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온다! 거리 500보(620m)."
반란군을 감시하던 병사들이 외치자 그 소리를 들은 호위군의 장수들과 병사들은 긴장했다. 첫 실전, 그것도 자국 내에서 동족들과 벌어지는 전투였기에 더욱 떨리는 듯 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철에 지독스러운 훈련을 받은 그들의 몸은 본능적으로 지휘관의 외침에 따라서 움직였다.
"전군! 일제사격대형으로!"
원래의 중앙군의 교리는 총병의 사격시 삼단사격술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총병들은 삼열 종대로 정렬하여 사격을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잠시 혼란스러운 듯 하고 있던 병사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대오를 정비하고 이열 종대로 늘어섰다.
"탄환 일발장전!"
병사들은 탄입대에서 길다란 종이 뭉치를 하나 꺼냈다. 종이약포 즉 페이퍼 카트리지였다. 병사들은 신속히 종이약포의 아랫부분을 뜯어 자신의 총구에 화약을 부어넣었다. 그리고는 기름종이에 쌓인 둥근 총알도 철제장전봉을 꺼내서 빠른 속도로 밀어 넣고 총알과 화약을 잘 다졌다.
페이퍼 카트리지와 철제장전봉은 유럽에서도 18세기에 제대로 상용화되는 장전보조도구로 지금의 총에 비하면 원시적인 전장식 소총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켜준 도구였다. 덕분에 현재 호위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는 화승총인 비금도 소총이지만 실제 성능은 더 뛰어났다. 그리고 화약접시에 점화약을 넣고 화승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사격준비가 끝났다.
"반란군 250보(310m)까지 접근!"
"앞에 총!"
"앞에 총!"
지휘관의 구령에 따라서 병사들은 복명복창을 한 후 일제히 총을 들어 자신의 가슴 앞쪽으로 치켜올리고 미동도 없이 지휘관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뒤에서 구경을 하던 수행신료들과 충청도 유생, 그들의 하인들은 아까전의 오합지졸에서 다시 정예병으로 변신한 호위군의 이상하지만 절도 있는 행동에 놀라워했다.
"1열 무릎 앉아! 전군 전방에 조준!"
앞에 있던 병사들은 앉아 쏴 자세를 취했고 뒤에 있던 병사들은 서서 쏴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3천정에 달하는 소총이 속보로 접근해오는 반란군에게 겨누어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긴 막대기를 내밀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 황당해 했다. 조선에도 소총과 비슷한 화약병기가 있기는 했지만 문관들과 일반인들이 다 알 정도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나마 그런 것들의 사용방법은 조준사격이 가능한 소총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저 쇠막대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좀 군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라도 아는 무기라고는 창과 칼, 활, 그리고 화포가 전부인 것이다. 그보다 더 모르는 사람들이 긴 막대기를 내밀고 있는 호위군 병사들을 보니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반란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쇠막대기를 들고 뭐하는 짓이지?"
반란군 정면돌격대를 지휘하는 정재곤은 호위군의 어이없는 행동에 오히려 당황했다. 원래 그는 호위군의 혼란이 급속히 안정되는 것을 보고 내심 긴장했었다. 그래서 그는 호위군이 창, 칼을 뽑아들고 전투대형을 갖춘다던지 아니면 활로 화살을 쏘아서 자신들의 접근을 막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호위군이 한 행동은 예상 밖이었다. 칼날 하나 달려있지 않은 쇠막대기를 들고 폼을 잡더니 이제는 주척으로 6척(약 1.24m)쯤 됨직한 그 쇠막대기를 내밀어 자신들에 겨누고 있었다. 차라리 호위군들이 그 짧은 쇠막대기를 들고 봉술을 한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이윽고 정재곤과 반란군 정면돌격대는 호위군이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는 곳에서 약 200보(250m) 떨어진 곳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은 정재곤이 가정한 돌격선으로 속보로 여기까지 도착한 병사들에게 숨을 고를 시간을 준 후에 한번에 돌격하여 호위군을 격파하려고 생각했다.
"천명충의군. 돌격!"
"우와아아~~~!!!"
조용하던 벌판이 6천명에 달하는 반란군의 함성으로 시끄러워졌다. 아직 우회중인 피시상의 부대는 공격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그 기세를 보아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히 대략 3천명 이하로 보이는 호위군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란군병사들은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비단 반란군 쪽의 생각은 아니었다. 호위군의 뒤에 있던 사람들은 엄청난 숫자의 군사들이 일거에 밀고 올라오는 모습에 크게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나 반란군들이나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일이 곧 벌어졌다. 쇠막대기에서 불꽃이 피어난 것이다.
"사격개시~!"
"탕! 타당탕! 타다다다당~!"
