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의 반란세력 및 반란동조세력에 대한 일제토벌은 사전에 준비된 계획에 따라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완료되어 갔다. 특별히 현장에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균은 전투가 일어난 지 며칠 후 한성부로 돌아왔다. 조선의 왕이

 언제나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경복궁의 옥좌였기 때문이다.

"도성 안의 분위기가 뒤숭숭해 보이는구나.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느냐?"

"그러하옵니다. 전하."

"아마도 이번 반란으로 인해 물건 값이 오를까봐 걱정해서 그렇겠지……. 백성들의 관심사라면 아무래도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백성들에게 정략이라는 것은 다 높은 자들의 자리다툼에 불과한 것이고……."

한성부에 들어서 균은 한성부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내관의 복장을 입고 균을 근처에서 호종하던 곽재우가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했지만 균의 기분은 풀어지지 않는 듯했다.

"……전하. 하지만 전하께서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하시어 오히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 나중에 백성들이

 전하의 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글쎄다. 과연 그렇게 되려는지……. 그건 그렇고 사주단자는 언제 보내줄꺼냐?"

"컥!"

본래부터 왕이 장기간 수도를 비운다는 것 자체가 수도의 백성들에게는 상당한 불안요소였다. 거기에 그 왕이 반란군의 습격을 받았다면 굉장한 불안요소가 되었다. 물론 그런 것이 백성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면 모르겠지만 수도 한성부는 그런 정세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 중 하나였다.

거기다 한성부는 조선최대의 소비도시였다. 그래서 지방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 한성부의 물가에 영향을 주었고 백성들은 고통을 받았다. 그것 때문인지 반란을 단 하루 만에 진압해버린 왕의 군대가 행군을 하는데도 백성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뿐만 아니라 약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우리를 겁내는 것 같군."

"그럴 수밖에……. 천둥소리가 나는 쇠막대기로 1리(400m)나 떨어진 곳의 사람들도 단번에 죽이는 자들이라고 소문이 났으니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겠나?"

"후후후. 역시 소문의 위력은 대단하군. 이 비금도 소총이 신무기이기는 하지만 그 절반의 성능도 나지 않는데 말이야."

"뭐. 썩 나쁜 일은 아니네. 그만큼 주상전하께 도전하는 멍청이들이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으니 말일세."

원래 내금위에 있다가 제 2사단 용양위로 자리를 옮긴 덕분에 이번 반란의 진압에 참가한 부장(여단장) 남창완과 부장 정병은은 그런 백성들의 분위기에 내심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생사를 건 전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온양에서 반란군을 빨리 격파 못했다면 한성부의 백성들이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몰라주고 오히려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니 입맛이 씁쓸했다. 지금 행진하는 병사들에게 쏟아지는 눈빛은 절대 우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사자가 단 1명에 불과한 압승을 거두고 개선하는 병사들의 사기는 무척 낮았다.

"하지만 그래도 주상전하께 도전하려는 자들은 있을 테지?"

"그렇겠지. 안 그래도 잠시 북한산성으로 복귀를 했다가 다시 출정준비를 갖추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니 말이야."

"다시 출정이면 어디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일까?"

"글쎄. 위장영감께서도 잘 모르시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하긴 군대의 출정에 관련된 일을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니 별 문제는 없겠지."

남대문을 통과하여 한성부에 입성한 균의 행차는 이윽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 이르렀다. 광화문이 열리고 균과 수행신료들, 내금위가 입궐하고 나자 나머지 병사들은 그대로 북쪽의 주둔지 북한산성으로 향했다. 궁에 돌아온 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두 대비를 만나서 안심을 시키는 일이었다.

"할마마마, 어마마마. 그간 별고 없으셨사옵니까?"

"이 늙은이야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 참람한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오. 주상. 다행히 주상이 무사하다는 소리를 듣고 심려를 놓았지만 지금 용안(왕의 얼굴)을 보고나서야 마음이 편안해 지는구려."

"주상. 이 어미도 왕대비마마와 같은 생각이오. 주상은 나라의 근본인데 이번 일로 주상의 옥체가 침노당할 뻔 하였소. 몰론 주상이 많은 준비를 해서 반란군을 일거에 격퇴하기는 하였으나 앞으로는 더욱더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오."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균은 대비전에서 간단한 훈계를 듣고 나서야 자신의 처소인 강녕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균을 반기는 것은 자신이 내려갔던 동안 쌓여있던 결재서류들인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강녕전 옆의 작은 방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절대군주정의 최고 피해자는 군주 자신이라지……. 오늘부터 또 야근이군."

갑산의 이동영에게 김진기의 반란이 알려진 것은 균이 한성부에 돌아온 뒤의 일이었다. 그것도 균이 내린 교서를 보고 알 수 있

을 정도로 이동영의 정보력은 형편이 없었다. 이는 정보를 책임지던 송민진이 잡혀간 후 이동영의 정보력은 급속히 떨어졌기 때

문이었다.

하긴 한성부와 갑산의 거리는 당시 기준으로 1383리(553km)에 달한다. 이 정도면 말을 달린다고 해도 며칠은 걸리고 사람의 걸

음으로는 넉넉잡고 한달은 잡아야 되는 거리였다. 특히 함경도의 도로는 부실한데다가 험한 산길이라서 험한 산길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보부상단이 아니고는 사람을 이용한 정보전달은 효율성이 낮았다.

이런 교통사정덕분에 박규남의 정보부가 함경도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애로가 많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동영에게도 중앙의 정보

를 수집하기 힘든 단점을 안겨주고 있었다. 덕분에 이동영의 초기 계획인 한성부기습작전은 이미 때를 놓친 상황이었고 이동영

은 거병직전에 계획이 어긋난 것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충청도의 반란군이 단 하루 만에 괴멸당해?"

