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삼려의 난

원래 반란군의 진공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부여현일대에서 김진기와 그의 일가친척들, 그리고 그의 영향력 하에 있는 자들을 모두 모아 약 1만의 군대를 편성하고 그다음에 북동쪽으로 약 73리(약 30km) 정도 떨어진 공주목을 점령한 후 거기서 자신들의 거사를 조선 천지에 선포를 한다는 것이다.

공주는 부여와 함께 옛 백제의 도읍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고 또한 군사적인 요충지로써 교통이 편리해 다른 양반들이 합세하기도 좋았다. 거기에 공주 공산성의 경우에는 무기고와 곡창이 있어서 반란군의 부족한 무기와 식량을 조달할 수도 있는 현실적인 요소도 고려된 것이다.

거기서 다른 양반들의 도움을 받아서 세력을 확장시키고 나서 서쪽으로는 보령에 있는 충청수영과 해미의 충청병영을 공격하여 한성부로 올라가는 서해의 수로를 차단하고 동쪽으로는 충주의 충청감영을 공격하고 남한강 일대로 진출하여 남한강의 수로를 차단하여 한성부에 식량부족사태를 일으켜 혼란에 빠트려 토벌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 무렵 처음 1만으로 시작한 반란군은 최소 3만에서 최대 5만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그 정도면 소수의 토벌군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게 토벌군을 격파한 후 겨울철에 북진하여 얼어붙은 한강을 넘어 한성부를 공략 점령하고 정권을 차지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균이 온양의 행궁으로 행차하고 충청도 유생들을 대상으로 과거를 치른다고 하자 상황은 바뀌었다. 계획대로 움직인다고 하면 반란군의 총병력은 2만이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 경우 서해와 남한강의 수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고 토벌군의 전력은 예상보다 강할 것이다. 그러면 반란은 보나마나 실패였다.

"따라서 이전의 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해 보았습니다. 영감께서도 한번 읽어보시지요."

피시상은 균이 내려왔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생각해본 온양행궁 습격계획서를 김진기에게 넘겨주었다. 물론 대규모 병력을 소리 소문 없이 접근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해 포기하고 있던 계획이었지만 정세의 변화는 불에 타버릴 뻔한 종이 한 장의 수명을 늘려주었다. 피시상이 세운 새로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김진기의 총병력은 약 1만 명인데 이중 해산된 병사들이 약 5천여 명, 그리고 나머지 5천여 명은 김진기가 부리는 노비였다. 둘 다 전투력이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병사들이 낫고 충성심의 경우는 균에게 반감을 가진 병사들이 훨씬 높다. 그리고 이들은 김진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오십여 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온양행궁은 여기서 약 이백 리나 떨어진 거리에 있다. 숙련되지 않은 병사들 특히 충성도가 낮은 노비들의 경우에는 그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이동해서 기습을 가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또한 이번처럼 과거보러 가는 유생이나 그 하인, 보부상으로 위장을 한다면 소규모의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노비들은 다 도망가고도 말 것이다.

그래서 피시상은 전병력으로 온양행궁을 치는 것보다는 믿을 만한 병력을 뽑아서 그들로 공격을 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병사 5천과 노비들 중 믿을만한 자 1천 정도를 선발하여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진격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더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궁극적으로는 반란군의 전력을 늘릴 수 있는 길이라고 피시상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고작 6천명인데 폭군의 호위병들을 격파할 수 있겠는가?"

"본시 병법에는 공격군은 수비군의 3배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격군이 기습을 할 경우에는 그 정도는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장수의 지휘를 따라줄 훈련 잘된 병사 약간이면 충분히 기습의 효과를 낼 수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기습을 하기로 결정한 이상 병사의 수에 크게 구애를 받을 필요는 없고 아군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일 리가 있는 말이기는 한데 너무 병력이 적은 듯 싶군. 일단 다음 계획을 계속 설명해보게."

김진기는 병력을 다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은 듯했지만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정재곤과 피시상이 군사전문가였기에 그냥 수긍하고 다음 계획을 듣기를 원했다. 그래서 피시상은 이동계획에 대해서 설명했다.

"일단 6천의 군사들이 믿을 만한 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든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평지보다는 산길을 택해서 움직여 대규모 부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습의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이곳과 온양사이의 최단로를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절충해서 생각한 진격로는 여기서 태화산 마곡사, 마곡사에서 온양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일단 여기서 태화산 마곡사까지는 평야지대라서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병사들을 분산시켜 이동시켜야한다는 문제는 있습니다만 마곡사는 여기서 거의 정북에 위치합니다. 또한 마곡사는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큰 절이라서 잠시 군사들을 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산길을 따라서 이동하기 때문에 대규모 부대를 결성해서 이동시켜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조금만 이동을 하면 온양은 바로 지척입니다."

피시상의 말을 들은 김진기와 정재곤은 원래부터 충청도 사람이기에 그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이견이 없이 다음 의견들은 논의했다. 하지만 이동계획과 동원병력을 결정하고 나니 나머지는 특별히 의논을 할 것이 없었다. 군대의 이동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것을 논의해야 했지만 이번 작전은 정규군이 벌이는 정규전이 아니기에 다 챙길 필요는 없었다.

예를 들면 군대의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보급인데 이번작전의 특성상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이동시 필요한 보급물자는 병사들이 휴대만 해도 충분했고 기습이 성공하면 행궁에 쌓여있는 보급물자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실패한다면 반란군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되니 보급물자가 필요 없다.

