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홍섬은 현 이조판서 홍담의 친형이며 균의 형인 하원군 이정의 장인이기도 하다. 즉 균에게 상당히 가까운 인척관계가 되는 인물이었다.
"이번에 국고에 환수된 반역자들의 재산이 엄청나서 재정에 여유가 많이 생겼소이다. 좌상대감도 아시겠지만 충청도에는 그 기원을 따지면 옛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오래된 가문들이 많고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 중에서 이번 일에 관여한 자가 많소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도로의 건설에 들어가는 예산이 어디 한두 푼이오? 호판도 아시겠지만 우리 조선의 전 예산을 쏟아 부어도 한성부에서 충청도까지 도로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오. 개개인들의 재산을 아무리 모아봐야……."
"이번에 반역자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보니 논밭이 2만여 결이었소이다. 거기다 그들이 거느린 노비들이 5만여 명에 달하고 나머지 재물을 은으로 환산하면 백오십만 냥을 가뿐히 넘소이다."
"은 백오십만 냥!!!"
은으로 백오십만 냥이면 돈으로 6백만 냥이다. 올해 초 조정의 세금수입이 225만 냥이었으니 거의 3배에 가까운 거금인 셈이다. 거기에 2만결에 달하는 토지와 노비들의 가격을 따지면 그 액수는 몇 배로 불어난다. 덕분에 균과 조식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료들이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했다.
"호조판서. 그것이 정말 사실이오?"
"그건 아니오. 좌상대감. 이것은 단지 지난번 해산한 중앙군 병사들을 고용하여 사병을 기르다가 잡혀온 자들의 재산일 뿐이오. 그런 자들에게 동조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숨겨진 재산을 은닉하고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니 그런 자들까지 다 찾아내면 많게는 두 배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소이다."
"그 두 배라면 은 삼백만 냥인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오? 그렇게 많은 돈이 조선에 있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소."
"좌상. 그것은 사실이오. 과인도 그 장부를 보고 많이 놀랐다오."
조식이 제시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에 좌의정 홍섬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균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의 회의에서 균은 최대한 논쟁에 참여하는 것을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선의 주인인 자신이 신하들과 논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좋은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은 병조판서 정세필과 호조판서 조식을 회의 전에 먼저 불러드려 일부러 언질을 주고 자신을 대신해서 다른 신하들과 논쟁을 벌이게 하였는데 그래도 가끔씩 회의가 진행이 안 된다고 싶으면 논쟁에 끼어들었다. 원래는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논쟁을 하기 좋아하는 균의 입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하오나 전하. 은 삼백만 냥이면 명나라에서도 무시못하는 엄청난 양이옵니다. 우리 조선의 국가재정은 은으로 치면 고작 50만 냥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온데 그런 자금이 있을 리가 있겠사옵니까?"
"그것은 우리 조선과 명나라의 세금제도가 다르기 때문이오. 명나라는 1년 예산이 은으로 1500만 냥에서 2000만 냥에 달한다고 들었소. 우리 조선의 예산에 비하면 30~40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이지만 명나라는 모든 세금을 은으로 받아드리는 일조편법을 시행하고 있어서 확실히 표시가 나는 것이오.
하지만 우리 조선은 세금을 은으로 걷기는커녕 쌀, 잡곡, 면포로 걷고 있고 최근까지는 지방군영의 재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등 조정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예산이 많소. 그런 예산들을 모두 양성화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1년 세입이 은 백만 냥은 충분히 넘을 것이오. 거기다 과인에게 올라온 서류에 그렇게 명시가 되어 있는데 어느 관리가 그런 거짓을 고하겠소?"
"……."
"하하하. 이거 좌상께서 과인의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구려."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이 어찌 그런 망극한 생각을……."
하지만 홍섬은 그래도 미심쩍은지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서 균은 세종실록 지리지의 예를 하나 들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기도 편에는 이런 주석이 달려있소. '본조(本朝)는 인구(人口)의 법이 밝지 못하여, 문적에 적힌 것이 겨우 열의 한둘이 되므로, 나라에서 매양 바로잡으려 하나, 너무 인심(人心)을 잃게 되어, 그럭저럭 이제까지 이르렀으므로, 각도 각 고을의 인구수가 이렇게 되었고, 다른 도들도 모두 이렇다.' 라는 구절 말이오.
