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150 회]
무진삼란(삼려의 난).
온양전투의 초기 전황은 반란군에게 유리한 듯 했다.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했다고 생각한 반란군 지휘부는 병사들의 사기가 높다고
생각하여 전군을 두 개의 부대로 나누어 6천명은 정면에서 공격하고 3천명은 우회하여 중앙군의 옆구리를 찔러 전열을 붕괴시킨다는 작전을 세웠고 중앙군은 혼란스러운 듯 대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소총의 사정거리에 반란군을 유인하려는 중앙군의 함정이었다.
총병 3천명의 일제사격으로 입은 반란군의 피해는 그렇게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사격으로 죽거나 다친 병사들은
겨우 삼백여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병사들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놀랐고 대다수의 병사들은 그 청둥 같은 소리와 상당한 위력에 크게 기세를 잃고 돌격을 포기했다. 아니 너무 놀라서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편이 정확했다.
반란군 지휘관 정재곤마저도 혼란에 빠져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그 휘하의 병사들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피시상이 지휘하는 반란군은 본대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 진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그 기세가 크게 꺾인데다가 총병들의 두 번째 일제사격으로 반란군 주력부대가 패닉상태에 빠져서 완전히 붕괴해버리자 그 진격은 완전히 저지되었다.
피시상의 부대는 그대로 한동안 부대를 유지했지만 곧 중앙군 기마대의 돌격이 시작되었고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겁에 질려 대오를 이탈하여 반란군의 마지막 부대마저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로써 반란군은 조직적인 저항력을 상실한 채 중앙군에 투항하거나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했다. 그렇지만 기병의 추격 앞에 속속 사로잡혔다.
반란군 병사들이 전장에서 도주할 수 있는 길은 서쪽, 남쪽뿐이었다. 북쪽에는 중앙군 보병이 동쪽에는 중앙군 기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쪽의 평지로 도주하던 일부는 기병에게 잡혔고 남쪽의 산길로 도주하던 상당수의 패잔병들은 균이 옛날에 심어둔 위장부대를 만나서 방심하다가 대부분 사로잡혔다. 덕분에 근거지인 부여로 도주한 병력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온양전투에 참가한 중앙군은 7천, 반란군은 9천명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종료되고 난 후 중앙군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합쳐
백여 명의 인명피해를 입은 반면에 반란군은 전사자만 5백여 명에 부상자는 거의 2천명에 달했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
이 중앙군의 공격이 아니라 도망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마디로 반란군은 균과 중앙군의 의도대로 움직이다가 무
너져 버린 것이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늦장을 부리거나 수상한 짓을 하는 자들은 가만히 두지 않겠다."
"아이고~."
"네놈은 죽고 싶은 게냐? 어서 움직이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예…예. 알겠습니다."
속속 균이 있는 본진 근처로 패잔병들이 붙잡혀오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패잔병들은 도망치다가 다쳤는지 동료의 등에 업혀오거
나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다녔다. 팔을 다쳐서 옷으로 삼각대를 만든 자도 있었고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는 자들도 많았다.
덕분에 본진 근처는 부상자들의 비명소리와 신음소리,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는 피비린내와 땀 냄새로 가득 찼다.
"끙~!"
그런 관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균은 기분이 무척 나쁜 듯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옆에 있던 장수들은 부상자들 때문에
균의 기분이 나빠진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지만 곧 균의 입에서 나온 명령은 달랐다.
"수행의관들에게 명해서 모든 부상자들을 다 치료하고 병사들에게 명하여 패잔병들을 깨끗이 씻기고 밥을 주라고 일러라."
"예? 하지만 전하. 저들은 반역자들이옵니다."
"내가 따로 생각한 바가 있으니 당장 시행하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균이 기분이 나빴던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은 최대한 희생자를 줄이겠다고 일부러 멀리서 사격을 하는 등 일종의 배려를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반란군의 지휘체계가 무너지면서 자신이 동료들에게 밟혀죽거나 다친 사람이 엄청나온 것이다.
임진왜란의 용인전투와 병자호란의 쌍령전투의 예를 보듯이 조선군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훈련을 받지 못한 농민들로 구성되어 엄정한 군기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적군이 조금만 세게 나와도 놀라서 도망치다가 자멸해버리는 것이 특기였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이번 전투에도 여지없이 벌어졌다.
'반란군 사망자 342명, 부상자 1745명 중에 아군의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가 104명, 부상자가 556명이고 나머지는 도망가다가 자기들끼리 부딪쳐 생긴 손실이라니……. 대략 난감하군. 아! 용인전투와 쌍령전투에서 왜군과 청군은 자멸하는 조선군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휴~!"
