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228)

조선왕조실록-선조 

삼려의 난

무리인줄 알았지만 정재곤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시상 등 부장들은 예상보다 강대한 적의 전력에 걱정이 되었지만 출진에 동의하고 군대를 움직였다. 반란군은 머물고 있던 광덕산 기슭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움직였다.

그 무렵 온양 북쪽 백여 리(40km) 지점에서는 한때의 기병대가 빠른 속도로 남진을 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개성을 출발한 조선군 제 1기병사단이었다. 의흥위장 남언순이 지휘하는 2천여 기의 기병은 장수들의 질책을 받으며 길이 안 좋기로 소문난 조선의 도로치고는 잘 정비된 한성부-온양간의 대로를 따라서 남하했다.

도로망이 안 좋기로 소문난 조선이지만 도로망이 잘 된 곳도 없지는 않다. 일단 수도인 한성부는 계획도시였기에 도로망이 상당한 수준이었고 명나라와의 교통로인 한성부에서 의주까지의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왕들이 많이 찾는 온양행궁까지의 도로역시 이번 균의 행차로 인해서 잘 정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개성에 있던 제 1사단이 순식간에 남하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쯤 호위군과 반란군이 대치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호위군의 전력이 너무 막강해서 패할 가능성은 없지만 역시 우리 기병이 없으면 패잔병은 누가 잡아들이겠느냐? 어서 공을 세워서 상금을 두둑이 타내자!"

"와아~!"

사단장인 남언순은 제 부하들의 말을 듣고 한바탕 웃었다. 비록 엄청난 군사비를 소모하기는 했지만 상비군으로 구성된 기병대는 북방의 여진족들 못지않은 강병이었다. 한강의 굴다리를 넘어올 때 말을 갈아타면서 잠시 속도가 느려지기 했지만 한나절을 전력질주하고 있는데도 병사들의 사기가 무척 높았고 그의 예기는 무디어지지 않았다.

무관으로써 이런 군대를 이끌고 싸운다는 것은 큰 행복이었다. 자신이 젊은 시절 지휘하던 오합지졸들과는 차원이 다른 군대를 그것도 강력한 기병대를 지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만족스러웠다. 그래서인지 피곤하기는커녕 더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가 음악소리처럼 들렸다.

"하하하! 모두들! 호위군이 다 쓸어버리기 전에 빨리 가자. 가장 먼저 온양에 도달하는 부대는 내 직권으로 특별휴가에다가 포상금도 내려주마!"

"오~~~!!!"

기분이 한껏 오른 남언순의 말을 들은 기병들은 더 빨리 움직였다. 길을 걷던 여행객들은 순식간에 나타나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병대를 보고 놀라서 '조선기병은 저렇게 빠르지 못하니 저건 필시 여진족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관아에 고변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기병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청난 속도를 내면서 온양에 접근하고 있었다.

반란군과 호위군, 양군이 서로 마주친 것은 약 반시진(1시간)후였고 반란군은 호위군이 포진한 곳에서 고작 2.5리(1km)떨어진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는 바로 전투준비에 들어가 행군으로 흩뜨려진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훈련 안 된 병사들답게 전투대열을 갖추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반란군이 전방에 도착해서 전투대열을 갖추고 있을 때 반란군을 발견한 호위군은 오히려 잘 준비되어 있던 전투대열에 혼란이 발생했다. 그래서인지 호위군은 반란군에 선공을 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사실은 호위군은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전방에 반란군이다. 전군, 우왕좌왕해라!"

"???"

"반란군이 방심하도록 우리가 혼란스러워 보여야 한다! 거기 대오 맞추어서 이동하는 녀석들 내 말 안 들리나? 빨리 혼란스러운 척 연기를 하란 말이다! 그리고 고함소리도 피죽 한 그릇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힘없이 질러라!"

"우와아아~."

유태수와 오운. 두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이미 포진하고 있고 3천명의 호위군들은 마치 반란군의 등장에 놀란 듯 우왕좌왕하는 흉내를 냈다. 흉내를 낸다고 해봐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혼란에 빠져서 그렇게 된 듯 그럴싸하게 보였다.