태조대왕께서 고려를 무너트리셨지만 지방의 지배세력은 거의 바뀌지 않았소. 정확히 말하면 사대부와 향리, 이렇게 두 세력으로 분화가 되었을 뿐이지 그들이 각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하오. 우리 조선에서는 인구조사는 3년에 한번, 군정조사는 6년에 한번, 토지조사는 20년에 한번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왜 이렇다고 생각하시오?
지방의 양반들이 보기에 토지조사는 자신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는 소리이고 군정조사는 자신들의 노비를 나라가 병사로 부리겠다는 소리이오. 어린 아이들에게서 장난감을 빼앗아도 원통하게 우는데 하물며 그들이야 오죽하겠소? 따라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경제력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또한 과인이 예전부터……. 흠! 흠! 좌상. 대강 이해가 되시었소?"
신나게 설명하던 균은 계속 말하려다가 바로 얼버무렸다. 지금 공개하면 곤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반란이 일어난 것을 불과 얼마 전의 일이지만 그들에 대한 조사가 감행된 것은 2년 전 상인들에 의한 한성부의 쌀값폭등사건으로 방납과 관련된 상인, 역관들이 일소가 되었던 사건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균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여 방납상인들과 관련된 양반들은 건들지 말고 조사만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는 양반들과 연계된 상인을 총력을 기울여 붕괴시키고 거물급 양반들은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상당 수준의 조사가 진행되었고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김진기가 그 무렵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것이었다.
거기다 균이 김진기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주시한 것은 더 이전의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에 균이 아직 일개 종친에 불과할 때 윤원형에 의해서 순회세자의 친구노릇을 못하게 되었다. 그 때 균은 유력한 양반들의 초대를 받아서 그 뛰어난 연기력으로 양반들을 속이고 다닌 적이 있고 균과 김진기가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5년 전부터 예의 주시하면서 2년 동안 상당한 조사를 취해왔으니 그들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은닉시킨 재산까지 찾아내는 철저한 조사가 가능했다. 거기다 균의 휘하에 있는 외수사와 나상의 상인들 역시 돈 냄새를 맡는 데는 상당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다 보니 단 한푼의 돈이라도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들어나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번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균은 헛기침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조선 최고의 엘리트들이었고 수십 년의 정치경력을 가진 인물들이었기에 균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설마! 예전부터 이런 반란을 예상하고 있던 것은 아니겠지?'
'하긴 전하라면 그러고도 남을 지도…….'
'내가 전하를 처음 만났던 때 이미 거대한 상단 하나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때부터 음모(?)를 꾸밀만한 능력은 가지고 계셨지…….'
"흠! 흠! 흠!"
신하들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균은 헛기침을 몇 번했다. 역시 오랜만에 신하들과 논쟁을 벌이다보니 예전의 컨디션이 나오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균은 잽싸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일단 자금문제는 해결되었고 그다음이 공사에 동원될 인력을 구하는 것인데 이 역시 반란에 단순히 가담한 자들을 인부로 동원하여 상당수 충족시키고 전국 팔도에 있는 죄인들을 모아서 일을 시키며 그래도 부족하면 나라가 가지고 있는 노비까지 동원하면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오만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신들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본시 반란에 단순히 가담한 죄인들은 북방으로 보내서 토지를 개척하게 하는 임무를 주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남쪽에 큰 일이 생긴 이상 이들을 이쪽으로 돌리는 것도 좋은 방책이옵니다."
"소신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전하. 특히 뇌옥에 있으면서 관아의 곡식을 축내는 자들이 많은 데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무척 지당하신 분부이시라고 사료되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부리는 노비들은 맡은 일이 있으니 많은 수를 동원 할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죄인들을 사역시켜 공사를 해야 하는데 소신의 생각으로는 인력이 조금 부족할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흉년으로 유리걸식하는 난민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식량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것은 어떠하시겠사옵니까?"
