 내 개인재산에서 나간 것이니 상단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동영에게 제공된 한성부와 중앙군의 정보는 어떻게 설명하실 것입니까? 또한 조정의 탐보활동을 계획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많이 아는구나. 역시 우리 송상이 자랑하는 인재답다."

송민진은 조선 최고의 상단인 송상의 대방에 올랐을 정도로 유능한 상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명성에 걸맞게 정세분석에도 능했다. 송민진은 조선을 멸망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송민진은 송상의 대방이지만 송상전체를 다 반란군으로 만들 능력은 없었다.

거기다 송상이 총력을 다해서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제대로 된 무력이 없는 상황이니 성공률은 극히 낮다. 송상의 강점은 무력이 아니라 그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송상의 장점을 살려 다른 세력을 도와 조선조정을 전복시키는 것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었다.

그의 판단으로는 이미 김진기의 승산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송민진은 과감히 그를 포기하고 총력을 다해서 이동영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원받은 자금과 무기덕분에 이동영이 여진족을 용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송민진은 그렇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 외에도 송상 보부상단을 총동원하여 정보를 수집해 이동영에게 제공하고 균의 정보수집을 방해했다. 현재 균의 정보조직이 급성장하고는 있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송상 보부상단을 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덕분이 이동영의 움직임은 많이 숨겨졌고 이동영은 한성부의 움직임을 제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균의 장점으로 손꼽히는 자금력과 정보력의 우세가 상당부분 무력화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송민진이 직접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반란군보다 균에게는 더 위협적이었다. 덕분에 잘못하면 송상이 완전히 망할 수도 있는 것이고 안지연은 그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숙부님. 아직 조선에서 우리 보부상단만큼 정보력이 뛰어난 집단은 없습니다만 조정의 정보조직역시 상당한 수준입니다, 이미 조정에서 김진기의 존재를 포착한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전에 비해서 조정의 정보력은 상당하졌고 우리 송상은 한성부의 바로 옆에 있으니 그들의 감시망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보부상단을 일일이 따라다닐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움직이는 것은 단지 보부상단이고 본점과 각 지점에는 철저한 중립을 지키고 있으니 그들이 알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숙부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셨습니다. 그만 손을 떼시옵소서."

송민진은 조카딸의 간절한 부탁에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나는 송상의 대방이다. 나는 그 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직책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려의 왕족인 왕씨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이다. 이번 일로 인해 상인의 본분을 어긴 것은 큰 죄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반란군을 돕는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은 더 없이 편했다."

송민진은 성큼성큼 걸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안지연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송민진은 뒤돌아 보지 않고 아까 전에 하던 말을 계속했다.

"지연아. 너는 촉망받는 상인이다. 이번 일이 너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만은 나처럼 상인의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내 결정에 후회는 없다만 나처럼 정치권력에 관심을 가지는 어리석은 후배들이 있을까봐 두렵구나."

송민진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안지연이 있는 곳에서 멀어져 갔다. 이번 일이 실패하여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안지연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지만 송민진의 머릿속에는 어렸을 때 자신의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한 후. 이성계는 왕씨를 모두 모아서 그들을 섬에서 살게 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들이 힘을 길러 고려를 다시 세울까봐 두려워 그들이 타고 가던 배를 침몰시켰다. 그래서 노인부터 갓난아기까지 모두 물고기 밥이 되었고 송민진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그런 이야기를 어린 아들에게 해주었다.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이가 들어서도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좋은 기회가 오자 그는 자신의 천직이라고 여기던 상업을 내팽개치고 이번 일에 개입하게 만들었다. 걸어가던 송민진은 잠시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뜻 모를 말을 내뱉었다.

"피 묻은 칼로 일어났으니 피 묻은 칼로 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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