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삼려의 난

즉위 3년인 1568년 10월 31일. 정재곤과 피시상이 지휘하는 반란군은 순조롭게 마곡사로 진입했다. 마곡사는 640년에 창건된 고찰로 방이 30여 칸에 달할 정도로 큰 사찰이다. 균이 있는 온양행궁이 당시 25칸 정도였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 사찰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란군은 먼저 그 곳의 스님들에게 정중히 협조를 요청했다. 물론 적당한 협박과 철저한 감시가 뒤따랐다. 그들의 창칼에 놀란 스님들이 절에 찾아온 방문객들을 돌려보냈고 마곡사는 반란군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래서 부여에서 이곳까지 달려온 반란군 병사들은 잠시나마 배불리 밥을 지어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집결한 병력은 얼마나 되나?"

"1만 명에 가깝네. 영감의 장담대로 노비들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않았네."

"하긴 제 가족들의 목숨이 영감의 손에 달려있는데 도망 갈리는 없겠지……."

김진기는 두 사람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는 병사들에게는 관직을 나누어 줄 것을 약속하고 그 증서를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노비들에게는 일가족의 면천을 약속하는 한편 도주 시에는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 결과 김진기의 장담대로 출발당시 총 9800여명의 병력 중에서 마곡사에 도착한 병력은 9700여명에 달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진기의 말대로 6천명보다는 1만 명이 반란을 성공시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란이라는 것 자체가 하늘을 거역하는 역천에 가까운 일, 거기에 동조한 자신들이 김진기에게 충고한다는 것 역시 웃기는 일이었다.

"좋아. 이만하면 올 사람은 다 왔겠지? 전부 공터로 집결시키게 부대편제를 갖추고 선언문을 낭독한 후에 바로 온양으로 이동하겠네."

"알겠네. 하지만……."

"내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아닐세. 아니야."

피시상은 불안감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다가올 싸움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일이 걱정되는 것이다. 1만의 대군이 2천 명의 병력을 물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거기다 기습을 가한다는 장점이 있으니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진기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김진기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겉보기에는 인자한 듯한 모습이지만 노비들에게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는 결코 인자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인자한 인물이었다면 훈련도 무장도 안 된 노비들을 이렇게 전장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반란이라는 극단적인 수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피시상은 그런 그가 이번 거사가 성공하고 정권을 잡았을 때 어떻게 나올지 의심스러웠다. 피시상이 보기에는 김진기에게는 서얼인 자신들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시상은 지신과 친구들이 김진기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설마 우리가 토사구팽을 당하는 것은 아니겠지.'

"뭐하나? 빨리 움직이게. 이제부터는 시간이 거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알겠네. 그럼 나는 군사를 모을 테니 자네도 준비하게."

피시상은 정재곤의 채근에 일말의 불안감을 감춘 채 병력을 모으기 위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피시상을 보내고 난 후 정재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사실은 피시상처럼 불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재곤은 애써 그 사실을 부인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운명에 순응하여 조용히 사는 것보다는 운명을 바꾸어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1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휴식을 마치자 정재곤과 피시상 등은 전군을 5개 부대로 편성하고 그 밑으로 소규모부대를 여러 개 만들었다. 그리고 서얼출신의 부장들에게 소규모 부대를 하나씩 맡겨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조직력을 갖추었다. 그다음에는 전 병력을 마곡사 근처의 공터로 집결시켜 격문을 낭독했다.

"우리 조선은 중원의 대성인 기자가 동쪽으로 와 기자조선를 세우면서 시작된 나라이다. 천하는 세상의 중심인 중원의 주인에게 다스림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우리 조선은 가장 먼저 중원의 문화를 받아드려 개화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역사는 물경 수천 년이나 되어 감히 다른 오랑캐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조선은 비록 중원보다는 못하지만 역사가 깊은 문명대국으로 사람들은 예의범절에 밝고 문물은 중원의 그것에 비하여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중원에서도 우리 조선을 이르기를 동방예의지국 또는 군자의 나라라고 하며 대명제국의 태조황제께서는 특별히 중원의 대성인 기자가 세운 조선의 국호를 우리에게 다시 하사시었다.