그래서 거의 결론이 났다고 생각되자 정재곤과 피시상은 김진기에게 최종적인 제가를 받기를 원했는데 김진기는 뭐가 하나 걸리는지 한동안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진기는 정재곤과 피시상에게 전 병력을 다 동원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내가 군사를 모르기는 하지만 너무 병력이 적은 듯 싶네. 내가 병사들에게는 충분한 포상을 약속하고 노비들에게는 경고를 해서 변심하는 자가 나오지 않도록 할 터이니 그냥 전 병력을 다 동원하는 것은 어떻겠나?"

"병력이 많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차라리 적당한 수를 이끌고 가는 것이 제가 지휘를 하는데도 편하고 우리가 이길 확률도 높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비들이 많아보아야 전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통제가 안되어 아군의 주력군에 피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그들에게 지급할 무기도 없습니다."

정재곤과 피시상은 갑작스러운 김진기의 말에 반대를 표시했지만 김진기는 고집을 부렸다. 그의 운명이 이번 일에 다 걸려있는 셈이니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에게는 노비들이 군대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할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김진기는 계속 자신의 의견을 주장해 결국 관철시켰다.

"무기야 죽은 병사들의 무기를 다시 쓰면 되는 것이고 내게 노비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할 복안이 있네. 그러니 내 말을 따라주게."

"……예. 영감. 알겠습니다."

"그럼 대강의 작전은 이렇게 하도록 하고 세부적인 계획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나와 자네들의 운명이 달린 것이니 최선을 다해주게."

"성심을 다해 기필코 폭군을 사로잡겠습니다."

김진기가 기습작전을 최종적으로 허락하자 정재곤과 피시상은 즉시 곳곳에 연락을 보내 위장한 후 마곡사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김진기의 본가에 있는 병사들과 노비들 오백여 명은 김진기를 지키기 위해 남는 바람에 실제로 기습작전에 동원된 반란군은 1만 명이 되지 못했다.

그날 밤 한성부의 경복궁. 내금위장 곽흘은 이번 행차에 따라가지 않고 궁궐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균이 자리를 비운 덕분에 조용하다 못해 썰렁해진 경복궁을 지키면서 하품을 하고 있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박규남이 달려왔다. 박규남 역시 정보수집을 담당하기 때문에 한성부를 떠나지 못했다.

"아아암~! 자네는 박 선전관이 아닌가? 이 밤중에 무슨 일인가?"

"온양행궁에서 주상전하의 어명이 올라왔습니다. 여기 출동명령서와 밀부입니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군대를 출동시킬 때 명령서와 밀부를 함께 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밀부는 둥글게 생긴 물체인데 이것을 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왕이 하나는 지휘관이 가지고 있다가 명령서와 같이 주어진 왕의 밀부를 지휘관이 자신의 밀부와 맞추어보고 나서 명령서의 진위여부를 판단했다. 곽흘도 박규남이 가져온 밀부와 자신의 밀부를 맞추어 본 후에야 명령서대로 명령을 하달했다.

"명령서의 필체와 밀부를 보니 전하의 어명이 분명하군. 즉시 오위도총부에 연락하고 제 1, 5 사단에 출동대기 명령을 내리도록."

"예. 영감."

오위도총부가 거의 실권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내금위장인 곽흘이 사실상 한성부 일대의 조선군의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래서 박규남은 먼저 2개 사단에 출동대기명령을 전하고 오위도총부에 통고했다. 덕분에 4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오밤중에 출동준비를 하느라 무산을 떨었다.

"이런 오밤중에 출동명령이라니!"

"윗대가리들이 하는 짓이란 것이 다 그렇지 뭐."

"모두 빨리 움직여라! 내일 아침나절에는 목적지 도착해야 한다! 가장 늦게 출동하는 부대는 감봉처분이라니까 빨리 움직여!"

"어찌 된 곳이 툭하면 감봉으로 위협하냐?"

병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빠르게 장비를 챙겨서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날 새벽, 2개 사단 4천여 명의 병력이 출동준비를 마치자 오위도총부에서는 바로 출동허가를 내렸다. 곧 기병 2천과 보병 2천으로 구성된 부대가 북한산성을 급히 빠져나갔다. 그들의 목표는 북서쪽의 도시 개성이었다.

"첨벙첨벙!"

균은 두 대비들을 안 데리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비들이 없으니 상궁나인들을 최소한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고 그 만큼 많은 병사들을 숨겨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거기다 원래 왕이 있는 곳은 지밀상궁이나 내관들이 감시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에는 그들을 다 떼어두고 오는 바람에 온천에서 물장난을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요즘에 일이 잘 풀리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기분도 무척 좋았다. 자신의 예상대로 모든 일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세운 계획에 변수가 많이 생겨서 고생을 하던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걱정을 할 것은 아니었다.

거기다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대궐에서 서류결재만 죽어라 하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온천에 몸을 담구고 쉬고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귀가 가려운 것만 빼고는 균의 몸 상태는 최상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었다.

'진짜로 쉬러 온 것이라면 좋을 텐데……. 이제 곧 적던 많던 피를 보아야 되는구나. 지금쯤이면 김진기가 반란군을 출동시켰을 것이고 개성의 송상은 기병대에게 포위당했겠지? 명나라는 곧 군대를 파견할 것이고 송상에서 지원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고 하던데……. 내 예상보다도 일이 자꾸 커지는 듯하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