물론 과거시험장 근처에 있던 백성들은 그런 군사들의 움직임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까지는 왕을 호위하는 호위군답게 엄정한 군기를 보여주던 군대가 갑자기 오합지졸의 모습으로 돌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눈빛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백성들이 그런 모습을 알아채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균의 작전명령을 하달 받은 장수들 특히 선전관 이순신은 마치 연기라도 배운 듯 혼란스러워 하는 병사들에게 감명을 받고 있었다. 하긴 역사대로라면 자신이 수십 년 후에 안골포 해전에서 왜군를 유인할 때 써먹은 전법이었으니 특히 그에게는 감명 깊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런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적군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겠구나. 나도 잘 봐두었다가 써먹어야지.'

그렇게 결심한 이순신의 주변으로 병사들은 계속해서 우왕좌왕하는 연기를 펼치고 있었고 좀 심한 자들은 연기에 몰입하여 괴성을 지르며 진지를 뛰어다녔다. 그 무렵 멀리 반란군 진형에서는 자신들의 등장에 혼란스러워 하는 호위군 병사들을 보고 정재곤 이하 여러 장수들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주장! 예상보다 호위군의 병력이 적게 보이오. 아무리 많아야 고작 수천 명에 불과한 것 같지 않소? 저 정도라면 기존의 호위군 2천에 근처의 병력을 조금 더 동원한 수준이니 우리의 승산이 커졌소."

"거기다 우리의 등장을 몰랐다는 듯 혼란스러워 하고 있네. 만일 우리의 진격을 알았다면 근처에서 병력을 총동원하고 왕은 달아났을 가능성이 높은데 병력도 적고 아직 과거시험장에 왕이 있는 듯하니 기습이 성공한 듯하네만."

"음……. 아무래도 아까 첩자가 잘못 본 것이라는 말인가? 일단 왕이 달아나지 않았다니 다행이군. 전군에 있는 기병을 모두 모아서 왕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겠지?"

"물론이네. 내가 이미 조처는 해두었는데 병력이 너무 적어서 보병이라도 지원을 해야하네. 하지만 저렇게 혼란스러워서야. 왕이 도망칠 정신이나 들지 모르겠군. 거기다 저기 있는 사람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가는 것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부장들의 평가대로 호위군의 진형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처음에는 잘 도열하고 있어서 자신들의 이동이 탄로 난 것은 아닌지, 또한 병력도 첩자의 말대로 오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었지만 그 실체를 보고나니 오히려 자신감이 치솟았다. 상대는 혼란에 빠진 수천 명의 군대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아군의 전력이 적군의 3~4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가 저렇게 동요하고 있다면 적군의 전력은 더욱 약해진다. 소수의 호위군을 기습하여 간단히 격파하고 왕을 사로잡는다는 자신들의 계획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서 정재곤을 비롯한 많은 장수들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이 솟았다. 비단 장수들뿐만 아니라 병사들 사이에도 그런 자신감이 퍼지고 있었다. 구 중앙군 출신 병사들은 이겨서 벼슬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기뻐했고 노비들은 가족들과 함께 면천될 것을 생각하고 기뻐했다. 그래서 반란군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병사들이여! 눈앞의 적이 보이는가? 대군의 진격에 놀라서 허둥지둥 거리는 적병들이 보이는가?"

"보이오! 아주 잘 보이오!"

"나는 여기로 출진하기 전에 그대들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될 것 같아 무척이나 기쁘다!"

"우와아아아~~!!!"

"우리는 그동안 힘든 훈련과 노동을 통해서 폭군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그 결실이 눈앞에 있다! 이미 격문의 내용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니 따로 말을 하지는 않겠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싸우고 이길 것이다!"

정재곤은 병사들의 기세가 오르는 것을 보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병사들의 앞으로 나가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다시 한번 설파한 것이다. 마곡사에서와는 달리 약한 적을 직접 보게된 반란군 병사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얻게 되는 이익을 대의명분 속에 감출 수 있다는 것이 더욱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와아아아~~!!!"

"저 녀석들도 확성기를 쓰나? 좀 시끄럽군. 내 무장은?"

"준비해 두었사옵니다. 전하."

유생들은 열심히 답안지를 작성하고 균은 신나게 시험감독을 보고 있던 과거시험장안에 반란군이 지른 소리를 듣고는 이 놀이를 그만 두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밖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고함소리에 대부분의 유생들은 붓을 놓고 주변상황을 살피고 있었기에 더 이상 시험감독 노릇을 하기에도 힘들었다.