이렇게 우리 조선은 명나라 황제폐하의 은덕으로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시원이 기자이니 명나라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 조선은 개국 이래 명나라를 부모로 섬기면서 온갖 예를 다하여 상국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왔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을 소홀히 하는 자가 있으니 바로 폭군 이연이다.

폭군 이연은 원래 하성군이라는 이름의 일개 종친에 불과하였다. 하성군은 일찍 아버지를 잃고 소금장사를 하던 천박한 자였는데 운 좋게 명종대왕의 눈에 들어 순회세자의 동무가 되었다. 그런데 순회세자는 하성군이 입궐한지 몇 달 만에 갑자기 죽어버렸다. 이에 심려하신 문정왕후께서 병을 얻으시자 하성군이 병수발을 들었는데 문정왕후께서도 갑자기 승하하시었다.

졸지에 세자와 모후를 잃으신 명종대왕께서는 실수로 하성군을 세자로 삼았는데 하성군이 세자가 된지 또 몇 달 만에 갑자기 승하하시었고 그때 마침 지금의 대비께서는 복중에 태아를 가지고 계시어 하성군을 폐세자할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누군가의 계획된 범행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범인은 누구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폭군 이연이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폭군이 한 일이 무엇이던가? 선대왕들께서 고심하여 만든 제도를 함부로 고쳐서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였고 하늘이 정하신 반상의 법도를 어기고 양반들에게 함부로 대하였다. 백성들은 나라의 근원이요 양반들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다. 그렇게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양반들을 박대하니 이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나는 폭군이라도 이 나라의 왕위에 있는 자이므로 목숨을 걸고 눈물로 충언을 하였지만 폭군은 듣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조정에서 내쫓고 다른 충신들의 간언도 거부한 채 간신배들의 말만 듣는 바람에 조정에서 충신은 자취를 감추고 오직 간신들만 들끓게 되었도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오늘 칼을 빼어들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고 나라를 위한 충심에서 나온 일이니 나는 나를 따르는 의군을 천명충의군이라고 명명한다. 무릇 진심으로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자라면 사심없이 천명충의군에 합세하여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폭군 이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새롭고 밝은 주인을 맞아 종묘사직을 반석위에 세우는 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김진기가 기나긴 격문에서 제기한 반란의 명분은 크게 3가지였다. 하나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 또 하나는 명종, 순회세자, 문정왕후를 타살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대왕들이 남긴 제도를 함부로 고쳐서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양반들에게 세금을 내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어느 정도 일리 있고 균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정재곤이 힘 있게 격문을 읽어가는 데도 반란군 아니 천명충의군 병사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들에게 주어질 포상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에 더욱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정재곤이 병사들에게 주어질 포상을 공개하자 그제서야 어느 정도 반응이 나왔지만 그렇게 열렬한 반응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반응이 영 좋지 않군."

"하긴 병사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닌가? 제법 먹물깨나 든 사람들이나 이해할만한 글이지. 거기다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이것은 반란이야. 보통 사람이라면 위험한 반란에 참가하고 싶어 하겠나? 이럴 때는 병사들 사이에 사람을 심어서 선동하는 것인데 내가 생각이 짧았군."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야. 자! 갈 길이 머네. 하루를 꼬박 걸어야 온양에 도착할 수 있으니 어서 군대를 준비하게."

정재곤은 서둘러 군대를 출발시켰다. 여기서 온양까지는 거의 백리나 떨어져 있고 산길을 통과해야 하기에 하루 만에 도착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부대가 편성된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게 되었기에 온양의 호위군이 눈치를 채기 전에 기습공격을 가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관건이었기에 정재곤은 무척 서둘렀다.

정재곤의 천명충의군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온양행궁은 의외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란군의 접근을 모르는데다가 그동안 준비해온 온양행시가 바로 내일로 다가와서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균도 이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온천욕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균의 휴식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박~! 박~! 박~!"

"재우야. 우리 진이가 말이야……."

"벅~! 벅~! 벅~!"