"예. 나으리. 자세히는 조사하지 못했지만 왕이 내린 교서와 반란군의 격문, 그리고 부족하지만 상인들로부터 종합한 이야기를

 보았을 때는 반란군이 기습을 가했다가 오히려 함정을 파고 기다리던 관군에게 걸려 전멸당한 듯 합니다."

"바보 같은 것들! 그 정도도 못하고 무너지다니!"

이동영은 부장 조흥수의 보고에 탁자를 내려치면서 화를 냈다. 이미 군대를 일으키자는 격문을 보낸 터였다. 이럴 때 김진기의 

반란 실패는 이동영에게는 여러 가지로 악재로 작용한다. 덕분에 이동영은 화가 풀리지 않아서 한동안 씩씩거렸지만 잠시 후 

조흥수가 내민 종이를 읽고는 안색이 변했다.

"뭐라고? 관군이 보유한 쇠막대기가 불을 뿜더니 몇 천 명이나 되는 반란군 병사들이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고?"

"예. 나으리. 거기다가 2~3리나 떨어져 있던 곳에 있던 자들도 죽였을 정도라고 합니다."

"세상에. 그런 무기가 정말 존재한다는 말이냐?"

"아니면 관군에 비해서 수적으로 우세한 반란군이 단번에 전멸당할 가능성은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소문이라서 정확하지는 않지

만 관군이 뛰어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동영의 부장 조흥수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물론 여자를 무척 좋아해서 무리가 생긴 적도 있지만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아는 이동

영의 휘하에서 소수의 쓸만한 장수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으니 관군의 전력은 예상보다 강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반란계획도 바뀌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거사계획도 아예 이 단계에서 중단하거나 아니면 더 빠르게 수정해야겠군. 물론 내가 보기에는 후자가 정답

인 것 같다."

"그렇습니다. 나으리. 이미 여진족에 지원군을 요청하고 다른 토호들에게 호응을 해줄 것을 요청한 상황이니 지금 거사를 중지한다

고 해도 결국에는 조정이 알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지금 서둘러 군사를 일으키는 편이 더 낫습니다."

"거기다 한성부에 관군의 주력부대가 있을 것이니 진격범위도 한정시켜야겠지?"

"예. 나으리. 제 소견으로는 일단 함경도 일대를 제패하고 힘을 기른 후에 한성부를 도모하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제 2의 이시애가 되는 것인가?"

"아닙니다. 이시애는 실패하였지만 나으리는 그런 자와는 다르신 분입니다. 꼭 성공하실 것입니다."

조흥수의 말을 들은 이동영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섰다. 그리고 멀리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음미하면서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함경도의 토호중에는 이시애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당시 세조라는 강력한 국왕이 조선을 통치하고 있었는데도 봉기하여 조정을 혼란에 빠트리고 세조를 농락하였다. 그리고 대군을 이끌고 진압군과 싸워 무려 4개월이나 함경도을 지배하였다.

그는 강인한 함경도 사람들로 구성된 3만의 대군을 동원하였고 조정은 15만의 대군을 토벌군으로 파견했지만 함경도의 강력한 병사들은 타 지역의 약골들에게 언제나 함경도가 얼마나 살기 어려운 곳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그에게는 함경도의 강병이 있었지만 수가 너무 적었고 여진족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거기다 그는 우두머리가 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일을 시작하는 셈이다. 물론 첫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것은 김진기라는 자가 멍청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무척 유리하다.'

함경도는 국경지역이라서 많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고 일반 백성들의 전투력도 뛰어났다. 거기다 지리적인 이유로 중앙의 지배력도 상당히 약해서 조선 초기 반란이 잦았던 곳이다. 특히 조선왕조자체가 함경도의 세력가이던 이성계가 중앙정부를 전복시키고 왕이 된 것이기 때문에 함경도의 다른 세력가들도 야심을 품었다.

덕분에 조선의 건국을 시작으로 함경도에서는 크고 작은 반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태종 때 있었던 조사의의 난의 경우에는 여진족까지 개입하여 태종 이방원이 토벌을 하는데 상당히 애를 썼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그 다음의 반란인 이징옥의 난은 정권을 찬탈한 세조에 이징옥이 반발하여 일어난 반란인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이징옥의 부하들이 변심하여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마지막이 세조 말년에 있었던 이시애의 난이다. 함경도에서 일어난 마지막 대규모 반란이라고 할 수 있었고 의외로 반란군이 선전을 하였기에 함경도를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키는 이동영은 이시애의 난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실패한 반란이라서 이번 일에 그것을 참고하고 있는 이동영은 이시애와 비슷하게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이시애의 난이 실패하였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배울 점이 많다. 거기다 우리의 행보가 이시애의 계획과 비슷하게 일단 함경도를 장악하고 세력을 길러 한성부를 취하고자 함이니 이시애가 한 일의 장단점을 철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여진족과 토호들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네가 이시애의 난을 참조하여 세부적인 진격계획을 세우도록 하라."

"예. 나으리.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럼 이만 물러가게."

조흥수는 군례를 취하고 방을 나섰고 이동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부하인 조흥수 앞에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무인의 피가 흐르는 그는 본능적으로 일이 어디선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특히 그간 정보를 제공하던 송민진과 연락이 두절된 것은 정보의 중요성을 아는 그에게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설마 내 조상이신 이원계장군께서 나에게 번번이 훼방을 놓는 것은 아니시겠지? 아니야, 아니야. 역모에 관련되면 멸문지화를 당한다. 자손의 전멸을 두고 볼 조상이 어디 있겠는가? 이원계장군께서도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이동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조상인 이원계가 유언을 어긴 자신에게 회방을 놓는 것이 아닌지 궁금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자신의 계획들은 빗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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