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조선시대의 반란, 역모사건은 정치적으로 양날의 검이었다. 정여립의 난에서 알 수 있듯이 단지 조작된 역모사건일지라도 일거에 정권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조금만 실수를 해도 다시 반격을 받아서 몰락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반란이 조정신료들에게 주는 부담이 컸다.
이것은 경복궁 사정전의 차가운 공기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옥좌에 앉아서 신하들을 내려보고 있는 균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신하들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오죽하면 조정의 분위기가 무거울 때마다 나서던 영의정 이준경도 조용히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나서다가는 반란에 연루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아직도 김진기를 잡지 못했소?"
"송구하옵니다. 전하. 팔도에 명을 내려서 그자를 찾고 있기는 하오나……."
"흠, 어디 빌붙을 구석이 남아있다는 말이구려."
"!!!"
아무렇지도 않게 균의 한 마디에 신하들, 특히 기호사림 쪽의 신하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디 빌붙을 구석이 남아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나지 않은 반란세력이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당연히 김진기와 연관이 있던 기호사림들에게는 '희생될 제물이 더 필요해!'로 들릴 지경이었다.
'이거이거. 내가 오리지날 선조하고 비슷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몰라?'
균은 자신의 말에 어찌 할 줄을 몰라 하는 신하들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하는 짓이 원래의 선조랑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비슷한 것이 맞았다. 균은 지금 신하들 간의 경쟁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빈약한 왕권으로 강력한 신권을 제어하는 방법은 신하들 간에 상호견제를 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하. 신 영의정 이준경이 아뢰옵니다. 이미 역모를 저지른 자들은 중앙군에 의해서 대부분 체포가 된 상황이옵니다. 아직 남아있는 무리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신들이 최선을 다하여 잡아드리도록 하겠사오니 성려를 놓으시옵소서."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미 전하의 병사들이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반역자들은 하나둘 찾아내고 있고 전국팔도의 지방관들 역시 그들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사옵니다. 거기다 전하께서 막대한 포상금까지 내걸고 그들을 쫓고 있으시니 곧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균의 발언에 기겁하여 당장 진화에 나선 신하들의 말처럼 균은 한성부로 돌아오기 무섭게 균은 반역자에 대해서 포상금을 내걸었다. 주모자인 김진기의 경우는 만 냥, 그 밑의 주동자들은 천 냥, 반란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 자들은 백 냥의 포상금을 내걸어 하나도 빠짐없이 잡아드리도록 했다.
덕분에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오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균이 반란에 이성을 잃은 상황이 아니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반란에 가담한 자들은 물론이고 동조자들의 체포역시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앞의 말은 단지 균이 반란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는 말처럼 신하들에게는 자신과 가문의 운명, 그리고 자신이 속한 학파의 운명이 달린 일이었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균의 눈치를 안보래야 안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균은 즉위이래. 가장 절대 권력자다운 모습으로 신하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모든 일이 다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이맘쯤해서 적당히 하는 것이 좋겠지? 안 그래도 기회는 더 있으니 말이야.'
"경들이 최선을 다하겠다니 과인이 일단 믿고 기다려보도록 하겠소. 단 아직 주모자인 김진기 등이 잡히지 않았고 무고하게 잡혀온 자들도 많을 것이니 일단은 의금부에서 철저히 사전조사를 한 후에 김진기가 잡히면 빨리 처벌하여 이번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지음으로써 동요하는 민심을 바로 잡도록 하는 것이 좋은 듯하오."
"신들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특히 충청도는 이번 반란에 연관된 일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심적인 부담을 안고 있을 것이니 나라의 아버지가 되시는 전하께오서 자애롭게 보살펴주실 필요가 있사옵니다."
"과인의 뜻이 그러하오. 죄를 지은 자들은 분명히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군부(君父:백성들의 아버지)인 과인이 할 도리가 아니오. 이번 일은 빨리 마무리 짓고 충청도 백성들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그것은 경들이 알아서 적절히 조처하도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충청도의 사대부들과 백성들도 전하의 성려가 깊으심에 크게 기뻐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균은 그렇게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기호사림에 대해서 너무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 당장 기호사림은 성종시절부터 조정에 진출하여 훈구파 다음으로 강대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훈구파의 몰락 후 훈구파의 세력을 흡수하여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한 번에 내친다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균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따끔하게 혼을 내고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몰아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신하들에게도 인자하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일을 빨리 마무리 짓자는 말을 꺼냈다. 균이 먼저 그런 말을 꺼내자 잔뜩 긴장을 하고 있던 신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럼 그 일은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하고 이제는 다른 일을 의논해보도록 합시다. 안 그래도 과인이 도성을 비운 사이 처리할 국사가 많이 밀린데다가 이번 일로 인해서 따로 조처를 해야 할 것이 많다고 들었소. 특히 병조판서가 건의할 것이 있다고 하던데 지금 말해보시오."