균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직도 총소리에 놀라서 벌벌 털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온양별
시를 치르러 온 충청도의 유생들과 그 하인들이었는데 두 차례에 걸친 일제사격과 기마병의 돌격에 많이 놀랐는지 아직도 벌벌
떠는 자들이 많았고 바지에 오줌을 지린 자들도 많았다.
균은 그들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균이 온양별시를 시행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충청도의 민심을 돌려 김진기에게 무리한 기습작전을 강요하기 위해서였고 그 다음으로 강력한 중앙군의 화력을 보여주어 충청도에서 더 이상의 반란이 없게 하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충청도는 양반의 고장이라는 별칭답게 양반들의 세력이 강했다. 그래서 양반들에 의한 폐해가 심각했던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반란이 일어난 고을을 강등시키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XX군을 OO현으로 바꾸어 부르면서 일종의 지역차별을 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그 고을이 속한 도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조선의 팔도 중에서 가장 이름이 잘 바뀐 도가 바로 충청도였다. 그만큼 반란이 많았다는 소리였고 그 반란들의 중심에는 충청도 양반들이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신권주의를 신봉하는 기호학파의 일원이었다. 즉 충청도는 균의 반대세력들이 심심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이른바 요주의 지역이었던 셈이다.
'이번 기회에 충청도 양반들의 기를 확실히 꺾어둘 필요가 있다. 아니면 두고두고 내 발목을 잡을 테니 인정사정 봐줄 필
요가 없겠지.'
다음날 어느 정도 전장정리가 끝나자 균은 기, 보 6천명을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로 파견했다. 반란의 주
모자인 김진기와 그에게 동조한 세력은 물론이고 비록 이번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해산된 병사들을 흡수하여 야심을
키워오던 자들이 모두 대상이었다.
"주인마님! 큰일 났습니다. 관군이 몰려옵니다!"
"무엇이라? 관군이! 아니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관군이 온다는 말이냐?"
"얼마 전에 전 병조참의 김진기가 병력을 모아서 주상전하가 계시는 온양행궁을 급습했다가 관군에게 대패하고 전멸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동원된 군사들이 관군에서 해산된 병사들이라서 그런 병사들을 받아드린 집은 모두 다 풍비박산이 나고 있습니다."
"이런……. 큰 소리를 쳐대기에 좀 괜찮은 인물인지 알았는데 일을 서둘러 나까지 망쳤구나. 무엇들 하느냐? 어서 군사들을 모으
고 대문을 잠궈라!"
헐레벌떡 달려온 집사의 말을 들은 양반은 그 즉시 군사를 모았다. 일단 조선시대에 반역죄로 연루된 이상 처벌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거기다 실제로 사병을 보유하여 그 물증이 충분한 이상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
지만 그들의 저항은 허무했다.
"대문을 열어라! 안 열면 부수고 들어가겠다!"
"미천한 군사들이 내 집에는 무슨 일로 몰려와 행패를 부리느냐?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이놈들!"
"하하하! 네놈이 하늘을 거역했기에 우리가 온 것이다. 애들아 저놈들이 저항을 할 모양이다. 대문을 폭파시켜라!"
"꽈아앙!!!"
"반역자들을 쓰러버려라!"
관군이 묻은 화약에 그 양반의 권위를 상징하던 크고 화려한 대문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리고는 관군들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폭발에 놀란 하인들과 사병들을 간단히 제압했다. 양반은 뒷문이나 샛길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거기에는 첩자들이 버
티고 있다가 방금 전까지 자신의 고용주들을 포박하여 관군으로 합세했다.
"이놈들! 어서 놓아라! 네 놈들에게 돈을 주던 게 바로 나거늘. 어찌 이럴 수 있다는 말이냐?"
"헤헤헤! 나으리. 우리는 원래부터 관군이었소. 단지 탐보를 하기 위해서 병사들에게 섞여 들어온 것뿐이오."
"뭐라? 이…이놈들이!!!"
"참! 이젠 나으리도 무엇도 아니지? 어찌 역적 따위가 나라의 관헌에게 반말을 지껄이느냐? 여기서 초죽음이 되고 싶은 게냐? 이미
세상은 바뀌었다. 어서 가자!"
"놔라~! 이것들아!"
이런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이 흡수한 병사들 중 열에 하나는 첩자들이었다. 덕분에 관군은 정확히 해산된
병사들이 있는 양반집만 고를 수 있었다. 덕분에 양반들은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부족한 군사로 관군에 맞서야 했고
그나마 내부의 첩자들로 인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과인이 하늘의 명령과 선대왕의 유명을 받들어 왕위에 오른 지도 언 3년여가 지났다. 과인은 본시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서 자신
을 더욱 담금질하며 밖으로는 신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많은 일을 하였고 안으로는 두 분 대비전하를 친 어머니처럼 섬기며 별
탈 없이 종묘사직을 이끌어 왔다.
