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그새 사라져?"

"예. 나으리, 저희는 공주 쪽으로 진군하라는 말에 다른 양반들과 연계하여 재봉기를 할 줄 알았습니다만 한참이 지나도 나타는 자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달아난 듯 하옵니다."

"김진기 근처에도 첩자들이 있지 않느냐?"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김진기는 의심이 많아서 자신의 근처에는 믿을 만한 자들밖에는 두지 않습니다. 거기다 이번에는 

자신의 최측근들만 데리고 급히 떠나는 바람에……."

"이런, 일이 꼬였군."

균의 특명을 받고 군사들을 이끌고 부여에 도착한 내금위 장수인 남창완은 눈치 빠르게 미리 도망쳐버린 김진기를 속으로 욕하고는 즉시 군사들을 풀어서 근처를 살폈다. 하지만 첩자의 말처럼 김진기는 어느새 달아났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 뒤에도 한참을 찾았지만 결국 남창완은 허탕을 치고 힘없이 온양행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온양행궁으로 돌아온 남창완은 균을 직접 만나서 자신의 실패를 보고했다. 그리고는 균의 특명을 받고 반란의 주동자를 체포하는 막중한 책무을 맡았음에도 결국 실패한 것에 대해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소장이 미진하여 막중한 책무를 완수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부디 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상관없다. 그런 사대주의자가 갈 곳은 명나라밖에 없어서 과인이 이미 서해안의 수군에 명하여 명나라로 가는 배는 모두 잡아드리라고 명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그대에게는 따로 명을 내릴 것이니 그만 물러가 쉬도록 하라."

"하오나. 전하. 소장은……."

"그대가 할일은 앞으로도 많다. 과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반란의 주동자를 놓쳤다는 보고에도 균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눈앞에 쌓여있는 서류들에 신경이 더 쓰였다. 그것들이 바로 반란에 참가할 뻔한 양반들의 재산을 조사한 서류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거리는 늘었지만 균은 무척 즐거운 표정으로 서류를 결제하면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해금령이라……."

한편 균의 말과는 달리 김진기는 바다가 아닌 산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는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거의 없어서 도주계획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급히 떠나오는 바람에 따라온 사람들도 서너 명에 챙겨온 재산도 얼마 되지 않지만 무사히 도망쳐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김진기는 감지덕지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하~하~. 영감. 이제 곧 강원도에 다다릅니다. 강원도에 있는 군사라고 해야 평시에는 수백 명에 불과하니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정말 다행이군. 하~하~하~. 하지만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어떠한가? 내가 나이가 들어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니 많이 힘드네."

"알겠습니다. 영감."

빨리 도망치느라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들은 잠시 공터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잠시 발에 잡힌 물집을 매만지며 피곤한 몸을 쉬고 있던 그 때 근처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김진기들은 긴장해서 준비해둔 칼을 각자 뽑아들고 상대를 기다렸다가 소리를 질렀다.

"거기 웬 놈들이냐?"

"그러는 너흰 누구냐?"

"우리는 지나가는 과객이다!"

"지나가는 과객이 산길도 없는 험한 곳으로 다니나? 우리처럼 보부상인들이면 모를까?"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보부상인들이었다. 김진기들은 알아서 칼을 집어넣었다. 상대가 보부상단으로 확인된 이상 칼 들고 설치면 그대로 저승행이었다. 보부상이라면 무장도 하고 있는데다가 그 체력도 좋다. 보통의 병사들보다도 훨씬 나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곳은 인적이 드문 산길이니 그들의 비위를 함부로 거스르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만만하게 보이는 김진기 일행을 발견한 보부상들은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험한 곳까지 들어올 사람들이라면 크게 세 부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양반네들 같은데 뭐하다가 길을 잃었소? 이것은 우리 같은 보부상이나 산적, 그리고 도망자가 고작인데 보부상은 아닌 듯 싶고 산적은 더더욱 아닌 듯 하니 도망자요?"

"아니 이것들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보부상인들이 김진기에게 반말을 하자 김진기의 부하들이 흥분했다. 하지만 김진기는 팔을 들어 그들을 말리고 정중히 물어보았다.

"혹시 어느 상단소속이시오?"

"그야 당연히 송상이외다. 이렇게 험한 곳을 다닐 수 있는 보부상들을 갖춘 곳이 조선 천지에 송상밖에 더 있겠소?"

"만나서 반갑소. 내가 긴히 당신들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데……."

균이 축조하고 있는 북한산성은 유사시 한성부의 백성들이 다 피난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곳이었다. 균의 계획상 자신이 숨겨야하는 일들을 실행해야 하기에 북한산성에는 여러 가지 시설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무기를 개발 생산하는 병기창과 군사를 훈련시키는 훈련장등 군사시설이었다.

그렇게 군사시설이 위치해 있는 것을 빼고도 북한산성에는 많은 시설들이 있었고 그중에서는 상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도 몇 백여 채나 있어 큰 마을을 하나 이루었다. 하지만 그 옆에는 작은 마을도 있었는데 이곳은 일명 안전가옥으로 특별히 보호해야 할 인물이 있을 때 사용하는 장소였다.