"예. 전하. 이번에 반역자들을 체포하면서 반란군의 계획문서가 두 건이 발견됐습니다. 하나는 이번에 있었던 망극한 일을 계획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의 모반을 준비하던 것이었사옵니다. 그런데 실행되지 않은 두 번째 계획을 보니 참으로 조정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이라 소신이 말씀을 드리려고 하옵니다."
"병조판서. 그 일은 이미 전하께서 다음에 논의하자고 하신 일이 아니오?"
병조판서 정세필이 반란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듯하자 우의정 권철이 바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참고로 그는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으로 기호사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정이 반란사건에 휘둘리는 것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세필도 마찬가지였다.
"우상대감. 전하께서 논의를 미룬 사한은 이번 일에 관련된 정치적인 사한입니다. 이 사람이 말할 것은 이 나라의 병무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써 이 나라의 군권을 한 손에 쥐고 계시 전하께 올리는 군사적인 조언입니다."
"병조판서의 말이 지당하오. 과인이 비록 반역자들에 대한 논의는 나중으로 미루었지만 그것과 관련된 다른 사한들을 논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오. 아니, 그런 사한을 빨리 논의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소. 병조판서는 계속하시오."
"예. 전하. 반란군의 두 번째 계획을 간단히 살펴보면 한마디로 말할 수 있사옵니다. 바로 북진하여 전하가 계신 한성부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를 장악하고 남한강과 서해의 수운을 차단하여 한성부를 고사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다면 당장 한성부 내의 민심이 크게 동요하여 반란군의 토벌에 애를 많이 먹었을 것이옵니다."
"……."
권철의 우려대로 정세필의 말에 사정전의 분위기는 다시 차가워졌다. 수도인 한성부는 인구 20만의 소비도시로 엄청난 양의 물자공급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전라도에서 공급된다. 전라도와 한성부 사이에는 반란군이 차지하려고 한 충청도가 위치하며 그 충청도가 반란군에게 완전히 넘어가면 한성부에 대한 물자공급은 끊어지게 된다.
즉 충청도는 한성부에 위치한 조정의 목줄기를 누를 수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이번에 반란군이 신속하게 제압당하지 않았다면 조정으로써는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대소신료들은 다시 한번 이번 반란의 의미를 상기해야 했고 정세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전하의 혜안으로 인해 신속하게 제압을 할 수 있었으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사오니 전라도의 물자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그래서 소신이 감히 청하옵건대 전라도에서 한성부에 이르는 군사도로의 건설이 필요하옵니다."
"병조판서. 군사도로를 만든다니? 그것이 무슨 말이오?"
"예. 전하. 전라도는 한성부를 먹여 살리는 곡창이고 충청도는 전라도와 한성부를 이어주는 요지이옵니다. 물론 유사시 다른 지역에서 물자를 공급받을 수도 있지만 전라도만큼 물자가 풍부한 곳은 없사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계신 한성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반란과 외침에 대비해서 전라도와 충청도에 대군을 파견하고 유지하는 것은 막대한 재정부담이 드는 비효율적인 일이옵니다. 따라서 전라도와 한성부 사이를 도로로 이어두고 유사시 한성부에서 신속하게 병력을 파견하여 적군을 제압하는 방법을 사용하자는 것이 소신의 생각이옵니다."
"!!!"
병조판서 정세필의 제안에 상당수의 신료들이 놀라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균을 비롯하여 역시 상당수의 신료들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병조판서 정세필의 계획은 이미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다. 바로 온양전투에 동원된 제 1사단의 기동이 그것이었다.