균이 입을 열어서 진이의 이야기만 꺼내면 곽재우의 움직임은 한 단계씩 빨라졌다. 균은 정말로 곽재우와 진이를 결혼시키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곽재우를 부려먹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모를 정도로 곽재우를 부려먹고 있었다. 그래서 곽재우는 힘든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탈주를 꿈꾸고 있었다.

'이래서는 명나라로 도망갈 시간도 없겠다.'

물론 명나라로 도망치기 전에 박규남에게 잡혀오거나 아니면 장거정에게 잡혀 선물로 보내질 운명이겠지만 곽재우은 정말로 달아나고 싶었다. 제법 눈치가 빠른 균은 이미 곽재우의 불만을 눈치 챘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단지 묵은 때를 벗겨내는 쾌감을 느낄 뿐이었다.

"됐다. 그만 하고……."

"빡~! 빡~! 빡~!"

"아야야!!!"

균의 입이 열리자 곽재우는 무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균의 등을 밀었다. 덕분에 균은 비명을 질러야했다. 잠시 후 분노한 균은 곽재우에게 결정적인 한마디를 남기고 온천을 나섰다. 그 말을 들은 곽재우는 충격을 받아서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다.

"한성부로 돌아가면 당장 사주단자 넘겨!"

"전하~!"

조선시대의 혼인과정 중에는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사주단자를 넘기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혼인을 승낙하겠다는 표시였다. 따라서 사주단자를 넘기라는 말은 혼인을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곽재우는 필사적으로 균에게 매달렸다. 남은 여생을 암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동생과 혼인을 하면 대우는 부마(임금의 사위)에 준하면서도 관직생활을 하는 데는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싫다는 말인가?"

"전하. 저는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다 저 같은 것이 감히 전하의 여동생과 혼인을 올린다니 누가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바로 장래를 약속한 여인 때문에 내가 이러는 것이다.'

곽재우는 원래 남명 조식의 외손주 사위이다. 조식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딸이 이씨 가문에 시집을 가서 2명의 외손녀를 낳았다. 그중 둘째 외손녀가 곽재우와 올해 결혼을 하는 것이 원래의 역사였다. 하지만 그러면 곽재우는 조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앞으로 곽재우를 잘 키워 심복으로 삼으려는 균의 계획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균도 진이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입에 침을 발라가며 진이의 칭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동생 진이를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고 싶은 오빠의 마음도 있었다. 아무리 진이가 왈가닥이지만 대신 균은 팔불출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싫어하니 너무 밀어붙이기는 힘들었다.

"과인이 보기로는 잘 어울리는 듯한데……. 본인이 싫다고 하니 할 수 없지. 그럼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자."

체념한 듯한 균의 말에 반색을 한 곽재우는 고개를 들어 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균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입술을 움직이지도 않고 아주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곽재우의 귀에도 들려왔다.

"후후후. 그럼 앞으로 진이 눈치 보지 않고 부려먹어도 되겠군. 흐흐흐."

'설…설마. 내가 진이낭자와 결혼하면 함부로 부려먹기 힘드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떠본 것이란 말인가?'

균의 모습과 혼잣말에 이런 생각이 든 곽재우는 다시 사색이 됐다. 균의 혼잣말이 사실이라면 호랑이를 피하려다가 이리 떼를 만난 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곽재우에게 혼란을 안긴 균은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으면서 온천을 떠났다.

"전하. 호분위 군관 이순신 입시이옵니다."

"들라하라."

자신의 임시 처소에 돌아온 균은 내관을 보내서 이순신을 부르게 했다. 호분위 소속의 군관으로 있던 이순신은 한번 만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임금이 직접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잔뜩 긴장을 하고 균을 만났다. 하지만 균은 아까 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그를 만났다.

"그간 잘 있었는가?"

"주상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으로 그간 몸 성히 지냈사옵니다."

"그것 참 다행이다. 무관이란 몸이 튼튼한 것이 제일이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고향이 충청도 아산이라고 들었는데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 해서 아쉽겠구나."

"아니옵니다. 주상전하의 호종을 맡은 무관으로써 설사 눈 앞에 집이 있다고 해도 어찌 한눈이라도 팔 수 있겠사옵니다. 거기다 소신은 이미 전하께서 특별히 죄를 사해주신 몸이니 더욱 최선을 다할 따름이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