가만히 자신의 의견을 찬양하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있던 균의 귀에 번쩍 뜨이는 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그래서 균이 고개를 들어 보니 종 3품의 벼슬인 홍문관 전한의 자리에 있던 이이가 말을 하고 있었다. 균은 이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이의 능력에 만족감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느꼈다.
'쩝~! 서인들이 율곡 반만 따라갔어도 조선이 그렇게 허무하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지난번 균과 대결하다가 치명적인 실수를 통해서 서인들에게 왕따가 되어버린 이이는 잠시 암행어사가 되어 머리를 식힐 시간을 받았다. 그리고는 한성부로 돌아와서 균의 배려와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서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그래서 벌써 당하관의 최상급 벼슬인 종 3품관에 이른 실정이었다.
이렇게 그가 빠르게 승진한 이면에는 균의 배려가 컸다. 이이는 서인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의 학문은 상당히 실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이와 이황의 학문을 비교한다면 이이의 학문이 더 실용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이는 좋은 의견을 많이 제시했고 균 역시 많이 인정해주고 있었다.
"조선팔도를 떠돌며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이 많다는 것은 과인도 알고 있는 일이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일을 시킨다면 그 역시 좋은 듯하다."
"하오나 전하. 유민들은 조정의 명을 어기고 야반도주를 한 자들이 태반이옵니다. 그런 자들을 함부로 불러드리는 것은 자칫 백성들에게 조정의 신상필벌이 옳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줄 여지가 있사옵니다."
"형조판서의 말씀도 옳소. 하지만 그들이 유리걸식을 한 이유에는 조정이 그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안겼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오. 그래서 과인이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수미법을 시행한 것이 아니겠소?
또한 공사는 농사일보다 더 고된 일이라서 그들에게 떠나기는 쉬워도 돌아오기는 어렵다는 교훈을 주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거기다 그들은 반란가담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셈이니 그 역시 백성들에게 야반도주는 반란에 준하는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렇게 자금문제에 이어 인력문제까지 해결되고 나자 큰 문제는 거의 해결된 셈이었다. 물론 도로를 놓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도로의 건설이 차후의 반란을 막고 한성부에 대한 원활한 물자공급을 하겠다는 것에 있었으므로 한성부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가 예상되는 대다가 도로건설에 반대하는 자들은 반역의 잔당으로 처벌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대강의 문제들은 해결 된 듯하구려. 다른 문제가 있으면 어서들 말해보시오."
"신 이조판서 홍담이 아뢰옵니다. 아무래도 도로를 만든다면 주변 백성들의 고충이 클 것이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신 예조판서 이황이 아뢰옵니다. 도로를 만드는데 있어서 세부적인 계획과 그 일을 감당할 기술자들도 필요하옵니다. 특히 도로가 놓이는 한성부와 전라도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강이 많아서 난공사가 예상되옵니다."
"일단 도로공사에 근처 백성들을 함부로 동원하는 것은 금하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해당 책임자를 공사인부로 강등시키는 처벌규정을 만들 것이오. 또한 도로가 지나는 곳에 위치한 모든 집과 토지들은 나라에서 보상을 할 것이며 공사인부들이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병사들을 파견하여 주변을 경계하고 근처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어 민심이 좋게 하면 충분할 것이오.
예조판서의 말처럼 강이 많아서 난공사가 예상이 되지만 작은 하천에만 다리를 놓고 큰 하천에는 배다리(배를 나란히 정박시키고 그 위에 판자를 얻져 만드는 다리:주교)를 만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오. 특히 배다리는 유사시 철거하여 적의 침공을 막을 수도 있으니 꼭 어려운 공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이미 조정 내에서 균에게 반대를 하던 자들은 이번 역모사건으로 대부분 제거되었고 남은 자들도 사정한파가 몰아치는 정국에서 입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그날의 회의는 보통과는 달리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거의 만장일치로 도로의 건설이 결의되었다.