한성부에서 온양까지의 온행행궁로를 따라서 급속히 기동한 기마대는 반란군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않았지만 순식간에 호위군의 전력을 증강시켜 반란군의 기세를 꺾고 포로들을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 모습을 여기 있는 일부 신료들이 직접 구경했기 때문에 도로를 통한 군대의 신속한 이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하. 신 호조판서 조식이 아뢰옵니다. 신이 군사를 아는 것은 아니라서 병조판서의 의견이 옳고 그르다고 평을 하지는 못하옵니다. 하오나 현재 한성부에 공급되는 물자와 세금으로 올라오는 곡식과 면포 등은 모두 수로를 이용하고 있사옵니다.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 꼭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배가 전복되는 경우가 많사옵니다.
만일 전라도에서 한성부까지 도로가 생기면 배로만 운반하던 물자를 육로로도 운반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유사시에는 군사가 움직이는 도로로 사용하고 평시에는 물자가 오가는 도로로 사용한다면 여러모로 이익이 될 듯하옵니다."
"전하. 신 형조판서 박순이 아뢰옵니다. 도로를 뚫을 경우 전하의 군대가 진군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외적이 침입해올 가능성도 있사옵니다. 특히 남쪽에는 왜구가 창궐하여 유사시 왜구가 도로를 따라서 한성부로 올라와 전조인 고려 때처럼 수도가 위협당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사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신 우의정 권철이 아뢰옵니다. 병조판서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조선의 실정에는 맞지 않사옵니다. 우리 조선은 원래부터 산이 많아서 방어하기 좋은 이점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도로를 뚫는다면 그 이점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신도 형조판서와 뜻이 같사옵니다."
온양전투를 직접 목격한 병조판서 정세필과 호조판서 조식은 찬성을 했지만 그렇지 않은 우의정 권철과 형조판서 박순이 나서서 반대를 했다. 양측은 그 뒤에도 한참을 논쟁하였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균이 직접 나서 권철과 박순을 바라보면서 담담한 어조로 설득했다.
"경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방어적인 이유로 도로의 개설을 반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소. 도로가 없다면 적군의 침입이 힘들어지는 장점은 있지만 반대로 지방에 있는 우리 군대를 동원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소. 또한 왜구는 지난 을묘년 이래로 우리 수군에게 밀려서 그 세력이 많이 약화된 상황이고 지금은 그때와는 왜국의 상황이 달라서 큰 위협이 되지는 않소."
"하오나 전하. 왜구의 문제는 그렇게 쉽게 보셔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전하께서 아직 보령이 연소하시던 을묘년 때 전라도에 상륙한 왜구의 기세가 얼마나 강성하였던지 그 진압에 무려 4개월이 걸렸사옵니다. 만일 다시 왜구가 그렇게 쳐들어온다면 그 피해는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그때의 수군전선은 맹선이고 지금의 수군전선은 판옥선이라서 우리 조선의 수군은 전에 없이 강대하오. 거기다 요즘 들어 왜구가 잠잠하지 않소?"
"그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니오. 경들을 잘 모르겠지만 작년인 융경 원년(1567년)에 명나라가 해금령을 철회했소. 왜구도 머리가 있는 자들인데 조그마한 이익을 얻기 위해 강력한 조선수군이 버티고 있는 조선으로 노략질을 오겠소? 아니면 명나라에 교역을 하러가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겠소?"
"……."
균의 말대로 작년인 융경 원년. 명나라는 공식적으로 해금령을 철회했다. 이로써 왜구는 그전과는 달리 노략질이 아닌 명나라와의 교역에 더 관심을 보였으며 일본 본토의 혼란이 줄어드는 분위기가 나타나면서 왜구에 대한 지방영주들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그래서 아직 왜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저히 그 세력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였다.
"아직 왜구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필요는 없지만 지나치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소. 그 도로를 통해서 왜구가 진격해올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병조판서와 호조판서의 말대로 도로를 만들어도 문제가 없을 듯하오. 아니 그렇소?"
"전하. 신 좌의정 홍섬이 아뢰옵니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이래 선대왕들께서도 도로를 만드는 일을 고려하셨으나 앞서 이야기한 방어적인 이유 외에도 재정적인 문제가 생겨서 모두 취소하셨사옵니다. 막대한 돈을 들여 방어의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도로를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옵니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하천과 산이 많아서 난공사가 예상되니 도로공사를 한다면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동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단거리의 작은 도로라면 모르지만 한성부에서 전라도까지의 도로라면 조정의 재정으로는 뒷받침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가능하오이다. 좌상대감."
"……."
좌의정 홍섬이 재정적인 이유를 들어서 반대했지만 조정의 재정을 책임지는 호조판서 조식이 가능하다고 바로 초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