3천정의 소총이 일제히 연기와 불을 뿜었다. 호위군의 소총에서 발사된 총알들은 한참 돌격하고 있던 반란군들에게 쏟아졌고 반란군들은 자신이 왜 쓰러지는지 이유도 모른 채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피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천둥같이 울리는 엄청난 소음과 갑자기 쓰러져 죽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반란군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반란군들은 물론이고 뒤에서 도망가려고 하던 사람들마저도 모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단지 검은 화약연기가 바람에 날아간 후 모습을 들어낸 호위군 병사들만이 재장전을 하느라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졸지에 많은 부하들을 잃은 정재곤은 당혹스럽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설마! 저 막대기들이 소형 화포라는 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많은 병사가!"
정재곤은 호위군이 소형화포를 대량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먼저 놀랐다. 아무리 작은 화포라고는 하지만 물경 수천정이나 되는 화포를 운용하는 것은 막대한 화약이 소모되는 일이다. 당시 화약은 그 가격도 비싸고 원료부족으로 생산량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런 화포를 대량 운용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보다 놀란 것은 그 화포에 맞아서 쓰러진 병사들의 수였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장에 쓰러져 신음하는 병사는 수백 명은 넘어보였다. 쏘아도 안 맞기로 유명한 조선의 소형화포로써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결과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자 정재곤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호위군의 일제사격 한번으로 그 소음과 희생자들에 놀란 반란군 병사들의 기세가 완전히 꺾긴 것이다. 심지어는 바지에 오줌을 저리고 있거나 귀를 막고 벌벌 떠는 병사들이 있을 정도였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아직 서 있었지만 그들이라고 나을 것은 없어서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어버린 자들이 태반이었다.
"주장! 병사들이 멈추었습니다. 다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
"주장!"
'이런~! 아군의 사기가 완전히 꺾였다. 이래서는 돌격이 불가능하고 돌격이 불가능하면 승산이 없다. 하지만 물러서면 아군의 패배는 확정적인 것이 아닌가? 싸워봐야 승산이 없고 후퇴하자니 결국에는 토벌당할 것이고 그렇다고 항복해도 반역자로 처벌받을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퇴양난이로다.'
정재곤의 생각처럼 반란군은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고 그 사기도 드높았던 반란군이지만 지금은 무너지기 직전의 오합지졸로 바뀌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단 한번의 일제사격이 낳은 결과치고는 대단하여 전투의 흐름이 180도로 바뀐 셈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전투의 끝은 아니었다. 측면에 있던 피시상의 부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정재곤의 본대가 단번에 무력화되는 것을 구경한 피시상의 부대도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 없었고 더욱이 부대의 규모가 작아서 통제하기 용의하였기에 빨리 충격에서 벗어난 것이다.
"무엇들 하느냐!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본대가 죽는다! 본대의 병사들이 누구냐? 다 너희들의 동료이고 친지, 친구들이 아니더냐? 어서 움직여라! 본대를 우리가 구원한다!"
"……."
"이런 어리석은 자들을 보았나! 본대를 구원하지 못하면 우리가 패한다! 그러면 우리의 처자식들은 반역자의 가족이 되어 처벌을 받을 것이다! 네 놈들은 네 누이와 딸들이 관기로 끌려가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냐?"
"아니오!"
"그럼 움직여라! 우리가 살길은 나가 싸워 이기는 것뿐이다!"
그래서 피시상의 격려와 협박을 받은 반란군은 곧 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속보로 호위군의 측면을 향해서 접근했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소음과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들이 생각났는지 반란군의 기세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마지못해서 움직이는 듯 병사들은 힘이 없어보였다.
"충격이 컸을 텐데, 반란군의 지휘체계가 살아있다니……."
훈련도 안 된 잡병으로 생각했던 반란군은 균의 예상외로 의외로 잘 버티었다. 전방에 있던 반란군은 직접 일제사격의 위력을 보았기에 알아서 무너지리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었고 균이 보는 방향에서 좌측에 있던 반란군은 점시 주춤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예상외로군. 일부러 멀리서 사격을 했더니 덕분에 충격이 적었다는 말인가?"
56식 비금도 소총의 유효사거리는 대략 150m이내였다. 하지만 사격을 가한 거리는 200m 전후였는데 그 정도라면 맞아도 죽지 않고 부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온양전투는 반란군의 입장에서는 생사를 건 대전이지만 균의 입장에서는 단지 신무기를 보유한 강력한 중앙군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균은 일부러 멀리서 사격하여 최대한 사망자를 적게 내려고 했다. 훈련 안 된 잡병들이니 총소리만 들어도 도망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봐주어서 그런지 반란군은 아직 와해되지 않고 있었다. 뒤쪽에서 전투를 구경하던 유생들과 그 하인들은 대부분 귀를 막고 오줌을 지린 채 땅에 웅크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균의 생각은 옳은 듯 보였다.