그 마을 중에서도 제법 좋아 보이는 아담한 기와집이 한 채 있었는데 거기서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죽일 역적들에게 너무 잘 대해주는 것이 아니냐?"

"역적이라니요? 제가 어르신은 공신이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농담이 너무 심하구나. 반란군에게 정보를 넘긴 자가 공신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아닌가? 그래 나는 언제 죽인다더냐?"

"숙부님!"

송민진은 자신들을 찾아온 안성희에게 자신을 언제 죽일 것인지를 물어보았고 안지연은 그런 숙부를 말렸다. 그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안성희는 계속해서 그들을 감시하고 보호하는 임무를 받았다. 하지만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힌 격인 송민진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미 난 송상의 대방도 아니고 많은 재산이 있는 부자도 아니다. 고작해야 역모에 가담하려한 중늙은이에 불과하거늘 어찌하여 계속해서 밥을 축내게 하느냐?"

"저 같은 낮은 관리가 어찌 상부의 생각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상부에서는 어르신을 해할 계획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 참 웃기는 말이구나. 반란으로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고작해야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지킨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살려준다는 말이냐? 어서 죽이거라."

"숙부님. 제발……."

처음에 잡혀올 때는 체념을 하던 분위기였던 송민진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죽이라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런 송민진의 돌변에 안지연, 안성희 두 사람 모두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안지연과 안성희 두 사람 모두 나가자 송민진은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된 그는 아까 전과는 달리 다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로 돌아왔다.

"휴~! 나를 살려주다니 역시 그것을 노리는 것인가?"

송민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멍하게 생각에 빠졌다. 송민진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조정에 피해를 입히고 싶었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11월 1일 있었던 온양전투와 전 병조참의 김진기의 반란이 한성부에 보고 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즉시 대궐로 전현직 관료들이 모두 모여들었고 그중에서도 재상의 반열에 있는 고위관료들은 빈청에 모여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성토했다. 아니 앞을 다투어 이를 갈았다.

"세상에 이것이 말이 되는가? 주상전하께서 친히 왕림하시어 민심을 위무하시고 충청도 선비들에게 출사의 기회를 만들어주셨거늘, 그런 전하의 성은에도 반란을 일으키는 극악무도한 무리들이 있다니……."

"천만다행으로 전하께서 무사하시기는 하지만 이것은 왕실과 조정에 대한 정면 도전행위요. 물론 전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우리 신료들도 가만히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이런 참람한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아니 되오! 관련이 있는 자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뿌리 뽑읍시다. 주상전하의 옥체를 노린 자들을 가만히 두어서는 아니되오."

조정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대소신료들이 벌 때 같이 들고 일어나 김진기와 연관이 있던 신료들을 탄핵하기 시작했다. 이는 특히 남명학파와 훈구파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두 당파 모두 조정 내에서 세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이번 기회를 핑계 삼아서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공산이었다.

김진기와 그의 지지자들이 속한 기호사림은 제대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뚜렷한 우두머리도 없어 유기적인 대응을 하기도 힘든데다가 김진기가 과거시험장을 노렸다는 말에 그들 내부에서도 파벌이 갈라지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온양별시에 응시한 자식이 있는 신료들의 경우에는 누구 못지않게 김진기일파를 탄핵했다.

그렇게 기호사림이 자중지란에 빠진데다가 그나마 기호사림과 친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학파마저도 균의 언질을 받은 이황의 묵인 하에 다른 두 당파와 힘을 합쳐 공세를 펴오고 있는 상황이니 기호사림은 급속도로 위축이 되었다. 물론 신료의 탄핵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왕의 고유권한이었기에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확정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정계개편인가?"

조정이 김진기의 반란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웠지만 이황은 최대한 자신의 거처에서 나오지 않고 칩거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친우인 조식이 만나러 와도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물리치고는 했다.

'그전에 조정 내에서 4대 당파의 세를 비교한다면 기호사림이 4할, 내 제자들이 3할, 남명의 제자들이 2할, 그리고 훈구파가 1할이었다. 물론 기호사림을 제외한 나머지 삼파의 경우 주상전하와 통하는 것이 있어 강대한 기호사림의 세력을 제어했고 이렇게 신하들이 서로 견제하는 사이 전하는 강력한 왕권을 만들고 있었다.

그 정도 만해도 전하가 조정의 전권을 쥐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최소한 전하는 조정의 세력을 적당히 배분하여 누구 하나가 감히 자신에게 도전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서 균형이 깨어졌다. 기호사림이 몰락하고 나머지 삼 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는데 그렇다면 최대의 당파는 바로 우리 영남학파가 된다.'

이황이 우려하는 것은 이번 일로 세력이 강대해질 자신의 영남학파 때문이다. 최대 당파로 성장하면 많은 제자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적이 많아진다. 이 경우 다른 세력들과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균과의 관계역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황이 칩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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