잠시 후 균은 근처에 준비해둔 자신의 전복과 갑주를 입고 말에 올라서 천천히 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균의 뒤로 곽재우 등 내관으로 위장하고 있던 측근대가 역시 전복을 갖추어 입고 무장한 채 균의 뒤를 따랐다. 시험관으로 참여한 수행신료들과 선비들은 어느새 왕이 무장을 한 채 일단의 병력을 이끌고 함성이 들린 곳으로 향하자 크게 동요하고 왕의 뒤를 따랐다.

시험장을 벗어난 균과 측근대는 천천히 호위군의 본진으로 향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엄숙했다. 이윽고 균은 본진에 이르렀고 두 장군의 군례를 받으며 본진에 들어섰고 막사의 밖에는 조선국왕의 군기인 황룡대기(교룡기)가 게양되었다. 이로써 이번 균의 온천행은 친정(국왕의 원정)으로 완전히 그 성격을 바뀌었다.

"제장들은 들으라!"

"예. 전하."

"그간 내가 제장들에게 자세한 정황을 밝히지 않아서 궁금했던 점이 많을 것이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탐보꾼들을 풀어서 반란군을 감시해왔다. 그래서 알아낸 반란군의 최고 수괴는 전 병조참의 김진기이며 군사지휘관은 정재곤, 참모는 피시상이라는 자로 반란군 병력은 약 9천여 명이다. 병력은 아군 4천여 명보다 2배의 우위를 잡고 있지만 그 실상으로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장수들은 충청도에서 제법 이름난 자들이지만 실전경험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자들이고 병사들은 중앙군에서 쫓겨나 서생들 약간과 강제로 끌려나온 노비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병이나 궁병은 없으며 모두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얼치기 보병일 뿐이다. 나의 군대가 그런 잡병과 싸워서 이기겠는가? 아니면 패하겠는가?"

"분명히 전하의 군대가 이길 것이옵니다!"

균은 반란군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장수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유리한 지를 인식시켰다. 물론 장수들도 그런 점은 잘 알지만 중하위 장수들은 실전경험이 없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유사시 동요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균은 그들의 불안감을 풀어주기 위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아군의 장점을 일일이 설명했다.

"또한 저 반란군은 어제 하루 종일 산길을 따라서 강행군을 해서 많이 지쳐있다. 거기가 부대가 편성된 것도 어제의 일이라서 조직력 역시 형편없고 관아의 눈을 피하느라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져 있었기에 저렇게 다 모인 것이 어제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우리가 일부로 혼란스러운 척 하는 것도 모른 채 쓸 때 없이 사기만 높다. 이 정도라면 내 군대가 압승을 거두지 않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거기다 곧 남언순 장군이 지휘하는 기병대가 도착하고 광덕산 일대에는 복병이 있다. 따라서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투입하는 전력은 무려 7천명이나 된다. 우리는 적의 정보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적은 우리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고 우리에게는 비금도소총이라는 신무기가 있다. 이 정도라면 승패를 논하는 것이 우습지 않은가?"

"그렇사옵니다."

"제장들은 지금 즉시 맡은 바 위치로 가서 병사들을 지휘하라! 그리고 반란군이 움직이면 전투대열을 수습하고 일제사격을 준비하라. 그렇게 강력한 조선중앙군의 위력을 반란군과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충청도의 유생들에게 보여주어라!"

균의 어명을 받은 여러 장수들은 갑옷을 걸치고 있는 상황이라서 군례를 취했다. 그리고는 씩씩한 발걸음으로 막사를 나섰다. 균은 잠깐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을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보여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반란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만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 나서보아야 휘하장수들의 공을 가로채는 것에 불과했기에 균은 때를 기다렸다.

반란군 일명 천명충의군 총지휘관인 정재곤은 참모 피시상 등과 함께 세부적인 작전을 논의 했다. 반란군의 작전계획은 병사들의 훈련도가 낮은 관계로 아주 단순하게 계획되었다. 전군을 6천명으로 구성된 부대와 3천명으로 구성된 부대로 나누어 6천명은 정면으로 돌격하고 3천명은 우회하여 측면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우회공격대 중 1천여 명은 더 북쪽으로 보내서 이미 파견된 기병을 도와서 왕의 도주를 막는다는 작전도 수립했다. 그리고 정면돌격대는 정재곤이, 우회공격대는 피시상이 각각 지휘하기로 결정되었고 양측에서 일거에 공격을 개시하여 호위군을 포위 섬멸하고 왕과 수행신료들 그리고 유생들을 사로잡는다는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그럼 있다가 보세. 시상이."

"알겠네. 재곤이."

"정면돌격대는 나를 따르라!"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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