그간 과인이 한 일을 살펴본다면 중국에 사신을 보내 건국 이래 숙원이던 종계개정을 이루어 왕실과 나라를 크게 빛내었고
잘못된 세제를 개편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었으며 폭리를 취하던 상인들을 몰아내어 재정을 아끼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여
그 국세가 사해에 떨치매 작년에는 왜구가 스스로 머리를 숙였다.
올해 초 과인은 오랑캐들에게 고통 받는 변방의 백성들을 위해 방만한 군사제도를 개편하여 군적에 이름만 올리고 재정을 축내던
자들을 모두 내쫒았다. 한데 역심을 품은 자들이 이들과 손잡고 변란을 일으켜 과인은 물론이고 조정의 고관대작들과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고 있던 젊은 선비들까지 해하려 하였으니 이들이야 말로 나라를 망치려는 역신들 중에서 역신이다.
하늘의 명을 받아 이 나라를 다스리는 과인에 대한 반역은 곧 역천이다. 반란에 연루된 모든 자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천
민으로 강등시키며 그들의 모든 재산을 국고에 환수한다. 또한 그 주모자들은 의금부에서 과인이 친국을 하여 그 죄를 엄히 따
질 것이며 단순히 가담한 자들이라도 나라에서 노비로 부릴 것이다. 과인은 이들을 일벌백계하여 다른 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하
니 모두 명심할지어다.'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의 일부 양반들이 수난을 겪고 있을 무렵 균의 어명에 의해 일부지방을 제외한 전국에 교서가 내려졌다.
부여에서 먼 지역에서는 반란군의 격문보다 균의 교서가 먼저 도착했을 정도로 반란진압이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마무리도 잘
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하지만 특히 놀라워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다 함정이었다는 말인가?"
"…예. 영감. 특히 우리 군대에 첩자들이 많이 숨어있어 관군은 우리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탁~!"
김진기는 균에게 놀아난 자신을 자책하여 앞에 있던 서안(책상)을 크게 내리쳤다. 바로, 바로 눈앞에 와있던 권력이었다. 그래서
김진기는 잠시 권력의 독점에 눈이 멀었고 결국 결정적인 오판을 하고 말았다. 물론 오판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더 걸렸다 뿐이지
결론은 같았겠지만 김진기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 간교한 이연에게 속아 힘들게 모은 세력을 날렸구나. 이제 나를 지지하던 양반들도 대부분 잡혀가거나 손을 끊을 것이 분명한데
나는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운명을 모두 걸었던 기습이 실패한 이상 그에가 남은 길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관군에게 순순히
잡혀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얼마 안 되는 전력이라도 모아 같은 입장에 처한 양반들과 함께 다시 군사를 일으키는 것, 나머지
하나는 토벌군의 세력이 닺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잡히면 역모의 주모자로 잡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처형당할 것이고 자신의 시신은 까마귀 때의 밥이 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주변의 양반들과 힘을 합쳐 다시 군사를 일으켜도 고작 수천의 군사인데 그 정도로는 관군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으니 남은
길은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럼 어디로 도망친다? 명나라? 안 돼! 명나라로 가려면 배를 타거나 육로로 가야 하는데 육로는 곳곳에 관군이 버티고 있고 명나라에는 해금령이 내려져 있어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는 바로 체포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왜국이나 유구로 도망가기에는 너무 멀고 어디로 가야 안전할까?'
잠시 고민을 하던 김진기는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고민하는 이 시간에도 관군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김진기는 마음이 조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김진기는 마침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렇지! 함경도로 가면 되겠구나."
김진기가 관직에 있던 시절 균은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 소금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펼친 적이 있었다. 물론 왕의 사유재산인 외수사에서 지급하는 것이었기에 대신들의 반대는 없었지만 많은 돈이 낭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진기가 아는 균은 그렇게 많은 돈을 낭비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배려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라면 단 하나 뿐이다. 북방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균의 정책으로 어느 정도 안정은 되었겠지만 자기처럼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자신의 반란이 알려지만 같이 봉기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에게 의탁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내 생각이 틀려 그런 자들이 없다고 해도 관군이 검문을 하고 있을 평야지대보다는 백두대간을 따라서 멀리 우회해서 명나라로 귀순하는 편이 더 안전하니 일단 함경도로 가서 분위기를 보고 결정을 해야겠다."
김진기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리고 첩자들이 섞일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최측근들만 모아서 자신의 계획을 알리고 신속히 도주하기로 했다. 덕분에 김진기의 근처에도 균이 파견한 첩자가 있었지만 김진기가 병사들에게 일부러 임무를 내려 자신과 멀리 떨어트리는 바람에 자세히 염탐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