"별 수 없군. 전방의 반란군에 한번 더 일제사격을 가해서 와해시켜라. 그리고 화전을 올려서 신호를 보내라."
"예. 전하."
균의 명령이 떨어지자 화전 한 발이 하늘로 올랐다. 그리고 재장전을 완료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호위군 병사들은 다시 전방의 반란군에 대해 일제사격을 가했다.
"사격개시~!"
"타당탕! 타다다다당~! 타당탕!"
한번 더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고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반란군 병사들은 상당수가 쓰러졌다. 아까 전보다 신무기인 쇠막대기형 소형화포에 대한 공포는 심해졌고 병사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도울 생각도 하지 않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정재곤 등 지휘관들이 병력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처음의 혼란이 가라앉지도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지휘통제는 불가능했다.
"도…도망가자!"
"이…이봐 같이 가세!"
한 명의 병사가 먼저 무기를 버리고 뒤로 달아났다. 그러자 주변의 다른 병사들도 그의 뒤를 따랐고 그 효과는 무리 전체에 파급되었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이 반란군은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연쇄현상이 일어나면서 정재곤이 이끌던 병사들은 호위군의 총소리만큼이나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앞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호위군의 일제사격으로 인해 자신들의 본대가 와해되는 모습을 보고 있던 피시상의 부대 역시 극심한 동요에 시달렸다. 본대가 붕괴된 이상 호위군에 비해서 수적인 우위를 점할 수 없고 그렇다면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시상등의 지휘에도 불과하고 병사들의 동요는 쉽게 가라 않지 않았다.
"두두두~!"
그 때,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한 무리의 기병대가 나타났다. 온양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다가 균이 날린 화전을 보고 출동한 남언순의 제 1사단이었다. 왕의 퇴로를 막기 위해 파견한 몇 십 기의 기병들은 먼지구름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힘든 대규모 기병대가 등장하자 알아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하하! 역시나 오합지졸들이구나! 무엇들 하느냐? 저기 도망가는 녀석들부터 잡아라! 아니 화살을 날려서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해라! 다음에는 저기서 도망도 못가고 떨고 있는 보병들이다!"
"예. 영감! 쏴라~!"
"으악~!"
남언순의 기병대가 날리는 화살 앞에 순식간에 말과 사람들이 모두 땅을 나뒹굴고 말았다. 그렇게 자신들의 기병들이 간단히 무너지는 모습과 엄청난 수의 기병대에 질린 피시상의 병사들도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로써 반란군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전투는 소탕작전으로 접어들었다.
"투항하는 자들은 죽이지 마라는 주상전하의 어명이시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하거나 도주하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라!"
두 차례의 일제사격으로 손상된 적 병력은 몇 백 명에 불과해서 달아가는 적병력은 8천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균이 거느린 병력은 호위병력 5백을 제외하고도 기병 2천에 보병 4천이나 되었고 수도 적지 않은데다가 빠른 기병이 있어서 패잔병들을 잡아드리는데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서라! 투항하는 자들은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살…살려주시오!"
기병대는 자신의 기동력을 살려 사방으로 달아나는 반란군 패잔병들을 잡아드렸다. 패잔병들은 벌벌 떨면서 기병대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들을 뒤따라온 보병대가 포박하여 본진으로 보냈다. 패잔병들은 기병대의 추격에 대부분 잡혔지만 일부 병사들은 산길을 따라서 자신들이 출발했던 마곡사를 향해서 발에 불이 나도록 달아났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반란군에 숨어있던 정보부의 요원들과 그들에게 회유되어 있던 병사들이었다. 그 수가 오백여명에 달하는 이들은 반란군이 마곡사에서 출발할 때 대열을 이탈하여 길목에 매복하고 있다가 간신히 기병대를 피해서 도망 온 패잔병들을 간단하게 붙잡았다.
"너희들도 천명충의군이 아니었냐? 그런데 왜 우리를?"
"푸~! 우리는 반란군에 잠입해있던 탐보꾼들이다. 덕분에 대군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은 여기까지 도망오는 패잔병을 잡아드리는 임무를 맡고 있다."
"뭐라고? 이런 배신자들! 우리를 속이다니……."
"그럼 반란군에 가담한 자들은 조선의 주인이신 주상전하를 배신한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주상전하의 어명을 따른 자들이다. 고작해야 도망치다 잡힌 역적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끌고 가자!"
즉위 3년 11월 1일 온양일대에서 있었던 중앙군과 반란군의 전투는 고작 반시진(1시간)도 되지 않아서 반란군의 전면붕괴로 막을 내렸다. 물론 도망친 패잔병들이 더 있어서 그들을 사로잡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지만 균의 의도대로 강력한 중앙군의 위력을 반란군과 충청도 양반들에게 과시하고 반란을 조기에 진압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